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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8/05/20
    페르세폴리스(2)
    풀소리
  2. 2008/02/18
    여름궁전(2)
    풀소리
  3. 2008/02/04
    일루미나타(2)
    풀소리

페르세폴리스

1.

쟈스민 향기 온 하늘을 채우고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하는  달콤하면서도 찬란한 밤...

...

영원할 수 있다면...

 

엄혹한 혁명정부의 압제에도 우리는 잃지 않는 그 무엇이 있지 않을까...

 

기억 속의 추억은 ...

'현재'라는 거울에 비춰진 추억은...

나에게 무엇일까?

 

때로는 쓸쓸한 많은 날들을 견디게 하는 힘이 되어주기도 하고,

때로는 가슴을 도려내는 비수가 되기도 하고...

 

그것은 '꿈'이기도 하고...

 

시간이 흐르면

그러나 추억은 추억일 뿐...

가슴 아팠던 기억도, 찬란했 기억도

시간과 함께 빛바랜 흑백사진처럼 흐릿해지고,

나아가 현실감을 잃어버리기조차 한다.

과연 그 시절이 있기는 있었던가... 내게...

 

그러나

가슴 아픈 기억은 찬란했던 시절에 대한 기억보다

바래지는 속도가 훨씬 더디니

시간의 차별침식에 의해

가슴 아린 기억들만 거친 밤길처럼 우둘투둘 더욱 두드러진다.

 

반항 또는 도발이기도 하고...

 

사랑이기도 하다.

 

 

2.

자존심.

자존심은 아름다운 삶을 만들어 주는 가장 커다란 필수 조건임이 분명하지만,

세상과 불화할 수밖에 없는 필연적 운명을 내포하고 있으니

어쩜 아름다운 삶이란 세상과의 불화를 수반하는 것이 숙명인지도 모르겠다...

 

불화...

자존심을 지키고, 아름다운 삶을 추구하는 기회비용이라고 할지라도

불화가 동반하는 고통은 감내하기 어려우니

때로는 자신과 사랑하는 이들을 함께 파괴하기도 하고, 치명적 파멸로 내몰기도 한다.

 

뒤돌아보는 과거는 내게 무엇일까...

 

열정의 총화랄 수 있는 혁명.

혁명이 연대와 사랑의 순수한 결정체가 아님은 분명하지만,

파괴한 구체제 못지않게, 아니 나아가 더 심하게

삶을 규정하고, 규제하고, 압박한다면...

또 하나의 거대한 괴물이 되어버린다면...

자신의 심장을 깨뜨려서 저항한다고 해도 변화시킬 수 없음을 알게 된다면...

 

견딜 수 없어도 삶은 이어지고...

 

 

3.

한때 영화로웠던 페르시아 황제의 도시 페르세폴리스.

무너진 폐허 속에서

우리가 찾을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세월이 지나고

천천히 되돌아본 과거는...

때론 고통스럽고...

때론 무감하다...

흩어지는 담배연기 속 흐린 시야처럼...

 

영화 페르세폴리스...

 

 

4.

아름답다. 페르세폴리스

영상도...

심지어 불화와 아픔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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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궁전

예전에 노보에 싣느라고 급하게 썼던 글이다.

급하게 쓰다보니 매끄럽지 못했다. 오죽하면 너그럽기 그지없는 감비까지 지적할 정도였다.

시간이 되면 수정을 해야지 하면서도 많이 미뤄왔다. 그러다가 이번 출장길 버스 속에서 손을 봤다. 물론 손을 봤다고 별반 다를 건 없지만 말이다.

 

여름궁전 포스터

 

여름궁전

 

로우 예(Ye Lou) 감독이 연출한 여름궁전은 사랑을 주제로 한 영화다. 그리고 한국에서 광주민주화항쟁만큼이나 중국 사회에 엄청난 상처를 남긴 천안문사건을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로우 예 감독은 ‘천안문 사건의 격렬함이 사랑의 격렬함과 같다’고 말하였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천안문 사건을 이 영화의 시대적 배경으로 삼은 것은 우연만은 아닌 것 같다. 사랑의 격렬함을 드러내기 위해 천안문 사건을 배경으로 삼았는지, 아님 천안문 사건의 격렬함을 드러내기 위해 사랑의 격렬함과 무수한 상처를 비유했는지, 아님 상처를 남기기도 하고, 상처 이상의 무엇을 남기기도 한다는 측면에서 사랑과 천안문 사건이 닮아 있음을 그리려 했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주인공 위홍

 

영화는 주인공 위홍이 북경에 있는 북청대학교 합격증을 받으면서 시작된다. 위홍은 북한과 중국의 접경도시 조선족자치구 투먼을 떠나 북경으로 온다. 위홍이 처음 접한 대학은 통제사회 속의 해방구라는 측면에서 우리네 80년대와 흡사하다. 학생들은 사회의식이 분명하더라도 소란스럽고, 사랑과 일탈을 추구한다. 그곳에서 위홍은 자유롭고, 유쾌한 성격의 리타를 만났고, 리타를 통해 우수로 가득한, 한없이 깊은 눈을 가진 남자 저우웨이를 만났다.

 

우수깃든 눈이 깊은 남자 저우웨이

 

위홍은 저우웨이가 운명적인 남자라는 걸 직감적으로 느끼고, 그에게 깊이 빠져든다. 저우웨이도 마찬가지이지만 그가 전부인 위홍과 달리 다른 여자들 사이로 방황한다. 그런 저우웨이를 보면서 위홍은 그에 대한 사랑이 깊어갈수록 사랑에 대한 불안감 또한 커져간다. 불안감을 이기지 못한 위홍은 결국 결별을 선언한다. 그리고 천안문 사건이 일어난다.


트럭을 타고 흐드러지게 웃으며 노래를 부르고, 힘차게 구호를 외치며 천안문 광장으로 향하는 젊은이들. 그 틈에 위홍도, 저우웨이도, 리타, 그리고 주변의 모든 친구들도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보면 시들어 흩어질 운명이라는 걸 알게 될지라도 흐드러지게 핀 봄꽃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천안문에서 시위가 격렬해지고, 구호가 온 세상을 덮을 때, 저우웨이와 리타는 기숙사에서 섹스를 하다 학교 당국에게 발각되면서 둘의 관계가 모두에게 알려지고, 손을 잡을 듯 말 듯 위태롭던 그들의 친구 관계는 연인관계로 발전한다.

 

위홍과 저우웨이의 밝은 한때

 

비록 결별을 선언했지만 여전히 저우웨이를 가슴 속 깊이 사랑한 위홍은 분노하고 절망한다. 사랑은 어쩜 젊음의 전부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의욕을 상실한 위홍은 천안문사건이 끝나면서 학교가 조기방학에 들어갈 때 고향 투먼으로 돌아간다.


위홍은 정착하지 못하고 투먼에서 다시 선전으로 선전에서 중경으로 옮겨 다닌다. 정착하지 못하는 건 사랑도 마찬가지다. 공허함이 클수록 그것을 채우려는 시도도 커지는가. 위홍은 사랑을 찾지 못하면서도 섹스에 탐닉한다.


나는 위홍이 탐닉하는 섹스가 슬픈 몸부림처럼 느껴졌다. 마치 거대한 운동이나 혁명이 변질되기 시작하였더라도, 지나고 나면 실패라는 뻔한 결말이 될 것이 명확하지만, 현재시제에 사는 사람은 몰입하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녀의 사랑과 섹스가 또 다른 관계를 잉태하지 못하고 그렇게 끝나는 것은 어쩜, 슬프지만 어쩔 수 없이 딛고 살 수밖에 없도록 예정된, 우리의 현실인지도 모르겠다.


나중에 저우웨이가 중경으로 돌아와 다시 재회하였을 때 위홍은 2년 전에 이미 결혼했지만, 남편과의 사랑이 본래 그녀가 추구하던 사랑도, 그래서 최종 기착지도 아니라는 것은 명백해 보인다. 마치 거대한 운동이 끝나고, 참여했던 주체들의 의지와 관계없이 모든 과실이 정치판의 흥정물로 전락했을 때, 주변부로 밀려날 수밖에 없는 순수한 사람들이 선택한 불안한 삶처럼 말이다.


리타는 천안문 사건이 끝나고 저우웨이와 함께 베를린으로 가 함께 10년을 보낸다. 그러나 리타는 저우웨이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자기가 아니고 위홍이라는 걸 안다. 그녀는 자신이 그토록 절실히 원하는 사랑이, 예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결코 자신의 것이 되지 않을 것임을 안다. 그녀는 저우웨이와의 사랑이 그런 의미에서 ‘어떤 희망’도 아님을 깨달으면서 ‘혼자’가 되어 간다. 그녀에게 저우웨이를 향한 사랑은 이제는 단지 기억처럼 그녀의 몸과 함께 동행하는 지워지지 않을 흉터일 뿐이다. 그런 그녀가 택한 것은 자살이었다.

 

재회한 위홍과 저우웨이/ 세월은 사람을 성숙하게 만들면서도, 그 세월을 거치면서 상처로 덧댄 기억은 무수히 겹쳐지는 영상으로 사랑을 도도라지게 하는 걸 방해하기도 한다. 

 

리타가 죽고, 리타가 사랑이 ‘흉터’라고 말했던 것을 기억하며 저우웨이는 ‘사랑이 흉터만은 아니’라고 혼자 중얼거린다. 그에게 사랑은 무엇일까? 여전히 희망을 갖게 하는, 그래서 기대할 수 있는 미래일까? 아님 공허함과 아픔이 사랑 그 자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일까? 위홍은 어떠했을까? 그녀에게도 사랑은 기대할 그 무엇이었을까?


저우웨이는 중국으로 그것도 우연하게 중경으로 귀국하면서 그들은 10년 만에 만난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또 다시 빗겨간다. 그들은 열망해왔던 대로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있어도 사랑은 여전히 불확실하고, 고통스럽다.

 

사랑하는 사람의/ 무덤을 찾기 위해서/ 난 세상 끝까지/ 찾아 헤맸다네./ 아픈 가슴 부여잡으니/ 눈물이 쏟아지네./ 내 사랑 당신은 어디에?/ 사랑을 찾는 내 가슴은/ 목메어 우는데/ 당신은 지금 어디에?

 

이 영화의 주제가가다. 기억을 아파한다는 건 여전히 사랑하고 있는 증거라고 하던가. 추억을 잊지 않고 간절히 찾고 있는 이에게 ‘사랑’은 포기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아닐까? 다른 말로 표현하면 ‘희망’이라 할 수 있겠지.


주인공들과 학생들이 트럭 화물칸에 빼곡하게 타고 웃으면서, 노래부르면서, 구호를 외치면서 천안문으로 향하는 장면을 보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주제가처럼 영원히 지치지 않고 세상 끝까지 갈 것 같았는데, 지금도 그런 연장선상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믿고 있었는데, 눈물은 이미 후일담 세대로 전락한 ‘나’를 증거하고 있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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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루미나타

아무렇지도 않은 줄 알았는데, 어제 당대회의 후유증이 있었나보다.

오늘 아침에는 일어나기도 힘들고, 출근하기도 싫었다.

그래서 계속 미뤄왔던 '일루미나타'를 보고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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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은 있지만 아직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는 극작가 투치오는 자신의 희곡 ‘일루미나타’ 공연을 바라고 있다. 하지만 극장주는 ‘루스티카나’를 무대에 올린다.

그러나 ‘루스티카나’ 초연에서 주인공 삐에르가 기절을 하면서 공연은 위기를 맞는다. 이때 투치오가 닫힌 막 앞으로 나와 ‘루스티카나’는 종영하고 자기의 희곡 ‘일루미나타’가 다음 공연작임을 일방적으로 선전한다.

 

한 남자가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내게 어떤 사랑을 원해?”

그는 바람을 피우게 됐죠.

“고통 없는 사랑을 원해?”

그는 정부를 집에 초대해 아내를 모욕했습니다.

“잔인하지 않은 사랑을 원해?”

그가 저녁 내내 정부와 꼭 붙어있는 동안 아내는 창 밖만 바라봅니다.

그러다 정부가 뛰쳐나가자 남자는 그녀를 뒤 쫓아 가지만

결국 찾지 못한 채 돌아와서 음독한 아내를 발견합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어?”

“난 어쩌라고?”

“난 당신 없인 살 수 없어”

아내는 약을 토해내죠.

“내가 얼마나…아름다운 사랑을 주고 싶어 하는 지 알아?”

아내는 계속 토합니다.

“내 맘을 그렇게 모르겠어?”


삶이 논리적이며 질서 정연하리라는 믿음은 망상이죠.

여러분은 오늘 영화를 보러 오셨습니다.

방금 예기한 러브스토리는 그 예고편이죠.

제목은 ‘일루미나타’

 


주인공 투치오/ John Turturro

 

관객들은 일루미나타를 즉각 공연할 것을 요구하고, 배우들은 일루미나타 공연에 들어간다.


그러나 공연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았다. 특히 영향력 있는 비평가 베발라콰는 가혹하게 혹평했고, 관객들의 반응도 시큰둥했다. 바람피고 돌아온 남편을 더욱 더 사랑하는 아내의 모습이 엔딩인데, 세상에 그런 여자가 어디에 있느냐고들 하였다. 이에 극장주는 ‘일루미나타’를 즉각 내리고 입센의 ‘인형의 집’을 공연하고자 한다.


투치오는 거의 포기상태인데, 배우들은 일루미나타를 공연할 수 있도록 모두 합심하여 방법을 찾는다. 투치오의 연인인 중심배우 레이첼은 극장주를 설득하고, 다른 배우들은 비평가이면서 호모인 베발라콰가 좋아하는 남자배우를 그에게 보낸다.

 


투치오를 유혹하는 셀레멘느/ Susan Sarandon

 

유명 여배우이지만 이제는 한물간 셀리멘느는 일루미나타를 내려서 낙담한 투치오에게 빠리로 함께 가자고 유혹한다. 그녀는 성공을 위해 어떤 행동이라도 불사하며 누구든 이용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다. 


레이첼의 설득으로 극장주는 일루미나타를 좀 더 공연하기로 결정하였고, 비평가 베발라콰는 사랑을 위해 다시 한 번 공연장으로 찾아온다.


그러나 투치오가 셀리멘느를 만나러 간 것이 ‘투치오가 자신의 성공을 위해 셀리멘느와 빠리로 가기로 결심했다’고 소문이 나면서 레이첼은 투치오를 의심하고, 실망한다. 레이첼은 투치오와 다투다가 - 그녀는 결코 기대하지 않았던 - 그가 그녀와 처음 만났을 때를 소상히 기억하는 걸 보면서 여전히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투치오의 연인 레이첼/ Katherine Borowitz

 

...

“사랑해.”

“...뭐라고?”

“...사랑해.”

“사랑이 단절됐었다는 듯이 들리는데.”

“단 한번도 단절된 적 없었어.”


물론 내 기억으로 옮겨놓은 거라 실제 대사와 조금 다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느낌은 비슷할 것이다.


레이첼은 이어 투치오에게


“당신에 대한 내 사랑은…

병들어 있었어.

보다시피

난 불완전한 존재야.

불완전하게 태어나, 불완전하게 교육받고

불완전한 손에 크며, 내 감정은 병들어 갔지.

이런 내가… 뭘 해줄 수 있겠어?

하지만 당신이 찾고 있는 게

불완전한 사랑이라면…

멀리 갈 것 없어.

나 여기 있어.

아직 날 사랑한다면,

나 여기 있어.”


라고 한다.

 

다시 공연은 시작되었다. 극중극 일루미나타에서는 유부남인 남자 주인공이 젊은 여배우와 사랑에 빠지고, 그 여자는 남자와 함께 멀리 떠날 것을 요구한다. 남자는 그녀의 요구를 거부하고, 여자는 떠난다.

위에 있는 레이첼의 대사는 다시 돌아온 남자가 자기 부인에게 하는 극중 감동적인 엔딩대사로 살아난다.

 


극중극에서 유부남 주인공을 사랑하는 젊은 여배우로 나온 도미니크/ Rufus Sewell

 

영화는 참 감각적이고 시적이다. 불완전한 소통구조를 가진 인간. 더욱이 존재 자체가 불완전한 인간. 그런 불완전한 인간이 할 수 있는 지순한 사랑이란 어떤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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