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대한불교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인권센터, 천주교 서울교구 노동사목위원회가 2016년 6월 1일(수) 함께 주최한, 

종교계 3대 종단 긴급 토론회 <조선소 위기와 대량해고, 무엇을 할 것인가>에 제출한 토론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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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조정에 맞선 하청노동자들의 싸움에

‘비빌언덕’이 되어 주십시오

 

이김춘택 (거제통영고성 조선소 하청노동자 살리기 대책위원회)

 

풍경들

 

지난 4월 경남 고성에 있는 STX고성조선해양 사내하청업체 삼원에서 일하던 물량팀 노동자들이, 원청의 갑질횡포로 업체가 폐업했다며 원청에 체불임금 지급을 요구하며 회사 앞에서 20일 넘게 농성 투쟁을 했다. STX고성조선해양은 하청업체에 일을 시켜놓고 일이 거의 끝날 때쯤인 3~4개월 뒤에야 비로소 도급계약서를 작성하면서 그동안 하청업체가 고용해 투입한 인원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고 기성금을 대폭 삭감하는 형태로 하청업체와 하청노동자들을 착취했다. 명백한 하도급법 위반이지만 법보다 주먹이 우선인 현실에서 사내하청업체 삼원은 매달 4~5천만 원의 적자를 누적시키다 결국 폐업했다.

    삼원 노동자들의 투쟁은 비록 물량팀장이 함께 했기에 가능한 측면이 있기는 했지만,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의 보기 드문 집단적 투쟁이었다. 투쟁 기간 동안 삼원 노동자들의 모습은 마치 처음 노동조합에 가입해 파업투쟁을 하는 신생노조 조합원들의 모습과 흡사했다. 나이든 노동자들은 그 동안 가슴에 담아두었던 울분을 토해냈으며, 젊은 노동자들은 정보과 형사의 사진 채증에 기념사진 찍듯 브이(V)자를 그려 보이며 웃으며 맞대응했다. STX고성조선해양에 일하는 2천여 명의 생산직 노동자는 모두 하청노동자이고 그들 중 70~80%는 물량팀 노동자이다. 그래서인지 삼원 노동자들은 그들 모두를 ‘사우여러분’이라고 불렀다. 한편 삼원 노동자들의 요구에는 애초부터 ‘고용승계’는 없었다. 연대 온 대우조선해양 현장활동가들은 삼원 노동자들이 왜 고용승계를 요구하지 않는지 의아해 하고 궁금해 했다.

 

병역특례부터 시작해서 경남 거제 삼성중공업에서만 이십 년 가까이 하청노동자로 일해 온 서른여덟 살 노동자가 회사에 사직서를 낸 다음날인 5월 11일 새벽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반장 직책으로 월 400시간의 노동도 마다하지 않았던 노동자는 대통령이 임시공휴일로 지정한 5월 연휴기간에 아이들과 캠핑을 다녀왔는데, 연휴 끝나고 출근한 월요일에 회사로부터 부당한 인사 통보를 받았다. 두 개 반을 하나로 통합하면서 반장에서 조장으로 강등되고 그에 따라 임금도 삭감됐다. 반장으로 일해 온 부서에서 다른 부서로 쫓겨났다. 이 같은 부당인사를 받아들일 수 없어 사직서를 내려고 했지만 회사는 면담을 통해 사직하지 말고 통보된 대로 일하라고 종용했다. 결국 어렵게 사직서를 내기는 했지만, 그 과정에서 받은 회사에 대한 배신감과 모멸감에 다음날 새벽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러나 업체는 이 같은 죽음에 대해 전혀 책임이 없다고 발뺌했고, 이에 유가족들은 업체의 책임 인정과 사과를 요구하며 장례를 치르지 않고 빈소를 장례식장에서 삼성중공업 정문으로 옮겨 삼성중공업과 사내하청업체에게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결국 유족들은 사내하청업체와 사과및 보상에 합의하고 10일 만에 장례를 치렀다.

 

몇 주 전 대우조선해양 사내하청업체 한 곳이 폐업했다. 노동자들은 체불임금 지급을 요구했지만 하청업체 대표는 어머니가 쓰러졌다며 자리를 뜬 뒤 연락을 끊었다. 그리고 새로 업체를 인수한 대표는 밀린 임금의 75%만 받고 계속 일하던가, 밀린 임금 100% 다 받고 나가든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다. 다수의 노동자들이 임금을 일부 못 받더라도 계속 일하는 것을 선택했지만 물량팀 노동자 25명은 밀린 임금을 다 받고 회사를 그만두는 것을 선택했다.

    문제는 그 다음에 발생했다. 25명 중 몇몇 노동자들이 삼성중공업에에 자리가 나서 원서를 넣었다. 신체검사가 통과돼서 출근을 했지만 삼성중공업에서 출입증 발급이 되지 않아 결국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일하러 오라고 한 업체에는 왜 출입증 발급이 안 되는지 ‘알 수 없는 이유’라고만 얘기했다. 그래서 삼성중공업 다른 사내하청업체를 통해 알아보니 25명의 노동자들은 ‘단체행동, 사장 구금’을 이유로 출입증 발급이 안 된다는 대답을 들었다. 이른바 ‘블랙리스트’에 의해 취업의 길이 막힌 노동자들은 황당하고 막막해 금속노조에 전화를 걸어 상담을 했고 마침 취재 중이던 언론사 인터뷰도 했다. 하지만 그 다음날부터 연락이 되지 않았다. 다행히 다른 곳에 일자리를 구할 수 있게 되어서 연락이 안 되겠거니 추측할 뿐이다.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에 대한 임금삭감 움직임이 전면화 되고 있다. 지난 주 ‘협력사 임시회의 및 임금개편 관련 회의결과’라는 제목의 문자가 노동자들 사이에 나돌았는데, 내용은 6월 1일 또는 7월 1일부터 △상여금 150% 삭감 △상여금 300% 기본급화 △토요일 유급휴일→무급휴일로 변경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되면 하청노동자들의 임금은 20~30% 삭감된다.

    며칠 지나지 않아 문자 내용은 현실이 되었다. 해양플랜트 부분 사내하청업체 한 곳에서 △상여금 150% 삭감 △토요일 유급휴일→무급휴일로 변경을 내용으로 하는 취업규칙 변경 동의서에 서명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협력사 협의회 회의를 통해 동시에 모든 협력사에서 임금삭감을 실시할 것이라는 소식도 전해졌다. 이에 대우조선노동조합에서도 대응을 하고 있고 대책위도 대응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청노동자 당사자들의 대응이다. 그런데 임금삭감 취업규칙 변경에 대해 제보했던 노동자와는 그 뒤 연락이 잘 되지 않고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임금삭감은 시급제 또는 월급제 임금체계로 되어 있는 사내하청업체 본공에게 해당하는 것이다. 이 경우 임금삭감을 위해서는 취업규칙을 변경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러나 일당제나 직시급제 임금체계로 되어있는 물량팀의 경우 단순한 구두 통보만으로 임금삭감이 진행되고 있다. 삼성중공업 일부 업체에서는 발판공(족장) 일당이 1만5천원, 도장공 일당이 2만5천원 삭감되었고, 성동조선해양에서도 발판공(족장) 일당이 1만원 삭감되었다는 제보가 있었다.

 

구조조정

 

정부와 채권단이 연일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이야기하고, 언론은 그에 부응해 구조조정 관련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채권단의 압박에 원청 조선소는 모든 부실과 고통을 노동자들에게 떠넘기고 있고 우선적으로 다단계 착취의 계단 가장 아래 위치하는 하청노동자들에게 고통이 집중되고 있다. 업체폐업, 임금체불, 임금삭감, 블랙리스트에 심지어는 하청노동자와 하청업체 대표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지역 차원에서 대응하고자 ‘거제고성통영 조선소 하청노동자 살리기 대책위원회’(아래 ‘대책위’)가 꾸려졌다. 지난 3월부터 본격적으로 논의를 시작해 5월 4일 첫 발을 떼었다. 대책위에는 지역의 정당, 시민단체, 노동조합 및 노동단체가 함께 하고 있다.

 

대책위는 무엇보다 현장 노동자들과 함께 싸우는 것을 가장 중요한 활동으로 생각한다. 사람 자르고 부실을 떠넘기는 방식의 구조조정이 전면화 하면서 업체 폐업과 임금 체불에 맞서 하청노동자들이 함께 투쟁할 수 있는 계기와 가능성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 그 계기를 잘 찾고 그 가능성을 현실화 하는 것이 대책위의 가장 큰 존재이유다.

 

하지만 싸움을 만들어내는 일이 쉽지 않다. STX고성조선해양 물량팀 노동자들의 투쟁과 삼성중공업 하청노동자의 죽음에 맞선 투쟁은 한편으로는 우연적인 이유로 가능했다. 전자의 경우 투쟁에 함께한 물량팀장과 대책위 구성원이, 후자의 경우에는 유족과 대책위 구성원이 기존에 관계가 형성되어 있었고, 그것이 당사자들이 투쟁에 나서고 대책위가 투쟁을 조직할 수 있는 한 요인이 되었다. 그러나 보통은 위에서 거론한 세 번째, 네 번째 풍경처럼 하청노동자 당사자들이 결국 행동에 나서지 못하고 포기해 투쟁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비빌언덕

 

그렇다면 하청노동자들이 포기하지 않고 싸움에 나설 수 있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어느 하청노동자의 말을 빌리자면 ‘비빌언덕’이 필요하다. 하청노동자는 자신의 권익을 보호할 스스로의 조직을 갖고 있지 못하다. 정규직 노동조합은 의존의 대상이거나 정 반대로 적대의 대상이다. (하청노동자의 분노는 자본보다 정규직노조로 향하는 경우가 더 많다.) 하청노동자는 ‘비빌언덕’이 없다. 그래서 부당하고 억울한 상황에 처해도 맞서서 싸우기보다는 대부분 체념하고 포기하게 된다. 그 같은 체념과 포기의 경험이 일상화 되어 있다. ‘비빌언덕’이 필요하다는 것은 이런 체념과 포기를 극복하고 하청노동자들이 스스로 싸움에 나설 수 있게 용기를 주고 함께 싸우는 것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비빌언덕’을 고상하게 표현하면 ‘사회적 지지’라고 할 수 있다. 하청노동자들에 대한 경제위기 고통전가가 부당한 것이고, 자신이 당하는 고통에 맞서 싸우는 것이 정당하며, 필요하며, 가능하다는 것을 함께하는 투쟁을 통해 느끼게 해 줄 사회적 지지가 형성되어야 한다. 그렇게 보면 대책위의 역할은 지역 차원의 사회적 지지를 형성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회적 지지는 넓고 깊을수록 좋다. 요즘 언론들이 매일 같이 조선소의 어려움과 구조조정에 대해 떠들어대고 지역에서는 더욱 그러한 환경 속에 있다보니, 마치 전국민이 조선소 하청노동자의 상황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거라는 착시현상에 빠지기 쉽다. 하지만 지역을 조금만 벗어나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의 현실을 전혀 모르거나 자신의 삶과 전혀 무관한 일로 여긴다. ‘물량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 사람이 100명 중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즉,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에 대한 ‘사회적 지지’는 아직 지역 차원에서도 제대로 만들어지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은 지역을 넘어 전국 차원에서 만들어져야 한다. 고통 받고 있는 조선서 하청노동자들에 대한 전국 차원의 ‘사회적 지지’가 필요하다.

 

한편으로 그 같은 전국 차원의 ‘사회적 지지’는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의 문제를 넘어 ‘경제위기 고통전가’와 ‘사람 자르는 구조조정’에 대해 문제제기 하고 전선을 칠 때 가능하다. 정부의 발표를 좇아 언론이 매일 떠들어 대는 구조조정에 대한 뉴스는 구조조정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높이기도 하지만, 그것 보다는 정부가 이야기하는 구조조정 그 자체를 기정사실화하는 측면이 더 크다. 노동자에게 고통을 전가하고 사람을 자르는 구조조정이 기정사실화 될 때 남는 것은 이런저런 구제책과 보완책뿐이다. 그것도 대개는 ‘립서비스’에 그칠 뿐 조금이라도 실제적인 제도개선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러므로 ‘사회적 지지’를 만든다는 것은 한편으로 정부의 구조조정이 옳지 않음을, 하청노동자들의 싸움이 정당함을 전국적으로 확산시켜 나가는 것이기도 하다.

 

조선소 정규직 노동조합은 ‘조선업종노조연대’라는 연대기구로 모여 조선산업 구조조정에 대응하고 있다. 그러나 하청노동자들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할 전국적인 대응기구는 아직 없다. 이번 토론회의 제목이 “조선소 위기와 (하청노동자) 대량해고, 무엇을 할 것인가?”이다. 이번 토론회를 통해 하청노동자 당사자들이 그나마 조직되어 있는 전국금속노동조합(울산, 거제통영고성, 목포의 하청노동자 주체들)과 토론회 주최 종교단체들 그리고 더 많은 사회단체들이 전국 차원에서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의 ‘비빌언덕’이 되어주기 위한 논의를 시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  이 토론문은 대책위원회의 견해가 아닌 개인의 견해임을 밝혀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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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31 21:39 2016/05/31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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