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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01/22
    장기표씨와 함께 산행을 하다.
    풀소리
  2. 2005/01/22
    서울시 교통체계 및 요금체계 개편, 문제는 없을까?
    풀소리
  3. 2005/01/22
    마흔에 길을 나서다.(1)
    풀소리

장기표씨와 함께 산행을 하다.

  1주일 내내 12시를 넘겨 집에 들어오다 보니 이제야 겨우 짬이 난다.

 

  지난 4월 마지막 일요일이었으니 벌써 1주일 전 일이다. 선배 한 분이 주도하는 산악회에 참석하기 위해 아침 10시에 옛 구기파출소 앞으로 나갔다. 걱정 2/3, 기대 1/3의 마음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몇 일 전 그 선배로부터 이번 산행에는 사회당, 개혁국민당, 사회민주당 소속원이 모두 골고루 참여할 것이라는 전화를 받았기 때문이다.

 

  나는 때때로 주변 사람들과 격한 충돌을 빚기도 하지만, 사람들을 소속 정당 등 드러난 정치적 표상 그대로 상대방을 평가하지도, 대우하지도 않는다. 우리 사회처럼 정치적으로 미성숙한 사회에서 정치적 견해가 그리 중요하지 않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오히려 상대방의 진의를 충실하게 이해하려는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애정의 유무, 타인에 대한 배려가 그 본체인 예의 등을 더 따진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격한 충돌을 하는 경우 그 대상은 우파(?)보다는 나 스스로 그러하기를 바라는 사회주의자 또는 좌파를 표방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구기파출소 앞으로 다가갈수록, 사람들 얼굴이 또렸이 보일수록 걱정은 더 커져만 갔다. 30여명쯤 올 거라 들었는데 낯익은 얼굴은 불과 5-6명이었다. 옆에 일군의 사람들 틈에 앗, 또 한 사람의 낯익은 얼굴. 그 분은 바로 장기표씨였다.

 

  가볍게 목례를 하고, 말없이 악수를 하고 한 걸음 비켜 자리를 잡고 앉아 있으면서도 머리 속은 온통 어지럽기만 했다. 설마 장기표씨를 하는 맘도 있었지만 떼거지로 왔다면 오늘 산행은 어떻게 될까 하는 걱정에 갑자기 머리가 지끈거렸다.(이때부터 시작한 두통은 뒤풀이 때 끝내 약을 먹고서야 진정되었다.)

  장기표씨가 주례 약속이 있다하여 서둘러 산행이 시작되었다. 화창한 날씨에 신록이 싱그럽고, 산벚의 흰 꽃잎들이 바람결에 흩날리는 4월 마지막 일요일, 사람들은 다른 때보다 곱절은 많아 보였다.

 

  나는 산을 잘 타는 편이라 다행인지 불행인지 일행의 맨 뒤에 섰다. 곰곰이 생각에 잠기느라 말없이 걸음을 옮겼고, 주변 사람들과 얘기할 기회가 있으면 실없는 농담이나 주고받고 깊이 있는 얘기는 삼갔다. 산란한 내 마음과 달리 주변 풍경은 왜 그리도 아름다운지...... 바람에 흰 꽃잎을 뿌리는 산벚은 물론이요, 늦은 진달래, 한창 피어난 철쭉, 떠질 듯 붉은 자주빛으로 부픈 병꽃, 내 특히 좋아하는 흰 물앵두꽃, 온 산을 꽉 채운 투명한 새 이파리들...... 그중에서도 키작은 붓꽃이 제일 눈에 들어왔다.

 

  사실 나는 붓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장식을 극도로 싫어하는 나는 붓꽃이 매우 장식적으로 보여서일 것이다. 그럼에도 눈길은 이 붓꽃에서 저 붓꽃으로 옮겨갔고, 생각은 옛 공자님부터 내 앞에 선 장기표씨까지 이 얼굴 저 얼굴로 옮겨갔다.

 

  옛날 공자님이 자신의 뜻을 현실정치 속에서 펴보시고자 수레를 타고 천하를 도는 그 유명한 주유천하를 하실 때 얘기다. 세상을 경륜할 풍부한 학식과 포부, 인재 집단을 가지고 있음에도 어떤 제후도 공자님을 쓰려고 하지 않아 매우 실망한 공자님이 의기소침하였다. 그러던 어느 깊은 산길을 지나고 있을 때 맑은 향기가 나 따라가 보았더니 수풀 속에 난초 하나가 맑은 향기를 사방을 퍼트리며 단아하게 피어있었다고 한다.

 

  이 난초를 보시고 공자님은 주유천하를 끝내고 고국인 노나라로 수레머리를 돌렸다고 한다. 저렇게 향기롭고 아름다운 난초도 알아주는 이 없이 수풀 속에서 홀로 피었다 지기도 하고, 그 향기가 너무나 아름다우면 움직이지 않아도 사람들이 스스로 찾게 됨을 보면서 자신의 조급성을 깨달았고, 이 일은 공자님 일생의 일대 전환기 구실을 하였다고 한다.

 

  붓꽃은 난초는 아니다. 하지만 난이 살기엔 기후가 추운 서울에서는 그 중 난에 가장 가까워 보인다. 실제 화투패의 난초는 붓꽃이기도 하다. 어찌되었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해 얼마나 조급증을 가지고 있는가. 그러나 조급증을 뒤집어 보면 오히려 자신이 내세우는 이상과 배치되고, 인민에게 해악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더욱이 권력집단의 조급증은 2000만 명에 달하는 스탈린의 대숙청/학살, 중국의 문화혁명, 캄보디아의 킬링필드에서 보여지듯 인류의 대 재난이 되기도 하지 않았던가.

 

  산을 오르며 많은 사람들이 장기표씨를 알아보았고, 악수를 청했으며, 함께 온 아이들에게 이분이 장기표 선생님이셔 하고 소개하기도 하였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너무도 마음이 아팠다. 저 많은 사람들이 그분을 알아보고, 먼저 인사를 청하고, 아이들에게 자랑스레 소개까지 시키는 마음은 어떤 것인가. 과연 저분은 그네들의 진정을 얼마나 담아내고 있는가. 무엇이 저분을 역사의 뒤켠으로 저물고 있는 한국노총의 정치조직의 수장으로 서게 하였는가. 함께 한 동지들에 대한 실망감 때문일까. 먼저 제도권에 자리잡은 후배들에 대한 부러움 때문일까. 그도 저도 아니면 세상에 대한 무차별적인 분노 때문일까.

 

  그 어떤 이유도 나에겐 정당화 될 수 없는 이유로 보인다. 모든 것이 그저 조급증으로 보이고, 이면에는 개인적 출세의 욕심이 이상을 뚫어 넘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산행에서 먼저 반가이 인사를 건넨 사람들이 장기표씨가 사회민주당의 총재임을 알고 있을까. 알고 있다면 사회민주당이 어떤 당인지는 알고 있을까...... 주변에서 흔히 듣는 말대로 가만히만 계시면 그 자체로 우리의 자랑이고, 많은 이의 등대가 될 터인데......

<2003년 5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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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교통체계 및 요금체계 개편, 문제는 없을까?

서울시 교통체계 및 요금체계 개편, 문제는 없을까?

 

                                                                   최경순/ 전국민주버스노동조합 사무차장

 

  닫혀진 대문, 닫힌 서울시 행정

 

  오늘(6월 2일) 오전 11시 우리는 서울시청으로 기자회견을 하러 갔다.
  '우리'란 '대중교통 공공성 강화를 위한 연대회의(약칭 교통연대) 준비위원회'이고, 공공연맹, 서울지하철노조, 도시철도노조, 인천지하철노조, 철도노조, 민주버스노조, 민주노총 서울본부, 장애인이동권연대회의, 민주노동당 서울시지부, 경기도지부, 인천시지부 등 많은 조직이 참가하고 있다.
  우리는 전날 심재옥 서울시의원을 통해 기자실을 사용요청을 하였고, 서울의 대표적 노동조합 대표들이 모였으니 당연히 기자실을 내 주리라 생각했다. 10시 45분 지하철 시청역 역무지회 사무실에서 집결하였다. 기자들로부터 전화가 오고, 기자회견문 챙기고, 수십 명이 모이다 보니 모든 게 분주하다.
  노조의 위원장들과 간부들, 심재옥 서울시의원, 요즈음 잘 나가는 민주노동당의 대표최고위원 후보 김혜경 서울시지부장까지 우리는 줄지어 계단을 올라 시청으로 향했다.
  앞장선 이가 시청 대문 앞에서 멈췄다. 정복에 무전기를 든 뚱뚱한 사내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왜 못 들어가게 하느냐. 위에서 못 들어가게 한다. 기자회견 하겠다고 했지 않느냐. 기자회견실은 사용할 수 있다. 그러면 대문을 열어달라. 안 된다.
  도무지 논리가 필요 없는 답변이 우리를 가로막고 있다. 우리가 언제 하지 말라고 하면 안 했나 하며 우르르 몰려가니 시청 대문은 힘으로 열 수 없게 되어 있었다. 대문을 잠그고, 안으로 셔터를 내려놨기 때문이다.
  우리는 끝내 문을 열지 못했다. 결국 입구 계단에 늘어서서 기자회견을 시작했다.
  정말 요금이 저렇게나 많이 올라요? 월드컵 대표 복장을 한 할머니가 묻는다. 예. 우리 집은 양천군데 어떻게 다니라고. 할아버지도 작년에 죽었는데.
  아니 시민이 들어가겠다는데 왜 막아. 지나는 시민 중 과격한 사람들은 한 마디씩 한다. 우리가 가져온 피켓을 본 시민들은 관심이 많다. 당장 지하철, 버스 요금이 오른다고 하니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기도 하다.
  서울시의 닫힌 대문 앞에서 우리들의 기자회견은 한·터어키 축구 친선게임 응원을 준비하는 수백명의 붉은 악마 응원대의 북소리에 묻혔지만 우리는 악착같이 회견을 끝냈다.

 

  사업자의 논리로 밀어붙이는 서울시, 서울시장

 

  버스 색깔이 갑자기 바뀌고 있다. 빨강, 파랑, 초록. 서울시에서는 오는 7월 1일부터 버스운송체계를 재편하면서 노선의 특성에 따라 색을 지정했다고 한다.
  이제 채 1달도 남지 않았다. 그런데도 시민들은 색깔이 뭘 의미하는 지 잘 모른다. 모르는 건 그것만이 아니다. 앞으로 어떻게 갈아타고 다녀야 하는 지, 요금은 어떻게 되는 지 도대체 제대로 아는 게 없다.
  그렇다고 시민들 욕하는 게 아니니 오해는 마시라. 진짜 욕을 먹을 대상은 시민의 발인 버스, 지하철의 교통체계와 요금체계를 바꾸면서 정작 이용 시민들에게 홍보조차 제대로 안 한 서울시이고, 서울시장이다.
  서울시가 내세우고 있는 교통체계 와 요금체계 개편을 보면 버스 노선을 대폭 정리하여 지하철처럼 간선망을 만들고, 간선과 연결하는 지선망을 구축하겠다는 것이고, 지하철과 함께 갈아탈 때 따로 갈아타는(환승) 요금을 받지 않겠다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참 좋다.
  문제는 요금은 오르고, 민간 사업주에게는 막대한 이윤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대중교통 중심의 교통체계로 가겠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그놈의 '수익자 부담원칙'을 내세우고 있다. 짧은 거리를 이동하는 사람은 싸게, 먼 거리를 이동하는 사람은 바싸게 하겠다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요금을 올리는 건 물론이다.
  지하철의 경우 일산 대화에서 수서까지는 1,100원에서 1,800원으로, 노원에서 사당까지는 740원에서 1,600원으로 오른다.
  "대도시에서 대중교통은 도로교통혼잡완화, 환경개선 등 다양한 외부경제효과를 발생시키며, 저소득층에 대한 최소한도의 교통서비스 제공의무 (Public Service Obligation:PSO)라는 형평성의 논리가 적용된다."는 황기연 서울시정개발연구위원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대도시 교통에서 수익자 부담원칙은 지극히 부당하고, 불순한 발상이다.
  먼 거리를 통근하는 사람들이 '수익자'인가 '피해자'인가. 누군들 비싼 강남 아파트에 살 줄 몰라 안 사는가. 어쩔 수 없이 떠밀려 교외로 교외로 밀려나지 않았는가. 불편하고 긴 출퇴근에 시달려야 하는 게 수익자인가 피해자인가.
  서울시에서 교통피해자인 장거리 출퇴근자를 교통 수익자로 보는 건 뭐라 변명해도 철저하게 사업자의 논리를 따르는 것일 뿐이다.

 

  사업주만 살찌우는 준공영제(?)

 

  내용으로 들어가면 더 기가 막힌다. 서울시는 이른바 준공영제를 실시한다 하면서 버스 요금 수입을 중앙으로 집중시키고 대신 사업주들에게 필요경비 일체인 운송원가와 운송원가의 10%를 적정 이윤으로 보장해준다는 것이다. 사업주들에게 보장해주는 금액을 요금 수입으로 채워주지 못하는 만큼은 세금과 요금 인상으로 채워주겠다는 것이다.
  지금 흘러나오는 얘기로는 1일 대당 운송원가 약 377,000원, 적정 이윤 37,700원 보장해 준다는 것이다.
  별로네 할 분들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버스 사업주들에게 '절대' 보장 해주는 이윤이 연간 1,096억 원이다. 사업주들이 족벌체제로 사장에 전무에 상무를 다 해먹고, 월급을 얼마든지 가져가도 이는 '원가'에 속할 뿐이다.
  서울시내버스는 현재 전체로 보면 자본 잠식상태이다. 사업주들이 깡통을 찼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가엽다는 생각은 마시라. 임금체불, 노동탄압에 온갖 회사 돈 빼돌려 부동산 재벌이 된 이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뻔뻔한 사업주들에게 서울시는 '절대' 이윤을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더 알면 화병이 생기겠지만 그래도 계속하자. 운송원가는 어떻게 나오는가. 아시다시피 서울시는 단 한 대도 시내버스 운행을 하지 않고 있다. 그러니 모든 데이터를 민간 사업주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사업주들이 내놓은 데이터를 보면 회계의 문외한이 내가 봐도 웃긴다. 운송원가의 40%가 넘는 운전기사 인건비의 경우 대당 2.44명으로 계산되어 있는데, 실제로는 대당 1.9명이 일하고 있다. 대당 0.54명의 인건비가 부당하게 추가되어 있다. 월급이 적은 임시직, 촉탁직은 정규직으로 둔갑한 건 물론이다.
  연료의 경우 2003년도 사용량은 'ℓ'로 따져 2001년의 두 배다. 정확히는 97.3% 증가다. 물론 차량은 단 1대도 늘지 않았다.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사용량이 늘어났는지, 관리감독기관인 서울시에서 왜 지적이 없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시 관계자는 카드로 계산된 영수증이니 어쩔 수 없다나.
  이렇게 늘어난 유류사용준으로 서울시에서는 연간 250억원에 달하는 유가보조금을 주고, 운송원가를 높여 보조금을 주고, 정부에서는 부가세 감면혜택을 준다.
  이렇게 공공서비스인 버스운송사업을 하면서 사업주들은 이익추구에 혈안이 되어 있는데도 서울시에서는 요금을 중앙으로 집중하는 것도, 운행 평가도, 운영 평가도 모두 이들의 조합인 사업조합에 맡기겠다고 한다.

 

  최소한의 준비라도 하고 뭐라도 시행하라.

 

  우리는 정기권 개념의 수도권 단일요금제 도입과 정부와 시, 노조와 시민이 함께 운영하는 대중교통의 완전 공영화를 주장한다.
  이것이 당장 어렵다면 서울시는 적어도 민간사업주들에게 지원할 금액이 적정한지,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하는 경영모델을 만들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선 일부 노선이라도 직접 경영하여 올바른 모델과 데이터를 확보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소수 시민단체를 참여시켜 생색낼 게 아니라 개편에 앞서 철저히 홍보하여 시민들의 의견을 최대한 모아야 할 것이다.
  서울시는 문제점을 다 알 터인데도, 좋은 방법이 있음을 알 터인데도, 준비도 없이 7월 1일 시행을 위해 한낮에도 길이 막힐 정도로 곳곳의 도로를 뜯어고치며 군대식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그렇게 집착하는 7월 1일은 이명박 서울시장의 취임 2주기라나 어쩐다나. 정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2004년 11월 월간 <작은책>에 기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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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에 길을 나서다.

마흔에 길을 나서다.



공선옥의 신작(?) 에세이 제목이다.
책과 작가를 곁에 두고 담소를 청하니
술잔이나 찻잔이나 내키는 대로 들어 보시라.


1.
공선옥.
믿음직한 작가다.
다른 잘 나가(?)는 여성작가들처럼 감성에 취해 곁가지로 새지도 않고,
파란만장한 그의 삶이 보여주듯, 거침없는 용기를 가진....

그렇지만 내게 그는 그다지 매력적이지는 않다.

고흐의 오베르교회

(하느님의 집인) 교회가
(하느님에게로 가는)
길을 막고 있다.

80년대라는 '시대'에 부딪쳐
고흐의 '분노'에서 '집체적'으로 타협하였지만,
사실 나는
빛과 어둠이 분명한 렘브란트보다
무겁지 않은, 도회풍의 위트와 슬픔이 모호한 점들로 어울려 일렁이는,
모네가 더 좋다.
「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의 배수아를 좋아한 것처럼...
(최근 「에세이스트의 책상」을 보고 결별을 결심했지만)


'매력적이지 않다'는 말은 슬프다.
더욱이 '믿음직스럽다'가 '매력적이지 않다'와 겹쳐질 때,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이 받는 슬픔은 더욱 커지리라.

그렇게 심한 말을 하면서도
공선옥과 그의 에세이를 곁에 두고 담소를 청하는 것은
내게 사람을 괴롭히는 악취미가 있어서가 아니니 오해는 마시라.

늘 믿음직한 후배 욱동이 마흔에 들고,
우리 지구당으로 보면
이제 막 마흔을 맞이한 뱀(띠)들이
지난 한 해 그렇게 몸부림을 하였는데, 선배(?)로써 옆에서 보기 딱했고,

나아가
아끼는 후배가 야심차게(?) 기획 출판한 책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목도 담소를 이어가기에 좋지 않은가.

모네의 <수련>

'너'에게 '나'도,
'나'에게 '너'도 모호하다.
그러나, 아름답다.

 

2.

 

공선옥은 마흔에 길을 나서며 어디로 가려 했을까?

 

뭐 우리가 뒤따라 갈 것은 아니니 어디로 가려했든 사실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다.
그래도 담소의 소품이 되었으니 한마디한다면
삶이 묻어 있는 곳, 한계적 삶이 묻어 있는 곳, 그렇기에 생명으로써 삶의 원초가 묻어 있는 곳. 그런 곳을 찾아 나선 것 아닐까?

그곳은 생존의 경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리라.
삶과 죽음의 경계,
삶을 달리 꾸밀 것도, 여유도 없고,
그저 하루하루 사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된
그곳(그런 사람)에서 생명의 원형질을 찾으려던 것은 아닐까?
더 황량한 곳에 가면,
황량했던 마음이 많이 풀리는 것처럼...

 

굽고 작은 몸뚱이, 몸보다 훨씬 커보이는 도붓짐을 지고
자동차 휭휭 달리는 아스팔트길을
지팡이 하나에 의지해 타박타박 걸어가는 80세 할머니 원경 사진으로부터
글(길)은 시작된다.

 

시골, 더욱이 강원도 시골길
드문드문한 동네, 얼마를 더 가야 사람 사는 마을이 나올까.
팔릴지 어떨지 모를 '약'을 굽은 등에 덩그런이 메고...

 

첫 대면부터 가슴이 턱 막힌다.

렘브란트의 <야경>

빛은 무엇이고,
어둠은 무엇인가.
무엇을 위해,
무엇을 지켜려
야경'을 준비하는가

 

골진 주름만큼이나 터덜거리는 감정의 돌밭길로 할머니를 지난 공선옥의 발걸음은
텅빈 마을, 텅빈 들판,
염색마져 빠져버린 낡은 빨래처럼
그저 허허로이 살고 있는 늙은 내외를 지나,

 

'출근을 하여도 재미가 없다'는
우리네 가난한 집 공부 잘하고 책임감 있는 큰형님 같은 배달호 열사의 조문으로 길은 끝난다.

 

'마흔에 길을 나서다'는
공선옥이 마흔이 되어 매달 한번씩 길을 나서
소회를 적어 모아 만든 책이다.

 

마지막달, 공선옥은 기획자에게 이렇게 얘기했다고 한다.

 

"이번 달에는 내 맘대로 가도 돼?"
"예. 그렇게 하세요."

....
"그런데 어디로 가시게요?"

....

그리고는 배달호 열사의 조문을 다녀왔단다.

 

.... 그게 어디 단 한사람에 대한 조문이었을까.

 

3.

 

공선옥은 왜 길을 나섰을까? 그것도 마흔에.

 

물론 그것도 내게 중요한 건 아니다.
그럼에도 굳이 말을 꺼낸 건
그저 공선옥을 빌려 내 얘기를 하려는 것뿐이다.

 

마흔.
적지 않은 나이다.
살아온 날보다 살날이 작아 보이고....
하나의 종점이자 출발점이기도 한 나이다.
그러기에 누구나 한번 이전 삶의 '점'을 찍고, 새롭게 '내일'을 살아보고 싶으리라.

 

나로 말한다면, 지극히 대수롭지 않은 삶을 산 사람이다.
그러기에 내 경험이 남다른 기준이라고는 내세울 순 결코 없으리라.
그럼에도 한마디한다면,
마흔살은 또한 살아볼 만한 나이라는 것이다.
내겐 마흔 이후, 이전보다 세상살이가 무척 수월해졌다.

 

40대 죽음이 많은 우리 사회이지만
생물학적으로 40대는 몸도 가장 안정된 상태라고 한다.
비록 불쾌한 징후가 몸 여기저기서 나오기 시작하지만...

 

정신적으로도 매우 안정되는 시기이다.
마흔살 쯤 되면 자신의 장단점을 대강은 안다.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
여기서 특히 중요한 건,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는 것이다.

 

세상살이하는 데도 편하다.
40년 살아오니 사람이 어떻게 사는지 ,삶이 어떤 것인지,
말과 행동의 앞면과 뒷면을
대강은 알기 때문이다.
바보도 경험으로부터 배운다고 하던가....

공선옥의
<마흔에 길을 나서다>

 

4.

 

소중한 것(사람)을 잃어본 사람들은 안다.
못살 것 같고 상상도 못했는데,
그래도 아직도 소중한 게, 버리지 못할 게 많다는 걸...

 

잃거나 또는 툭 털어버리면
집착하는 것이 사실은 부질없는 허상인 경우가 허다하다.

 

버리고 나니 한결 가볍다.
버리고 나니 앞이 한결 잘 보인다.
그러니 안심하시라.

 

시간은 흐르고, 가만히 있어도 움직인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길은 컨베이어벨트처럼 발 밑을 스쳐지나간다.
마흔이 되어 문득 나선 공선옥의 길은
그런 길이 아니리라.

 

마흔에 길을 나서기란 쉽지 않음을 나도 안다.
하지만 가던 길에 한 걸음 벗어나서라도, 아니면 마음속으로라도
길을 나서보길 권한다.
멀리서 걷고 있는 또 다른 나를
한번 보시라.

 

아울러 여유 있으면
책 한권 사보시던지....
공선옥의 「마흔에 길을 나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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