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미래를  제116호  /  기획: 비정규직 노동조건과 건강실태4

 

조선업 사내하청노동자의 노동조건과 건강(1)

공유정옥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집행위원

 

* 이 연구 보고서는 고상백(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이은숙(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이 공동집필하였다.


 

이 연구 조사는 2003년에 시작하여 2004년에 보고서를 냈다. 그 결과를 정리하여 ‘현미’에 실을 테니 글을 써보라는 말을 들은 것은 2005년이었고, 결국 2006년이 되어 글을 쓰게 되었다. 너무 오랜 시간이 흘렀다. 2년 전에 나온 보고서를 이제 와서 다시 쓴다는 일이 겸연쩍었다.

 

그러던 중 여의도 집회에서 오랜만에 현중사내하청노조 동지를 만났다. ‘산재를 당한 하청노동자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좀 전에 들었다’며 사고 현장에 가보기는커녕 사고가 일어났는지조차 알기 어려운 현실을 개탄하셨다. 나중에 홈페이지에 가보니, 지난 11월에 작업 중 추락하여 12월에 돌아가신 56세 하청노동자의 사망 소식이 1월 3일자로 올라 있었다.

내친 김에 몇 가지 자료들을 더 찾아보았다. 그리고, 우리가 보고서에 담았던 자료들이 구닥다리는 아닐까 했던 게 쓸데없는 걱정이었음을 알았다. 조선산업 시장은 여전히 호황을 구가하고 있고, 한국의 거대 조선 자본은 여전히 세계 제일의 위치를 지키고 있었다. 저임금과 구조적 고용불안 속에서 목숨을 내놓고 일해야 하는 조선소 사내하청노동자들의 현실도 여전했다.

 

이 글에서는 본래 보고서 내용 중 일부만을 정리하였다. 앞부분에서는 조선산업 전반을 이해하고 조선산업 고용구조와 비정규직 현황을 알 수 있는 자료들을 요약하였다. 뒷부분에서는 조선소 노동자들과의 심층 면접 결과를 상세히 소개하려 노력하였다. 조선소 사내하청노동자들과의 심층 면접은 좀처럼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면접에 참여한 노동자들이 이름은 물론, 소속 업체나 부서조차 밝히기 힘들 만큼 조선소의 현장 통제는 삼엄한 것이었다. 그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몇 시간을 앉아 심층 면접에 임했던 이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지면이 허락하는 한 많이 담고자 하였다.

 

 

Ⅰ. 조선산업 노동시장의 현황과 변화

 

 

1. 조선산업의 특징과 현황

 

조선산업에서는 선박을 건조, 수리, 해체하거나, 해상 구조물을 제작, 조선 기자재를 제조한다. 주문 생산 방식이기 때문에 관련 기자재들이 매번 달라질 수밖에 없어 생산을 자동화하기 어렵다. 따라서 많은 노동자를 필요로 하는 노동집약적 특성을 지닌다. 또한 생산 장비와 시설을 갖추는데 많은 자금을 들여야 하는 만큼 ‘규모의 경제’가 존재하는 산업이기도 하다. 하지만 세계 선박 시장은 별다른 진입장벽을 갖지 않는 단일 시장이고, 각국의 수입 규제도 적은 편이라서, 일단 세계 시장에 발을 들여놓는다면 다른 제조업보다는 시장 확보에 유리하다. 다만 노동집약적인 특성과 함께 수주량에 의존하는 특성 때문에, 조선산업 자본은 수주량에 따라 투입 인원을 신축적으로 조절하려는 경향을 갖는다.

 

세계 조선산업의 중심지는 영국, 미국, 유럽, 일본을 거쳐 한국으로 옮겨왔다. 한국의 조선산업은 1993년 최초로 선박 수주량 세계 1위에 오른 뒤 1999년, 2000년에 이어 2003년 이후 지금까지 선박 수주량 1위를 지키고 있다. 2003년 현재 한국조선자본은 세계 선박 수주량 점유율 43.8%, 건조량 32.8%, 수주잔량 37.8%를 차지하였다. 한국의 조선산업은 개별자본의 규모에서도 단연 세계 제일 수준을 차지하고 있다. 2001년 산업자원부에 따르면 세계 5대 조선소 중 1위부터 4위까지를 한국의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 삼호조선이 차지하고 있다.

 

 

2. 조선산업의 비정규직 확대 요인

 

조선산업에서 비정규직 고용의 증가요인은 세계 선박수요의 변동에 따른 제품시장 요인과, 현재 경향적이고 전반적인 공황 위기 속에 기업간 합리화 경쟁에 따른 경영전략 요인으로 나눌 수 있다.

 

제품시장 요인이란 해운업 동향, 선주들의 태도, 각국 조선업계 동향 등 시장 전망을 말한다. 최근 조선업종이 최고의 호황을 누리면서 국내 조선산업도 수출, 생산, 투자에서 모두 왕성한 성장을 유지해왔지만, 길게 내다보았을 때는 세계경제의 만성적 침체에 따라 일본 등 아시아 국가들의 발주가 줄어들어 2000년 경 세계 조선시장은 수급불균형 상태에 돌입하게 될 것이라 한다. 그 와중에 중국이 선박시장에 진출하면서 수급불균형은 더욱 심화되어, 국가간 또는 조선소간 수주경쟁도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관측된다. 이에 대비하기 위하여 각 조선자본들은 변화하는 시장 여건에 즉각 적응할 수 있을 만큼 노동력 수급 조절의 유연성을 확보하려 한다. 이것이 제품시장 요인이다.


경영전략 요인이란 제품시장 요인을 바탕으로 하여 각 조선자본들로 하여금 생산과정을 재조직하도록 압박하는 요인을 뜻한다. 즉, 세계시장의 경쟁이 격화됨에 따라 국내 자본들은 광범위한 제휴를 모색하는 동시에 각 기업들이 인건비 감축과 생산성 향상을 놓고 한층 치열하게 경쟁하는 과정에서, 그동안 ‘규모의 경제’를 추구해온 기업들이 폭넓은 아웃소싱과 글로벌소싱을 통하여 ‘규모의 경제+범위의 경제’로 생산과정을 재편해가는 것을 말한다.

 

조선산업에는 오래 전부터 사내하청기업이 광범위하게 포진하고 있어, 원청자본은 하청과의 계약 조정을 통해 이미 상시적인 인력구조조정을 해왔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 국내 조선산업의 대대적인 산업구조조정이 일어나면서 각 조선소 비정규직 노동자는 큰 폭으로 증가하였다. 그 결과, 각 조선소에는 현장이 비좁을 만큼 자재가 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직영 인원은 꾸준히 줄어들고 하청인원과 하청물량의 비율은 꾸준히 증가하는 현상이 일반화되었다. 이는 다운사이징과 아웃소싱, 즉 몸집줄이기와 외부화가 진행되고 있음을 뜻하며, 앞으로도 이런 방식의 경영과 인력관리전략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3. 조선산업의 고용구조

 

조선산업의 고용구조는 대규모 사업장의 직영 인원과, 주변에 광범위하게 형성되어 있는 사내외 하청 인원으로 양분할되어 있다. 노동자들은 원청에 직접고용되어 있는 경우를 제외하면, 사내하청, 사외하청에 포진하고 있으며, 직영이 직접 고용하는 비정규직 형태로 용역, 연수생 등이 미미한 비율로 존재하고 있다.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하여 2002년 조선공업협회의 자료를 재분석한 결과,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특징들을 알 수 있었다.


첫째, 조선산업 총 종사자 가운데 8대 조선소에 속하는 직영 노동자는 약 39%에 불과하며, 60% 이상은 사내외 하청 혹은 기타 비정규직 노동자로 존재하고 있다.

 

둘째, 2001년 현재 이들 전체 조선산업 비정규직 노동자 8만5,000여명 중 5만3,000여명(64%)은 사외하청 혹은 소규모 조선소나 회사 비소속 조선인력으로 존재하고 있다.

 

셋째, 8대 조선소 총 인력의 45%가 현대중공업에 집중되어 있고, 75.7%가 상위 3사에 집중되어 있는 등, 대형조선소 의존도가 매우 높다.

 

넷째, 조선산업 고용구조의 양적 변화는 주로 사내외 하청노동자의 급속한 유입과 유출로 인한 것이다. 가령 1998년에서 1999년으로 넘어가면서 조선산업 종사자 수는 제조업 고용의 3.6%를 차지하다가 3.0%로 줄어들었는데(이는 14만에서 12만여 명으로 일년 만에 약 2만 명이 줄어들었음을 뜻한다), 여기에는 한라중공업의 2천여 명 감원, 한진중공업 3사(타코마, 한진울산, 한진영도) 통합, 대우조선의 감원, 대동조선의 부도 등 대대적인 산업구조조정이 조선산업 비정규직 노동자의 대규모 유출을 초래하였기 때문이다.

 

 

4. 조선산업 비정규직의 규모

 

조선산업에 종사하는 총인원은 1990년 54,090명에서 2002년 94,213명으로 10여년간 74.1% 증가하였다. 그러나 이 기간에 직영인원의 증가율은 15.4%에 그쳤다(46,730명→53,925명). 직영인원은 1978년 40,522명에서 1996년 60,576명까지 늘어났으나, 조선산업 각사의 구조조정이 집중되던 1997년 이후 2002년까지 6,651명이 줄어들어 1996년 대비 11%의 감소율을 보였다.

 

반면 하도급인원은 1990년에 비해 2002년에는 무려 447.4%나 증가하였다(7,360명→40,288명). 또한 하도급인원 집계가 시작된 1990년 7,360명에서 지속적으로 늘어 1996년에는 20,777명을 기록했고, 1997년부터 1999년까지 3년 동안 약간의 감소세를 보이다가 2000년부터 다시 급격히 늘기 시작하였다. 급기야 2002년에는 40,288명으로 1996년 대비 48.4%가 증가하면서 인원수 면에서 현장직 중 직영 인원 수(36,068명)를 넘어섰다.

 

<표1>은 조선산업 각사의 하도급 인원 비율 변화를 정리한 것이다. 여기에서는 특히 조선건조물량이 크게 증가했던 1992~1994년과 2000~2002년에 특히 하도급 비율이 대폭 증가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각 기업들이 하도급 인원을 증가시킴으로써 물량을 해소하였음을 뜻한다. 현대중공업의 경우, 1998년까지 하도급 비율 10%대를 유지하다가, 2000년에는 25.2%로 98년 대비 10%포인트 이상 늘렸다. 이런 추세는 해마다 더욱 심화되어 2002년 현재 38.8%까지 올라갔다. 한편 노동조합이 없는 삼성중공업에서는 1990년에 이미 하도급 비율이 총인원 대비 38.7%를 기록하였고, 2002년에는 거의 절반에 가까운 48.9%에 이르고 있음도 확인할 수 있다.

 

하도급 인원의 대부분이 현장직임을 감안하여 정규직 중 현장직을 뜻하는 기능직 인원의 추이와 비교해 보면, 현장에서의 비정규직 확대는 더욱 심각한 수준이다. 1990년에는 기능직 대비 하도급 비율이 21.2%에 불과하였으나, 2002년 들어 그 비율은 111.7%로 늘었다. 조선산업 현장에는 이제 정규직보다 더 많은 수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일하게 된 것이다. 특히 IMF 시기를 경과하면서 추진된 구조조정이 비정규직 비율 증가를 가속시켜왔다.

 

<표1> 조선산업 각 사 총원 대비 하도급 인원 비율 추이

 

 

* 다음 글로 계속됩니다

* 이 글은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http://kilsp.jinbo.net) 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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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2/08 22:36 2006/02/08 22: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