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전문가

from 콩구르기 2010/05/24 01:23

그래, 그런 '전문가'도 있지.

아니, 많겠지.

 

삼성반도체 암 피해자들 중 여섯 분이 산재 불승인 판정을 받은 것에 대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시작했다. 아직 본격적인 재판은 열리지 않고, 서면 자료들을 제출하고 있는 중이다. 오늘, 사무실에 나가서 피고 측이 제출한 자료를 받아보았다. 피고는 근로복지공단인데, 이 자료는 피고 측 보조 참고인이 보낸 자료다. 그게 누구냐면, 삼성이다.  왜 이 사람들이 산재 인정을 받아서는 안되는지를 무려150쪽에 걸쳐 설명하고는 그 끝에 변호사 일곱 명의 이름을 늘어놓았다. 법무법인 이름을 검색해보니 엄청나게 큰 로펌이었다. 수임료는 얼마씩들 받았을까. 삼성에서 돈 한 푼 나가는 게 아닌, 근로복지공단에서 지급하는 산재보험인 것을, 그마저도 못타게 하려고 돈을 얼마씩들 쓴 걸까. 그래, 그런 전문가들도 있겠지.

 

최근 한겨레21을 비롯해 하니tv와 인터넷 한겨레를 통해 삼성반도체 문제가 연재되었다. 박지연씨 49재 추모문화제를 마친 뒤에 하나씩 차근히 읽어보니 어떤 사람이 유난히 덧글을 도배하고 있었다. 내용으로 보나 어조로 보나 안전보건 쪽에 대해 좀 안다 싶은 사람 같았다. 뭔가 억울하고 분한 감정이 묻어나오는 걸 보니 회사 쪽 안전보건 담당자가 아닐까 했다. 제 딴에는 열심히 안전보건관리를 했는데 자꾸 문제가 있다고 보도하니 열받을 수 있겠다. 

 

헌데 오늘 자료를 따려고 다시 기사를 읽다보니 헐... 며칠 새 덧글을 또 달았고, 사뭇 감정도 실렸다. 심지어 한토마에는 매우 강력한 그리고 아주 감정적인 항의의 글까지 올려두었다.

(http://hantoma.hani.co.kr/board/view.html?uid=86822&cline=&board_id=ht_society:001016&cline=8)

 

좀 한심하기도 하고 밉기도 하여 너 누구냐 싶어 아이디를 검색창에 넣어보았다. 에라이..... 내심 혹시 이 양반이 아닐까 짐작했던 전문가가 맞다. 사실 전문가들이 흔히 취하는 제3자의 태도, 혹은 조금이라도 객관성을 유지하려는 태도(내가 그리 좋아하는 태도는 아님)가 아니라 '나 삼성전자 직원이요'하는 티가 너무 났기 때문에 설마 아니겠지 했더랬다.  아무리 삼성 쪽 일을 보는 입장이라고 해도, 삼성 직원도 아니고 그래도 교수인데 뭘 이렇게까지 충성을 할까 싶었던 거다.

 

삼성에 대한 그의 철통같은 믿음과 적극적인 옹호는 과연 무엇에서 비롯된 것일까. 

그래. 그렇구나. 그런 거지.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아니 그런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면서 뭘 또 나는 이렇게 놀라고 실망하는가.

 

곰곰 생각해보면, 나는 산업보건을 하는 사람들에게 뭔가, 일말의, 기대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뭐랄까, 이런 저런 면에서 입장이 다를 수는 있지만, 아무리 달라도 천안함 사고 원인으로 초첨단 스텔스 어뢰에 매직으로 적혀있는 북에서 쓴게 틀림없는 글자를 찾아낸다거나, 투표로 말하라면서 당 활동을 하는 건 불법이라 하고 불법도 해고 사유가 될 만큼 어마어마한 불법이라고 우기는 것들과는 전혀 상관없는, 그런 사람들이 산업보건을 하는 거라고, 아마 나는 믿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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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24 01:23 2010/05/24 0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