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견노동자 설움 엮어 시집 펴낸 한국방송 주봉희씨
[한겨레 2005-07-13 23:21]

[한겨레] ‘재직 2년’ 하루 남겨두고 2000년 한국방송서 해고
5년 투쟁 끝에 지난해 복직 2년마다 잘리는 파견노동자
두해 살이 풀과 뭐가 다른가
‘죽어서야 정규직이 되는 세상, 목을 매달아야 손배가압류 풀어주는 세상’이라고 울분을 토해낸다. ‘차별을 낳고, 빈곤을 낳고, 갈등을 낳는 파견법’에 ‘퉤’하고 침을 뱉는다.

한국방송 파견노동자인 주봉희(53)씨가 파견노동자의 설움을 읊조린 시 69편을 <어느 파견 노동자의 편지>라는 이름으로 엮어냈다. 주씨는 그의 시에서 파견노동자를 ‘두해살이 풀’이라고 했다.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때문에 2년마다 해고가 되는 파견노동자의 삶이 두해살이 풀과 꼭 닮았다는 얘기다.

주씨의 처지가 딱 그랬다. 그는 98년 한국방송에 운전기사로 입사한 뒤 입사 2년을 채우기 하루 전날 해고됐다.

파견법에 따라 파견노동자를 2년 이상 고용하려면 파견업체를 통하지 않고 방송사가 직접 고용해야 한다. 이를 피하려고 방송사는 그를 비롯해 파견노동자들을 무더기로 해고했다. ‘6월30일생(파견법 발효 날) 파견노동자’들은 이름도 낯선 파견법에 떠밀려 거리로 내몰렸다.

“파견노동자를 보호한다던 파견법이 내 일자리를 빼앗아 갔어요. 일자리를 되찾으려면 스스로 싸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복직투쟁은 자연스럽게 해고의 원인이 된 파견법 폐지투쟁으로 옮아갔다. 그는 운전직, 작가, 사무보조 등 방송국의 비정규직을 모아 비정규노조를 만들면서 첫 싸움을 시작했다. 짝수 해마다 어김없이 무더기 해고가 거듭되니 노조를 끌어가기가 쉽지 않았고, 월급을 받지 못하니 끼니조차 해결하기 힘겨웠다. 주씨는 “한 끼라도 밥을 먹는 날에는 ‘아, 오늘은 그래도 밥을 먹었구나’하고 스스로 위안을 삼을 만큼 혹독한 날들이었다”고 말했다.

다른 회사의 비정규직 동료들이 돈을 걷어 한 달에 20~30만원을 주는 게 수입의 전부였다. 끼니를 걱정하면서도 비정규직 차별철폐집회나 노동자집회 때마다 독특한 퍼포먼스를 준비하는 열성으로 투쟁에 나섰다. 주씨는 언론노조 방송사 비정규지부장을 맡아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이끌었다.

지난해 7월 그는 한국방송 자회사에 운전기사로 복직했다. 혹독한 투쟁 끝에 현장으로 돌아와 운전대를 다시 잡았다. 주씨는 일자리를 되찾기 위한 5년을, ‘세상사 하고 많은 일 중에 데모 질이냐고, 한번 데모 질에 일당이 얼마냐고, 비아냥 소리도 그저 흘러가는 시냇물 소리쯤으로 지나쳐왔던 세월 5년’이라고 읊조렸다.

“파견법이 개악돼 파견 업종이 늘어나면, 더 많은 파견노동자가 생기고 갈수록 벼랑 끝으로 내몰리게 된다”며 한숨을 내쉬던 그는 “파견노동자라는 서러운 이름이 없어지는 날까지 우리의 처지를 시로 달래며 싸우겠다”고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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