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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슬픔의 정체는 무엇인가

가끔 진보블로그에 들어오기 싫을때가 있다.

뭐, 요즘같은 시절-이른바 추모정국-도 그 하나인가보다.

처음 뉴스를 보고, 몇개의 글과 그에 달린 '반복되는' 댓글을 보다가 그냥 덮어버렸다.

 

여기에 노무현 전 대통령에 관한 글을 쓴다는 것도 참 부담스러운 일이다.

글을 쓰기에 앞서 나는 그런(?이른바 노빠?) 사람이 아니라고 양심고백이라도 해야만 할 것 같다.

나는 노무현을 찍은 적도 없고, 탄핵때도 촛불을 들지 않았고,

03년 열사정국, 대추리, FTA 농민투쟁...나의 대학시절을 뒤덮은 것이 노무현 정권때였다고

노무현에 관해서는 노무현 정권 퇴진 투쟁이라는 구호밖에 외친적이 없다고

나의 정치적 올곧음(!!)을 전제로 깔아야만 글을 쓸수 있을 것 같네.

 

한 사람의 죽음.

그래, 죽음이라는 것도 평등하지 않다는 누군가의 말은 맞다.

강준만이 이야기했던 심정민주주의가 왜 한 택배노동자에게는 작동하지 않는가?

한 택배노동자의 죽음과 전직 대통령의 죽음은 같지 않고, 같을 수 없다. 그것이 현실이다.

모두에게 슬픔을 강요할 수도 없고, 모두가 슬퍼해야하는 것도 아니다.

슬픔조차도 중립적이지 않으니까.

 

하지만 어느날 한겨레의 헤드라인이 내 가슴속에 팍 꽂혀들었다.

 

"이 슬픔의 정체는 무엇인가"

 

노무현이 자행하고 침묵했던 수많은 사건들이 묻혀지는 것도,

대한민국의 선구자이자 아버지의 죽음으로 미화되는 것도 싫지만 말이다.

대중들을 돌아서면 까먹는 금붕어로 대상화하지 않는 이상,

그들이 왜 , 모든게 다 노무현 때문이라던 국민들이, 왜 거리로 쏟아져나와

서럽게 울고, 몇시간씩 줄을 서서 기다리고, 촛불을 드는지를 분석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내가 보기에도 많은 사람들은 노무현 개인의 '불쌍한' 죽음을 슬퍼한다.

그러나 또많은 사람들은 노무현이 상징했던 '가치'의 죽음을 슬퍼한다.

그 가치가 비록 실제로 노무현이 될 수 없는, 허구적인 것이더라도 말이다. 

그 가치는 무엇인가? 민주주의? 인권? 시민들의 정치참여? 촛불의 기억?

그것이 무엇인지는 직접 보고 듣고 느껴야 알 수 있는 것이다.

무엇이 그렇게 미안하고 죄송하다고 사람들이 말하는 것인지.

그 미안함이 어떤 기억이 되어, 앞으로의 정치적 상황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될지.
물론 작년의 촛불을 '실패'라고 평가하는 사람들에게는 해당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시민추모제를 주최한 몇몇 시민단체는

자신들이 기획한 판에서 시인, 학자, 노래패를 불러놓고 추모를 '시킨다'.

이름은 자유발언이되, 내용은 자유발언이 아니다.

이미 섭외된 사람들이 나와 미리 정해진 말들을 쏟아놓는다.

며칠뒤, 학생운동단체들은 마스크에 모자, 사수대복장을 갖추고 시청앞 골목에 앉아있었다.

이명박 정권 심판을 비롯한 각종 급진적인 구호들과 노래들이 이어진다.

그 시각, 몇몇 시민들은 도로로 뛰어나와 전경들에게 에워싸이고

분노한 시민들은 '권'들에게 그렇게 앉아나 있을거면, 구경이나 하고 서있을거면 

차라리 깃발을 내리고, 차라리 다른데로 가버리라고 소리지른다.

속사정이 있겠지..무언가 있겠지..생각하면서도

질서정연하게 앉아있는 그들이, 택이 내려와야 움직이는 그들이 낯설게 느껴졌다.

 

소위 말하는 진보진영, 혹은 운동권들은  무엇을 진정 듣고자 하는 것일까.

아니면 이 흐름을 타서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노란풍선을 들고광장을 가득채웠던 사람들은 신도같은 노빠들과

무지한 국민들일 것이라고..언제까지 비난만 하고 앉아있어야 할 것인가..

변하지 않는 이런 모습들이 기계적인 반응들이

대중운동 운운하면서도 대중들을 우습게 보기만 하고..

자신들의 무력함을 비난으로 자위나 하면서..

결국 지난 촛불때처럼 대중들의 뒤꽁무니조차 쫓아가지 못하는 상황을 반복되게 하는게 아닌가..

다시 씁쓸한 마음이 겹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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