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국을 자초하는 정연주 사장의 설 자리는 어디인가?
노동조합은 기본적으로 타협을 먹고 사는 조직이다. 다만 노동조합이 회사측에 대해 ‘적대적인 긴장관계’를 갖느냐 혹은 ‘협력적 긴장관계’를 갖느냐는 회사가 노동조합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어떻게 대하느냐에 달려있다는 것이 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신학림, 이하 언론노조)의 입장이다.
그런 점에서 언론노조는 국가기간방송인 KBS 노사가 지난해에 이어 병술년 새해 벽두부터 다시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모습과 관련, 정연주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에 깊은 유감을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언론노조 KBS본부(위원장 진종철)가 11일(수) 새벽부터 전면 파업에 돌입하겠다는 결정을 내린 과정을 보면서 정연주 사장이 지난 2년여 동안 보여준 경영철학이나 능력에 대해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지금 KBS 조합원들이 분노하고 파업 각오를 다지는 이유와 배경이 단순한 임금 문제에 있지 않다는 것을 정 사장을 비롯한 회사측은 너무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노사 관계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신의, 성실에 입각한 대화가 가능한지 여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정 사장은 노동조합의 요구를 묵살하기 일쑤였고 비상식적이고 비합리적인 행태로 일관함으로써 오늘의 상황을 자초했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임금문제만 해도 그렇다. 지난 해 KBS는 1천억원에 가까운 흑자가 발생한 것으로 조합에서는 관측하고 있다. 이 또한 프로그램 제작비를 비롯한 각종 경비와 인건비를 대폭 삭감하는 등 KBS 조합원들이 허리띠를 졸라맨 결과인 것이다.
이번에 특히 노동조합이 성과급을 양보하는 대신 비정규직 기금을 마련해 우리 사회와 경제 도약의 가장 큰 걸림돌 중의 하나로 작용하고 있는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을 단계적으로 철폐하자고 요구한 것을 회사측이 묵살한 것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KBS본부의 이같은 제의와 요구는 140여개에 달하는 언론노조 산하 지부, 본부에서 유례가 없는 일일뿐만 아니라 오히려 회사측이 더 진지하게, 더 적극적으로 접근할 사안인 것이다. 회사는 KBS본부와 조합원들이 비정규직 차별철폐를 위한 민주노총의 11월 총파업 투쟁 지침에 따라 파업찬반 투표를 실시한 것도 그냥 지나치지 않길 바란다. 접근하기 여하에 따라서는 KBS 노사가 우리 사회의 비정규직 차별철폐를 위한 소중한 선례와 계기를 제공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노동조합의 임금 관련 요구는 지극히 정당하다. 합리적이고 정당한 노조의 요구를 묵살하고 이미 발생한 흑자 규모와 액수를 애써 줄여가며 임금인상률 낮추기에만 급급한 정 사장의 행태는 결코 용납될 수 없다.
KBS는 국가기간방송이자 공영방송으로서 반드시 필요한 구조개혁은 해야 한다. 그러나 정 사장은 지금까지 신자유주의식 성과주의에만 집착하려는 경영 행태를 보여 왔다고 우리는 판단한다.

정 사장은 KBS본부의 합리적이고 정당한 요구를 즉각 받아들여야 한다. 아직은 시간이 남아 있다. 그리고 언론노조는 사태해결을 위해 함께 고민할 준비가 되어있다.
조합 대표와 한 구두 약속도 언제든지 편의에 따라 내팽개치는 방식이면 노사간에 대화로 풀 일은 없다. 우리에게 그런 국가기간방송의 수장은 필요 없다. 정 사장은 부디 오판하지 않기 바란다.

2006년 1월 9일

전국언론노동조합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TAG

Trackback

Trackback Address :: http://blog.jinbo.net/kmsy1953/trackback/222

Comments

What's on your mind?

댓글 입력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