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2006년 3월호]
2006년 노동안전보건투쟁, 이렇게 나아갑시다
- 4대 실천의제를 중심으로 -


1. 노동유연화를 위한 자본의 일로매진


어느 날 저녁, 국회 환노위 분위기가 심상치 않더니 아니나다를까, 열우당과 딴나라당이 의기투합하여 비정규직 양산법을 날치기 통과시키고야 말았다. 문득 십년 전, 1996년 12월 26일을 떠올린다. 국회가 십년 전 새벽에 정리해고제와 변형근로시간제, 그리고 파견제를 날치기 통과시키던 날, 우리는 일순간에 확인했다. 국회란, 그리고 정부란, 자본이 꿈꾸는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를 위해 원칙과 기본을 헌신짝처럼 내동댕이칠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로부터 십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이른바 ‘3제’(정리해고제, 변형근로시간제, 파견제)의 본질을 두눈으로 똑똑히 확인하고 있다. 노동자에게는 일터와 그 가족의 삶터 전체를 파탄에 이르게 하는 무시무시한 재앙이었고, 자본에게는 그들의 광폭한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를 법의 이름으로 보호해주는 든든한 방패였다. 이번 비정규 양산법 날치기 통과는, 자본이 그동안 방패로 사용해온 ‘3제’를 더욱 강력한 무기로 쓸 수 있게 하려는 시도였다. 그런 점에서 마치 폭력경찰이 방패 끝을 갈아 시위대의 목을 겨누는 무기로 쓰는 짓과 꼭 닮았다.

1996년과 2006년을 잇는 십년을 돌아보면서,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를 위한 자본의 치밀함에 몸서리친다. 정부와 국회를 아우르는 ‘자본가 계급’의 단결과 연대가 얼마나 강고한지, 그리고 계급의 이해를 달성하기 위해 각자의 역할을 얼마나 구체적으로 착실하게 밟아가고 있는지를 다시 한번 확인한다. 뚜렷한 목표(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를 세우고 그 목표를 향해 십년을 한결같이 노력하며, 그 속에서 각자 해야 할 구체적인 임무를 충실히 해내는 모습에 경탄할 지경이다.


2. 노동안전보건투쟁의 반격, 그리고 역공


자본이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에 일로매진해온 십년 동안, 이를 막아내는 것이 노동의 가장 큰 과제였다. 그 와중에 2002년 대우조선 투쟁으로 새로운 획을 그은 근골격계 집단요양투쟁은, 신자유주의 공세에 맞선 노동안전보건운동 진영의 뜻깊은 반격이자, 기존 산재추방운동의 한계를 뛰어넘어 대중의 직접적이고도 일상적인 실천과 투쟁을 조직하는 일대 전환점이 되었다.

그러나 노동자 건강권 투쟁이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분쇄 투쟁으로 새롭게 자리매김하자마자, 자본은 신속하고도 일사불란한 대응을 통해 역공에 나서기 시작했다. 대자본들은 사내 치료를 명분삼아 집단투쟁을 차단하고 산재 은폐를 꾀하는 한편, 산재승인의 문턱을 높이고 요양자들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도록 정부를 압박했다. 또 한쪽에서는 다른 자본들이 인간공학평가나 근골격계 예방 프로그램을 상품화하여 투쟁의 성과를 돈으로 주워담기 시작했다. 노동부는 자본의 요청에 충실히 뒤따르며 산재보험제도 개악 수순을 밟아나갔고, 그 중에서도 근로복지공단은 산재노동자 탄압과 치료권 박탈에 앞장서며 자본의 역공에 최선봉을 자임했다.

자본의 치밀한 역공의 결과로, 최근 1,2년간 노동안전보건운동은 과거로 퇴행하는 듯했다. 근골격계 질환을 비롯하여 노동자 건강권은 다시 산재노동자 당사자만의 문제로, 사후 치료의 문제로, 노동조합 산업안전부서의 문제로, 단위사업장 노사가 알아서 풀어갈 문제로 위축되어갔다.


3. 2005년 노동의 재반격, 그리고…


2005년 초여름에 시작하여 해를 넘기도록 이어지고 있는 하이텍 공대위의 투쟁은, 노동자 건강권 문제가 결코 개인/치료/산안/단사에 국한되어 있지 않음을 실천으로 확인하는 재반격 투쟁이었다. 산재를 신청한 당사자는 불과 열세 명에 불과했지만, 그보다 수십, 수백 배의 동지들을 투쟁의 주체임을 자임하였다. 투쟁의 목표 또한 산재인정에 그치지 않고 자본의 현장통제 분쇄, 반노동적인 근로복지공단 개혁, 산재보험제도 개악 반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분쇄 등을 넘나들며 확장되었다. 그에 따라 이 투쟁은 단위사업장을 넘어, 업종을 넘어, 지역을 넘어, 산안부서를 넘어 가히 전국적인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2005년 하이텍공대위 투쟁은 그 실천의 면면에서도 여러가지 성과를 남겼다. 근로복지공단 앞에서 반년을 넘게 이어간 노숙 투쟁의 끈질김이나, 45일간의 집단 단식과 공단진격투쟁 등의 선도성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투쟁을 참여한 모든 이들의 직접 실천으로 집회를 만들어가고, 집회와 교육과 놀이가 어우러져 모두가 주체가 되고, 또한 모두가 책임을 나누는 공동 기획, 공동 실천, 공동 책임의 기풍 역시 반드시 이어가야할 소중한 결실이다.

2006년 노동안전보건투쟁의 정세와 과제는 바로 이런 현실 위에 있다. 자본은 노동부와 일부 친자본 전문가들을 방패로 삼고 경총을 나팔수 삼아, 노동안전보건투쟁의 내용과 주체가 확장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한층 박차를 가할 것이다. 이른바 ‘3대 독소규정’을 휘두르는 근로복지공단이 그 선봉장을 자임하는 것은 물론이다. 또한 자본은 노동유연화를 위해 십년동안 해온 것처럼, 이미 몇년 전부터 노동자 건강권 문제를 자본의 현장통제 수단으로 활용하기 위해 많은 돈과 노력을 쏟아붓고 있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면 노동안전보건투쟁도 몇년을 내다보면서 목표를 명확히 하고, 목표를 위한 실천의제를 세워 매 시기 해야할 역할과 임무를 실천하면서 나아가야한다. 이에 아래에서는 2006년 노동안전보건투쟁의 목표와 실천의제를 간단히 짚어보겠다.


4. 신자유주의 분쇄, 노동강도저하와 현장통제쟁취로부터


누군가 ‘광란의 자본주의’라고 표현한 것처럼, 어떤 겉모습을 하고 있더라도 자본주의는 노동자에게 억압과 착취를 강요할 수밖에 없지만, 신자유주의는 그 광폭함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지경이다. 신자유주의의 결과는 점잖게 말해서 ‘양극화’지만, 노동자 민중에게는 오로지 ‘빈곤화’ 밖에 없다. 반대쪽 끝으로 올라설 가능성은 로또에 열번 연속 당첨될 확률보다 더 낮다.

그 양극화를 해결하는 것과 한미자유무역협정을 성사시키는 것이 노무현 대통령의 올해 주요 과제라고 한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도구인 자유무역협정을 추진하는 정권이, 그 필연적 결과인 양극화/빈곤화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고는 누구도 기대하지 않는다.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조차 누릴 수 없는 절대 빈곤선 아래로 끝없이 추락하지 않으려면, 신자유주의를 막아내는 것 말고 선택할 답은 없다.

그런데 신자유주의는 이미 일터 구석구석까지 공격해온지 오래다. 그 결과, 노동강도는 나날이 강화되어 골병과 과로사가 끝없이 쏟아져나오고, 노동자의 현장권력은 자본의 탄압과 포섭이라는 이중전략에 잘근잘근 짓밟혀 말 그대로 돈과 물량의 ‘노예’가 될 지경이다. 노동안전보건투쟁은 신자유주의 공세로부터 노동자의 몸과 삶을 지키는 싸움이다. 그렇다면, 노동강도를 낮추고 노동자 현장통제를 쟁취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몇년, 몇십년을 걸고 이루어야 할 목표임은 분명하다.


5. 노동안전보건투쟁의 핵심 고리 - 4대 실천의제


그렇다면, 노동강도 저하와 노동자 현장통제 복원의 목표를 향해 2006년 노동안전보건투쟁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노동조합 ‘산업안전부’에 갇혀있던 안전보건투쟁을 일상적인 현장 실천으로, 지역의 연대투쟁으로, 전국적인 투쟁으로 일으켜 세우기 위해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 또한, ‘산재인정투쟁’과 ‘예방투쟁’을 아우를 수 있는, 올 한해의 실천을 바탕으로 일년, 이년, 십년 뒤까지 발전시킬 수 있는 실천 의제는 무엇인가.


실천의제1. 교대제로부터 생명 지키기 - 심야노동 철폐!

교대제는 자본에게는 이윤율 극대화를 위해 노동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수단이지만, 노동자에게는 몸을 해치고, 사회적, 문화적, 정서적 장애를 일으키는 원인이다. 그러나 교대제를 어떻게 운영하는지를 결정할 때 노동자의 뜻이나 몸, 그리고 삶이 어떠한지는 전혀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는다.

최근 완성차 사업장을 중심으로 ‘주간 연속 2교대’가 논의되고 있다. 교대제의 문제점들 중에서도 심야노동의 해악은 특히 극심하기 때문에, 심야노동 철폐는 교대제로부터 노동자의 생명을 지키는 첫 발걸음일 수 있다. 물론, 심야노동 철폐는 노동자의 몸과 삶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요구일 뿐이며, 그것이 곧바로 노동자의 건강과 삶의 질을 보장해주거나, 자본의 이윤율에 타격을 주지는 않는다.

그런 점에서 심야노동 철폐는 교대제 문제의 근본 해결이나 완벽한 대안일 수는 없지만, 중요한 시작임은 분명하다. 특히 완성차와 조선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는 한국의 제조업 체계를 고려한다면, 앞으로 상당한 범위의 파급력을 가질 것으로 예상된다. 나아가 서비스업에서도 심야노동을 확대시키고 있는 최근의 흐름을 본다면, 심야노동 철폐는 ‘24시간 노동하는 사회’를 구축하려는 자본의 시도에 맞서는 투쟁의제로 적극 발전시킬 문제라 하겠다.


실천의제2. 숨 돌리며 일하기 - 휴게시간 확대! 작업 중 여유율 확보!

하루 노동시간과 총 노동일 수를 줄여 작업장에 매어있는 시간을 줄여가는 것은 시간과 장소를 뛰어넘어 모든 노동자들의 오랜 소망이다. 그러나 아직 하루 8시간 노동, 주 40시간 노동은 대다수의 노동자에게 머나먼 꿈일 뿐이며, 긴 노동 중에 주어지는 휴게시간조차 피로 회복은 커녕 최소한의 생리적 요구를 해결하기에도 빠듯한 것이 현실이다.

왜냐하면 노동시간의 길이와 작업밀도를 결정하는 데 노동자의 건강과 필요는 전혀 고려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 결정하는 유일한 기준은 자본의 생산계획, 즉 자본이 달성하고자 하는 이윤 계획밖에 없다.

따라서 궁극적으로 노동시간 단축을 지향하되, 우선 휴게시간을 확대하고 작업 중 여유율을 확보하여 숨이라도 돌리며 일하자는 것이다. 일하다가 다치거나 병들지 않을 뿐 아니라 피로가 누적되지 않도록, 노동자의 건강을 기준으로 휴게시간과 작업밀도를 결정하자는 요구가 그 시작이다.

한편 휴식시간은 노동자의 건강 뿐 아니라, 현장의 활력에도 중요한 요인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일하는 중간 짬을 내어 개인적으로 몸을 쉬는 것과 달리, 모두가 함께 일손을 놓고 쉴 수 있는 집단 휴식은 노동자의 불만과 정서를 나누는 반란의 시/공간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노동안전보건투쟁이 축적해 온 성과들이 있기 때문에, ‘숨돌리면서 일하자’는 막연한 구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요구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즉, 노동자의 건강을 기준으로 할 때 과연 얼마나 휴게시간을 늘려야 하며, 작업밀도를 어느 정도로 낮추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요구는 노동자의 건강과 노동조건에 대한 문제제기일 뿐 아니라, 이를 결정해온 잉여가치, 즉 자본에 대한 문제제기이기도 하다.


실천의제3. 유해요인으로부터 벗어나기 - 작업중지권 복원!

작업중지권은 단순히 위험 작업을 거부하는 소극적 권리가 아니라, 모든 위협으로부터 벗어나 노동조건을 노동자에게 맞추기 위한 적극적인 권리이다. 이 때문에 작업중지권을 제도화하기 위해 노동운동은 무던히도 애써왔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노동운동의 수세기로 접어들면서, 일부 사업장을 제외하고는 작업중지권을 전혀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이제 물리적 요인이건 화학적 요인이건, 혹은 골병이나 과로사를 초래하는 위험 요인이건, 그것들로부터 노동자 스스로 벗어나려는 노력을 복원해야 한다.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위험으로부터 자유로와지고자 하는 대중적 노력과 실천이야말로 현장 노동안전보건투쟁을 되살리는 길이다.


실천의제4. 치료 좀 제대로 받자 - 근로복지공단 3대 독소규정 폐기!

근로복지공단은 3대 독소규정(근골격계 질환 인정기준 처리지침, 요양업무 관리지침, 집단민원대응지침)을 이용하여 산재불승인 남발, 요양자 감시와 강제치료종결 등 노동자 탄압의 무기로 휘두르고 있다.

이러한 공단의 만행은 2005년에 이르러 전국 각지의 대 근로복지공단 투쟁을 통해 백일하에 드러났다. 산재노동자의 치료권을 제한하는 것은 단지 법 조항의 문제만이 아니었다. 또한 우리는 3대 독소규정이 이미 법을 뛰어넘는 위력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이후 산재보험법 개악의 방향타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노동안전보건운동 진영은 노동자의 관점에서 산재보험을 개혁할 방향과 내용을 마련하는 것과 함께, 현재 산재보험의 반노동자적 문제에 맞서는 실천적인 과제를 명확히 해야 한다. 공단 3대 독소규정 폐기는 산재보험의 개악을 막고 노동자를 위한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과제인 동시에, 지금 현실에서 고통받는 산재노동자들의 분노와 요구를 조직하는 실천의 시작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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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5/02 00:23 2006/05/02 0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