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업 사내하청노동자의 노동조건과 건강
공유정옥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집행위원
이 연구 조사는 2003년에 시작하여 2004년에 보고서를 냈다. 그 결과를 정리하여 ‘현미’에 실을테니 글을 써보라는 말을 들은 것은 2005년이었고, 결국 2006년이 되어 글을 쓰게 되었다. 너무 오랜 시간이 흘렀다. 2년 전에 나온 보고서를 이제 와서 다시 쓴다는 일이 겸연쩍었다.
그러던 중 여의도 집회에서 오랜만에 현중사내하청노조 동지를 만났다. ‘산재를 당한 하청노동자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좀 전에 들었다’며 사고 현장에 가보기는 커녕 사고가 일어났는지조차 알기 어려운 현실을 개탄하셨다. 나중에 홈페이지를 가 보니, 지난 11월에 작업 중 추락하여 12월에 돌아가신 56세 하청노동자의 사망 소식이 1월 3일자로 올라 있었다.
내친 김에 몇 가지 자료들을 더 찾아 보았다. 그리고, 우리가 보고서에 담았던 자료들이 구닥다리는 아닐까 했던 게 쓸데없는 걱정이었음을 알았다. 조선산업 시장은 여전히 호황을 구가하고 있고, 한국의 거대 조선 자본은 여전히 세계 제일의 위치를 지키고 있었다. 저임금과 구조적 고용불안 속에서 목숨을 내놓고 일해야 하는 조선소 사내하청노동자들의 현실도 여전했다.
이 글에서는 본래 보고서 내용 중 일부만을 정리하였다. 앞부분에서는 조선산업 전반을 이해하고 조선산업 고용구조와 비정규직 현황을 알 수 있는 자료들을 요약하였다. 뒷부분에서는 조선소 노동자들과의 심층 면접 결과를 상세히 소개하려 노력하였다. 조선소 사내하청노동자들과의 심층 면접은 좀처럼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면접에 참여한 노동자들이 이름은 물론, 소속 업체나 부서조차 밝히기 힘들 만큼 조선소의 현장 통제는 삼엄한 것이었다. 그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몇 시간을 앉아 심층 면접에 임했던 이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지면이 허락하는 한 많이 담고자 하였다.
Ⅰ. 조선산업과 노동시장의 현황과 변화
1. 조선산업의 특징과 현황
조선산업에서는 선박을 건조, 수리, 해체하거나, 해상 구조물을 제작, 조선 기자재를 제조한다. 주문 생산 방식이기 때문에 관련 기자재들이 매번 달라질 수밖에 없어 생산을 자동화하기 어렵다. 따라서 많은 노동자를 필요로 하는 노동집약적 특성을 지닌다. 또한 생산 장비와 시설을 갖추는데 많은 자금을 들여야 하는 만큼 ‘규모의 경제’가 존재하는 산업이기도 하다. 하지만 세계 선박 시장은 별다른 진입장벽을 갖지 않는 단일 시장이고, 각국의 수입 규제도 적은 편이라서, 일단 세계 시장에 발을 들여놓는다면 다른 제조업보다는 시장 확보에 유리하다. 다만 노동집약적인 특성과 함께 수주량에 의존하는 특성 때문에, 조선산업자본은 수주량에 따라 투입 인원을 신축적으로 조절하려는 경향을 갖는다.
세계 조선산업의 중심지는 영국, 미국, 유럽, 일본을 거쳐 한국으로 옮겨왔다. 한국의 조선산업은 1993년 최초로 선박 수주량 세계 1위에 오른 뒤 1999년, 2000년에 이어 2003년 이후 지금까지 선박 수주량 1위를 지키고 있다. 2003년 현재 한국조선자본은 세계 선박 수주량 점유율 43.8%, 건조량 32.8%, 수주잔량 37.8%를 차지하였다. 한국의 조선산업은 개별자본의 규모에서도 단연 세계 제일 수준을 차지하고 있다. 2001년 산업자원부에 따르면 세계 5대 조선소 중 1위부터 4위까지를 한국의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 삼호조선이 차지하고 있다.
2. 조선산업의 비정규직 확대 요인
조선산업에서 비정규직 고용의 증가요인은 세계 선박수요의 변동에 따른 제품시장 요인과, 현재 경향적이고 전반적인 공황 위기 속에 기업간 합리화 경쟁에 따른 경영전략 요인으로 나눌 수 있다.
제품시장 요인이란 해운업 동향, 선주들의 태도, 각국 조선업계 동향 등 시장 전망을 말한다. 최근 조선업종이 최고의 호황을 누리면서 국내 조선산업도 수출, 생산, 투자에서 모두 왕성한 성장을 유지해왔지만, 길게 내다보았을 때는 세계경제의 만성적 침체에 따라 일본 등 아시아 국가들의 발주가 줄어들어 2000년 경 세계 조선시장은 수급불균형 상태에 돌입하게 될 것이라 한다. 그 와중에 중국이 선박시장에 진출하면서 수급불균형은 더욱 심화되어, 국가간 또는 조선소간 수주경쟁도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관측된다. 이에 대비하기 위하여 각 조선자본들은 변화하는 시장 여건에 즉각 적응할 수 있을 만큼 노동력 수급 조절의 유연성을 확보하려 한다. 이것이 제품시장 요인이다.
경영전략 요인이란 제품시장 요인을 바탕으로 하여 각 조선자본들로 하여금 생산과정을 재조직하도록 압박하는 요인을 뜻한다. 즉, 세계시장의 경쟁이 격화됨에 따라 국내 자본들은 광범위한 제휴를 모색하는 동시에 각 기업들이 인건비 감축과 생산성 향상을 놓고 한층 치열하게 경쟁하는 과정에서, 그동안 ‘규모의 경제’를 추구해온 기업들이 폭넓은 아웃소싱과 글로벌소싱을 통하여 ‘규모의 경제+범위의 경제’로 생산과정을 재편해가는 것을 말한다.
조선산업에는 오래 전부터 사내하청기업이 광범위하게 포진하고 있어, 원청자본은 하청과의 계약 조정을 통해 이미 상시적인 인력구조조정을 해왔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 국내 조선산업의 대대적인 산업구조조정이 일어나면서 각 조선소 비정규직 노동자는 큰 폭으로 증가하였다. 그 결과, 각 조선소에는 현장이 비좁을 만큼 자재가 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직영 인원은 꾸준히 줄어들고 하청인원과 하청물량의 비율은 꾸준히 증가하는 현상이 일반화되었다. 이는 다운사이징과 아웃소싱, 즉 몸집줄이기와 외부화가 진행되고 있음을 뜻하며, 앞으로도 이런 방식의 경영과 인력관리전략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3. 조선산업의 고용구조
조선산업의 고용구조는 대규모 사업장의 직영 인원과, 주변에 광범위하게 형성되어 있는 사내외 하청 인원으로 양분할되어 있다. 노동자들은 원청에 직접고용되어 있는 경우를 제외하면, 사내하청, 사외하청에 포진하고 있으며, 직영이 직접 고용하는 비정규직 형태로 용역, 연수생 등이 미미한 비율로 존재하고 있다.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하여 2002년 조선공업협회의 자료를 재분석한 결과, 다음과 같은 몇가지 특징들을 알 수 있었다.
첫째, 조선산업 총 종사자 가운데 8대 조선소에 속하는 직영 노동자는 약 39%에 불과하며, 60% 이상은 사내외 하청 혹은 기타 비정규직 노동자로 존재하고 있다. 둘째, 2001년 현재 이들 전체 조선산업 비정규직 노동자 8만5,000여명 중 5만3,000여명(64%)은 사외하청 혹은 소규모 조선소나 회사 비소속 조선인력으로 존재하고 있다. 셋째, 8대 조선소 총 인력의 45%가 현대중공업에 집중되어 있고, 75.7%가 상위 3사에 집중되어 있는 등, 대형조선소 의존도가 매우 높다. 넷째, 조선산업 고용구조의 양적 변화는 주로 사내외 하청노동자의 급속한 유입과 유출로 인한 것이다. 가령 1998년에서 1999년으로 넘어가면서 조선산업 종사자 수는 제조업 고용의 3.6%를 차지하다가 3.0%로 줄어들었는데(이는 14만에서 12만여 명으로 일년 만에 약 2만 명이 줄어들었음을 뜻한다), 여기에는 한라중공업의 2천여 명 감원, 한진중공업 3사(타코마, 한진울산, 한진영도) 통합, 대우조선의 감원, 대동조선의 부도 등 대대적인 산업구조조정이 조선산업 비정규직 노동자의 대규모 유출을 초래하였기 때문이다.
4. 조선산업의 비정규직 규모
조선산업에 종사하는 총인원은 1990년 54,090명에서 2002년 94,213명으로 10여년간 74.1% 증가하였다. 그러나 이 기간에 직영인원의 증가율은 15.4%에 그쳤다(46,730명→53,925명). 직영인원은 1978년 40,522명에서 1996년 60,576명까지 늘어났으나, 조선산업 각사의 구조조정이 집중되던 1997년 이후 2002년까지 6,651명이 줄어들어 1996년 대비 11%의 감소율을 보였다.
반면 하도급인원은 1990년에 비해 2002년에는 무려 447.4%나 증가하였다(7,360명→40,288명). 또한 하도급인원 집계가 시작된 1990년 7,360명에서 지속적으로 늘어 1996년에는 20,777명을 기록했고, 1997년부터 1999년까지 3년 동안 약간의 감소세를 보이다가 2000년부터 다시 급격히 늘기 시작하였다. 급기야 2002년에는 40,288명으로 1996년 대비 48.4%가 증가하면서 인원수 면에서 현장직 중 직영 인원 수(36,068명)를 넘어섰다.
다음 표는 조선산업 각사의 하도급 인원 비율 변화를 정리한 것이다. 여기에서는 특히 조선건조물량이 크게 증가했던 1992~1994년과 2000~2002년에 특히 하도급 비율이 대폭 증가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각 기업들이 하도급 인원을 증가시킴으로써 물량을 해소하였음을 뜻한다. 현대중공업의 경우, 1998년까지 하도급 비율 10%대를 유지하다가, 2000년에는 25.2%로 98년 대비 10%포인트 이상 늘렸다. 이런 추세는 해마다 더욱 심화되어 2002년 현재 38.8%까지 올라갔다. 한편 노동조합이 없는 삼성중공업에서는 1990년에 이미 하도급 비율이 총인원 대비 38.7%를 기록하였고, 2002년에는 거의 절반에 가까운 48.9%에 이르고 있음도 확인할 수 있다.
조선산업 각 사 총원 대비 하도급 인원 비율 추이 (단위: %. 1990~2002)
구분 |
1990 |
1992 |
1994 |
1996 |
1998 |
2000 |
2002 |
현대중공업 |
8.2 |
8.8 |
15.3 |
17.8 |
15.3 |
25.2 |
38.8 |
대우조선해양 |
11.0 |
11.1 |
18.0 |
19.3 |
28.7 |
35.1 |
37.3 |
삼성중공업 |
38.7 |
32.6 |
43.3 |
41.9 |
27.3 |
42.1 |
48.9 |
현대미포조선 |
- |
- |
- |
- |
3.6 |
0.9 |
46.4 |
현대삼호조선 |
30.4 |
24.9 |
20.2 |
26.7 |
32.3 |
42.4 |
49.3 |
한진중공업 |
0.0 |
27.9 |
31.8 |
37.7 |
38.8 |
45.0 |
46.9 |
코리아타코마 |
- |
- |
22.3 |
40.9 |
34.9 |
- |
- |
대동조선 |
- |
- |
- |
- |
47.0 |
- |
- |
신아 |
- |
- |
- |
- |
57.9 |
62.3 |
63.8 |
대선 |
42.6 |
23.9 |
39.2 |
41.5 |
20.4 |
- |
50.0 |
계 |
13.6 |
14.7 |
22.3 |
25.5 |
26.5 |
32.5 |
42.8 |
출처: 한국조선공업협회(www.koshipa.or.kr)자료 재구성
주: 1) 한라중공업은 1999년부터 삼호조선소로, 2001년부터는 현대삼호조선소로 사명 변경. 2) 코리아타코마는 2000년부터 한진중공업으로 통폐합. 3) 대동조선은 2002년부터 외자기업에 인수되어 사명을 STX로 변경. 1998년 대동조선의 직영인원은 1,256명, 하도급인원은 1,414명이었음.
하도급 인원의 대부분이 현장직임을 감안하여 정규직 중 현장직을 뜻하는 기능직 인원의 추이와 비교해 보면, 현장에서의 비정규직 확대는 더욱 심각한 수준이다. 1990년에는 기능직 대비 하도급 비율이 21.2%에 불과하였으나, 2002년 들어 그 비율은 111.7%로 늘었다. 조선산업 현장에는 이제 정규직보다 더 많은 수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일하게 된 것이다. 특히 IMF 시기를 경과하면서 추진된 구조조정이 비정규직 비율 증가를 가속시켜왔다.
Ⅱ. 조선산업 사내하청노동자의 노동조건
1. 조선산업 사내하청 노동시장의 특징
1.1. 규모와 특징
조선산업 내의 하도급 거래에는 부품을 조달하는 조선 기자재 거래와 단순노동력 및 기술을 제공하는 외주하도급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사내하청이란 외주하도급 업체 중에서 원청회사의 일정한 생산 업무를 도급받아 이를 원청회사의 사업장에서, 원청회사의 생산시설을 이용하여 수행하는 경우를 말한다.1)
국내 최대 규모의 조선소인 울산 현대중공업의 사측 자료에 따르면, 2002년 1월 현재 총 144개 업체에서 9,128명의 사내하청노동자가 근무하고 있었으며, 이 업체들은 각 부서별로 원청업체에 등록되어 관리되고 있었다. 이 중 조선사업부에 소속된 사내하청업체들의 규모와 분포를 살펴본 결과, 업체의 규모는 적게는 5명 내외부터 많게는 300명까지 다양하나, 대부분 100명 안팎의 규모였다. 또한 사내하청노동자들은 모든 부서에 분포하고 있었으나, 부서마다 정규직 노동자와 하청노동자 수의 비율은 큰 차이를 보였다. 하청 비율이 가장 높은 부서는 도장부로, 정규직보다 두 배 가량 더 많은 수로 나타났다.
이런 부서별 하청 비율 차이는 업무 내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하청 비율이 매우 높거나 심지어 전적으로 하청 인력에 의존하고 있는 부서나 업무들은 노동강도 및 위험도가 크거나, 업무에 요구되는 기술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거나, 정규직 노동자들이 기피하는 작업인 경우가 많다.
1.2. 고용 사업주(하청업체)와 사용 사업주(원청업체)
조선산업 사내하청노동자들은 고용 사업주(원청업체)와 사용 사업주(하청업체)가 별개로 존재하는 간접고용 노동자이다. 하청업체는 하청노동자들과 근로계약을 맺는 고용 사업주로서 채용, 인사, 노무관리, 임금지급 등의 역할을 담당한다. 그러나 외주하도급, 특히 단순노동과 기술을 제공하는 소규모 사내하청업체의 경우에는 원청과의 평등한 거래관계를 유지하기가 어렵다.2) 원청사업주가 도급계약시 상정하였던 도급금액(기성)을 삭감하거나 도급계약 해지, 재계약 중단 등을 통하여 하청업체를 통제․관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원․하청업체는 수평적 계약관계라기 보다는 수직․종속적인 관계라 할 수 있다.
이 때 하청노동자의 고용안정, 임금, 노동조건 등을 결정하는 실질적인 주체는 고용사업주(하청업체)가 아니라 사용사업주(원청업체)다. 가령 하청노동자의 임금 결정 구조에서 원청업체의 생산비용 절감 요구나 도급금액 삭감조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업체가 도급계약을 받으면서 받는 금액을 ‘기성’이라고 부르는데, 이 기성이 삭감되요. 기존 70에서 80퍼센트를 왔다갔다 하는 걸 하청은 진짜 45에서 50퍼센트를 왔다갔다… 100퍼센트 기성을 목표로 상정했던 거기 때문에 목표치가 떨어졌기 때문에 그 이하를 주는 거예요. 그래서 업체도 임금 압박을 받는 거고…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
원청사업주가 하청노동자에 대한 관리와 통제에 보다 직접적이고 적극적인 방식으로 개입하는 경우도 있다. 첫 번째 경우는 사내하청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드는 등 조직적 단결을 시도하는 때이다. 실제로 2003년 하반기,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조합의 설립필증이 교부된 후 설립신고서에 기재되어있던 노동조합 임원진 및 조합원이 모두 소속 업체로부터 해고되고 해당 업체 상당수가 일제히 폐업을 공고했던 사건이 있었다.3) 소규모 하청업체 사업주들이 업체 폐업 등의 극단적인 조치를 자발적으로, 그리고 우연히도 비슷한 시기에 취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원청의 의지라고 보는 게 맞는 거 같은데… 실제로 업체 폐업까지 가고 이러는 거는 업체 사장도 하기 싫었을 거예요. 다시 폐업하고 예전처럼 이름 바꿔가지고 자기가 등재하는게 까탈스러워진게 맞는 거고. 실제로 자기 사업장이 없어지는건데, 이걸(폐업을) 자신의 의지로 했다고 보긴 어려운거고, 저 같은 경우도 ‘이미 (원청업체) 부서에서 알고 있기 때문에 내 범위를 넘어섰다’ 이렇게 얘기를 했고. 다른 데도 이런 동일한 일들이 많이 있었고….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
원청 사업주가 하청노동자의 관리와 통제에 직접 개입하는 또다른 경우는 하청노동자 산업재해가 발생하였을 때이다. 만일 하청노동자가 산업재해를 입어 보상을 신청하게 되면 원청사업주는 피재 노동자를 해고하도록 하청업체에 종용하거나, 이후의 재취업을 금지시킨다. 그래서 “하청이 한번 산재 처리하면 다시는 조선소 밥을 먹지 못한다”라는 말은 조선소 부근에 공공연히 떠돈다. 당사자를 넘어서 해당 업체와의 계약을 해지하거나 재계약을 거부하기도 한다. 이를 아예 하청업체와의 계약서에 명시하자고 나서기도 한다.
올 5월달에 ○○팀에 지원나가는 업체들 중 하나가 넘어져서 골절상을 당했나봐요. 이 사람이 사장을 통하지 않고 근로복지공단을 통해서 산재 요청을 하고, 승인이 돼서 산재 처리가 된걸 늦게 알았어요. 직영(원청업체)에서 늦게 알아서, 이 (직영) 부서에서 그 사실을 알자마자 그 팀에 들어와있던 그 (하청)업체 모든 지원인력을 철수시켜버렸어요.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
(원청)회사에서 안전 관련해서 안을 내놓은 것이 업체에서 중대사고 3번이상이면 계약을 파기한다라는 거였다. 그래서 사고가 나면 (하청업체)사장이 “손가락 다친 것 같은 왠만한 건 알아서 쉬다 와라” 그런다. (대우조선 정규직 노동자)
이처럼 사용 사업주가 도급계약 및 기성금을 통하여 하청업체에 대한 통제권을 가지며, 하청노동자에 대해서도 채용과 노무관리 전반에 걸친 직․간접적 관리와 통제를 구사하므로, 원청업체는 사내하청노동자에 대한 사업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가져야 한다.
한편, 하청업체가 하청노동자를 관리․통제하는 형식적인 주체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하청업체는 사용 사업주와 하청노동자 사이에서 이윤을 얻는다. 하청노동자의 임금을 합법적으로 중간 착취하는 것이다. 이로써 두 사업주에 의한 이중의 통제와 착취 속에 하청노동자의 저임금 구조는 합법적으로 고착된다.
이러한 ‘합법적 착취’ 이외에도 하청노동자들이 정당하게 받아야 하는 노동의 대가를 업체가 중간에서 부당 갈취하는 일도 적지 않다. 가령 2004년 2월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 박일수 열사의 분신사망 사건 당시, 열사를 고용했던 하청업체는 상당수의 노동자에 대하여 4대 보험에 가입하지 않았으며, 7년 이상 근무한 10명의 노동자들을 당사자 몰래 퇴직 처리하여 퇴직금을 착복하고, 용접사 자격증 수당, 가스 수당, 연월차수당 등을 중간에서 가로채기까지 하였다.4)
조선산업 사내하청 노동시장의 구조
2. 사내하청노동자의 노동시장 유입-유출 과정
2.1. 조선산업 노동시장으로의 최초 유입 과정
정규직 노동자들은 학교 졸업 직후 첫 직장으로 입사하였거나, 타 업종에서 일하다가 조선산업의 상대적인 고임금과 고용 안정 때문에 이직한 경우가 대부분인 반면, 1990년대 후반 이후 입사한 하청노동자들은 대개 자영업자나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로 지내다가 경제난․실직․구직난 등을 거친 끝에 조선소로 유입되는 특징을 보였다.
하청노동자 대부분은 원청업체의 정규직으로 취직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 이후 각 조선소에서는 신규 인력 채용을 최소화하는 인력 운용 방침5)을 설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원청업체 정규직으로의 취업 기회는 거의 없었다. 경제적 문제로 인하여 취업이 긴급히 필요한 이들의 처지에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것이 사내하청업체였다.
직영모집을 안하니까, 누구나 다 직영으로 들어갈 수 있으면 들어가지, 누가 힘들고 돈 안되고, 비정규직으로 남아 있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저는 개인 사업 실패로 조선소에 오게 되었어요. 처음부터 그랬지만 먹고 살기 위해 얼마나, 조선소 하청에 들어온 사람들은 전부 각박하죠. 돈이 급하거나 돈이 없으니까. 돈이 있으면 누가 오겠어요, 이 더러운 작업환경에 누가 들어오겠습니까. (대우조선 사내하청노동자)
2.2. 조선산업 노동시장 내에서의 반복 실업 과정
작년에 9월달에 와가지고, 6월달까지 일했거든요. 9개월 일했어요. 그러니까 02년 9월부터 03년 6월까지 한군데 있었고. 그리고 03년 6월부터 9월까지. 그다음에 지금까지. 일년 반 동안 (업체 옮긴 것이) 세번 되요, 세번 정도 되요.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
조선산업 사내하청노동자들의 고용 상태는 수개월에서 1년 가량의 짧은 주기로 취업-실업-취업-실업…이 순환되는 반복적 실업 과정을 특징으로 한다. 이 과정은 이동 주체의 특성과 이동 동기에 따라 각각 개인적인 이동과 집단적인 이동, 반(半)자발적․반(半)강제적 이동과 강제적 이동으로 분류할 수 있다.
조선산업 사내하청 노동시장 내에서의 반복적 실업 양상
반복적 실업의 유형 |
반복적 실업의 양상 | |
이동 주체에 따라 |
개인적 이동 |
인맥이나 인력광고를 통해 이동 |
집단적 이동 |
작업팀을 구성하여 이동 | |
이동 동기에 따라 |
반(半)자발적․반(半)강제적 이동 |
저임금→ 보다 많은 임금을 받을 수 있는 업체로 이동 |
노동강도→ 덜 힘든 일을 할 수 있는 업체로 이동 | ||
고용불안→ 실업 상태에 놓이기 전에 미리 일자리를 확보하기 위한 이동 | ||
강제적 이동 |
실제로 일감․일자리가 없어져서 실업 상태에 놓이게 된 경우 | |
다른 이유로 해고․계약해지되어 실업 상태에 놓이게 된 경우 | ||
하청업체의 폐업으로 인하여 실업 상태에 놓이게 된 경우 |
1) 개인적인 이동 ․ 집단적인 이동
개인적인 이동은 대부분 인맥이나 인력 모집 광고를 통해 이루어지나, 집단적인 이동은 경력 및 숙련도가 높은 핵심 노동자가 이끄는 작업팀이 일감을 따라 함께 이동하는 방식이다. 이런 이동 집단은 “야리끼리” “물량떼기” “때려먹기” “일당바리” 등으로 불리우는데, 정식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채 일정한 작업량을 완수하는 조건으로 근무하는 비공식적 하청 노동이라 할 수 있다.
선체 도장이라고 배 외곽 쪽에 이런데는 물량떼기가 일상시기에도 참 많습니다… 사고라든가 근골격계, 이런 건강 안좋은 작업조건 때문에… (삼호중공업 정규직 노동자)
진수가 다 되면 많은 인력이 필요하거든요… 진수에 집중적으로 투입되는 그런 업체 같은 경우 흔히 이야기하는 ‘일당바리’라고 하지요. 비정규직 내에서도 또 몇 사람이 열명이면 열명 팀이 있더라고요. 그렇게 와서 물량을 갖다가 톤당 얼마씩 받는 것으로 해서 그렇게 해서 작업을 하고 있더라고요. (대우조선 정규직 노동자)
2) 반(半)자발적 ․ 반(半)강제적 내부 이동
반(半)강제적․반(半)자발적 이동이란 보다 나은 노동 조건을 찾아 자발적으로 조선산업 노동시장 내부의 이동을 도모하되, 그 계기가 전적으로 본인의 자발적 의지에 따라 결정된 것이 아니라 사내하청 노동시장의 객관적인 조건에 의하여 반(半) 강제적으로 구성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이동의 동기 및 목적에는 저임금 조건에서 일하면서 보다 많은 임금을 받기 위한 이동, 노동강도가 조금이라도 낮은 일을 찾기 위한 이동, 고용이 불안정한 상태에서 임박한 실업에 대비하거나 혹은 실업 상태에서 재취업을 하기 위한 이동 등이 있다.
제가 ○○업체 소속으로 □□부서에 있을 때는 시급을 조금 받았어요. 거기서 기계 지원하는 △△업체 사람하고 월급차이가 거의 백만원 차이가 나더라고. 그래서 저쪽 반에 반장이 자기도 똑같이 일 시키고 하는데 월급이 너무 차이가 나니까 업체를 다른 데로 가라고 충고를 해주더라구요.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
여기는 아무리 숙련이 되도, 십년 이십년이 되도, 일 자체가 공정이 이러니까 (힘든 건 마찬가지다). 그래서 처음에 와서는 일을 잘 안해봐서 모르다가, 3일, 3일 못견디고 다 가요, 나 못하겠다고.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
조금 더 안정적인 직장을 찾아야죠. 원래 하청에서 하청으로 옮길 때 여긴 불안한데 남의 떡이 더 커 보이잖아요. 저 하청이 조금 더 낫지 않을까. 하청자체가 위태위태하니까. 몰라 위에 본청에서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생각 않을지 모르지만… (삼호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
그러나 사내하청노동자가 경험하는 저임금, 고도의 노동강도, 고용불안 등은 개별 노동자의 주관적인 경험과 판단이 아니라 임금 억제, 생산성 향상, 생산량에 따른 인력의 탄력적 사용(노동력 유연화) 등 조선산업 구조조정 전략에 의해 형성된 노동시장의 구조적 특성에 의한 것이다. 조선산업 구조조정 전략이 사내하청 노동시장의 기본 구조를 규정하고, 이 구조 속에서 사내하청노동자들의 만성적 고용불안과 저임금 및 고도의 노동강도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므로,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하청노동자 스스로 이직을 선택한다고 해도 이것은 시장 구조에 의해 반(半) 강제적으로 이루어지는 것과 다르지 않다.
3) 강제적 내부 이동
강제적 이동은 갑자기 일감이 없어지거나 하청업체가 폐업하거나, 어떤 이유로 해고(계약 해지)되어 실업 상태에 놓이게 된 경우 등 하청노동자 본인의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강제적으로 이동해야 하는 경우를 의미한다.
하청노동자들의 고용 상태는 물량에 따라 매우 불안정하게 유지되기 때문에 물량의 중단에 대비하여 미리미리 다음 일자리를 찾아다니는 반(半)강제적․반(半)자발적 이동이 매우 흔하다. 그러나 물량이 떨어져 실업 상태에 놓이게 될 시기는 정확히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미처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자리를 잃는 일이 많아 사실상 강제로 이동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빈번히 발생한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언제 끝나는지는 모르겠는데, 물량이 좀 적어지죠. 만약에 한 50명 할 일이 30명 일밖에 없으니까. 스무 명은 회사에서 계속 돈을 안주잖아요. 그러니까, 일이 별로 없다. 그러면 알아서 가는 거지. 안그러면, 인제 서로서로 돌아가면서 쉽시다, 그러면 쉬어야지.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
이처럼 하청업체가 경영상의 이유로 감원이나 폐업을 하는 경우에는 더욱 갑작스러운 실업 상태에 놓이게 되며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기도 한다.
월급도 못받았어, 어떨 때는. 회사 망했으니까 사람 다 나눠가지고 다 털어서 다 분배하니까 그래도 돈이 좀 나오더라고. (그걸 다 나누어서) 그런 식이지. 안받는 것보다 받는 게 낫잖아요.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
한편, 물량이 감소하거나 일자리가 줄어들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하청업체로부터 고의적인 작업 배제나 해고․계약해지를 당하거나, 아예 업체가 문을 닫아버려서 강제적으로 이동을 모색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고의적인 작업 배제나 해고 및 폐업은 주로 산업재해 환자나 노동조합 활동가를 축출하기 위하여 이루어진다.
직영 원청에서 업체로 연락이 왔는데 ‘협력업체 내에 노조를 만들려는 모임이 있는데, 거기에 가담한 자다’ 이래가지고… 업체 측에서 ‘직영에서 일 커지기 전에 사표를 써라’… 출근하니까 작업 제외시키고, 경비대들이 사무실에 들어와서 싸우고. 싸운게 아니라 거의 끌려나왔죠.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
출입증 반납하라길래 웃기지 마라 이거는 운영지원부에서 나한테 발급해준건데 내가 왜 반납하냐 이래 가지고. 출근을 했어요. 근데 인제 저희 업체도 폐업이 공고되고.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
면접 조사 과정에서 산업재해를 겪거나 노동조합에 가입한 노동자가 스스로 하청업체를 떠나는 사례도 발견되었다. 그러나 이런 경우들조차 산업재해나 노동조합 가입 사실이 알려진 뒤 업체로부터 일을 계속 할 수 없을 정도의 스트레스를 받아서 별다른 대안을 찾지 못한 채 어쩔 수 없이 이직하는 것일 뿐, 결코 자발적 이직이라고 볼 수 없는 상황이다.
일당들 같은 경우는 한마디로 다치면 쪽팔리니까 아예 얘기도 안하고… 예전에는 그냥 일당들은 크게 다치면 보따리싸는 게 관례였어요. 억울하고 뭐 이런 것들 호소한다기 보다는 오히려, 어차피 일당이니까 보따리 싼다, 이런 거지요.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
8월달에 업체 투쟁한 이후로 폐업한다 폐업한다 이런 얘기들이 계속 돌고, 그 과정에서 주로 떠나는 사람들 보면 조합에서 이렇게 뛰었던 사람들, 그 사람들이 “더러워서 못 다니겠다”고…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
1.3. 조선산업 노동시장으로부터의 영구 유출 과정
조선산업 하청 노동시장 내부에서의 반복 실업 과정은 이 곳을 완전히 떠나는 영구 유출 과정으로 연결되곤 한다. 유출 과정도 그 동기에 따라 자발적 유출과 강제적 유출로 분류할 수 있다.
조선산업 사내하청 노동시장으로부터의 유출 양상
유출 유형 |
유출 양상 |
자발적 유출 |
저임금→ 보다 많은 수입을 올리기 위하여 |
노동강도→ 덜 힘든 일을 찾기 위하여 | |
노동환경→ 더 나은 환경에서 일하기 위하여 | |
고용불안→ 보다 안정적인 직업을 찾기 위하여 | |
강제적 유출 |
산업재해로 인하여 노동능력을 상실한 경우 |
노동조합 활동으로 인하여 재취업이 불가능해진 경우 |
1) 자발적 유출
자발적 유출이란 고도의 노동강도와 열악한 노동조건에 염증을 느끼고 다른 업종으로 전환하고싶은 욕구를 바탕으로 한다. 면접 조사를 통해 만난 사내하청노동자들은 대부분 “당장 다른 일자리를 찾는 것이 쉽지 않아서” 계속 일하고 있지만 “너무 힘들어서 다른 일로 옮기고 싶고 언젠가는 이 바닥을 떠날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만족을 못하죠. 이보다 나은 조건이 있으면 내일이라도 미련없이 떠나야죠. 일이 너무 힘들고 임금도 작고… (대우조선 사내하청노동자)
쉬는 시간에 얘기하다보면 전부 힘들어서 안하겠다 못하겠다 나가겠다 이런 소리죠 뭐…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
임금도 적고 일 자체도 편한일이 아니니까… 계속 일할 생각은 (없지만) 울며 겨자먹기로… 옮겨봐야 뻔하니까… 기량이 쌓이면 옮길 계획 (대우조선 사내하청노동자)
그러나 취업이나 개인 창업의 전망이 밝지 않은 사회적 조건 하에서 이 생각을 실행으로 옮기는 것은 쉽지 않다. 수년간 기다린 끝에 간신히 조선산업을 떠나더라도 종종 재취업에 실패하거나 사업이 망하여 별 수 없이 다시 조선 하청 노동시장으로 재유입되는 일이 허다하다. 그렇기 때문에 하청노동자들은 “조선소 바닥을 떠난 사람들은 무소식이 희소식이다”라고 말한다.
이처럼 상당수의 조선산업 하청노동자들은 조선소를 벗어나 다른 생계를 꾸리기 쉽지 않은 사회적 조건에 처해 있다. 그런데도 먹고 살 만 하다면 결코 다시 조선산업 하청 노동시장으로 돌아오지 않겠다고 생각할 만큼 그들의 노동 조건은 고되다.
2) 강제적 유출
강제적 유출이란, 본인의 의도와 무관하게 조선산업 노동시장으로부터 강제로 퇴출당하는 것을 말한다. 산업재해나 노동조합 활동으로 강제적 내부 이동을 당한 노동자들은 대개 이런 방식으로 조선소에서 영구적으로 추방당하고, 조선 하청 노동시장으로 재유입은 거의 불가능하다. 중대 재해로 목숨을 잃거나 노동 능력을 크게 상실했을 때는 물론이고, 노동 능력을 유지하고 있더라도 산재보상 청구를 했을 경우에는 원청사업주에게 찍혀서 두 번 다시 조선소에 발을 들여놓지 못한다고 한다. 조선소에는 원청사업주들이 산재신청자들과 노동조합 활동가들을 영구 추방하기 위한 “산재리스트”와 “블랙리스트”를 가지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그런데 이런 강제적 유출은 정말 간단하게 이루어진다. 모든 하청노동자들은 조선소에 출입하기 위하여 원청 사업주로부터 출입증을 발급받는데, 이 출입증 발급이 중단되면 그것이 바로 해고를 의미한다.
출입증을 반납하고나서 돌려받지 못하면 그 자리에서 짤리는거죠. 뭐 어디 호소할 데도 없고. 특히나 요새 물량이 뚝 끊기니까, 뭐 어디 좀 쉬었다 와라 이래도 뭐 군소리 못하고, 괜히 뭐 얘기했다가 또 일 못하니까, 또 못들어가니까. 안주면 못들어가는 거죠. 일단 공장 안에 못들어가니까 끝나는 거지. 뭐 (업체에) 전화하면, (그쪽에서) 전화 안받으면 끝이니까.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
3. 고용 형태 및 근로 계약
3.1. 고용 형태
조선산업 사내하청노동자는 고용 형태에 따라 공식 하청과 비공식 하청으로 분류할 수 있다. 공식 하청이란 하청업체에 고용되어있는 경우를 말한다. 공식 하청노동자는 원청업체로부터 출발하여 몇단계의 간접고용 상태인가에 따라 다시 일차 하청, 이차 하청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일차 하청노동자란 사내하청업체에 직접 고용된 노동자들을 말한다. 이차 하청은 사내하청업체에 인력을 파견하는 용역업체에 소속되어 이중의 하청 구조 속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말한다.
비공식 하청이란 말 그대로 공식적인 고용 절차를 거치지 않고 일하는 형태로서 “야리끼리” 등 여러 종류의 은어로 표현된다. 이들은 주로 숙련된 노동자를 중심으로 팀을 이루어 일정량의 작업을 수행할 목적으로 단기간 고용되며, 물량을 따라 여러 지역을 넘나들며 사내하청 노동 시장 집단적으로 이동하는 특징을 가진다. 이들은 원청으로부터 직접 일감을 맡기도 하고, 하청업체가 도급받는 업무 중 일부를 재도급받기도 한다.
3.2. 근로 계약 방식
근로계약은 공식 하청과 비공식 하청에 따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공식 하청노동자 중에서도 하청업체에 직접 고용되는 일차 하청노동자들은 대개 1년 단위로 근로계약을 맺는다. 1년이 지나면 하청업체에 의해 자동적으로 계약이 연장된다. 그러나 공식 일차 하청노동자들이라고 할 지라도 근로계약서 작성은 매우 형식적으로 이루어진다. 대부분의 하청노동자들은 근로계약서에 담긴 내용을 정확히 알지 못하며, 심한 경우에는 빈 종이에 서명만 하고 나머지 계약 내용은 하청업체에서 일방적으로 작성하고 있다.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다시 사무실에서 알아서 안하겠습니까, 자기들이 알아가지고. (계약서는) 보고 그냥 싸인만 하고, 읽지는 않고, 보통 대충보고 그렇죠. 계약방법은 맨투맨. (대우조선 사내하청노동자)
공식 하청노동자 중에서도 사내하청업체에 직접 고용된 일차 하청노동자들과 달리 중층의 하청 구조 속에 고용된 이차, 삼차 하청노동자들은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다. 비공식 하청노동자들 역시 근로계약서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하청에 하청은 근로계약도 없고, 들어와 일하라면 하는 거죠. (대우조선 사내하청노동자)
이 사람들은 이중 계약을 한 거예요. 용역업체하고 하청업체에 이중계약을 하고 그 업체 출입증이 나오지만, 사실은 그 업체 소속이 아니죠. 용역업체 소속인거고. 용역업체에 용역비를 지급하고, 그리고 단가도 좀 약하고… 어떤 업체는 120명 중에 80명이 그런 이중계약이고. 조선에는 그런 형태보다는 때려먹기라 그래서, 팀장들이 사람들을 데리고 들어오는 거예요. 어떤 물량을 띠기까지. 그래서 그때까지는 출입증은 허위 출입증으로 하고. 그 회사에는 소속이 아닌거지. 소속이 아니고 한마디로 단가 맞춰서. 그래 이 사람들은 중공업 인원 현황에도 잡히지 않죠.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
3.3. 고용 불안
사내하청노동자들은 만성적인 고용 불안을 느낀다. 현장의 작업량이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하면 조만간 일을 하지 못하게 될 것을 예감하고 불안을 느끼며, 현장의 물량이 많더라도 언제 일거리가 떨어질지 몰라 전전긍긍하며 지낸다.
불안하죠. 언제 짤릴지 그거보다는 내가 진짜 솔직히 가족같이 소속감이란 게 들하니까...고용은 불안하죠. 이 회사가 언제 무너질지, 원청으로부터 언제 퇴출당할지 내가 뭐하는 것보다는 위에가 하청이니까. (대우조선 사내하청노동자)
처음에는 있을라며는 조금 오래 있을라 했는데… 올해부터는 여기 경기가 안잡혀요… 인제, 모르겠어요. 이게 이 일을 할지 아니며는… 이게 지금 장가도 가야 되는데, 갑갑하죠. 장가도 갈라 하니까, 이젠 또 경기가 안좋아가지고 지금 뭐,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그니까 인제 혼자서 애만 태우는거지…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
3.4. 임금 구조
1) 임금 결정 구조
조선 사내하청노동자들은 하청업체로부터 임금을 받기 때문에 임금 지급의 직접적 주체는 하청업체이지만, 임금 수준이 결정되는 구조 속에서는 원청업체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며, 일부 사업장에서는 기본 시급과 일당을 제외한 수당 등을 원청업체에서 직접 지급하기도 한다.
하청업체가 지급할 수 있는 임금의 총액은 결국 원청업체로부터 받는 기성금(도급 대금)의 범위 내로 제한될 수밖에 없으므로, 원청업체는 하청노동자에게 지급되는 임금의 총 수준을 결정하는 셈이다. 그동안 국내 조선산업 자본들은 세계 시장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하여 인건비를 강력하게 제한하는 전략을 채택하여 하청노동자들의 저임금을 적극적으로 유도해왔다.6)
이러한 원청업체의 인건비 압박 전략은 하청업체들에 대한 수직․종속적인 관리․통제 체계 속에서 ‘(원청사에 의한)부당한 하도급대금의 결정’, ‘하도급대금의 감액’, ‘하도급대금의 미지급’, ‘부당한 경영간섭’, ‘산재사고처리비용의 전가’, ‘우천에 따른 손실비용의 미지급’ 등의 불공정 거래를 통해 더욱 강화된 형태로 표현되고는 한다.7)
한번은 △△기업이라는 업체에서 소급분이 안나왔어요. 성과급 소급분이 안나와가지고 왜 소급분을 안주냐… 업체는 ‘중공업(원청)에서 안나왔다’ 얘기를 했고… 그래서 이 사람이 직영에 운영지원부, 하청업체 관리하는 데, 거기를 가서 소급분이 안나왔냐 했더니 ‘기성에 포함해서 소급분을 지급했는데 도대체 누가 안준거냐, 데리고 와라’ 이렇게 나온 거죠. 돈을 안주었다고 항의했는데 소급분을 기성에 포함해서 지급이 되었다고… 이게 약점이예요. 원청에서는 소급분을 기성에 포함시켜서 준거구요, 기성은 그 수준에서 나온 게 아닌거죠. 그래서 사장은 이건 소급분을 준게 아니다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준 거고… 그래서 사장은 회사(원청)에서 안나온 거라 하고, 회사는 기성에 다 포함해서 준 거라 하고… 이런 식으로 자금을 압박하는…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
원청업체가 임금 총액 수준을 제한하는 와중에 하청업체 사업주는 하청노동자들의 임금을 최소화해서라도 자신의 이익을 확보하려 한다. 이러한 하청업체 사업주의 이해관계는 공식적으로는 하청노동자의 임금을 개별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으로 나타나며, 비공식적으로는 각종 수당 등을 지급하지 않거나 중간에서 착복하는 방식으로 표현된다.
개별적 임금 결정 방식은 같은 직종, 같은 업체에 종사하는 하청노동자라 할 지라도 숙련의 수준이나 하청업체에 대한 충성도, 친밀도 등에 따라 업체가 임의대로 서로 다른 규모의 임금을 지급하는 것을 말한다. 한 업체 내에서 하청노동자의 시급이나 일당을 계산하는 방식은 공식적으로 통일되어 있지만 실제 시간당, 공수당 지급되는 금액의 수준은 하청노동자들마다 서로 다르며, 공식적으로 정해진 기준이 없이 임의로 결정된다. 따라서 하청노동자들에게는 초봉이나 기본급의 개념이 존재하지 않고, 개별 노동자들의 능력이나 숙련도를 하청업체에서 임의로 판단하여 임금을 결정한다.
(임금 수준 설정 기준이 뭐예요? 개인이 그냥 업체에 직접 일대 일로 쇼부를 치는 거예요?) 예 그런 거예요. 보통 ‘(일당이) 얼마 정도 되야 일하지, 안그러면 일 못한다’ 그러면, (업체에서) ‘아 그정도는 못준다, 조금만 까라’ 그러죠. 저도 그런 식으로 했고. (만족하는가?) 사람이 어찌 만족하고 삽니까. 그냥 잠깐 뭐, 일이 바쁠 때는 참 티껍고 이러는데, 일이 안바쁠 때는 ‘어유 내가 뭐, 좀 덜쓰지, 술한잔 덜 먹지’ 이러구.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
이런 식으로 임금을 개별화시킴으로써 하청업체는 보다 손쉽게 낮은 임금 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 같은 업체나 같은 직종에 종사한다고 하더라도 하청노동자들이 임금 수준에 대한 단일한 요구나 단체 행동을 하기 어려운 조건에 처하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하청업체가 일방적으로 임금을 결정하기 때문에 하청노동자는 더 높은 임금을 받기 위해 사업주가 요구하는 바를 더욱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 게다가 물량에 따라서도 임금 수준을 조정하기 때문에 하청노동자들로서는 ‘벌 수 있을 때 한푼이라도 더 벌어야 한다’는 절박함에 의하여 아무리 높은 수준의 노동강도라도 업체가 요구하는 만큼 수행해내지 않을 수 없어 하청업체에 대한 종속성이 한층 강해진다. 한마디로 하청업체는 개별화된 임금 결정 구조를 통하여 하청노동자에 대한 강력한 통제력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조선 하청 노동시장에서의 경험이 어느 정도 쌓이고 숙련도가 비교적 높은 노동자들은 하청업체와 일대 일로 임금을 협상하여 임금 수준을 결정하기도 한다.
뭐 조금 그라인더 몇 년 했다 이러면 에이급이라고. 초짜는 십만 오천원이나 뭐 이정도 되고, 나머지는 뭐… 그것도 수당을 좀 더주는 사람이 있고. 저 같은 경우는 수당을 좀 더주고, 그걸 다른 사람들한테는 비밀리에… 개인적으로 총무하고 협상을 한 거고.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
때로는 이러한 개별적 임금 협상이 아니라 작업팀이나 특정 직능과 같이 보다 집단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공식적인 임금 협상 경로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며, 일부 숙련 노동자가 주도하여 태업 등의 단체 행동을 통해 임금 협상의 계기를 만드는 방식으로 시작된다.
(누가 그런 집단 행동을 시작하나요?) 일단 조장선들이죠. 조장들이 ‘호스를’, 그라인더는 호스에 끼워가지고 에어를 연결해서 그라인딩을 하는데 ‘호스 말아서 꺼라’하면 그냥 그럴 정도로 파워들이 쎄지요… 누가 ‘나가자’ 이러면 뭐 점심시간에 다 나가가지고 술집에 가 있는다거나, 이러면 총무가 뒤늦게 쫓아나와서 ‘너네 왜, 뭐가 불만이냐’ 이러면서 그 자리에서 협상이 이루어져서 한다거나, ‘마음대로 해라’ 이런다거나.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
“물량이 터진다”라고 표현되는 시기, 즉 작업량이 많은 시기에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하청업체 입장에서는 작업량을 완수해야 하는 시간적 압박과 노동력에 대한 수요도 매우 높기 때문에 일정 수준으로 임금 인상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작업량이 적고 이에 따라 노동시간이 감소하여 하청노동자들의 임금 총액 수준이 낮은 경우에는, 임금 인상에 대한 요구가 더욱 강력함에도 불구하고 임금 인상 시도가 실패하는 일이 많다. 이런 시기에는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몇 명의 하청노동자를 대체할만한 값싼 노동력을 언제든지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가 ‘나가자’ 이러면 뭐 점심시간에 다 나가가지고 술집에 가 있는다거나, 이러면 총무가 뒤늦게 쫓아나와서 ‘너네 왜, 뭐가 불만이냐’ 이러면서 그 자리에서 협상이 이루어져서 한다거나, ‘마음대로 해라’ 이런다거나. 이런 경우가 여기뿐만 아니라 ○○에서도 많이 있었다고 하구요. 최근에 여기 같은 경우는 한 업체가 집단적으로 한번은 조퇴, 한번은 태업, 말은 태업이고 개긴 거지요 일 안하고. 이런 경우도 있는데, 그때 같은 경우는 워낙 물량 압박이 심하니까 다 줘요… 물량이 많고 지금 빨리 일을 해야 하는 경우에는 바로 쫓아와가지고 ‘알았다, 임금 올려주겠다’ 이렇게 하고, ‘누가 나쁜 놈이다’ 이러며는 ‘알았다, 조치하겠다’ 이렇게 얘기를 할 텐데. 지금 같으면(물량이 없으니까) ‘그래? 그러면 가라’ 이러지요. ‘우리도 돈 없고, 배째라’ 죠.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
근데 일당이 처음부터 계속 똑같아요. 아니, 지금은 처음보다 더 내릴 판이라니깐요. 일이 지금 많이 그러니까… 사람이 많은데 어디 더 줍니까. 사람이 적고 일은 많으며는 더 줄 수밖에 없고. 일은 없는데 사람이 많으니까 더 적게 줄 수밖에 없지.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
또한 아무리 물량이 많은 시기라 하더라도 임금을 실제로 인상시키기란 결코 쉽지 않다. 당장 다음 달에 물량이 없어져 실업 상태에 처하게 될지 모르는 고용 불안 상태에서 그나마 일감이 있다는 것에 감지덕지 하면서 하루라도 더 일을 해서 돈을 벌어 두어야 하는 절박함 때문이다.
대부분 ‘터지면 가만 안둔다’ 이러는데… 물량이 터지면 그때는 가만 안둔다는 거죠. (아, 다들 벼르는 거로군요) 여기 중공업이 작업 공정에 따라 밀리는 거라서, 물량이 많을때는 한도끝도 없이 많아가지고 잔업하고 철야하고 이러며는… 사람들은 ‘물량 터졌을 때 한번 튕겨야 된다(돈 벌어두어야 한다는 뜻)’ 이렇게 얘기하고, 또 물량이 없을때는 ‘물량 터질 때를 두고 보자’ 이렇게 얘기하지만, 또 끈질기게 살아남을 이런 거를 보게 되지요.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
드문 경우지만 하나의 작업조 혹은 팀 수준보다 큰 규모로 동일 직종의 하청노동자들이 단결하여 임금 인상을 위한 단체 행동을 시도한 사례도 있다. 다음은 2003년도 모 사업장에서 일당이 급감한 데 대하여 파워 그라인더공 2백여 명이 대규모로 파업을 벌이고 사내하청 노동조합을 통한 공동의 교섭을 결정하였으나 결국 임금 인상에 실패한 사례이다.
원래 A급 일당이 15만원에서 20만원 사이였는데, 작년 겨울 지나면서 올초까지 물량이 (줄어들면서) 일률적으로 11만원으로… 그래서 일당제 파워그라인더 형님들이 움직여서 3일, 4일동안 점심시간 이후에 조퇴를 하고, 공원에 모여서 집회 형식으로, 요구안을 해서 회사에 요구하는 식으로 반복했구요. 총 2백여명 정도가 모였고…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
위의 사례에서 각 하청업체들은 개별적으로 서로 다른 임금안을 내어놓아 하청노동자들의 요구를 분산시켰으며, 이와 동시에 파워 그라인더공이 담당하던 직무의 일부를 다른 직능으로 이전시켰다. 고용 자체가 불안해진 파워 그라인더공들은 더 이상 임금 인상을 요구할 수 없게 되었고, 임금 인상 투쟁은 실패로 돌아갔다.
그런데 4일째 날, 업체별로 어떤 데는 우리 업체는 12만원 줄테니까 참가하지 마라, 이런 식으로 끝난 거죠… 처음에 업체가 11만원 깨진데가 있었고, 아예 얘기를 안한데가 있었고, 다른 업체만큼 준다는 데가 있었고, 오히려 뭐 처음부터 12만원으로 전체 업체가 다 그랬으면 뭉치기가 좋은데 그런게 아닌 거죠. 몇몇 업체가 먼저 선두로 해서 쓰러졌고, 전반적으로… 첫날부터 인제 회유하고 압박 들어가고 이러니까… (그렇게 해서 임금을 올렸나요?) 아니요. 다 뒤통수 맞았지요. 예전에는… 조인트를 파워그라인더공들이 갈아가지고 했는데, 전체를 샌딩을 줘버린 거예요. 그러니까 그 일이 샌딩으로 넘어가고… 파워 그라인더는 일이 없는 거예요. 일이 없으니까 몇개 팀은 거제도로 가고, 남은 사람들도 다른데 뭐 다 용역되고 없으니까 울며 겨자먹기로 견디고 있는거고.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
이처럼 하청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임금 수준을 요구하고 달성하기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앞의 사례에서 그 이유를 찾아본다면 (1)수없이 많은 소규모 하청업체에 각각 소속되어있고 여러 직종이 혼재되어 있는데다가 임금 결정 구조마저 개별화되어 있어 임금에 대한 요구를 집단화시키기 어렵고, (2)만성적인 고용 불안과 저임금 구조로 인하여 강력한 임금 투쟁을 지속할 만한 경제적 기반조차 갖지 못하고 있으며, (3)불평등한 노사 관계 속에서 임금 수준은 물론 업무량이나 업무 내용도 사업주가 임의로 조정할 수 있고 해고가 자유로우며, 노동3권이 보장되어 있지 않아 노동조합을 통한 임금 협상이 불가능하고, (4)실질적으로 이러한 불평등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법적․제도적 장치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2) 임금 지급 체계
하청노동자들의 임금 지급 체계는 크게 일당제와 시급제로 구분되며, 시급제의 변형으로 직시급제가 있다.
가) 일당제
아침 8시부터 저녁 6시까지 10시간을 기본적인 1공수로 보고 일당을 지급하되, 점심시간 1시간은 노동시간으로 인정하지 않으므로 일당 계산에서 제외한다. 일당을 1로 보았을 때 오후 5시까지는 1시간 일할 때마다 10퍼센트씩 지급하고 오후 5시를 넘어 6시까지 일할 경우에는 20퍼센트를 주기 때문에, 만일 일이 적거나 일찍 끝마쳐서 오후 5시까지 일하게 되면 0.8공수로 계산하여 하루 일당의 80퍼센트만을 받는다. 또한 평일에 2시간 추가 근무를 하면 1시간이 추가될 때마다 일당의 15퍼센트를 지급하고, 이러한 계산법은 주말이나 휴일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따라서 일당제 하청노동자는 적게 일할수록 손해를 보고 많이 일할수록 임금의 증가 폭이 커지기 때문에 자연히 장시간 노동을 유도하는 임금 체계라 할 수 있다. 또한 작업량이 많은 시기와 적은 시기의 임금 차이가 크게 나기 때문에 일당제 노동자는 물량이 많은 시기에는 상대적인 고임금을 받고, 물량이 적거나 악천후로 인하여 일을 하지 못하는 시기에는 매우 낮은 수준의 임금을 받는 경제적 불안정 상태에 처하게 된다.
나) 시급제
시급제는 아침 8시부터 저녁 5시까지 점심시간을 제외하고 8시간을 기준으로 하루 노동시간만큼 비례하여 시급을 지급한다. 오후 5시 이후 잔업을 할 경우에는 연장 가급이 추가되어 매시간 시급의 1.5배를 추가로 받는다. 밤 10시 이후 다음날 새벽 6시까지는 시간당 50퍼센트의 야간 가급이 더해지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야근을 하면 매시간 시급의 2배를 받는다. 주말과 휴일에는 좀더 이른 시간부터 연장 가급이 추가되기 때문에 평일에 일하는 것 보다 높은 수준의 임금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어떤 조선소에서는 정규직 노동자들이 철야 근무를 하면 다음날 연장근무수당 8시간 분을 추가로 계산해주는 반면 하청노동자들에게는 다음날 오전에 근무를 해야지만 연장 근무 수당을 지급해주고 있었다. 이런 경우 하청노동자들은 한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무리한 근무 조건을 감수하게 된다.
정규직의 경우 탑재부서에 극히 일부 철야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다음날 근무하지 않더라도 OT를 8시간 달아줍니다. 하지만 우리는 OT를 안달아 주기 때문에 임금보전을 위해 무리해서라도 철야하고 그 다음날 낮 12까지 근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대우조선 사내하청노동자)
따라서 시급제 역시 일당제와 마찬가지로 하청노동자로 하여금 조금이라도 더 오래 일하도록 유인하는 효과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시급은 일당에 비하여 임금 수준이 매우 낮기 때문에 장시간 노동의 유인효과가 더욱 높게 나타날 수 있다.
다) 직시급
직시급은 시급제의 변형된 형태로서, 시급제에 비해 시간당 임금이 높게 책정된다. 그러나 제 수당과 퇴직금이 시급에 포함되었다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연장 근무에 대한 수당 등 시간급 이외의 법정 임금은 전혀 붙지 않는다. 따라서 언뜻 보면 시급제에 비하여 임금이 높아보이지만 노동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임금이 상대적으로 감소하는 효과를 갖는다.
일부 조선소에서는 인건비를 더욱 줄이기 위하여 일당제를 직시급제로 대체한 바 있다. 일찍이 통영지방노동사무소에서는 대우조선 사내하청 S기업에서 이러한 직시급제가 근로기준법 위반임을 인정하여 주차, 월차, 휴일근로수당, 유급휴일수당 등의 체불을 인정한 바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불법적인 임금 체계는 아직도 여러 하청업체에서 활용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급은 시간당 6,500원인데 OT(오버타임;연장근무수당)붙고 하는데 반면 직시급은 하나의 편법이지. OT 안붙고, 시간외 수당이 안 붙고, 무조건 시간당 11,000원씩 고정돼 있고, 같은 건데도 자기가 어떤 임금을 받는냐에 따라… 시간이 가면 직시급은 시간을 많이 하면 할수록 손해고 적게하면… 일하는 시간은 똑 같은데 강도 이런 건 똑 같은데 업체사람들이 그 직시급을 받으면 퇴직금 이런 것들 제외가 되고 연월차도 없고 내가 받는 건 있는데 다른 혜택이란 거, 적용을 못 받는거죠. 그런 차이가 있죠. 우리도 일단 가져가는 돈이 시급보다도 직시급하면 돈은 많이 가져가거든요. 어딜 가면 시급을 선택하지 않거든요. 직시급이나 하루 일당 8시간, 8만원 이건 또 OT가 붙으니까… 삼호중공업에서는 일당을 잘 안쓰거든요. 돈이 많이 나가니까, 그러니까 직시급을 많이 쓰고. (삼호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
3) 임금 수준 및 임금 구성
가) 낮은 임금 수준
조선산업 사내하청노동자들의 임금 수준에 대한 정확한 자료는 얻을 수 없지만, 비슷한 경력의 원청업체 원청업체 정규직 노동자들과 비교하면 대략 60%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8)
같은 년수에서 치면 연봉은 정규직은 4천 넘고, 7-8백에서 심지어 돈 천만원 정도. 제 기능으로 따지면 저는 용접은 A급이거든요. 2천만원은 안되고 15-1600만원, 천만원이상 차이가 난다. 정확하게 직영들이 얼마 받아가는 줄 모르니까. (삼호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
이들의 임금 구조나 수준은 일당제, 시급제 등 임금 지급 체계에 따라 서로 다르고, 동일한 지급 체계 내에서도 개별 노동자마다 달리 책정되어 있다. 일당제는 시급제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임금을 받을 수 있지만 4대보험이 적용되지 않고, 시급제는 4대보험을 보장받을 수 있는 대신 임금 수준이 낮다. 직시급제는 시급제에 비하여 시간당 임금이 높지만, 고정 시급으로 적용되어 각종 수당이 없다. 따라서 어떤 방식으로 임금을 지급하건 기본 시급 이나 일당과 각종 수당 및 사회복지 등을 포함한 총 임금의 수준은 정규직 노동자보다 낮을 수밖에 없다. 이처럼 원청업체의 임금 억제 전략과 맥락을 같이 하는 총 임금 수준의 저하는 조선산업 사내하청노동자의 임금 구조에 있어서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경력에 따라 엄청 차이가 크고. 잘 받는 사람이 직영의 전체 평균보다 약 80프로 정도… 연봉 따지며는, 다른 조건 따져보면 차이가 엄청 큰데, 임금만 따지며는 80프로 정도. (현대중공업 정규직 노동자)
세금 떼고 월 120에서 130정도. 기본급 240시간×3800원에 수당200원, 일하는 시간은 밥시간빼고 10시간 야간때는 11시간(저녁에 출근), 잔업은 거의 다 한다. 안하면 돈이 안되니까… (대우조선 사내하청노동자)
시급의 경우 초임은 3,700원에서 6,000원까지 있고 고시급의 경우 한달 임금 수준은 잔업, 특근, 야간 노동까지 합해도 200만원 정도에 불과하다. 모 조선소 사내하청노동자는 한달 평균 320시간을 일하면 세금 전 월급으로 180만원 정도를 받는다고 한다. 이렇게 장시간 노동에도 불구하고 임금수준이 매우 낮기 때문에 시급제는 주로 미숙련 노동자나 여성 노동자들에게 적용된다.
저는 시급으로 임금을 받습니다. 1시간 당 5,500원인데 한달 240시간 기본으로 근무하면 기본급 126만원이 지급받습니다. 잔업을 할 경우 기본 시급에 350원이 추가됩니다. 그래서 임금을 많이 받기 위해 더 많이 일을 하려 합니다. 전체 총 평균 월급은 세금을 안떼고 180 만원 내외 정도 받는데, 이 경우 평균 320시간 정도 근무한 것으로 됩니다. (대우조선 사내하청노동자)
그러니까 시급 안하지. 근데, 시급을 하는 사람이 또 있어요. 시급은 짤릴 일이 없으니까. 시급은 맘대로 못자르잖아. 고용보험 들어가고 뭐 이러니까는… 뭐 아르바이트 쉽게 때릴 수 있는 이런 일들. 잡일, 솔직히 ‘선 땡겨라’ 이러면 선 땡길 수 있는 (수준의 사람들이 시급을 한다)… 시급 사천 얼마 이러믄 애들 눈 벌개져 가지고 오지. 걔네들은 스물 대여섯 살 하겠지. 아줌마들도, 아줌마들도 다 시급이지.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
나) 임금 수준의 개별화
하청노동자들의 임금이 갖는 또 한가지의 중요한 특징은 임금 수준의 개별화이다. 이들의 임금 수준은 일당, 시급, 직시급 등 임금 체계에 따라서도 다르지만, 동일한 임금 지급 체계 아래에서도 개별 노동자에 따라 임금 수준에 큰 차이를 보인다. 그 이유는 노동일 당, 노동시간 당 지급되는 금액이 사람마다 개별화되어있기 때문이다.
뭐 조금 그라인더 몇 년 했다 이러면 에이급이라고. 초짜는 십만 오천원이나 뭐 이정도 되고, 나머지는 뭐… 그것도 수당을 좀 더주는 사람이 있고… 저 같은 경우는 수당을 좀 더주고, 그걸 다른 사람들한테는 비밀리에 해놓은게, 제가 그만둘라고 하니까, 옆반에 한반장이 저 사람 그만두면 내가 인제 다른 사람 안받는다, 딴 회사 받겠다 이 지랄 하니까, 그러니까 수당을… 남들 하는 거 봐갖고 딱 못박았죠. 일일 수당이 아니고 이십 만원으로… 개인적으로 총무하고 협상을 한 거고.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
(임금 수준 설정 기준이 뭐예요? 개인이 그냥 업체에 직접 일대 일로 쇼부를 치는 거예요?) 예 그런 거예요. 보통 '얼마 정도 되야 일하지 안그러면 일 못한다' 그러면, '아 그정도는 못준다, 조금만 까라' 그러죠… 저도 그런 식으로 했고… (잘하는 사람들은) 그 사람들은 좀 받죠. 한달로는 똑같애, 한 이백 받는데. 근데 일당으로는 좀 받지, 한 십만원 정도 받지.근데 지금은 십만원 안 줄 거예요, 한 구만원 정도…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
다) 임금의 불안정성
하청노동자들의 임금 수준이 갖는 또 한가지의 중요한 특성은 임금의 불안정성이다. 생산량이 감소하거나 기후가 좋지 않아 작업이 원활치 못한 시기에는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으며, 이런 경우 월급과 달리 일당이나 시급은 당장의 수입을 급격히 감소시키게 된다. 따라서 조선산업 하청노동자들은 “적금 같은 것은 들 수도 없다”고 말할 만큼 불안정한 경제적 상태에 처하게 된다.
저는 한 200 정도(이번 달 수입). 요번 달엔 좀 맑았지만 저번 달에는 또 비가 와 갖고… 그렇게 일해서 삼십 일씩 했으면 뭐 떼돈벌게… 조금 벌면 월 백 사십. 많으면 한 이백 사십 나오고… (제일 문제는 인제 당장 다음달, 내년, 계획이 안나오는게 제일 문제겠네요.) 네. 그래 인제, 모르겠어요. 이게 이 일을 할지 아니며는… 이게 지금 장가도 가야 되는데, 갑갑하죠. 장가도 갈라 하니까, 이젠 또 경기가 안좋아가지고. 그래갖고 지금 뭐,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그니까 인제 혼자서 애만 태우는거지…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
라) 시간급 중심의 임금 구성
하청노동자들의 임금 구성은 기본 시급이나 일당에 연장근무에 대한 수당이 더해지는 정도이며, 상여금이 포함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나의 업체에 근무하는 고용 기간이 1년을 넘기 힘든 하청노동자들의 노동 조건 상 연차․월차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시급받는 사람들은 연월차 적용이 되는데 직시급이라던지 일당이라던지 그걸 받는 사람들은 연월차 적용이 안됩니다… 직시급을 받으면 퇴직금 이런 것들 제외가 되고 연월차도 없고 내가 받는 건 있는데 다른 혜택이란 거, 적용을 못 받는거죠. (삼호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
일당은 아예 이 월차라는 개념 자체가 적용이 안되는 거구요. 좋은 업체들은 수당하고 퇴직금 주는 경우도 있는데, 대부분 일당은 그런 거 없는 거로, 퇴직금도 포괄임금제로 일당에 다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데 뭐 노조 만들어지고, 요구하고, 요런 과정들 속에서… 이런 것들 요구하는 싸움들이 간간히 있죠. 근데… 오히려 돈안내고 좋다 이러는 사람도 있고, 그런 거 뭐하러 하냐 이러는 사람도 있고. 어차피 일당들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참 많았어요.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
퇴직금은 대개 1년 이상을 근무한 경우에만 지급되는데 대부분의 하청노동자들이 1년을 채우지 못하고 이직하기 때문에 실제로 퇴직금을 받을 수 있는 경우는 일부에 불과하며, 수차례의 이직에도 불과하고 퇴직금을 한번도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도 있다. 퇴직금이 지급된다고 하더라도 실제 근무 기간보다 축소하여 퇴직금을 산정하는 일도 있다.
대부분 업체에서 주는대로 받고. 그게 엉망으로 하는 건데, 실례로 우리 업체는 12월 31일까지만을 기준으로 퇴직금을 계산한다, 우리 업체는 3월 1일을 기준으로 해서 퇴직금을 준다 이렇게… 박아놓는 건데, 그렇게 해놓고 안 주지요, 나머지 달은.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
먼저 퇴직금 받은 사람들 보면 다들 불만이 많더라구요. 1년 딱 되며는 1년간의 그걸 지급을 해주고. 예를 들어서 1년 5개월 하다가 그만 뒀다 퇴직금 받으며는 딱 1년치, 고것만 주고… 월급 명세서를 보며는 총 지급액이 있고 갑근세, 주민세 떼잖아요, 그리고 실수령액이 있고. 요 실수령액에서만 딱 계산을 하는 거예요. 그리고 지원수당 5천원 이런 거는 다 빼고. 그리고 여기서는 퇴직금을 주면서도 세금을 또 뗀다는 거예요. 월차 쓴것도 다 뺀거예요.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
이와 같이 조선산업 사내하청노동자들의 임금 구조는 저임금과 개별화, 불안정성의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임금의 구성에 있어서도 연․월차나 상여금, 퇴직금 등의 혜택으로부터 구조적으로 배제되어 있거나, 형식적으로는 포함되더라도 실제로 하청업체 사업주에 의해 부당하게 축소되고 있는 실정이다.
4. 노동 시간 및 노동 강도
4.1. 노동 시간과 휴일
조선 하청노동자들은 살인적인 장시간 노동을 수행하고 있다. 이들의 하루 평균 노동시간은 최소한 10시간에서 물량이 많을 때는 평균 12~14시간에 이른다. 임금을 시급이나 일당으로 계산하기 때문에 월 노동시간을 기억해내기도 하는데, 많을 때는 380시간, 적을 때도 320시간 정도라고 한다. 이는 한달 30일 중 4번의 일요일을 제외하고 26일간 일한다고 칠 때 하루에 11시간에서 14시간 정도를 일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하루 평균 노동시간을 질문하였을 때와 일치하는 결과를 보여준다.
▽▽기업에 있을 때는 시간 지원 가갖고 평균 350시간씩 했는데 한달에, 어떨 때는 한 3백 7-8십시간, 평균 해가지고 350시간… 토요일은 다섯 시까지요. 전체적으로 특근 하는 날은 빠지면 안되니까.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
365일 중에 한 330일은 일했을거예요. 쉬는 날이 별로 없었어요. 거의 일요일날 일 있다 하면 거의 다했죠, 지금까지는. 울산 와가지고 쉬는 게 삼십일밖에 없었다니깐요 일년 동안.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
일이 많을 때는 오후 12시 넘을 때가 있고, 간혹 철야 작업을 해야하지만 업무량이 없을 때는 5시에 어쩔수 없이 가야 됩니다. 한달에서 3주 정도는 물량이 많은 편이고, 약 1주 정도는 물량이 작은 편입니다. 철야의 경우 약 한달에 한번정도 일을 하게됩니다. 철야의 경우 8시 출근해서 그 뒷날 아침 7시까지 근무합니다. 잔업을 할 경우 기본 시급에 350원이 추가됩니다. 그래서 임금을 많이 받기 위해 더 많이 일을 하려 합니다. 전체 총 평균 월급은 세금을 안떼고 180 만원 내외 정도 받는데, 이 경우 평균 320시간 정도 근무한 것으로 됩니다. (대우조선 사내하청노동자)
노동시간은 개인의 특성이나 업무 내용에 따라서는 별다른 차이가 없으며, 물량에 따라 요구되는 노동시간이 얼마나 긴가 짧은가에 의해 좌우된다. 따라서 장시간 노동은 여성 하청노동자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어느 하청노동자는 자신이 본 여성 하청노동자들도 한달에 300시간을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 하청노동자의 눈으로 볼 때도 가사 노동과 조선소 일을 병행하는 것에 대해 “감동했다”고 표현할 만큼 조선 사내하청 여성 노동자들은 고된 노동을 감내하고 있다.
아줌마들 되게 부지런해요. 난 그래 일하는 사람 못봤다. 남자들 일하는 거 두배. 아니, 두배는 좀 그렇고, 한 1.2배 정도. 남자들 담배피는 시간이 있고, 남자들은 좀 게으른데, 아줌마들은 부지런하고. 나 그 사람들 보고, 와아, 감동했다. 조선소에 아줌마들, 여기 도장부 아줌마들하고 일하는 거 보면 와아… 아침에 또 애들 밥주지, 아저씨들 밥 차려 주고 나오지, 같이 출근하는데. 와, 그래가지고 3백 시간씩 일하더라구. 3백 시간씩. 적어도 한 백오십 넘게 받을 거야. 돈 꽤 되잖아, 우리 돈으로.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
하청노동자의 장시간 노동이 개인적 조건을 불문하고 공통된 특징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것은 노동자 스스로 잔업을 할지 말지, 특근을 할지 말지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거의 없음을 뜻한다. 한마디로 물량이 많을 때는 쉬고 싶어도 쉴 수가 없고, 물량이 적을 때는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 없는 처지인 것이다. 또한 피치 못할 사정으로 월차를 쓰는 것조차 자유스럽지 못하며, 심지어 이에 대해 원청업체로부터 허가를 받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제가 지원반을 갔었거든요. 근데 제일 문제가 뭐냐하며는, 몸도 안좋고 이러면 전화해갖고 뭐… 용접사(정규직) 같으면 수시로 ‘아 나 몸살나가지고 오늘 못나간다’ 이러는데… 제가 만약에 월차를 가게 되며는 우리 업체에서 한 사람이 대신 지원을 가요. 그런데 제가 하는 것보다도 일을 반도 못하거든요, 그러니까 (원청업체에서) 월차 내는 거를 싫어하는 거죠. 월차를 내려면 그거는 업체에게다만 얘기하면 되는 건 아니구요. 저는 몸이 아파갖고는 한번도 못 내봤고, 쉬고 싶어도 못 내봤고, 제 개인적으로 시골에 볼일이 있거나 할 때는 토요일날 올라와서 일요일, 그… 월요일날 하루 냈었어요. 근데 그거를 되게 싫어하더라구요. 지금 월차는 여덟 번? 일년에.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
4.2. 노동강도 및 피로도
1) 피로도
이처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기 때문에 사내하청노동자들의 일상 생활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부분의 하청노동자들은 귀가 후 바로 곯아떨어지며, 가족들이나 친구들과의 일상적인 교류는 거의 가질 틈이 없다.
일과 후 거의 잠이죠. 일상생활이란 건 생각하기도 힘들고 마트가는 것, 시장가는 것도 힘들죠. 평균잡아 14시간 안으로 밤 12시, 11시까지 허다하게 새벽에 집에 들어가고 새벽에 다시 출근해야하니 일상생활은 꿈도 못 꾸죠… 잠밖에 안 잔다니까,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잠밖에 안 잔다니까… (삼호중공업사내하청노동자)
처음에 되게 힘들었어요. 한달 동안 출근해갖고 일하고 돌아와서 자는 게 일이었어요, 저녁 먹고. 한달 동안은 맨날 퇴근하면 얼굴이 붉어져 있었어요, 상기되 가지고. 본래 제가 잠도 많고 게으른데, 하여간 한달동안 거의 아무 것도 못했던 것 같아요, 자고 출근하고, 자고 출근하고. (현대중공업사내하청노동자)
2) 최대 작업량
서로 다른 업무에 종사하고 있는 하청노동자들의 노동강도를 정확히 측정할 수는 없기 때문에 노동자 개인이 느끼는 작업량의 수준에 대하여 질문하여 노동강도의 수준을 간접적으로 조사하였다. 먼저 ‘최대 작업량’, 즉 현재 하고 있는 작업량을 100이라고 보았을 때 최대한 얼마나 더 일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지를 작업할 수 있는지를 조사하였다.
이에 대하여 하청노동자들은 ‘더이상 노동강도를 올리면 죽을 수밖에 없다’는 극단적인 반응을 보인다. 이들은 술을 끊기도 하고, 동료나 친구들과의 만남을 일부러 피하기도 한다. 조금이라도 더 쉬어야지만 다음 날의 노동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하는 것만 해도 솔직히 거의 반죽음이라고 봐야 돼요. 마치면 잠밖에 안자는데...더 올라가면 니 나가 죽으라는거죠. 저는 술을 안합니다. 왜 술을 안하냐면, 다음날 출근하지 못할까봐. 힘이 드니까,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솔직히 술을 끊었습니다. 다음날 출근하기 위해서… (삼호중공업사내하청노동자)
지금 최선을 다해 우리가 쏟을 수 있는 내가 할 수 있는 양은 다하고 있거든요. 지금 현재 여기서 1%라도 더 올라가면 다 죽습니다. (삼호중공업사내하청노동자)
3) 적정 작업량
하청노동자들이 조금이라도 노동강도가 증가하면 몸이 견딜 수 없을 것이라고 느끼고 있기 때문에 몸이 이만큼 피곤하지 않고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이 되려면 현재의 노동강도를 얼마나 낮추어야 하는지, 즉 적정 작업량이 어느 정도인지를 물었다. 응답 내용 상으로는 최소 20%에서 최고 50% 정도를 낮추어야 건강을 상하지 않고 일을 계속 할 수 있을 것으로 나타났다.
4) 사회적 작업량
‘사회적 작업량’이란 노동자가 신체적 피로를 간신히 면할 수준이 아니라 가족이나 친지들과의 사회적 관계를 원만히 가질 수 있을 만큼의 작업량을 뜻한다. 이를 위해 얼마나 노동강도를 낮추어야 하는지를 물었을 때 조선 하청노동자들은 현재 노동강도보다 약 40-60% 정도를 낮추어야 한다고 응답하였다.
5. 고용과 임금조건에 의한 노동강도 강화
조선산업 사내하청노동자들이 개인적인 취미나 가족․친지와의 인간 관계도 포기하고 고강도의 노동을 견디어낼 수밖에 없는 까닭은, 다름 아니라 그들의 고용과 임금 구조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첫째, 시급․일당 형태의 임금 지급 체계 속에서 장시간 노동을 통한 노동강도 강화는 필연적이다. 시급․일당 체계는 오래 일하면 일할수록 임금이 많아지기 때문에 노동자 스스로 장시간 노동을 택하도록 유도한다.
철야근무하는 사람은 그 다음날 12시까지 근무할 경우 유급이 되기 때문에… 정규직의 경우 탑재부서에 극히 일부 철야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다음날 근무하지 않더라도 OT를 8시간 달아줍니다. 하지만 우리는 OT를 안달아 주기 때문에 임금보전을 위해 무리해서라도 철야하고 그 다음날 낮 12시까지 근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대우조선 사내하청노동자)
2월달에는 제가 풀로, 한번도 안쉬고 일했어요, 매일 8시까지, 토요일은 6시까지, 그리고 일요일은 혼자 나와서 근무하고… 그때는 일도 많았고, 제가 또 돈을 많이 벌려고 그랬는데, 그때 그 이후로는 그렇게까지 일하지는 않았지요. (현대중공업사내하청노동자)
둘째, 만성적인 고용과 임금의 불안정성은 일할 수 있을 때 최대한 돈을 벌어두어야만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든다. 당장 다음달에 얼마의 수입을 벌어들일 수 있을지 예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한달에 300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을 해서라도 최대한의 수입을 확보해 두어야만 하는 것이다.
일요일에 일하는 이유가, 예를 들어 비오면 일 못하고, 뭐 물량 띠게되면 일 모하고 이래 되니까 실제는 일 있을 때 그걸 좀 해놓아야 돼. 그래야 그걸 위해서 일요일도 일을 하는 것 같애 가만 보니까는. 일을 계-속 있으면 일요일날 안나가지. 자기도 몸뚱이가 피곤하고 이러니까 쉬었다 하고 이러는데. 그런 걸 대비를 하는 것 같드라구. 내가 인제 딱 보면 전부다 그런 식으로 일하더라고. 일이 힘들어도 첨에는 계속 하는거야… (현대중공업사내하청노동자)
셋째, 정규 노동시간만으로는 생활을 영위하기 어려울 정도의 저임금 구조 때문에 노동강도는 더욱 강화된다. 물량이 아무리 풍족한 시기라 하더라도 극소수의 최고 숙련공을 제외한 대다수의 하청노동자들은 하루 12-14시간씩 한달을 꼬박 일해도 한달에 3백만원 이상을 벌기 어렵다. 게다가 이들의 임금 지급 체계에는 노동시간에 비례한 시급이나 일당 이외에 각종 수당 등 임금을 보전할 다른 통로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일단 다른 수당 같은 게 없으니까 돈을 자기 한달 들어가는 생활비에 맞추어 가려면 자연적으로 일을 많이 할 수 밖에. 시간외 일을 많이 해야 만이 임금을 보전할 수 있으니까. 노동시간이 길죠, 강도도 강도지만… (삼호중공업사내하청노동자)
넷째, 하청노동자들은 고용 상태가 불안정한 동시에, 취업이나 임금 수준의 결정 등에 있어서 원․하청업체 사업주와 대단히 불평등한 관계에 놓여 있다. 고용 계약이나 임금 결정 과정은 거의 전적으로 사업주에 의해 이루어지며 해고로부터 하청노동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장치가 전무하기 때문에, 하청노동자들이 불안정한 고용이나마 유지하기 위해서는 사업주가 요구하는 장시간 고강도의 노동을 싫더라도 따를 수밖에 없다.
일요일도 없다니까. 특근이죠. 일요일 쉬고 싶은데, 회사에서 출근하라니까, 솔직히 한달 일요일 4번 다 쉬면 짤린다니까요. (삼호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
다섯째, 사업주의 임의대로 임금을 결정하는 임금 구조 속에서 때로는 하청노동자 스스로 노동강도를 높이도록 유인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물량이 많아 시간에 쫓기는 시기에는 일을 빨리 끝낼수록 근무 시간을 올려서 계산해 줌으로써 보다 짧은 시간에 주어진 물량을 완수하도록 유도하게 되는 것이다.
아, 수고했다 이러고 달아주는게 있잖아 보통. 한 여덟 시까지 일하고 열 시까지 달아주고. 그런 게 있지. 빨리 끝내고 가라 이 말이지… 근데 사람이 그러면 일이 능률이 더 올라, 솔직히. 요 노가다는. 그러니까 야리끼리 하며는… 오전에 빠짝 점심도 안먹고 1시까지 빠짝 하며는 다 되거든. 그럼 그게 훨씬 좋지. (현대중공업사내하청노동자)
작업은 시키죠. 일을 안 시키진 않아. 안시키진 않는데. 그니까 시키는데, 또 자기가 그만큼 하려고 해야 된다고, 그런 데 일은. 일을 안해버리면 돈이 안되는게 보여 이게. 노가다라는게 나도 해보니까, 솔직히 말해서 중공업 같은 데는 천천히 일해도 되잖아요. 근데 저런 데는, 자기가 만약에 물량을 따가지고 그걸 못하며는 사장이 또 자빠지는게 뻔하고. 또 사장이 자빠지면, 그런 데 일하는 사람들은 또 사장이랑 아는 사람들이거든요. 그러니까 사장이 망하는 꼴은 또 보기 싫어하고. 망하면 또 자기한테 돈도 안 올거고. 잘되면 또 붙어 올 수도 있으니까. 자발적으로 하니까 더 힘들지… 여기는 반장이 가만히 이러고 있는데, 거기는 반장이 서둘러 버리니까. 서둘러 버리며는 자연히 다 밑에 사람은 자동으로 빨라지고. (현대중공업사내하청노동자)
위의 내용을 정리하면, 조선 하청노동자들의 불안정․불평등한 고용 조건과 불안정하고도 낮은 수준의 임금을 시간급으로 지급하는 임금 조건이 이들의 노동강도를 강화시키며, 하청노동자들의 임금 조건은 다시 그들의 고용조건에 의해 재생산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고용조건, 임금조건에 의한 노동강도 강화 기전
5. 복지와 차별
조선 하청노동자들은 고용보험, 산재보험, 국민연금, 건강보험 등 이른바 4대 사회보험의 혜택으로부터 구조적으로 배제되어있으며, 임금이나 노동조건 이외에도 각종 기업복지에 있어서 정규직에 대한 상대적인 차별을 겪고 있다.
5.1. 사회보장 (4대보험)
사내하청노동자들은 고용 형태와 임금 조건에 따라 이른바 4대 보험의 혜택을 서로 다르게 적용받고 있다.
고용 형태 면에서 비공식 하청에 해당하는 노동자들은 정식으로 근로계약을 맺지 않고 있기 때문에 4대보험으로부터 완전히 배제된다. 공식적으로 고용된 인력으로 파악되지 않기 때문에 고용보험, 국민연금은 물론 건강보험에 대한 사업주의 책임이 전혀 없다. 비공식 하청노동자들은 존재 자체가 비공식적이기 때문에 조선소 출입증조차 허위 출입증을 사용하기 때문에, 만약 노동과정에서 재해를 당하더라도 산업재해보상을 받을 수 없다.
임금 지급 체계에서는 앞서 언급한 대로 일당제 노동자들은 4대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며, 시급제 노동자들은 적어도 형식적으로나마 4대보험 혜택을 보장받는다. 그런데 시급제 노동자들을 만나 면접조사를 한 결과, 노동자 스스로 요구하지 않는 한 하청업체에서는 대개 4대보험을 적용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당수의 시급제 노동자들은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여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회복지 혜택으로부터 소외되고 있었다.
시급의 경우는 (업체의) 비율로 따지면 4대보험에 가입한 경우가 더 많은데… 실제 사람 수로 따지면 비율이 어떻게 될지는 또 모르겠는데… 의료보험만 따로 들고 이런 경우가 인제는 없잖아요. 다 같이 들어야 되는데. 저희 같은 경우는… 산재보험에 가입시켜달라 이렇게 요구하면 다 가입시켜주었는데, 그 비율이 10프로를 넘지 않았어요. 시급업체같은 경우도, 요구하면 가입시켜주는 이런 경우가 있었지요. 몰라서 요구를 안하고 있는 건지… (현대중공업사내하청노동자)
또한 조선 하청노동자들의 짧은 고용 주기 때문에 사회보장의 혜택에서 배제되는 경우도 있다. 하청업체에서 노동자를 고용한 후 일정 기간이 지난 뒤에 가입하기 때문에, 정작 가입하게 된 직후 다시 실업 상태로 돌아가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4대보험도 가입이. 근데 이게 바로 되자마자 되는게 아니라, 2개월 3개월 정도 있다가. 이직률도 있고 그러니까 이 새끼들이 일부러 그렇게. 저도 예전에 시급제로 있을 때 12월달에 들어갔는데 제가 4대보험 나오는게 3월달부터, 아, 4월달부터 나왔구나. (현대중공업사내하청노동자)
더욱 심각한 것은 4대보험 혜택을 받을 권리를 알고 있는 노동자들조차 고용 조건이나 임금 조건 때문에 스스로 권리를 포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의 고질적인 저임금과 고용불안이 사회보장 혜택으로부터 스스로를 소외시키는 구조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시급제는 4대 보험 자동으로 다 되고… 일당은 한마디로 들고 싶으면 들고 이거야. 그러니까. 산재 보험만 되고… 그리고 또 시급하려니까 돈 떼고 이러니까 안해, 사람들이… (국민연금은) 사람들이 안 들어갈라고 그러지. 그게 한 십 몇 만원 띠어 버리니까. 사람들 한 십 몇 만원 띠더라고… 지금 시급으로 보면 2만 얼마… 적은 월급에 아깝더라구요. (현대중공업사내하청노동자)
제가 보험은 가입 안했어요. 국민연금이 너무 많이 떼더라구요. 근데 의료보험을 하게 되며는 국민연금도 같이 내야 되더라구요. 그래서 지역으로… 지금 먹기 살기 힘든데 국민연금까지 낼 순 없고, 너무 많이 떼더라고… 그렇게들 많이 해요. 우리는 일당직이다 보니까. (현대중공업사내하청노동자)
5.2. 기업 복지 및 편의
사내하청노동자들은 각종 기업 복지 및 편의의 측면에서도 소외되어 있다. 우선 하청노동자들이 가장 흔하게 느끼는 문제는 각종 소모품 및 안전장구의 지급에 관련된 것이다. 이들에게도 작업복을 비롯하여 각종 안전보호구를 지급하는데, 품질이 낮거나 심지어 남이 쓰던 것을 다시 지급하기도 한다. 동일한 제품을 지급한다고 하더라도 수량이 모자라서 자비를 들여 따로 구입을 하거나, 정규직에게 얻어 쓰는 실정이다.
복지부분에서 차이가 많이 나죠, 외주 같은 경우 아예 하나도 없으니까. 장갑 같은 것은 소모품, 우리가 타는 소모품이란 거든지… 복지부분은 직영들하고 차이가 납니다. 안전화 같은 경우 외주는 싼 것 신고 직영들 같은 경우에는 비싸고 발이 굉장이 편한 거 신죠. 난 외주에서 주는 것 안전화 안 신잖아, 사서 신잖아요, 발이 안편해서. (삼호중공업사내하청노동자)
비정규직으로 일하면서 힘든점은 눈에 보이게 그런건 없는데 일하는거 자체는 똑같은데 장래성이 없어서. 물품받을때도 주긴 주는데 눈치 보인다. (대우조선 사내하청노동자)
식당, 통근버스, 샤워실, 탈의실, 사물함, 휴게실, 화장실 등 사업장 내 각종 편의 시설을 원청업체 정규직 노동자와 따로 사용해야하거나, 함께 사용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눈치가 보여서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는 일도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샤워장 한번 쓰는 것도 솔직히 정규직 자기들은 락커에 다두고서 정규직은 다해 놓고 써도 비정규직은 샤워 한번...조선소노동자가 얼마나 더럽습니까. 시커먼데 들어가서 용접하고 나면 흄하고 분진하고 온갖 것이 다 묻어 일하고 나면 전신이 시커멓죠. 그래도 대충 닦고 집으로 가죠. 어디 자기 수건이랑 놓고 쓰겠습니까? (삼호중공업사내하청노동자)
불만있죠. 보너스라던가 모든 것에 대해, 많은 게 있죠... 작업복이야 없으면 내가 사 입으면 되는데 그게 속편한데 작업복 질이 틀리더라구요… 외주업체 주차장은 밖에 직영주차장은 안에 있고 ...비정규직은 2-3km 걸어 들어가야 하고 밥 먹을 때도 그렇고 직영은 본사 건물 바로 뒤에 있고...주차권도 직영 따로 외주 따로 있다니까요. (삼호중공업사내하청노동자)
옆에 있는 ◇◇회사 같은 경우 비정규직하고 정규직하고 차이가 엄청나요. 심지어 통근버스를 타도 직영은 지정석이 있어서 외주업체가 먼저 탔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자리가 비어있어 앉아 있으면 그 자기 이름 써 있다고 일어나라면 일어나야 되는 인간적 차별이 심한데… (삼호중공업사내하청노동자)
5.3. 정규직과의 관계와 차별
1) 정규직과의 관계
사내하청노동자들은 조선소 안에서 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일하면서 수평적인 동료 관계를 맺지 못한다. 이들의 관계는 크게 수직적 명령 관계, 단절적 관계, 고립-배제적 관계로 정리된다.
가) 수직적 명령 관계
하청업체가 도급받아 수행하는 업무는 원청업체 정규직 노동자에 의해 관리 감독된다. 이런 경우 정규직 노동자와 하청노동자는 수직적 명령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 또한 하청업체가 독립된 업무를 도급받아 수행하지 않고 인력이 부족한 원청업체 부서에 하청노동자 1, 2명을 ‘지원’보내는 경우에는 직접 원청업체 정규직 노동자로부터 업무를 지시받고 관리된다.
어른들은 지원 같은 거 안가려고 그러고. 인제, 자기가 맨 밑에서 일하고 이러면… 지원갈 바에야 내가 딴 데 가지 뭐. 그 사람들이 시키는대로 내가 뭐 뒤쫓아서 일할까 이러고… 조선 같은 경우에는 작업을 반장을 통해서 지시가 내려가는데, 거기 같은 경우는 같은 동룐데, 정규직들이 보통… (그래서 사람들 이야기가, 정규직이 마치 관리자인 양 이런다고. 이런 게 외업에서 많지) 그렇지, 맞어 맞어. (현대중공업사내하청노동자)
갈등이 심합니다. 특히 직영관리자 또는 기정이나 직, 반장이 정규직이 일을 할 때는 뭐라고 안하는데, 비정규직이 일을 하면 흠을 잡습니다. (대우조선 사내하청노동자)
나) 단절적 관계
앞의 경우와 달리 하청노동자가 독립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경우에는 원청업체 노동자와 하청노동자가 함께 작업하지 않기 때문에 서로 접촉할 일이 별로 없다. 이런 경우 하청노동자에 대한 업무의 지시와 관리 감독은 하청업체의 관리자나 해당 작업 팀의 반장이 수행한다.
작업장에서 정규직하고 맞닥들여 작업을 같이 안하니까요. 자기 파트는 자기가 하고 우리 파트는 우리가 하고, 작업장에서 갈등생기고 그런 건 없습니다. 정규직하고. (삼호중공업사내하청노동자)
다) 고립-배제적 관계
‘지원’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업무의 특성상 원청업체의 한 부서에 하청노동자 1,2명이 들어가서 일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하청노동자는 다른 정규직 노동자들 사이에서 고립감을 느끼며, 작업장 안에서의 동료 관계를 원활하게 맺지 못한다. 다음은 어느 사상공 하청노동자와의 면접조사 내용이다. 하청노동자 본인은 물론 같은 부서에서 일하고 있는 원청업체 정규직 노동자도, 작업 과정에서 하청노동자에 대해 배려하지 않고 있어 사회적으로 고립된 채 작업을 하고 있다.
용접만 끝내면 사상같은 건 신경을 안 써요 이놈들(정규직 노동자들)이. 그러니까 용접만 끝나면 덮을 건 덮어버리고 그러지… 그러니까 용접 다 끝나면 (하청 사상공이) 들어가서 일하기가 어렵지요… (그라인더를 하다가 불똥이 튀면) 또 걔들이 신경질을 내. 사실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 걔들이 잠깐 피해 있으면 되는데, 일이 하다보면 바람도 가고 이러는데 신경질을 내는 경우도 있고. (삼호중공업사내하청노동자)
2) 정규직과의 차별
사내하청노동자들이 정규직 노동자에 비해 차별받는다고 가장 많이 느끼는 부분은 노동강도와 임금이다. 이들은 정규직보다 힘든 일, 정규직이 기피하는 일을 하면서도 더 낮은 임금을 받는다는 것에 대해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낀다.
정규직은 업무량이 일정한 편이지만, 우리는 일정하지 않습니다. 업무량이 많을때는 쉬는 시간도 없이 근무해야 하고, 물량이 없으면 내가 일을 하고 싶어도 일이 없어 하지 못합니다. 차이가 많습니다. 철야라든지, 특근 횟수와 시간이 많습니다. 그리고 물량에 따라 변동이 심합니다. 노동강도가 더 강합니다. 정규직이 기피하는 일을 합니다. 특히 직영의 경우 근골격계가 다발하는 작업은 거의 전부 업체로 넘어 옵니다. (대우조선 사내하청노동자)
또한 정규직 노동자들은 ‘편하게 일하면서’ 각종 수당이나 기업 복지, 정규직 노동조합을 통해 회사로부터 얻어낸 각종 혜택 들을 받고 있다는 점에 대해 부러움과 경멸감의 양가감정을 표현한다.
정규직은 정말 편하죠. 우리가 봤을 때 자기가 발톱이 약간 부딪혀 깨져 아픈거하고 어떤 놈은 쇠에 바쳐 머리가 찢어진 것하고 누가 더 아프겠어요? (삼호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
직영하고는 다르지요. 우리는 하루 벌어갖고 하루 먹고사는 게 맞고. 근데 직영들은 갈수록 호봉도 오르고 그러니까 희망도 있지마는. 우리는 단순히 노동해도 그거 대가도 못받으니까. 그것도 있고. 직영들, 사실 어쩔 때는 부러울 때도 있고, 어쩔 때는 한심할 때도 있고. 자기들 부서에 책임감이, 너무 없더라고. 어떻게 하면 좀 편해갖고 하루 때워갖고 갈까 이런 생각이더라고. 예를 들면, 연장을 하나 들고 실제로 작업하려면 한시간이면 될 걸, 오전 내내. 이건 뭐 무슨 짓을 하나.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
산업재해를 당한 한 하청노동자는 회사에서 정규직 산재 환자에 대해 보조해주는 각종 혜택들을 받지 못할 뿐 아니라 인간적으로 관심을 가져주지도 않는 현실에 대한 분노와 ‘난 인간도 아닌가’라는 자괴감을 토로한다. 또 다른 하청노동자는 같은 부서에서 일하는 정규직 노동자들로부터 고립-배제되는 자신의 처지에 대해 ‘우리가 사람 대접 받나’하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내 현재 산재지만 제가 지금 정규직과 같은 산재인데도 정규직은 보너스다 다 있지만 난 하나도 없어. 그것만 해도 연봉이 천만원이나 차이가 날걸요. 내가 산재당하고 몸이 어떤지 회사에서 전화 한통 없어. 회사에서는 이제 저 사람은 그만뒀을꺼라 생각했을걸요. 왜 없는 놈이나 마찬가지니까. 설날 선물하나 나오나 안나온다고, 안부 전화 한번 오나. 우리 와이프가 그런다고 이번에 어디는 옥매트 나온다는데 부러워 죽는다고 옥매트는커녕 단 10원도 안나오니까. 난 산재 받으며 인간도 아닌가 생각들대. 하청이니까… (삼호중공업사내하청노동자)
사상 그라인더를 할 시간을 안주니까. 용접 끝나며는 이게 작업 다 끝났다고 간주를 하거든요. 그게 우리 사상하는 사람들끼리 모이면, 우리가 사람 대접 받나, 그런 얘기 해요. 우리 이 기술이라고 인정 받나, 용접이 기술이지, 이런 식이거든. (현대중공업사내하청노동자)
3) 차별의 이유
하청노동자가 원청업체 정규직 노동자에 비하여 차별받는 이유는 하청이라는 그들의 고용 조건 자체에서 찾을 수 있다. 몇가지 예외적인 경우만 제외하면 업무의 내용도 동일하고 숙련도에 있어서도 큰 차이가 없는데 단지 하청이유로 임금과 각종 복지, 인간적인 관계에서 차별을 받고 있다는 것이 면접 조사에 응한 응답자들의 공통된 견해였다.
아까 ‘일당바리’ 같은 경우에는 굉장히 일을 잘 하시는 분들이거든요. 일, 업무에 그런 것은 아니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고용에 의해서… 일의 숙련도 전혀 상관없이 그렇게 어찌 보면 극복할 수 없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우리 회사로 본다면 극복할 수 없는 문제, 고용적인 요소 때문이라 봅니다. (삼호중공업사내하청노동자)
아 진짜 기술은요, 요 직영보다 훨씬 좋아요… 다른 사람들, 직영들 같은 경우에는, 이거 안 맞다, 이거 바꿔와야된다, 뭐 뭐 들어올 때 이게 물건이 안맞았기 때문에 바꿔와야된다 이러지만, 그 사람은 그대로 만들어서 해버리거든. 일 잘해요. 확실히 틀리더라구 일하는게. (현대중공업사내하청노동자)
하청노동자들 중에는 ‘노동조합이 없기 때문에’ 차별이 더욱 악화된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서 하청노동자는 산업재해를 당하더라도 어떤 방법으로 보상을 청구할 수 있는지 문의를 할 곳도, 산재 승인을 받았다는 이유로 부당해고를 당하지 않도록 방어해 줄 곳도 없기 때문에 산업재해가 은폐될 수밖에 없다.
노동조합을 만드는게 가장 빠른 것 같아요…이 모든 문제는 차별 받는게 힘이 없어서 그런다고 생각하거든요. 모르는 사람도 많고… 나같이 몰라서… (산업재해를 당했는데 치료비로 회사에서) 250만원 받고 (자기 돈으로) 600만원 꼬라박는 사람들 많습니다… 사업주에게 요구를 해야 하는데 지금 같은 경우 요구를 하고 싶어도 니 나가라면 나가야 하니까. (삼호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
한편 숙련도가 낮은 하청노동자들은 비핵심적인 단순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것 역시 하청노동자들의 고용 조건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고 할 수 있다. 하청노동자들의 불안정한 고용 조건과 잦은 이직이 이들의 숙련을 더디게 하며, 자아 실현이나 발전에 대한 전망을 도저히 가질 수 없는 저임금과 고강도 노동 조건 속에서 이들은 조선산업 노동시장으로부터 하루 빨리 빠져나가기만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조선산업 노동자로서 필요한 기술을 익히고자 하는 동기 부여가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숙련도; 우리가 조금 떨어집니다. 우리는 옮겨다녀야 하지만, 직영은 동일한 일을 오래동안 하므로 숙련도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는 오래 있겠다고 일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필요 없으면 퇴출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일을 시킬 때 배려와 관심이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기계로 치면 부품정도로 생각하는데서 차별이 발생한다고 생각합니다. (대우조선 사내하청노동자)
6. 안전보건환경
6.1. 고위험작업에 배치
앞서 사내하청업체의 분포에서도 확인하였다시피, 하청노동자들은 주로 노동강도가 높거나, 산재 발생 위험이 높아 정규직이 꺼리는 업무에 배치되고 있다. 기피 부서의 업무를 완전히 하청노동자로 대체한 경우도 있다. 과거 선진공업국가들에서 환경 오염이나 직업병으로 문제가 되었던 공장들을 없애지 않고 제3세계 국가들로 이전시켰던 것과 마찬가지로, 조선산업의 사업주들도 재해나 직업병이 다발하는 업무의 환경을 개선하는 것보다는 취약한 하청노동자들에게로 이전시켜온 것이다.
탑재파트는 정규직이 없습니다. 조선소에서 제일 힘든데가 탑재기 때문에 정규직이 없습니다. 정규직이 있긴 있는데 지원하는 신호수들하고 선체 셋팅하고 레벨 보고하는 정도체크하는 사람들하고 배관 쪽에는 있고 자동으로 용접하는 곳 그건 직영들이 다하고 나머지는 외주가 다 합니다. (삼호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
산재가 많이 일어나는 부서가 있지 않습니까? 노동강도가 좀 심하다 이런 데는 특히 회사에서 정규직으로 갔다가 나름대로 정규직과 비정규직, 회사마다 현실적으로 차이가 있더라고요. 조합원 같은 경우도 당연히 산재가 되어야 할 부분도 안되는데 비정규직 같은 경우 오죽 하겠습니까. 그래서 산재빈도가 높고 힘든 부분은 비정규직으로 거의 대체하고 있습니다. (삼호중공업사내하청노동자)
한 부서 내에 같은 직종의 정규직 노동자와 하청노동자가 함께 있는 경우에도 이들의 작업은 동일하지 않다. 하청노동자들은 작업 자세나 조명, 소음, 분진 등 작업 환경이 좋지 않은 곳의 업무를 하도록 지시받는다.
그라인더는 직영 중에도 있어요. 직영 같은 경우는 대개 외판 작업들을 하고, 하청이 탱크 작업을 하고… 탱크작업은 안에 들어가서 막혀 있으니까, 거의 뭐 분진 때문이건 안보여서 힘들고… 요 그라인더 작업은… 분진이 상당하죠. 탱크같은 경우는 그래서 작업하기도 어려울뿐더러, 환경이 안 좋기 때문에 아무래도 좀 하청이 투입되고.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
6.2. 산업재해의 경험과 그 영향
재해, 질병으로 인한 건강 훼손은 하청노동자들에게 있어 곧 해고와 재취업의 장애물을 뜻한다. 여기에는 원청이 하청에 대해 무소불위의 통제권을 가지고 있는 원-하청 구조가 큰 영향을 준다.
조선업종의 하청업체는 노동자의 채용과 해고, 작업 과정과 산재 등에 이르기까지 거의 전면적인 원청의 관리감독을 받는다. 하청업체에서 산재가 발생한 사실이 알려지면 원청으로부터 계약에 불이익을 받거나, 이를 우려하여 업체가 자의반 타의반으로 폐업을 하기도 한다. 모 조선소의 경우에는 각 하청업체들을 원청 부서 하부 단위로 편재하여 하청에서 산재 발생시 해당 부서의 평점을 깎는 방식을 도입하기도 하였다.
올 5월달에 ○○팀에 지원나가는 업체들 중 하나가 넘어져서 골절상을 당했나봐요. 이 사람이 사장을 통하지 않고 근로복지공단을 통해서 산재 요청을 하고, 승인이 돼서 산재 처리가 된걸 늦게 알았어요. 직영(원청업체)에서 늦게 알아서, 이 (직영) 부서에서 그 사실을 알자마자 그 팀에 들어와있던 그 (하청)업체 모든 지원인력을 철수시켜버렸어요.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
따라서 재해나 질병을 당한 노동자는 원청 관리자나 하청업체 사업주는 물론, 동료 하청노동자들로부터도 산재 처리를 하지 말고 공상 처리하거나 개인적으로 치료하라는 압박을 받게 된다. 또한 조선업종 내에는 ‘산재 환자 블랙 리스트’가 있어서, 산재를 당한 사람은 다른 어떤 조선소에도 취직하지 못한다는 소문이 파다하여 본인 스스로 산재 처리를 기피하기도 한다.
본 연구의 과정에서 개별 심층 면접 조사를 위하여 산재 보상의 경험을 갖고 있는 하청노동자를 찾는 일은 매우 어려웠다. 면접 조사 대상자들 중 직접 크고 작은 재해를 경험한 적이 있더라도 산업재해 보상을 청구해본 경험은 거의 없었고, 단 1명만이 조사 당시 산재 요양 과정 중에 있었을 뿐이었다. 이는 사망 및 이에 준하는 중대 재해가 아니면 산재보상 청구조차 하지 못하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면접 조사를 통하여 산재보상 청구를 시도하였다가 독특한 사유로 실패한 사례를 들을 수 있었다. 업무상 재해로 골절상을 입은 하청노동자가 산재보상 청구를 하기 위하여 서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고용관계 자체가 부정되어 산재처리를 포기한 사례이다. 이 노동자는 채용시 건강 진단 상 ‘색약’으로 판정을 받은 뒤 하청업체에 고용되었는데, 산재보상 청구를 시도하자 하청 사업주가 채용시 건강 진단 상 이상이 있기 때문에 고용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고9) 고용관계를 부정함으로써 결국 산재처리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작년에 우리 업체서 같이 일하는 동생이 탑재에서 사다리 타고 올라오다가 떨어져 팔목이 나가서 산재처리 하려니까 서류 안 넣었다고… 서류를 넣어야 하는데 건강진단에서 색약인가가 돼서 이 사람은 업체에서 쓰면 안된다해서, 업체에 필요해 썼는데 산재처리 못하고 공상처리했습니다. (삼호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
한편 일명 ‘물량떼기’ ‘야리끼리’ 등으로 불리는 비공식 하청노동자들의 경우, 일반적인 하청업체 소속보다 높은 임금을 받지만, 직영 노동자들보다 더 빠르고 더 값싸게 일을 마친다는 조건 하에 일하기 때문에 노동강도가 높다. 또한 정식 계약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노동력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하다가 재해를 당하거나 심지어 목숨을 잃더라도 아예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당연히 산재 보상은 커녕 공상 처리조차 힘들다.
7. 고용조건-임금조건에 의한 노동자 건강권 악화
7.1. 노동강도의 극대화
조선산업 사내하청노동자들은 일상적인 고용불안에 처해 있다. 따라서 ‘짤리지’ 않으려면 아무리 무리한 작업량이라 해도 무조건 달성해야 하며, 일할 수 있을 때 최대한 많이 벌어놓아야 한다. 시급․일당제의 임금 구조 속에서 최대한 많이 벌기 위해서는 장시간 노동을 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조건은 노동강도의 극대화로 이어져 근골격계 질환 등의 직업병과 각종 재해 및 사고를 증가시킨다.
어떻게 하면 시간 많이 하느냐, 힘들더라도 많이 하려고… 부지런히 하면 한 삼백정도 버니까. 그 정도 하면 몸이 곯죠. 곯고 아프고. 대부분 부황기계를 들여요. 아니면 맨날 약으로 살죠. 보약 사서. 목욕탕가서 보면 등에 부황자국있고, 맨날 파스냄새 나고, 침맞고. 그 정도로 견디다가 정말 몸이 못견디면 그래도 또 쉬더라도. 일 많을 때는 아픈 사람도 꾸역꾸역 나와가지고 일시키고.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
7.2. 위험요인에 장시간 폭로
유기용제, 분진, 소음 등 노동 과정 상의 유해 요인들은 하루에 폭로되는 시간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하청노동자들은 주로 물량이 많은 시기에 집중적으로 투입되는데다가 저임금과 고용불안 때문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장시간 고강도 노동을 하는 경향이 있어 유해 요인에 집중적으로 폭로될 위험이 크다.
일을 하다 보며는 마음이 급해지고 하니까 냄새가 나도 참고 해요. 그리고 구석진 데 들어가서 하다 보면 (필터) 바꿔끼고 그럴 여유가 없으니까. 그러고 나중에 나오면 온 몸이 서늘해요. 몸이 하도 서늘해서 반장한테 물어봤더니. 그런 거 한두번 겪어 봐야된다고 그러더라구요… 머리 현기증 날 정도로 일하고 나서 집에 가서 오줌 누면, 아, 그거 냄새가 너무 독해요.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
7.3. 노동 3권의 부재 및 법․제도적 배제
하청노동자는 산업안전보건법 및 관련 제도를 통해 안전보건 기본권을 보장받기 어렵다. 우선, 사업장 이동이 잦기 때문에 산안법에 따른 작업환경측정, 건강진단의 주기가 돌아오기 전에 이동하는 경우가 많아 하청노동자를 포괄하기가 힘들다. 설령 평가에 포괄된다고 하더라도 질병이나 재해로 건강이 나빠진 노동자들이 이미 퇴출되고 건강한 노동자들만이 남아있기 때문에(이것을 일명 ‘건강 노동자 효과’(healthy worker effect)라고 한다) 건강진단을 통해 하청노동자들의 안전보건문제를 제대로 파악하기조차 쉽지 않다. 또한 노동조합 등 조직적인 힘이 없기 때문에 작업환경측정이나 건강진단이 제대로 이루어지는지를 감시하고 개입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사람들이 (특수건강진단을) 다 받으면서도 이상 나오는 걸 한번도 못봤대요. 유기용제 중독 한번도 안나왔고… 피는 아침에 일하기 전에, 8시쯤 와서 빼가지요. 오줌도 그때 받구요.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
사업장 안에서 노동자가 참여할 수 있는 안전보건체계로는 단협과 명예산업안전감독관, 산업안전보건위원회 등이 있다. 그러나 법적으로 하청노동자의 참여를 확실히 보장하고 있지는 않다. 따라서 노동조합이 없거나 있더라도 매우 취약한 하청노동자들이 단협이나 산보위 등의 체계에 직접 결합하거나, 직영 노동자 중심의 체계에서 하청노동자의 안전보건문제를 능동적으로 처리할 가능성은 낮다.
산안법에서 하청노동자의 안전보건과 관련한 규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산안법 제29조에 의하면 도급 사업에서 사업주는 안전보건에 관한 원․하청 사업주의 협의체 구성․운영, 2일에 1회 이상 작업장 순회점검 등 안전보건관리, 하청업체에서 행하는 노동자 안전보건교육에 대한 지도와 지원 등을 해야 하며, 2개월마다 한번 이상 원․하청 사업주와 해당 공정 노동자 1인을 포함한 합동 안전보건점검을 실시해야 한다. 그러나 이 법안에는 합동 안전보건점검 시 해당 공정 하청노동자 1인이 참여하는 것 이외에는 하청노동자가 안전보건의 주체로서 참여할 여지가 전혀 없다. 그나마 합동 안전보건점검에는 ‘해당 공정’ 노동자가 참여하는 것으로 명시되어 있어 실제 활동의 여지를 제한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조선소에서 일하는 여러 직종은 대부분 여러 종류의 직업병에 걸리기 쉬운 고위험 작업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전통적인 위험들은 하청노동자의 만성적인 고용불안과 착취적인 임금 구조, 노동조합 등 조직적 대응력의 부족, 그리고 법․제도적 보호 장치의 미비함으로 인해 한층 증폭되어, 조선소의 하청 노동 과정은 그야말로 ‘안전보건의 무법지대’가 되어 있는 실정이다.
Ⅲ. 조선산업 비정규직 노동자의 건강권
우리나라의 경우 최근 3년간의 산재 발생 위험률을 바탕으로 업종별 산재보험요율을 산정한다. 노동부 발표에 따르면 2006년 현재 10개 산업, 61개 업종 가운데 보험요율이 가장 높은 업종은 다름 아니라 선박건조 및 수리업이다. 조선업종의 산재보험요율은 연간 임금 총액의 4.7%로, 2위인 건설업 3.4%보다도 월등히 높다.
비단 산재보험요율이 아니더라도, 조선산업은 이미 오래 전부터 악명 높은 고위험 산업이다. 사내하청노동자들의 불안정한 고용조건과 착취적 임금구조는 이러한 안전보건환경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불안정한 고용조건으로 말미암아, 하청노동자는 해고당하지 않기 위해, 그리고 일할 수 있을 때 최대한 많이 벌어두기 위해 고위험 작업을 거부․중지할 수 있는 권리를 행사할 수 없게 된다. 시급․일당제 등 노동시간에 비례하는 착취적 임금 구조는 하청노동자로 하여금 장시간 노동과 과로를 거부할 수 없게 만든다.
이렇게 고위험․장시간 노동이 지속되어 노동강도가 증가하면 근골격계 질환 등의 직업병과 각종 재해 및 사고의 위험이 늘어날 뿐 아니라, 유기용제․분진․소음 등 물리화학적 유해인자들에 대한 폭로 시간과 폭로 강도가 높아져 이로 인한 건강 장해의 위험이 극대화된다. 또한 장시간 노동은 하청노동자들의 정상적인 사회 관계 유지를 방해하기 때문에, 이들의 사회적 건강까지 위협한다.
노동자의 건강권은 기본권이자 생존권으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목숨과 건강을 담보로 하지 않고 일해도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지금 조선산업 사내하청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심지어 목숨을 내놓고 일해도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을 수 없는 지경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법과 제도는 하청노동자 건강권에 아무런 보호 장치가 되지 못하고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에는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위한 사업주의 의무와 노동자의 권리가 명시되어 있지만, 원하청 사업주 누구도 법이 정하는 의무를 다하지 않으며, 정부도 이를 규제하지 않을 뿐 아니라, 노동자 스스로 감시하고 개입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반인 노동조합 활동마저 원천봉쇄되어있다. 산재보상제도 역시, 산재신청 자체가 영구적인 퇴출을 의미하는 한 그림의 떡보다 먼 존재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조선산업 사내하청노동자의 건강권을 위해서는 노동시간 단축 및 노동강도 완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저임금 구조와 불안정한 고용상태의 개선, 즉 정규직과의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 쟁취와 불안정 노동 철폐는 노동자 건강권 투쟁과 같은 맥락에 서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내하청노동자의 건강권 쟁취는 그 조직과 단결에서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최근에도 이와같은 노동환경이 심각하게 계속되는지 알 수 있는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