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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펙과제국주의] 아펙의 경제적 목표와 그 결과


 

<2장> 아펙을 통해 본 세계화와 전쟁

 

1. 아펙과 세계화

 

1) 아펙의 경제적 목표와 그 결과

 

아펙이 주요한 경제적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이 세 가지 있다. 무역 투자 자유화와 무역 원활화, 경제 기술 협력, '반테러' 분야 협력이 그것이다. '반테러 분야 경제 협력'은 2001년 9.11 이후 아펙이 각별히 강조하는 목표다. 아펙은 이 세 번째 목표에서 '테러리스트'들의 자금 이동을 차단하는 여러 계획을 실행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첫 번째 목표는 무역 자유화 같은 관세/비관세 부문에서의 시장 개방을 가리킨다. 이 분야는 크게는 모든 아펙 회원국들이 공동으로 이행해야 할 계획과 개별 회원 국가들이 제출하고 이행해야 할 소위 '자발적' 계획으로 나뉜다.

 

두 번째 경제기술협력 부문에서는 사실상 아무 진전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개도국은 경제기술협력의 강화를 희망하고 있는 반면, 선진국은 시장개방 계획에만 치중해 왔다. 사실상 개도국은 신진국이 아펙 내에서 개도국의 시장 개방에만 관심이 있고 경제 기술 협력에 관해서는 실질적인 지원을 하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해 왔다.

 

아펙 내에서 미국을 비롯한 주요 회원국들이 추구하는 핵심 경제적 목표는 사실상 무역과 투자의 자유화이다. 물론 그것을 목표로 해 왔다는 것과 그것이 실제로 이루어졌는가는 별개의 문제다. 그럼에도 아펙은 WTO 출범에 결정적 구실을 하기는 했다. 미국은 유럽이라는 경쟁자를 제압해 WTO의 농업 협상을 매듭지었는데, 이것이 바로 아펙의 주요 성과로 꼽히는 '치적'이다.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이 최대 고비를 맞이했을 때 미국의 클린턴은 아펙을 활용해서 그 고비를 넘긴 것을 매우 다행스레 여기며 이렇게 말했다.

 

1993년 시애틀에서 열린 제1차정상회의 때 18개국 정상을 모아놓고 지지부진한 우루과이라운드협상을 타결짓기 위해 유럽연합에 공동으로 압력을 넣자고 제의했다. 다른 정상들도 이에 동조했고 결국은 그 해 12월 장장 7년 동안의 협상 과정을 마무리짓고 우루과이라운드에 결론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한 것을 가능케 했고 이로써 세계무역기구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아펙에의 새로운 기대', <세계경제> 2004년 6월호)

 

당시 <이코노미스트>는 그 '치적'을 이렇게 표현했다.

 

아펙은 GATT에 관한 우루과이라운드 무역 협상이 비틀거릴 때 자유무역 원칙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 워싱턴의 싱크탱크인 국제경제연구소의 소장이자 아펙 저명인사그룹 위원장인 벅스텐은 회원국들의 경제성장을 저해하고 있는 거대한 장벽이 있는데, 아펙이 좀더 과감하게 행동한다면 아펙은 세계 무역자유 구조에서 완전히 새로운 촉매제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이코노미스트>, 1994년 11월 12일)

 

한국의 외교안보연구원도 WTO DDA의 성공적 출범을 아펙의 주된 성과로 칭송하고 있다.

 

1993년 우루과이라운드가 교착 상태를 보이고 있을 당시 아펙의 무역자유화는 우루과이라운드 타결에 중요한 기여를 하였으며 1996년에는 정보기술 협정의 타결에 결정적 역할을 담당했다. 또한 아펙은 최근 도하 라운드의 성공적 출범에도 나름대로의 역할을 했다.(아태 경제협력체의 향후 발전방향, 조용균, 외교안보연구원)

 

사실상 WTO 협상이 고비를 맞을 때마다 아펙은 중요한 협상 진전이 모색되는 장이었다. 지난 6월 제주에서 열린 아펙 통상장관회의 때도 그랬다. 당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의 주도로 '도하개발 의제에 관한 특별선언문(제주선언문)'이 채택됐는데 2006년 타결을 목표로 하는 WTO 도하개발의제 협상이 오는 12월 홍콩 6차 각료회의를 기점으로 실질적인 진전을 이루어내도록 아펙 회원국들이 앞장선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또한, 공산품 관세인하 분야에서 관세가 높은 개도국일수록 더 많이 낮추도록 하는 '스위스 공식'을 도입할 것과, 서비스 협상의 실질적인 진척을 위해 1, 2차 양허안을 제출할 것을 지시하는 등 분야별 계획에 대한 합의가 있었다.

 

그래서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 롭 포트머은 "아펙이 무역자유화를 중요한 기둥으로 삼는 전통을 이었다"고 기뻐했다.

 

아펙 내에서 다국적기업의 입맛에 맞는 무역 자유화 조치는 여러 차례 발표됐다. 1996년 필리핀 수빅에서 열린 정상회의 때는 "역내의 무역/투자/경제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조기자유화 대상 분야"를 선정하기 위한 협의가 있었다. 미국은 다음 해 열린 1997년 밴쿠버 정상회이 때 수산물, 환경제품, 서비스, 화학, 임산물, 보석, 에너지, 의료장지, 정보통신, 종자, 비료, 항공산업 등 15개 분야에서 관세와 비관세 장벽을 제거하자는 제안을 내놓았다.

 

아펙의 주요 경제적 목표는 보로르 선언으로 대표된다. 보고르 선언은 1994년 11월 인도네시아 보고르에서 열린 아펙 회의에서 등장했다. 선진국은 2010년까지, 개도국은 2020년까지 아펙 회원국 간의 자유무역을 실행하자는 것이다. 일종의 아시아판 나프타다.

 

이 계획이 착착 진행된 것은 아니다. 1994년 인도네시아에서 처음 발표된 이 계획은 그 다음 해 1995년 오사카 정상회담에서 다소 후퇴했다. 일본이 "자유화는 자발적이어야 한다는 선언"을 단서조항으로 달았다. 물론 일본 자본가들은 아펙 내 무역 자유화를 통해 이익을 얻기를 바란다. 다만, 그 이익을 미국 지배자들이 고스란히 챙겨가는 것에 이견을 드러낸 것이었을 뿐이다.

 

올해도 보고릇 선언이 다시 한 번 논의될 것이다. 반기문은 2005년 부산 정상회의 첫날의 주요 의제가 보고르 선언이 될 거라고 밝혔다.

 

미국의 무역대표부는 그 동안 아펙 내에서 주요 경제적 목표들이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고 불만을 토로해 왔다. 아펙 창설의 일등공신인 워싱터의 경제이론가 프레드 벅스텐(Fred Bergsten)조차 작년 칠레 아펙회의 직후, "1989년 창설 이후 아펙이 일련의 다양한 무역정책들을 내놓기도 했으나 그 동안 제시된 무역자유구상들은 사실상 사문화된 것 같다"고 토로했다.(연합뉴스 2004년 11월 15일)

 

벅스텐은 이런 현상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광범한 아시아태평양자유무역지대(FTAAP)를 창설하는 것뿐이라고 주장한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40개 이상의 자유무역협정들이 복잡하게 얽힘으로써 생기는 "스파게티 볼" 효과를 최소화하자는 게 핵심 취지다. 미국 지배자들이 걱정하는 "스파게티 볼" 효과는 아시아 지역에서 아시아 + 한중일 자유무역협정이 창설돼 미국의 대아시아 통상 입지가 좁아질지 모를 가능성이다. 아시아와 유럽이 각각 지역 차원의 자유무역지대를 만들 경우 미국이 큰 손해를 볼 수도 있기 때문에 서둘러 대비책을 만들어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한테 아시아 경제가 차지하는 경제비중은 미주 대륙에 비하면 네 배나 높다. 더군다나 시간이 갈수록 미국한테 아시아는 더 중요해지고 있다. 아시아는 미국 채권의 절반을 소유하고 있다. 이제 미국 경제의 주요 변수가 아시아라는 사실을 미국 지배자들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아펙 내에서 미국은 아시아 + 한중일 FTA 같은 아시아 국가들 전체의 자유무역지대화를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지켜볼 태세다. 미국이 빠진 아시아만의 블록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면 미국한테 무엇이 문제겠는가. 아펙의 공간을 이용해서 싱가포르와 뉴질랜드 사이에, 태국과 호주 사이에 FTA 등이 체결됐다. 그러나 미국한테 아시아만의 자유무역지대화는 결코 반길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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