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권29호/06년1-2월합본호/연구소리포트]

 

현대자동차 노동강도평가(2)



콩아줌마/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기획위원



1. 자본이 살맛나는 공장


1994년 현대자동차 노동자 한 명이 벌어다주는 순이익은 연간 346만원이었다. 2004년에는 한 명의 노동자가 3,537만원을 벌어다주었다. 십년 동안 노동자 1인당 생산성이 열배 이상 늘어난 셈이다. 이 정도면 현대자동차 자본의 성장은 파죽지세(破竹之勢), 도끼로 대나무를 쩍쩍 쪼개는 것처럼 거칠 것 없는 기세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물론 98년에는 현대자동차 자본도 힘들기는 했다. 자본이 그 위기를 넘기 위해 선택한 것은 바로 대규모 정리해고와 강력한 현장 통제라는 무기였다. 정리해고란 인원을 줄이고 남아있는 노동자들로 하여금 더 많이 일하게 한다는 것이고, 강력한 현장 통제란 노동자의 권리와 저항을 철저히 짓밟는다는 것을 뜻한다. 단순한 논리였지만, 자본으로서는 실로 탁월한 선택이었다. 98년에 처참하게 추락했던 각종 지표들을 일년 만에 모두 회복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일단 위기를 넘어선 뒤에도 자본은 정리해고와 현장 통제라는 무기들을 버리지 않았다. 오히려 특별한 위기 때만이 아니라 날마다 일상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변형시켜나갔다. 노동자들이 98년 정리해고 직후처럼만 열심히 일하고 군말없이 복종한다면 얼마나 편리할까. 그렇게만 만들 수 있다면 위기 탈출이 아니라 세계 제일의 꿈도 실현시킬 수 있을 것 아닌가.


자본의 꿈은 이루어지고 있다. 지난 십년 간 자본의 수익성, 안정성, 생산성 실적이 이를 말해준다. 이제 현대자동차 자본은 ‘GT-5(global top 5)’를 내걸 만큼, 다시 말해 업계 서열 세계 5위를 목표 삼을 만큼 컸다. 자본은 살맛난다.



2. 노동강도 강화 기전 - ‘자본이 살맛나는 공장’을 만들어온 비법



(1) 구조조정의 일상화


‘자본이 살맛나는 공장’을 만드는 첫 번째 비법은 구조조정의 ‘일상화’에 있다. 구조조정의 일상화란, 공장마다, 부서마다, 반마다, 노동자 한사람 한사람마다 서로 다른 시기에 서로 다른 내용으로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것을 말한다. 자본은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언제 어디서 어떤 구조조정이든 손쉽게 해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자 한다. 그래야 유연 생산 체제를 확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본의 입장에서 볼 때 구조조정의 일상화는 유연 생산 체제에 한발 다가서는 것일 뿐 아니라 더 효과적으로 다가서는 수단이기도 하다. 만일 98년 정리해고처럼 단기간에 전 공장에 걸쳐 구조조정을 단행한다면 노동자들은 ‘한 배의 운명’임을 느끼고 조직적으로 저항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상적인 구조조정은 노동자들의 처지와 요구를 조각내었다. 이쪽 부서와 저쪽 부서, 이쪽 라인과 저쪽 라인, 이 노동자와 저 노동자가 단결하기 어렵게 만든 것이다.


(2) 구조조정 재료의 총동원


두 번째 비법은 구조조정을 일상적으로 추진하되,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재료를 총동원하는 것이다. 이렇게 쓰이는 구조조정의 재료는 인력 감축, 고용 유연화, 시급과 성과급에 기초한 임금 체계, 노동시간 연장과 유연화, 신공정과 신기술 도입, 생산과정과 작업조직의 변화 등 여섯 가지로 정리된다.


이 재료들은 각 부서와 생산 과정마다 다른 순서와 속도로 사용되어 왔다. 그러나, 한 가지 재료가 들어가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 다음 구조조정이 이어지며, 현 시점에서는 대개 고용의 유연화와 노동시간의 연장 및 유연화로 귀결된다는 특징을 보인다.


예컨데, 자동화 등 신기술이 도입되면 그로 인한 작업 속도의 증가, 다기능화, 인력 감축 등 이차적인 변화를 통해 상대적 노동강도, 즉 작업 밀도가 강화된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노동자가 감당할 수 있는 체력적 한계나 기계의 고유한 한계 때문에 상대적 노동강도의 강화만으로는 생산 목표를 달성할 수 없게 된다. 결국 비정규직 노동자를 일시 채용하거나, 특근을 늘려 노동시간을 연장하는 방식(기계를 쉬지 않고 하루종일 가동하는 방식을 포함하여)으로 자본의 생산 목표를 충당한다. 이로써 자본은 탄력적인 생산 계획에 발맞출 수 있는 유연생산체제를 완성해 나가고 있으며, 노동자는 특정 시기에 집중적으로 상대적・절대적 노동강도의 극대화를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3) 이데올로기 공세


현대자동차 자본은 일상적․총체적 구조조정을 뿌리내리는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노동자의 단결과 저항을 막기 위한 이데올로기를 공격적으로 유포해왔다.


이데올로기 공세는 98년의 기억과 민주노조운동의 경험 전체에 대한 왜곡을 기반으로 한다. 98년 정리해고와 무급휴직의 아픈 기억과 상처가 아물지 못하도록 쉼없이 상처를 긁어대면서 확대시키는 한편, 그 고통을 이겨내려던 치열했던 투쟁과 벅찬 단결의 경험은 축소시킨다. 98년 위기의 책임이 자본에 있음을 숨기고, 민주노조운동의 과욕이 부른 위기였다고 우긴다. 그때보다는 지금이 더 살만하지 않냐면서 저항을 통제하고, 그때처럼 고통받지 않으려면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면서 자발적인 노동강도 강화를 요구한다.


현대자동차 자본의 이데올로기 공세 역시 일상적이고 총체적이다. ‘경영환경 이해를 위한 주간 경제’와 노사협력팀에서 발간하는 ‘함께 가는 길’ , 노동자의 가족과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배포하는 ‘열린 신문’, 하루 두 번씩 식당에서 틀어대는 영상 등 매체도 다양하다. 이름은 모두 그럴 듯 하지만, 자본의 나팔수로서의 역할에 결코 주저함은 없다. 현대자동차 자본은 이 매체들을 통해 당면 투쟁과 현안에 대응하는 것 뿐 아니라 일상적으로 자본의 논리를 노동자에게 이해(주입)시키고 있다.



3. 노동강도 평가 결과 - 노동자의 몸과 삶은 어떠한가?



(1) 노동자의 몸은 너무 많이 혹사당하고 있다 - 육체부하조사 결과


① 에너지 소모량


한국인의 체형을 기준으로 할 때 작업 중 에너지 소비량 허용기준은 1분당 3.02kcal(서양은 5.0)이고, 이 허용기준은 나이가 많을수록 더욱 낮아진다. 그런데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의 평균 에너지 소비량은 1분당 4.7kcal으로, 모든 부서에서 기준을 초과하고 있었다. 작업 중 에너지를 너무 많이 사용하면 피로가 생길 뿐 아니라 심장과 근골격계에 해롭다. 스스로 특별한 이상을 느끼지 못하더라도, 노동자의 몸은 이미 무리하고 있는 것이다. 늘 피로한 이유, 골병과 과로사가 많은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게다가 똑같은 노동강도라 해도 30대 이후에는 점점 기초 체력이 줄어들기 때문에 그 위험성은 훨씬 커지게 된다.



② 관절 반복성


관절을 빠른 속도로 반복해서 쓰면 결국 닳고 망가질 수밖에 없다. 이를 막기 위해 유럽연합(EU) 연구팀에서는 팔 관절을 1분당 10회 이상 반복해서 쓰지 말라고 권고한 바 있다. 하지만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은 손목은 평균 15.5번, 팔꿈치는 평균 13번을 사용하고 있었다. 어떤 부서에서는 허용기준의 두배를 넘어 세배에 이르기도 한다. 유럽연합에 따르면 관절 반복성이 허용기준을 초과하는 경우, 50분 작업 후 10분씩 휴식을 가져야만 관절이 망가지지 않는다.



③ 근육 사용도


일할 때 근육의 힘은 그 근육이 낼 수 있는 최대 힘의 2%를 넘어서는 안된다. 하지만 현대자동차에서는 모든 부서에서 허용기준을 초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어깨 근육(승모근)은 평균적으로 최대 힘의 4.4%를 쓰고 있어 어깨에 심각한 골병이 많이 생길 수밖에 없는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평가에서 사용한 기준들은 하루 8시간, 주 40시간 노동을 가정하고 만든 것이다. 그러니 매일 2시간 잔업에, 월 3~4회 특근을 하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게다가 장기간 주야 맞교대로 인한 건강 장해까지 생각한다면, 지금의 노동강도는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위험한 수준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노동자 건강, 이러다간 오래 못간다.



(2) 노동자의 삶이 위협받고 있다 - 설문, 면접, 문헌자료 조사 결과


① 골병과 사고가 만연한 현장


구조조정과 노동강도 강화는 골병과 사고의 증가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실제로 2000년에 165명이었던 골병 환자는 2004년 722명으로 늘어났고, 근골격계 자각증상 설문 결과도 이와 다를 바 없었다. 증상을 가지고 있는 노동자는 2001년 노사합동 근골격계 프로그램에서 71.7%, 2004년 교대제 프로젝트에서 86.2%, 2005년 노동강도 평가 사업에서 84.9%로 계속 증가하고 있다.


2000년 140건에 불과하던 사고성 재해도 2004년 391건으로 크게 증가했다. 2005년 연구 사업이 진행되고 있던 도중에도 추락, 절단, 협착 등 사망 재해가 잇달았다. 작업 시간을 단축하거나 작업 인원을 줄여보려는 시도의 결과들이었다. 골병과 사고로 생기는 빈 자리는 비정규직 노동자로 채워지고 있다.


② 잔업과 특근에 빼앗긴 일상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은 일주일 평균 60.6시간, 한달 평균 282.4시간을 노동한다. 매일 잔업 두 시간과 한달 평균 서너 번 특근은 기본이다. 이런 장시간 노동을 견디는 이유는 대부분 가족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작 가족과 함께 할 시간은 없다. 모처럼 시간이 나도 할 줄 아는 것이 없어서 TV앞에 누워 꾸벅꾸벅 졸며 보낸다. 직장 동료나 가족 이외의 다른 대인관계는 거의 없다. 일주일마다 밤낮이 뒤바뀌는 데다가 휴일조차 불규칙하기 때문에 공장 밖에서의 사회 생활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피폐해져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몇 푼의 임금을 더 받기 위해 더 많은 물량과 더 오랜 노동을 자청하고 있는 것이 현대자동차 노동자의 현실이다.


③ 만성 피로와 과로사에 위협받는 노동자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의 피로도는 94.5점으로 비슷한 조건의 완성차 4사 노동자들의 평균(88.6점)보다도 훨씬 높다. 피로에 쩔어있는 몸으로 노동해야 하는 이들의 생존 전략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피로를 잊기 위해 술을 마셔대는 것이고, 또 하나는 버틸 수 있는 몸을 만들기 위해 술담배를 끊거나 헬스, 마라톤에 전념하는 것이다.


둘 중 어느 쪽이건 노동으로 인한 피로를 견디려는 목적은 동일하다. 그러나 노동으로 인한 피로를 줄이지 않는 한, 술도 운동도 한계가 분명하다. 현대자동차에서는 최근 몇 년간 한해 평균 최소한 8명이 과로사로 목숨을 잃고 있다. 술을 끊고 운동을 해서 ‘견디는 것’이 아니라, 노동강도를 줄이고, 과로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만이 유일한 대책이다.



4. 노동강도를 얼마나 낮추어야 하나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의 육체부하평가 결과는 모든 평가 지표들이 허용기준을 초과하고 있다. 이 지표들을 제시했던 국제적 연구 결과들에 의하면, 적어도 50분 작업에 10분 휴식을 확보해야 하며, 이와 동시에 작업 시간 중에도 작업 속도와 강도를 낮추어 여유시간을 늘려야 한다. 또한 이 모든 것의 전제는 하루 8시간만 노동한다는 데 있다. 하루 8시간 노동, 주 40시간 노동 쟁취는 노동강도를 낮추는 것 뿐 아니라 노동자의 시간과 인간다운 일상을 되찾기 위해 꼭 필요한 요구이다.


(1) 50분 일하고 10분 쉬기


관절과 근육을 무리해서 사용하여 골병이 들 수밖에 없는 현실을 바꾸려면 당연히 공정을 개선하고 공구 무게를 감량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현장 개선이 하루 아침에 이루어질 수 없는 상황에서, 우선 취해야 할 조치는 휴식 시간을 늘리는 일이다. 유럽연합에서는 관절과 근육의 과도한 사용을 예방하기 위해 50분 일하고 10분씩 휴식해야 한다고 권고한 바 있다. 물론 50분 작업 중에도 적절한 속도와 강도로 작업할 수 있어야 한다.


(2) 작업 중 여유율 62%(107%) 쟁취하기


작업시간 중 작업 속도와 강도는 ‘여유율’로 표현할 수 있다. 이번 연구에서는 국제노동기구(ILO)에서 제시했던 여유율 계산방법을 한국인 체형과 우리 현장에 맞도록 개선하여 각 반별로 평가해 보았다. 그 결과, 50분마다 10분의 휴식시간이 보장된다면 50분의 작업시간 동안 여유율은 평균 62.3%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만일 지금처럼 2시간에 10분의 휴식시간을 유지한다면 작업 중 여유율은 106.9%가 필요하다.



5. 노동강도를 어떻게 낮추어야 하나


(1) 맨아워 투쟁 - 모답스 반대! 노동자의 몸과 삶을 기준으로!


물량 협상, 맨아워 협상은 노동자의 요구를 바탕으로 자본을 견제한다는 의의를 지닌다고도 한다. 하지만 그 밑바탕에는 이런 협상을 통해 노동자 스스로‘평화적’이고 ‘자발적’으로 노동강도 강화를 인정하게 하려는 자본의 목적이 있다. 게다가, 지금 맨아워 협상은 개별 대의원의 몫으로 왜곡되어 있다. 그 결과, 맨아워에 대한 근본적 대응이 아니라, 인원 조절과 물량 확보라는 당장의 성과에만 연연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물량과 인원을 가지고 대의원들끼리 힘을 겨루고, 이 공장과 저 공장이 서로 경쟁하는 것은 결국 자본에게만 좋은 일이다. 이런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분절되어 있던 노동자의 요구를 하나로 모아야 한다. 통일된 노동자의 기준, 즉, 노동자의 몸과 삶을 지킬 수 있도록 50분 작업에 10분 휴식 쟁취, 평균 여유율 62% 쟁취, 하루 8시간 노동의 요구를 가지고 새롭게 맨아워 투쟁을 시작해야 한다.


(2) 노동강도 저하 실천단 - 내 현장은 내가 바꾼다!!


소수의 노조임원과 활동가들만으로는 일상적인 자본의 공세를 모두 막을 수 없다. 또한 노동자의 건강한 몸과 삶을 지키기 위해 어디서부터 어떻게 바꿔야 할 지를 구체적으로 찾기조차 어렵다. 정말로 바꿔내려면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 빼앗겼던 내 몸과 삶을 되찾기 위해 나는 무엇을 바꾸고 싶은지, 무엇이 불만인지, 무엇이 힘든지, 구체적이고 일상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작은 것이라도 바꾸기 위해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


그 시작으로 ‘노동강도 저하 실천단’을 제안한다. 딱부러진 사업계획이나 조직체계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일상 속에서, 바로 내 주변에서 노동강도를 강화시키는 원인들을 찾아내고 바꾸어내기 위해 노력하는 것, 이것이 바로 노동강도 저하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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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2/08 21:54 2006/02/08 21: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