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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노래.

* 뻐꾸기님의 [음악 이어받기(젊은바다로부터)] 에 관련된 글.

음악. 노래.
난 익숙하면서도 여전히 낯설다.
유난히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성격의 나는 제일 못하는 게 책읽기와 노래부르기였다. 나도, 나도 할 분들이 있겠지만 부끄럼을 타는 정도가 특히 심했다.
국어나 영어시간에 돌아가며 책읽기를 할 때면 늘 긴장되고 진땀이 났다. 음악시간도 마찬가지였다. 시험 보기 위해 마지못해 노래를 할라치면 하늘이 노래졌다. 우리 가족과 친척들은 한 때 내 노래를 듣는 게 소원이기도 했다.
그런데 적성검사에는 음악 점수가 제일 높았다. 놀라웠다.

 

마흔이 넘고, 언론 인터뷰에 방송까지 출연하면서 부끄러움은 이제는 많이 누그러졌지만 노래는 영 낯설다. 물론 투쟁가는 무수히 불러왔지만 말이다. 혼자 음악듣기도 제대로 못하는 건 가난한 성장과정과 무관하지 않다. 난 나를 위한 뭔가 장비를 산 것은 10여년 전 회사 다니며 산 아이와 카세트와 지난해 말에 산 디카가 고작이었던 것 같다. 물론 전에도 있겠지만 기억나는 건 그렇단 말이다.

 

뻐꾸기님의 이어가기 바톤을 받고 순간 당황했다.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노래가 몇 곡이지만, 단편적인 가사 정도였을 뿐이다.
온전한 것은 지난 2월 초순 내가 진보 보로그를 막 개설하고 났을 때 누군가의 불로그에서 들은 정태춘, 박은옥의 "다시, 첫차를 기다리며"라는 노래다.

 

그때의 느낌과 그 노래로 뻐꾸기님에게 보답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 같다.
내가 제대로 못하면서 다른 이에게 바톤을 넘길 자신도 없다. 용서하시라.



문득 "다시, 첫차를 기다리며"라는 제목을 보고
서늘한 상념에 잠시 기억을 멈추었다 클릭한다.

 

정태춘, 박은옥의 "다시, 첫차를 기다리며"다
노래가 흐르고, 가슴 시린 기억과 상실감이
차갑게 아스팔트에 젖어드는 겨울비처럼 무겁게 내린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기다려도 아직 오지 않은 이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막차가 떠나고 남은 거리에
아직도 첫차를 기다리는 이 누구인가.
...

 

 

다시, 첫차를 기다리며 (정태춘/박은옥)

 

버스 정류장에 서 있으마
막차는 생각보다 일찍 오니
눈물 같은 빗줄기가 어깨 위에
모든 걸 잃은 나의 발길 위에

 

싸이렌 소리로 구급차 달려가고
비에 젖은 전단들이 차도에 한 번 더 나부낀다

 

막차는 질주하듯 멀리서 달려오고
너는 아직 내 젖은 시야에 안 보이고
무너져, 나 오늘 여기 무너지더라도
비참한 내 운명에 무릎 꿇더라도

 

너 어느 어둔 길모퉁이 돌아 나오려나
졸린 승객들도 모두 막차로 떠나가고

 

그 해 이후 내게 봄은 오래 오지 않고
긴 긴 어둠 속에서 나 깊이 잠들었고

 

가끔씩 꿈으로 그 정류장을 배회하고
너의 체온, 그 냄새까지 모두 기억하고

 

다시 올 봄의 화사한 첫차를 기다리며
오랫동안 내 영혼 비에 젖어 뒤척였고

 

뒤척여, 내가 오늘 다시 눈을 뜨면
너는 햇살 가득한 그 봄날 언덕길로

 

십자가 높은 성당 큰 종소리에
거기 계단 위를 하나씩 오르고 있겠니

 

버스 정류장에 서 있으마
첫차는 마음보다 일찍 오니

 

어둠 걷혀 깨는 새벽 길모퉁이를 돌아
내가 다시 그 정류장으로 나가마

 

투명한 유리창 햇살 가득한 첫차를 타고
초록의 그 봄 날 언덕길로 가마
초록의 그 봄 날 언덕길로 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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