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조선산업 사내하청노동자의 노동조건

 

 

1. 조선산업 사내하청 노동시장의 특징

 

 

1) 규모와 특징

 


조선산업 내의 하도급 거래에는 부품을 조달하는 조선 기자재 거래와 단순노동력 및 기술을 제공하는 외주하도급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사내하청이란 외주하도급 업체 중에서 원청회사의 일정한 생산 업무를 도급받아 이를 원청회사의 사업장에서, 원청회사의 생산시설을 이용하여 수행하는 경우를 말한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2002년 간접고용 실태보고서)


국내 최대 규모의 조선소인 울산 현대중공업의 사측 자료에 따르면, 2002년 1월 현재 총 144개 업체에서 9,128명의 사내하청노동자가 근무하고 있었으며, 이 업체들은 각 부서별로 원청업체에 등록되어 관리되고 있었다. 이 중 조선사업부에 소속된 사내하청업체들의 규모와 분포를 살펴본 결과, 업체의 규모는 적게는 5명 내외부터 많게는 300명까지 다양하나, 대부분 100명 안팎의 규모였다. 또한 사내하청노동자들은 모든 부서에 분포하고 있었으나, 부서마다 정규직 노동자와 하청노동자 수의 비율은 큰 차이를 보였다. 하청 비율이 가장 높은 부서는 도장부로, 정규직보다 두 배 가량 더 많은 수로 나타났다.

 

이런 부서별 하청 비율 차이는 업무 내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하청 비율이 매우 높거나 심지어 전적으로 하청 인력에 의존하고 있는 부서나 업무들은 노동강도 및 위험도가 크거나, 업무에 요구되는 기술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거나, 정규직 노동자들이 기피하는 작업인 경우가 많다.

 

 

2) 고용 사업주(하청업체)와 사용 사업주(원청업체)

 


조선산업 사내하청노동자들은 고용 사업주(원청업체)와 사용 사업주(하청업체)가 별개로 존재하는 간접고용 노동자이다. 하청업체는 하청노동자들과 근로계약을 맺는 고용 사업주로서 채용, 인사, 노무관리, 임금지급 등의 역할을 담당한다. 그러나 외주하도급, 특히 단순노동과 기술을 제공하는 소규모 사내하청업체의 경우에는 원청과의 평등한 거래관계를 유지하기가 어렵다. (동남발전연구소, ‘조선 및 관련산업의 하도급거래 형태 및 실태분석’, 「조선업분야에 있어서의 하도급거래 공정화 추진방향」, 2002)


원청사업주가 도급계약시 상정하였던 도급금액(기성)을 삭감하거나 도급계약 해지, 재계약 중단 등을 통하여 하청업체를 통제·관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원·하청업체는 수평적 계약관계라기 보다는 수직·종속적인 관계라 할 수 있다.

 

이 때 하청노동자의 고용안정, 임금, 노동조건 등을 결정하는 실질적인 주체는 고용사업주(하청업체)가 아니라 사용사업주(원청업체)다. 가령 하청노동자의 임금 결정 구조에서 원청업체의 생산비용 절감 요구나 도급금액 삭감조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업체가 도급계약을 받으면서 받는 금액을 ‘기성’이라고 부르는데, 이 기성이 삭감되요. 기존 70에서 80퍼센트를 왔다갔다 하는 걸 하청은 진짜 45에서 50퍼센트를 왔다갔다… 100퍼센트 기성을 목표로 상정했던 거기 때문에 목표치가 떨어졌기 때문에 그 이하를 주는 거예요. 그래서 업체도 임금 압박을 받는 거고…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

 

 

원청사업주가 하청노동자에 대한 관리와 통제에 보다 직접적이고 적극적인 방식으로 개입하는 경우도 있다.

 

첫 번째 경우는 사내하청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드는 등 조직적 단결을 시도하는 때이다. 실제로 2003년 하반기,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조합의 설립필증이 교부된 후 설립신고서에 기재되어있던 노동조합 임원진 및 조합원이 모두 소속 업체로부터 해고되고 해당 업체 상당수가 일제히 폐업을 공고했던 사건이 있었다. (금속산업연맹, ‘금속산업 비정규직 백서 1호 사내하청비정규직 차별과 노동탄압사례집’, 2004년)


소규모 하청업체 사업주들이 업체 폐업 등의 극단적인 조치를 자발적으로, 그리고 우연히도 비슷한 시기에 취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원청의 의지라고 보는 게 맞는 거 같은데… 실제로 업체 폐업까지 가고 이러는 거는 업체 사장도 하기 싫었을 거예요. 다시 폐업하고 예전처럼 이름 바꿔가지고 자기가 등재하는게 까탈스러워진게 맞는 거고. 실제로 자기 사업장이 없어지는건데, 이걸(폐업을) 자신의 의지로 했다고 보긴 어려운거고, 저 같은 경우도 ‘이미 (원청업체) 부서에서 알고 있기 때문에 내 범위를 넘어섰다’ 이렇게 얘기를 했고. 다른 데도 이런 동일한 일들이 많이 있었고….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

 

 

원청 사업주가 하청노동자의 관리와 통제에 직접 개입하는 또다른 경우는 하청노동자 산업재해가 발생하였을 때이다. 만일 하청노동자가 산업재해를 입어 보상을 신청하게 되면 원청사업주는 피재 노동자를 해고하도록 하청업체에 종용하거나, 이후의 재취업을 금지시킨다. 그래서 “하청이 한번 산재 처리하면 다시는 조선소 밥을 먹지 못한다”라는 말은 조선소 부근에 공공연히 떠돈다. 당사자를 넘어서 해당 업체와의 계약을 해지하거나 재계약을 거부하기도 한다. 이를 아예 하청업체와의 계약서에 명시하자고 나서기도 한다.

 

올 5월달에 ○○팀에 지원나가는 업체들 중 하나가 넘어져서 골절상을 당했나봐요. 이 사람이 사장을 통하지 않고 근로복지공단을 통해서 산재 요청을 하고, 승인이 돼서 산재 처리가 된걸 늦게 알았어요. 직영(원청업체)에서 늦게 알아서, 이 (직영) 부서에서 그 사실을 알자마자 그 팀에 들어와있던 그 (하청)업체 모든 지원인력을 철수시켜버렸어요.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

 

(원청)회사에서 안전 관련해서 안을 내놓은 것이 업체에서 중대사고 3번이상이면 계약을 파기한다는 거였다. 그래서 사고가 나면 (하청업체)사장이 “손가락 다친 것 같은 왠만한 건 알아서 쉬다 와라” 그런다. (대우조선 정규직 노동자)

 

이처럼 사용 사업주가 도급계약 및 기성금을 통하여 하청업체에 대한 통제권을 가지며, 하청노동자에 대해서도 채용과 노무관리 전반에 걸친 직·간접적 관리와 통제를 구사하므로, 원청업체는 사내하청노동자에 대한 사업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가져야 한다.

 

 

한편, 하청업체가 하청노동자를 관리·통제하는 형식적인 주체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하청업체는 사용 사업주와 하청노동자 사이에서 이윤을 얻는다. 하청노동자의 임금을 합법적으로 중간착취하는 것이다. 이로써 두 사업주에 의한 이중의 통제와 착취 속에 하청노동자의 저임금 구조는 합법적으로 고착된다.

 

이러한 ‘합법적 착취’ 이외에도 하청노동자들이 정당하게 받아야 하는 노동의 대가를 업체가 중간에서 부당 갈취하는 일도 적지 않다. 가령 2004년 2월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 박일수 열사의 분신사망 사건 당시, 열사를 고용했던 하청업체는 상당수의 노동자에 대하여 4대 보험에 가입하지 않았으며, 7년 이상 근무한 10명의 노동자들을 당사자 몰래 퇴직 처리하여 퇴직금을 착복하고, 용접사 자격증 수당, 가스 수당, 연월차수당 등을 중간에서 가로채기까지 하였다. (비정규노동자 기본권보장과 차별철폐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박일수 분신사망 사건 진상 조사 보고서」, 2004년)

 


<그림1> 조선산업 사내하청 노동시장의 구조

 

 

* 다음 글로 계속됩니다

* 이 글은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http://kilsp.jinbo.net) 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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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2/08 22:42 2006/02/08 2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