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사내하청노동자의 노동시장 유입-유출 과정

 

 

1) 조선산업 노동시장으로의 최초 유입 과정

 

정규직 노동자들은 학교 졸업 직후 첫 직장으로 입사하였거나, 타 업종에서 일하다가 조선산업의 상대적인 고임금과 고용 안정 때문에 이직한 경우가 대부분인 반면, 1990년대 후반 이후 입사한 하청노동자들은 대개 자영업자나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로 지내다가 경제난·실직·구직난 등을 거친 끝에 조선소로 유입되는 특징을 보였다.

 

하청노동자 대부분은 원청업체의 정규직으로 취직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 이후 각 조선소에서는 신규 인력 채용을 최소화하는 인력 운용 방침 (주: 대표적인 사례로 1999년 11월 대우중공업의 “조선부문 중장기 경영전략”에 밝힌 “생산성 향상을 통한 인력의 효율적 운용” 계획을 들 수 있다. 이 계획의 세부 내용은 ①물량변동에 다른 탄력적 인원관리를 위해 직영 신규인력 채용 억제, ②임금은 생산직의 경우 2002년까지 동종사 업계 수준을 감안하여 최대한 억제하여 기술·관리·지원직의 경우 2002년까지 동종업계 대비 90% 이내로 운영한다는 것이다)을 설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원청업체 정규직으로의 취업 기회는 거의 없었다. 경제적 문제로 인하여 취업이 긴급히 필요한 이들의 처지에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것이 사내하청업체였다.

 

직영모집을 안하니까, 누구나 다 직영으로 들어갈 수 있으면 들어가지, 누가 힘들고 돈 안되고, 비정규직으로 남아 있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저는 개인 사업 실패로 조선소에 오게 되었어요. 처음부터 그랬지만 먹고 살기 위해 얼마나, 조선소 하청에 들어온 사람들은 전부 각박하죠. 돈이 급하거나 돈이 없으니까. 돈이 있으면 누가 오겠어요, 이 더러운 작업환경에 누가 들어오겠습니까. (대우조선 사내하청노동자)

 


2) 조선산업 노동시장 내에서의 반복 실업 과정

 

조선산업 사내하청노동자들의 고용 상태는 수개월에서 1년 가량의 짧은 주기로 취업-실업-취업-실업…이 순환되는 반복적 실업 과정을 특징으로 한다. 이 과정은 이동 주체의 특성과 이동 동기에 따라 각각 개인적인 이동과 집단적인 이동, 반(半)자발적·반(半)강제적 이동과 강제적 이동으로 분류할 수 있다.

 

작년에 9월달에 와가지고, 6월달까지 일했거든요. 9개월 일했어요. 그러니까 02년 9월부터 03년 6월까지 한군데 있었고. 그리고 03년 6월부터 9월까지. 그다음에 지금까지. 일년 반 동안 (업체 옮긴 것이) 세번 되요, 세번 정도 되요.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

 

<표2> 조선산업 사내하청 노동시장 내에서의 반복적 실업 양상

 

 

1) 개인적인 이동 · 집단적인 이동

 

개인적인 이동은 대부분 인맥이나 인력 모집 광고를 통해 이루어지나, 집단적인 이동은 경력 및 숙련도가 높은 핵심 노동자가 이끄는 작업팀이 일감을 따라 함께 이동하는 방식이다. 이런 이동 집단은 “야리끼리” “물량떼기” “때려먹기” “일당바리” 등으로 불리우는데, 정식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채 일정한 작업량을 완수하는 조건으로 근무하는 비공식적 하청 노동이라 할 수 있다.

 

선체 도장이라고 배 외곽 쪽에 이런데는 물량떼기가 일상시기에도 참 많습니다… 사고라든가 근골격계, 이런 건강 안좋은 작업조건 때문에… (삼호중공업 정규직 노동자)

 

진수가 다 되면 많은 인력이 필요하거든요… 진수에 집중적으로 투입되는 그런 업체 같은 경우 흔히 이야기하는 ‘일당바리’라고 하지요. 비정규직 내에서도 또 몇 사람이 열명이면 열명 팀이 있더라고요. 그렇게 와서 물량을 갖다가 톤당 얼마씩 받는 것으로 해서 그렇게 해서 작업을 하고 있더라고요. (대우조선 정규직 노동자)

 

 

2) 반(半)자발적 · 반(半)강제적 내부 이동

반(半)강제적·반(半)자발적 이동이란 보다 나은 노동 조건을 찾아 자발적으로 조선산업 노동시장 내부의 이동을 도모하되, 그 계기가 전적으로 본인의 자발적 의지에 따라 결정된 것이 아니라 사내하청 노동시장의 객관적인 조건에 의하여 반(半) 강제적으로 구성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이동의 동기 및 목적에는 저임금 조건에서 일하면서 보다 많은 임금을 받기 위한 이동, 노동강도가 조금이라도 낮은 일을 찾기 위한 이동, 고용이 불안정한 상태에서 임박한 실업에 대비하거나 혹은 실업 상태에서 재취업을 하기 위한 이동 등이 있다.

 

제가 ○○업체 소속으로 □□부서에 있을 때는 시급을 조금 받았어요. 거기서 기계 지원하는 △△업체 사람하고 월급차이가 거의 백만원 차이가 나더라고. 그래서 저쪽 반에 반장이 자기도 똑같이 일 시키고 하는데 월급이 너무 차이가 나니까 업체를 다른 데로 가라고 충고를 해주더라구요.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

 

여기는 아무리 숙련이 되도, 십년 이십년이 되도, 일 자체가 공정이 이러니까 (힘든 건 마찬가지다). 그래서 처음에 와서는 일을 잘 안해봐서 모르다가, 3일, 3일 못견디고 다 가요, 나 못하겠다고.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

 

조금 더 안정적인 직장을 찾아야죠. 원래 하청에서 하청으로 옮길 때 여긴 불안한데 남의 떡이 더 커 보이잖아요. 저 하청이 조금 더 낫지 않을까. 하청자체가 위태위태하니까. 몰라 위에 본청에서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생각 않을지 모르지만… (삼호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

 

 

그러나 사내하청노동자가 경험하는 저임금, 고도의 노동강도, 고용불안 등은 개별 노동자의 주관적인 경험과 판단이 아니라 임금 억제, 생산성 향상, 생산량에 따른 인력의 탄력적 사용(노동력 유연화) 등 조선산업 구조조정 전략에 의해 형성된 노동시장의 구조적 특성에 의한 것이다.

 

조선산업 구조조정 전략이 사내하청 노동시장의 기본 구조를 규정하고, 이 구조 속에서 사내하청노동자들의 만성적 고용불안과 저임금 및 고도의 노동강도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므로,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하청노동자 스스로 이직을 선택한다고 해도 이것은 시장 구조에 의해 반(半) 강제적으로 이루어지는 것과 다르지 않다.

 

 

3) 강제적 내부 이동


강제적 이동은 갑자기 일감이 없어지거나 하청업체가 폐업하거나, 어떤 이유로 해고(계약 해지)되어 실업 상태에 놓이게 된 경우 등 하청노동자 본인의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강제적으로 이동해야 하는 경우를 의미한다.

 

하청노동자들의 고용 상태는 물량에 따라 매우 불안정하게 유지되기 때문에 물량의 중단에 대비하여 미리미리 다음 일자리를 찾아다니는 반(半)강제적·반(半)자발적 이동이 매우 흔하다. 그러나 물량이 떨어져 실업 상태에 놓이게 될 시기는 정확히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미처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자리를 잃는 일이 많아 사실상 강제로 이동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빈번히 발생한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언제 끝나는지는 모르겠는데, 물량이 좀 적어지죠. 만약에 한 50명 할 일이 30명 일밖에 없으니까. 스무 명은 회사에서 계속 돈을 안주잖아요. 그러니까, 일이 별로 없다. 그러면 알아서 가는 거지. 안그러면, 인제 서로서로 돌아가면서 쉽시다, 그러면 쉬어야지.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

 

이처럼 하청업체가 경영상의 이유로 감원이나 폐업을 하는 경우에는 더욱 갑작스러운 실업 상태에 놓이게 되며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기도 한다.

 

월급도 못받았어, 어떨 때는. 회사 망했으니까 사람 다 나눠가지고 다 털어서 다 분배하니까 그래도 돈이 좀 나오더라고. (그걸 다 나누어서) 그런 식이지. 안받는 것보다 받는 게 낫잖아요.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

 

한편, 물량이 감소하거나 일자리가 줄어들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하청업체로부터 고의적인 작업 배제나 해고·계약해지를 당하거나, 아예 업체가 문을 닫아버려서 강제적으로 이동을 모색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고의적인 작업 배제나 해고 및 폐업은 주로 산업재해 환자나 노동조합 활동가를 축출하기 위하여 이루어진다.

 

직영 원청에서 업체로 연락이 왔는데 ‘협력업체 내에 노조를 만들려는 모임이 있는데, 거기에 가담한 자다’ 이래가지고… 업체 측에서 ‘직영에서 일 커지기 전에 사표를 써라’… 출근하니까 작업 제외시키고, 경비대들이 사무실에 들어와서 싸우고. 싸운게 아니라 거의 끌려나왔죠.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

 

출입증 반납하라길래 웃기지 마라 이거는 운영지원부에서 나한테 발급해준건데 내가 왜 반납하냐 이래 가지고. 출근을 했어요. 근데 인제 저희 업체도 폐업이 공고되고.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

 

면접 조사 과정에서 산업재해를 겪거나 노동조합에 가입한 노동자가 스스로 하청업체를 떠나는 사례도 발견되었다. 그러나 이런 경우들조차 산업재해나 노동조합 가입 사실이 알려진 뒤 업체로부터 일을 계속 할 수 없을 정도의 스트레스를 받아서 별다른 대안을 찾지 못한 채 어쩔 수 없이 이직하는 것일 뿐, 결코 자발적 이직이라고 볼 수 없는 상황이다.

 

일당들 같은 경우는 한마디로 다치면 쪽팔리니까 아예 얘기도 안하고… 예전에는 그냥 일당들은 크게 다치면 보따리 싸는 게 관례였어요. 억울하고 뭐 이런 것들 호소한다기 보다는 오히려, 어차피 일당이니까 보따리 싼다, 이런 거지요.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

 

8월달에 업체 투쟁한 이후로 폐업한다 폐업한다 이런 얘기들이 계속 돌고, 그 과정에서 주로 떠나는 사람들 보면 조합에서 이렇게 뛰었던 사람들, 그 사람들이 “더러워서 못 다니겠다”고…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

 

 


3) 조선산업 노동시장으로부터의 영구 유출 과정

 

조선산업 하청 노동시장 내부에서의 반복 실업 과정은 이곳을 완전히 떠나는 영구 유출 과정으로 연결되곤 한다. 유출 과정도 그 동기에 따라 자발적 유출과 강제적 유출로 분류할 수 있다.

 

<표3> 조선산업 사내하청 노동시장으로부터의 유출 양상

 


(1) 자발적 유출

자발적 유출이란 고도의 노동강도와 열악한 노동조건에 염증을 느끼고 다른 업종으로 전환하고 싶은 욕구를 바탕으로 한다. 면접 조사를 통해 만난 사내하청노동자들은 대부분 “당장 다른 일자리를 찾는 것이 쉽지 않아서” 계속 일하고 있지만 “너무 힘들어서 다른 일로 옮기고 싶고 언젠가는 이 바닥을 떠날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만족을 못하죠. 이보다 나은 조건이 있으면 내일이라도 미련없이 떠나야죠. 일이 너무 힘들고 임금도 작고… (대우조선 사내하청노동자)

 

쉬는 시간에 얘기하다보면 전부 힘들어서 안하겠다 못하겠다 나가겠다 이런 소리죠 뭐…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

 

임금도 적고 일 자체도 편한일이 아니니까… 계속 일할 생각은 (없지만) 울며 겨자먹기로… 옮겨봐야 뻔하니까… 기량이 쌓이면 옮길 계획 (대우조선 사내하청노동자)


 

그러나 취업이나 개인 창업의 전망이 밝지 않은 사회적 조건 하에서 이 생각을 실행으로 옮기는 것은 쉽지 않다. 수년간 기다린 끝에 간신히 조선산업을 떠나더라도 종종 재취업에 실패하거나 사업이 망하여 별 수 없이 다시 조선 하청 노동시장으로 재유입되는 일이 허다하다. 그렇기 때문에 하청노동자들은 “조선소 바닥을 떠난 사람들은 무소식이 희소식이다”라고 말한다.

 

이처럼 상당수의 조선산업 하청노동자들은 조선소를 벗어나 다른 생계를 꾸리기 쉽지 않은 사회적 조건에 처해 있다. 그런데도 먹고 살 만 하다면 결코 다시 조선산업 하청 노동시장으로 돌아오지 않겠다고 생각할 만큼 그들의 노동 조건은 고되다.

 

 

(2) 강제적 유출

강제적 유출이란, 본인의 의도와 무관하게 조선산업 노동시장으로부터 강제로 퇴출당하는 것을 말한다.

 

산업재해나 노동조합 활동으로 강제적 내부 이동을 당한 노동자들은 대개 이런 방식으로 조선소에서 영구적으로 추방당하고, 조선 하청 노동시장으로 재유입은 거의 불가능하다.

 

중대 재해로 목숨을 잃거나 노동 능력을 크게 상실했을 때는 물론이고, 노동 능력을 유지하고 있더라도 산재보상 청구를 했을 경우에는 원청사업주에게 찍혀서 두 번 다시 조선소에 발을 들여놓지 못한다고 한다. 조선소에는 원청사업주들이 산재신청자들과 노동조합 활동가들을 영구 추방하기 위한 “산재리스트”와 “블랙리스트”를 가지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그런데 이런 강제적 유출은 정말 간단하게 이루어진다. 모든 하청노동자들은 조선소에 출입하기 위하여 원청 사업주로부터 출입증을 발급받는데, 이 출입증 발급이 중단되면 그것이 바로 해고를 의미한다.

 

출입증을 반납하고 나서 돌려받지 못하면 그 자리에서 짤리는거죠. 뭐 어디 호소할 데도 없고. 특히나 요새 물량이 뚝 끊기니까, 뭐 어디 좀 쉬었다 와라 이래도 뭐 군소리 못하고, 괜히 뭐 얘기했다가 또 일 못하니까, 또 못들어가니까. 안주면 못들어가는 거죠. 일단 공장 안에 못들어가니까 끝나는 거지. 뭐 (업체에) 전화하면, (그쪽에서) 전화 안받으면 끝이니까.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

 

 


 

* 다음 글은 "현장에서 미래를" 3월호로 계속됩니다

* 이 글은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http://kilsp.jinbo.net) 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6/02/08 22:48 2006/02/08 22: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