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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08/08
    카프카
    공돌
  2. 2006/08/07
    친구 유학가다
    공돌
  3. 2006/08/06
    "새는 좌우로 난다"에 대해..
    공돌
  4. 2006/08/06
    포도주
    공돌
  5. 2006/08/06
    유언
    공돌
  6. 2006/08/05
    오늘의 말씀Drei
    공돌
  7. 2006/08/05
    오늘의 말씀.zwei
    공돌
  8. 2006/08/05
    오늘의 말씀(1)
    공돌
  9. 2006/08/05
    불편케 하는 글쓰기
    공돌
  10. 2006/08/05
    결과가 이렇군
    공돌

카프카

"혁명이 증발하면 나중에 남는 것은 새로운 관료정치의 진흙뿐입니다. 괴로운 인류의 쇠사슬은 관청 용지에서 생겨납니다."

 

- 박홍규, 카프카평전, 4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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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유학가다

짧게 지금 이 기분만 남겨둔다.

 

모호한 감정들. 그이와 나 사이에 있었던 교감들이 스쳐 지나간다.

 

갈테면 즐거이 가라. 새 삶을 시작하는 것이 새로 태어나는 것 만큼이나 중요한 것이니깐.

 

잘 갔다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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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는 좌우로 난다"에 대해..

난다는 사실에 지나치게 관념적으로, 언어의 메타포적인 것에만 매달렸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결국 대가리가 날개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 아니겠는가. 어디로 날아갈지의 방향. 왼쪽이든 오른쪽 날개든 간에 사실 모든 방향은 대가리가 결정하는 것인데.

 

좀 더 생각해 볼 일이다. 다시 정돈해서 써봐야 겠다. 그냥 글쓰기 연습으로 말이다. 이미 말한 것과 같이 이 같은 생각의 본질에는 변함은 없다. 

 

글쓰기 연습이 많이 부족하다. 그리고 너무 거칠고 논리적 전개가 너무 허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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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주

김정환 선생이 술은 정신과 관계된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비싼 술은 좋은 술일 가능성이 높다.

 

여하간 싸구려 술은 속에 별로 좋지도,

 

두뇌작용에도 별로 좋지 않은 것 같다.

 

9천원짜리 한 병 마셔봤는데, 병마개를 여는 것부터

 

영 시원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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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언

45갑바 형님이 죽었다. 그 형님의 이야기를 옮겨본다.

 

"내 나이 45살. 그래 든든한 배우자 없이, 이 낡은 골방에서 오늘을 선택했다. 그리고 이제는 아버지도, 어머니도 없는 이 방에서 나 홀로 나와 함께 그득히 깊은 술잔을 들이키고 있다. 내 옆에는 나와 함께 하던 의자와 내 키 길이의 나일론 끈을 하나 두고 잇다. 그리고 이 글을 쓴다. 살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러한 모습이 나를 더이상 지켜주지 못함에, 나의 부모와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제는 모두 지구를 떠났음에, 나도 함께 떠날려고 한다."

 

그 형님은 아쉽게도 자신의 삶을 스스로 정리하려고 한다. 말릴 여유도 시간도, 단서도 없어 그냥 그는 그렇게 글을 잇고 있었다.

 

"과거는 묻고 싶지 않다. 미래가 보이기에 나는 지금의 선택을 믿는다. 그러나 누구도 이러한 선택에 대해 어떠한 평가도 없었으면 한다. 그 평가가 나를 평가절하하는 것이든 아니면 나의 인생에 불구한 모습을 반영하듯 이 같은 똘아이를 요절이라는 낭떠러지로 모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그는 결혼을 하지 않았다.

 

"나는 결혼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러나 사랑의 연속적 결정, 다시말하면 오래동안 그와 함께 사랑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진지하게 언약했다면 나는 그것을 선택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누구도 그러질 못했고, 나 또한 나의 이기와 연약한 세상살이의 아픔으로 더 이상 한 발걸음도 나아가질 못해다. 누구의 탓도 하지 않는다. 결혼이 죽음에 대해 일시적으로 혹은 장기간 삶에 대한 끈기를 제공하지는 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지금 그러한 조건과 상황이 아니고 그러한 조건과 상황에 대해 후회도, 절망도 하지 않는다."

 

그는 참으로 외로운 사람이었나 보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내가 볼 때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다. 더 이상 자신을 발견할 새로운 것도, 자신을 통해 타인을 보는 것도, 타인을 통해 자신과 교감하는 것도 자신이 없었나 보다.

 

"나는 오늘 여기를 떠난다. 아름답게 떠나고 싶다. 그것이 남들의 환송을 받으면 가는 것이 항상 아름답다고 여기지 않는다. 나는 비록 오늘 떠나는 것이 외로울 수 있다. 그렇지만 지금의 삶에서 내가 나의 우주를 소멸시키는 거대한 자유를 내가 온전히 가져갈 수 있다는 생각은 나만의 것이다. 그것이 이기적이든 어떻든 간에 나는 내 우주의 한계와 소멸의 정점을 내 스스로 규정짓고 간다. 아쉽게도 생명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지 못해서 미안하다. 그러나 나의 모든 신체장기는 여기에 두고 간다. 그것이 다른 사람에 쓰일 수 있는, 가동력있는 물건이었으면 좋겠다.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나는 모든 신체와 장기를 필요한 사람에게 기증한다. 그리고 나는 떠난다."

 

그는 마지막으로 이야기 했다.

 

"나를 생각치 마라. 생각한다고 나는 너희들이 어떤지 모른다. 그냥 생업에 충실해라. 나는 즐거웠고 또한 즐거워해준 너희들을 사랑한다. 잠시 여기 들렀다가는 사람처럼 생각해주기를 바란다. 그게 내가 편해. 나는 잠든다. 잠든 나를 깨우는 것은 실례다. 너희들이 아름다움 삶에 내가 방해되지 않았으면 한다. 그냥 나는 갈 뿐이다. 모두들 마지막까지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말기를. 나는 모든 것이 한가롭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떠났다. 아무말도 없이. 그러나 많은 말을 남기고.

 

뱀발: 픽션입니다. 써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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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Drei

한 여자아이와의 짧은 종교에 대한 대화 중,

 

"사람의 무지로 하느님을 정의하지 마라."

 

씨발, 그럼 왜 너희들은 하느님을 증명할려고해? 상식적으로 그 존재를 증명하지 못하면 어떻게 증명을 하냐고?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어쨋든 그 아이의 말은 거의 '명언'에 가깝다. 그러나 이미 '광신', 아니면 '빠'수준에 가까운 사람들에게 무슨 논리가 있겠는가. 그냥 싫은 거지뭐. 맑스를, 로자를, 루신을 그냥 대놓고 씹어 재끼면 그리 좋을리는 없겠지만(물론 정확하고 날카로운 비판은 언제나 나를 깨어있게 한다. 그들은 종교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단 나는 내 생각을 알고 싶다는 그이의 주문에 그대로 나는 답을 했을 뿐이다. 답의 내용?

 

길게 설명하지 않겠다. 나는 기쁠때는 무신론자이고, 슬플때는 불가지론자이다. 그 사이에서 논다고 보면된다.(나중에 한 번 정리하자.)

 

짧막하게 나마 휘갈겨 본다. 김홍도라는 목사가 있다. 그 목사는 '쓰나미'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충의 내용은 이렇다.

 

`쓰나미에 희생된 사람들은 예수를 제대로 믿지 않는 자들이다'

 

쓰나미가 비교적 따뜻한 지방에 사는 사람들을 뒤엎어 버린 것을 보고 한 목사님께서는 하느님 안믿어서 그렇단다. 재수없다고 하기에는 사태는 좀 심각하게 느껴진다. 물론 논리적으로 대응하고 싶지 않다.나는 개인적으로 볼 때, 모든 문제의 책임은 목사님이 아니라 그들이 신주단지처럼 받을어 모시는 하느님 때문이라고 본다.

 

그가 말하는 하느님은 항상 불의 심판을 내리시고, 물로 쓸어버리는 하느님이다. 과격하신 분이다. 얄전없다. 걸리면 쥐뿔도 안남는다. 인도네시아, 그곳에 이슬람이 87%다. 그외 그리스도교를 가진 사람이 9%다. 쓰나미에 9% 중 하나도 죽지 않았다면 일단 하느님 존재를 인정한다. 그리고 졸렬하기 짝이 없는 하느님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 그러나 그럴 필요까지도 없다.

 

자기를 믿지 않으면 다 쓸어버리는 자기들의 하느님. 그건 신통력과 전지전능을 가진 조폭두목에 불과하다. 왜 신은 평화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늘 그런 식일까. 위협하고 두려움을 주고(갑자기 부시가 생각나는 이유). 그 중에 자기를 믿는 사람이 과연 없었을까. 믿음의 정도가 견고하지 않아서 쓸어버렸을까. 일단 하느님 책임. 있다.

 

두번째, 하느님이 책임져야 할 것 중에 또 하나가 있다. 바로 자식교육이다. 목사든 누구든 간에 전부 하느님의 자녀라고 한다. 그래 좋다. 하느님의 자녀라고 해두자. 구닥다리 쉰냄새나는 콤플렉스 덩어리인 시오니즘같은 느낌이 들지만 일단 제쳐둔다.  

 

어떻게 자식새끼하나 제대로 관리 못하나. 그 책임의 내용은 크게 두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하나는 그런 똘아이 망발을 하는 그런 하느님의 자녀. 부모의 가정교육이 잘못된 탓이라고 본다. 그 목사님을 똘아이로 만든 것이 하느님이다. 하느님. 이 타임에서 반성해야 한다.

 

그리고 그 하느님의 자녀분, 최근에 공금횡령으로 대법원까지 가서 유죄판결 받았다. 또한 교회를 세습하다 주변 동료 목사들에게 진탕 맞고 있다. 슬프기 그지없다. 이 부분에 있어서도 하느님. 해명하셔야 한다. 당신을 안믿는 놈이 하느님을 배반한 것은 아니지 않는가. 믿는 자식이 저렇게 방방뜨고 법원에서 유죄판결까지 받고 있는 현실. 하느님. 쪽팔리지 않는가.

 

스티븐 호킹이 말했듯이 신이 있든 없든 간에 우주는 대체로 잘 운영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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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zwei

김규항의 말.

 

아이들은 제 아비의 계급이나 지역 따위에 아직은 제 정신을 앗기지 않은 상태에 있다.

 

요기서 봤다. http://gyuhang.net/archives/2003/11/

 

과연 그런가? 그이의 글과는 관계없이 생각해본다.

아이들을 너무 얕잡아 보는 듯하다. 요즘 아이들, 알건 다안다. 고래가 그랬어라는 책 하나를 가지고 그렇게 이야기하기란 어렵다. 스타크래프트(나는 다행히도 할 줄 모른다)를 부자든, 서민이든 다 하는 것과 같은 것 처럼. 여하간 이 이상의 언급은 오바다. 넘어가자.

 

아이들(가능하면 어린이들이라고 쓰자.)은 경험과 돈만 없을 뿐 어른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버나드쇼가 말했듯이, 역사가 경험을 통해 진보한 것이 아니라 그러한 경험에 대한 대응방식으로부터 진보했다는 이야기. 이걸 어릴 때부터 배운다.

 

어린이들, 무섭다고 하지만 내가 볼 때 지극히 정상이다.

김규항은 아마도 정말 '상태'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한 것은 아닌가 한다. 그래서 그러한 계급과 지역(아마도 지역감정 등을 말하는 것이리라, 그러나 지역색이 강한 말투라도 서울말에 대해 크게 위력을 못가진다 )이 언제가는 그들의 정신을 앗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는 뜻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실제로도 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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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이나리의 <열정과 결핍> 중에서 읽은 부분.

 

이윤기와의 인터뷰에서 나오는 다음 구절. 41쪽에는 두 가지 이야기가 나온다.

 

하나.

 

스파르타에서 전해오는 이야기.

 

"아버지, 칼이 너무 짧아 찌를 수가 없어요."

"얘야, 한 발 더 가까이 가서 찌르려무나."

 

두울.

 

미꾸라지를 산 채로 횟집까지 운반하려면 그 안에 메기 한 마리를 집어넣으면 된다지요. 메기로부터 달아나려는 필사의 생존본능이 미꾸라지의 수명을 한참 늘려 놓는다는 겁니다.

 

이 둘의 이야기와 비슷한 것이 카네기의 말이다. 출처는 모르나, 카네기의 말.

 

'바람불지 않을 때에 바람개비를 돌리는 방법은 앞으로 달려가는 것이다'

 

모든 이야기가 성공과 결부되어 부담스럽다.

목적에 도달하는 것만이 인생의 참 맛인가. 오늘은 유난히 그런 생각이 많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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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케 하는 글쓰기

1. 여기 기능을 좀 더 연구해야 겠다.

 

 

2. 글쓰기로 사람을 불편하게 한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성격성 육체적으로 말로 상대방을 불편케하는 일에는 익숙한 터라,

 

글로 토론하는 것은 장시간 사색을 요하는 일이라

 

나로서도 구차한 변명이 많아진다. 불필요한 일이다. 더군다나 어디서 주워서

 

끌어다 퍼담아 쓰는 나로선 곤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여기 글은 일기에 가깝다. 덧글 쓰신 양반의 글에도 내가 그리 적어놓고 왔다.

 

피해를 가지 않도록 일기를 써야겠다. 쓸데없이 남의 글이 봐가지고.

 

 

3. 그리고 오늘에야 알았다. 글을 쓰면 블로그 대문에 쳐발리는 것을 모르고 쪽팔리게

 

요기 안방에서 뒹굴고 지랄발광을 하고 있었으니. 빠른 시일 내에 '기능'을 전수받고

 

학습과 반복훈련을 거듭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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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가 이렇군

あなたは現代フランスの哲学者 サルトル です。

당신은 현대 철학자 사루토루(샤르트르)입니다.


非常に実際的なあなたは,頭で考えられた奇麗な言葉を嫌い,具体的に実践されたものを評価するところが あります。行動的で実行力があるので多くの人に 信頼されますが,独特の感性を持った人には嫌われる かもしれません。

 

매우 실제적인 당신은, 머리로 생각할 수 있는 깨끗한(아름다운) 말을 싫어한다. 구체적으로 실천된 것을 평가하는 점(태도)이 있다. 행동적이고 실행력이 있으므로 많은 사람에게 신뢰 받지만 독특한 감성을 가진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지도 모른다. 


特徴:(특징)
実際的で言葉だけでは納得しない。 실제적이어서 말만으로 납득하지 않는다.

適職:(천직)
雑誌記者,知事 잡지기사, 지사(이건 무슨 뜻인지?)

相性良:(적합성 좋음)
ソクラテス,バタイユ,メルロ=ポンティ 소크라테스, 바타이유, 메루로=폰티

相性悪:(적합성 안좋음)
プラトン,デカルト,カント 플라톤, 데카르트, 칸트

ラッキーワード:(럭키워드)
『実存は本質に先立つ』『アンガージュマン』 실존은 본질에 앞장선다. 안가-주만(ㅋㅋ'앙가주망'이겠다.)


精神レベル:B 思考レベル:A 実践レベル:A

정신레벨: B      사고레벨: A      실천레벨: A

 

요기서 하시면 됩니다.  http://www2.tky.3web.ne.jp/~bites/tet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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