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민주노총 게시판(1)

1. 이에 민주노총 입장이 사태 향배를 결정짓는 중대 변수임을 예고한다. 민주노총은 11일 중앙집행위원회의를 열고 최종 입장을 정하기로 했다. 경향신문 10일자.

 

한편 민주노총 자유게시판

 

2-1. [현장에서] 김영훈 위원장님. 노동조합 사무실에서 통합진보당 비례 투표를 했습니다. 근데 저를 비롯한 많은 사람이 부정을 행했다고 합니다. 위원장님이 나서 주셔서 진상을 밝혀 주십시오. 부탁 드립니다.

2012.05.09 15:36:58

 

2-2. [조합원] 존경하는 위원장님. 저는 노동조합 사무실에서 당 비례 투표를 했습니다. 근데 그게 비리라고 합니다. 밝혀 주십시오. 전국의 많은 노동자들이 부정으로 몰리고 있습니다. 위원장님이 나서주십시오.
2012.05.09 15:35:07
 

2-3. [댓글: 금속조합원]그게 어느 노동조합인지 밝혀보세요. 민주노총에서 산별본조말고 노동조합이라고 부르는 산별이 어디인지 엄청 궁금하네요. 어느 산별 본조에서 투표하셨나요?

 

2-4. [현장] 위원장님. 현장에서 당원 투표 했습니다. 저는 부정을 일으켰습니다. 아니 같이 투표한 사람은 모두 부정투표 한 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 민주노총 위원장님이 나서 주십시오

2012.05.09 15:32:20
 
2-5. [현장순회] 김영훈 위원장님..당 비례투표 문제로 현장이 혼란스럽습니다. 노동조합 사무실에서 투표한 조합원들이, 부부가 가족이 같이 집에서 투표한 조합원들이 모두 부정선거의 오명을 둘러쓰고 있습니다. 현장이 혼란스러울 때 제일 먼저 지도부가 나서야 하지 않습니까?? 현장 의견에 귀기울여 주십시오
2012.05.10 09:56:38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이석기씨, 물밑 행보..

안타깝다...자신이 논란의 핵심인데도 불구하고, 학생회..운동권 선배가 섭정하듯 물밑에 숨어 있는 꼬라지 하고는...

 

친구놈에게 전화가 왔다. 전순옥에게 무슨 화환이 왔다는데, 이석기라는 사람이 당선축하 화환을 보냈다는 것이다. 총선이 지나고 한 달이 되어 가는데, 이 난리통에 화환을 보낸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보낸 것인지 물어보라 부탁했으나, 마음이 어지럽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김진숙 오다

노조에서 김진숙 동지를 불렀다. 먼 길 마다 않고 오셨다. 건강 회복 보다 바쁜 일정이 더 곤혹스럽겠지만, 그래도 미소가 자욱하다. 그녀의 강연은 열정적이고, 마지막 조합원들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그녀가 머리 속에서 꺼내들어 읽어내린 시 한편이 마음을 먹먹하게 만든다.

 

계약직 - KTX 여승무원이 되고 나서

 
김명환

KTX 여승무원이 되고 나서
나는 껌을 씹지 않는다
컵라면도 통조림도 먹지 않는다
봉지 커피도 티백 보리차도
드링크도 탄산음료도 마시지 않는다
물티슈도 내프킨도 종이컵도
나무젓가락도 볼펜도 쓰지 않는다

눈이 하얗게 내리던
크리스마스 이브
아스테이지에 돌돌 말려
빨간 리본을 단
장미 한 송이 받아들고
나는 울었다
내가 불쌍해서
한번 쓰고 버려지는 것들이
가여워서
눈물이 났다

제복을 입고 스카프를 두르면
어느 삐에로의 천진난만한 웃음보다
따뜻하고 화사하게 웃어야 했지만
웃으면 웃을수록
자꾸 자꾸 눈물이 났다

사는 것이
먹고 사는 것이
힘든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구차하고 비굴하고
가슴이 미어질 줄은 몰랐다

KTX 여승무원이 되고서야 나는
이 세상이
한번 쓰고 버려지는 것들의
눈물이라는 걸 알았다
흐르고 넘쳐
자꾸 자꾸 밀려오는
파도란 걸 알았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뽀르노 보다 더 진한, 그들...(마지막)

하루가 지나고 다시 글을 이어보오. 정리는 해야 할듯. 괜히 시작을 해서리.

 

소위 당랑권파 소속의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사람들이 있든 말든 간에, 주체사상이 아닌 김일성, 김정일, 김정운을 잇는 빠들이 있든 말든, 그건 나와 관계없는 일이오. 그것도 사상의 자유라면 인정하겠소. 하지만 그 사상에 대해 사회적인 비난을 할 자유도 있는 법이오. 주사파라고 하는 작당 세력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으나, 그들이 신사적이고 도덕적이었다면 이런 비난을 할 필요가 없는 것 아니오.

 

오늘까지 작금사태를 언론을 통해 엿봐도, 희망적인 얘기는 없소. 그들은 결국 MB심판이든 뭐든 간에 오로지 자기들만 살고자 하는 생존한계에 도달해 있는 것 같소. 이미 그런 한계에 있기에 도덕이든, 사회적 가치든, 민주주의든 그런 거 따위는 관심없소.

 

오로지 자기들을 합법적 장치 속에 묻어둘 곳, ‘정당’이라는 진지를 잃는다면 그들은 결국 자멸할 게 뻔하오. 그런 점에서 더럽더라도 분당은 절대 안되오. 이번에 분당하고 갈라치기 한다면, 더 이상 진보적 가치 운운할 필요도 없이 그냥 씨바, 민주당으로 옮겨 타든가, 아님 아예 극소수 정당, 노동자혁명당 같은 비합법 전위정당으로 갈아타든가, 결단하시기 바라오.

 

누구 편을 드는 일이 사실 불편한 나로서 당랑권파든, 평등파든 세력을 가진 쪽이 그것을 전횡할 때 생기는 문제들을 모르는 사람이 어딨겠오. 그게 사실 꼬라질 보면 MB랑 뭐가 다르냐 이거오. 이건 꼭 당랑권파만의 문제는 아니오.

 

유시민씨도, 심상정·노회찬씨도, 다들 책임 없는 사람이 어딨겠오. 적어도 그들은 이런 작태들을 안고 시작했고, 모를리 없을 거라 생각이 드오. 정치적 견해가 완전히 동일해서 견우직녀처럼 대상봉을 한 케이스면 모를까, 그런 경우가 아닌 견해차가 분명히 존재하는 정당이 통합을 했다면, 이미 통합시점부터 ‘분열’은 시작되는 거오.

 

다시 말하면 끊임없이, 분열을 막으며 똘똘뭉쳐야 하는 이유가 ‘통합’이라는 단어에 내포되어 있는 거 아니오. 씨바, 작금 인간으로서 함량 미달인 자들이 저렇게 고함을 치고, 발악을 하고 있을 때 적어도 그들을 진단하고 처방할 수 있는 건 두 가지오. 마음 같으면, 그들을 북송하고 싶으오. 난 여러 차례 당랑권파 사람들을 개인적으로 만나온 바 있으며, 그들에게 몇 번 돌직구를 던진 적이 있소.

 

“니네들은 종북주의자가 아니야. 북한 사람이지.”

 

여튼 그들 실체가 뭐든 간에, 그들 생각을 바꿀 수도 바뀔 가능성이 전무하다는 전제 하에서 일이 진행되어야 하오. 우선 병원으로 보낼 사람과 북한으로 보낼 사람을 구분해야 하오. 그리고 남은 사람에 대해서는 민주주의라는 것을 다시 가르칠 필요가 있다오.

 

민노당 시절 쪽수 부족으로 NL의 대거 입당을 받아들인 전차를 모르는 바는 아니나, 이제 NL도 PD도 모르는 젊은 오빠, 언니를 비롯한 우리 아버지와 같은 늙은 청춘들도 입당하고 있는 마당에, 이제 운동권 정당에서 벗어나야 되지 않겠오.

 

우리는 아니라고 해봐야, 여전히 평범한 시민들은 여전히 운동권 삽질에 기가 막혀 하고 있다오. 우리나라에 계급의식 가진 이가 몇 명이오. 한 850명 정도 되오? 한쪽에서 계급정당 운운하는 것도 문제오. 다른 한편 듣보틱한 인간 하나 구하려고 삽드립치고 있는, 공당의 의사결정 결과를 남자 성기로 알고 수용불가를 외치는 분들도 정리를 해야 할 때가 아니오.

 

이미 성형으로 끝날 수 있는 일을 개복까지 해야 하는 일로 저질로 놓지 않았오. 고름이 살이 될 수 없다오. 덜어낼 필요가 있다면 덜어내야 하오. 김진숙 동지 왈, 작금의 사태에, 트위터로 “현장이 무너진 자리, 종파만 독버섯처럼 자란다”고 하지 않았오. 다시 자리를 채우고, 박근혜 보다 못한, 새누리당을 못따라가는, 그런 개잡소리 비난 좀 안듣게 해달란 말이오. 종파가 그냥 식용 버섯이든, 숙주 나물이든 간에, 시작하는 시점, 곰팡이는 일단 제거하고 시작했으면 하오. 그래야 국민들에게 당당하게 통합진보당의 진짜 가치를 보여줄 수 있지 않겠오. 그때가 되면 나도 입당하리다. 당비, 체납한 적 없는 진성당원으로 말이오.

 

정치는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란 소릴 많이 하고 다니더이다. 고등학교 다닐 때 시사저널을 구독했다오. 그 때 김덕룡씨가 정치란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라는 말을 듣고 내가 얼마나 감동을 받았는지 모르오. 근데 그거, 씨바 인도 초대수상 네루가 한 말이오. 빼겨와서 지가 한 말처럼 여기저기 쏟아붇고 다녔다오. 작금 가오 세우려고 그 말 안하는 인간은 없다오.

 

그래서, 난 이렇게 다짐하오.

 

“씨바, 니네들이 내 눈물 닦아주지 않아도 돼. 아니, 닦지마. 가까이도 오지마. 니네들이 지금 울고 불고 염병을 하고 있잖아. 진정되면 찾아와서 닦아주고가. 기회를 줄테니. 니네들이 국민 우습게 보는 거 같은데, 국민 눈물, 이제는 아무나 못닦아. 저리가. 쪽팔려!”

 

끝.

 

 

가라! 북으로. 185억까지 보장한다. 근데 월북하는데 왜 남조선 돈으로 줘!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게 청첩장이란다. 저 글귀도 북한 소설 한 부분이라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뽀르노 보다 더 진한, 그들...(2)

여튼 이어서. 그 선거 결국 NL쪽이 패배했소. 우리가 이긴거라오. 근데 유쾌하지도 홀가분하지도 않았다오. 이미 15%이상 우리쪽이 이기고 있는 마당에 개표를 더 지켜볼 필요가 없어,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을 때쯤. 한 8시인가, 저쪽 NL 선본장이 나를 찾아왔더라오.

 

대취한 상태로. 그리고 그러면 안되는 거 아니냐는 뜬금없는 소리를 해대지 않소. 물론 그 당시 단과대 동아리방 공사에 대한 세부계획을 다 알고 있으면서도 모르쇠로 일관하며, 결국 학교측 제시안을 자기들 대안처럼 포장해서 공약으로 낸 것이 결국 까발려진 것에 대한 항의표시로 찾아온 것이었소. 거짓말은 자기들이 해놓고 말이오.

 

근데, 선본장, 너무 한 건 일단 대취한 상태에서 불쑥 찾아온 건 둘째치고, 그 놈의 발냄새는, 잊을 수가 없다오. 뭐 논리적인 얘기도 아니고 선거 지고 나니 속이 뒤집혀 온 건 이해가 가오. 그러다 하나 둘씩 모이기 시작하는데, 서넛 정도 마시고 있던 술자리에 우리 배가 넘는 사람들이 와 깽판을 치는 바람에 결국 자리를 피했다오.

 

나는 기본적으로 소심한데다 간이 작아 그런 일이 있으면 심장이 뛰고 말도 잘 못하는 사람인데, 어찌할 바를 몰라 자리를 옮길 수 밖에 없었다오. 무섭기도 했다오. 지글지글 타고 있는 쭈꾸미 불판으로 얼굴을 지질 줄 몰라, 불은 끄고 쭈꾸미 반이나 남았는데, 자리를 떴다 이거오.

 

그 이후로, 해괴망측한 일들이 일어나오. 학생회 문 앞에 똥을 싸놓는가 하면(참, 학교 망신이긴 한데, 난 모교를 이미 맘 속에서 지웠다오), 욕설은 예사에다 밤에 학생회실 문을 발로 차는 등 여튼 그때는 내가 졸업한지라 들기만 한 얘기, 기억나는 얘기들이 대부분 그런 것이었소만, 씁쓸한데다 찝찝하기 그지 없다는 얘기오.

 

돈 얘기...그런 얘기는 입 밖에 꺼내고 싶지도 않소. 여튼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일종의 유사한 행태가 곳곳에서 발견되고는 저 쪽을 보고서 오줌도 누기 싫었다는 말이외다.

 

주사파든, 자주파든, NL이든 간에 자주고름 입에 물고 하는 걸레같은 욕설과 말들, 행동에 적잖이 상처를 받은 나로서는 이번 통합진보당의 전국운영위원회를 녹화된 동영상으로 보고 있는 순간 온갖 트라우마들이 삽시간에 피부병처럼 번져 온몸에 소름이 끼칠 뿐이오.

 

게다가 회의 중간 중간 마다 소리를 치고 달려드는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10년이 더 지난 그 때의 대의원 회의나 총회에서 했던 작태들이나 지금 통합진보당 전국운영위원회나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오. 물론 나, 피해의식에 빠져 있는 나라는 사람의 얘기인지라 미친 돌아이 새끼 얘기라고 해도 난 논쟁하거나 반박할 수는 없소. 이미 내겐 그렇게 굳어진 경험들이고 무엇으로도 설득불가한 영역이 되버렸기 때문에.

 

그렇소. 나, 통합진보당 당원도 아니고, 더구나 우리 동네는 야권단일후보가 나와 민주당 후보를 찍었고, 비례대표도 통합진보당을 찍지는 않은 사람이긴 하오. 그래서 내가 주절대는 얘기가 그들을 향해 있는 것도 아니고, 난 오늘 지금, 내 찝찝함을 덜어내고자 몇 마디를 써내려 가는 것이란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해보오.

 

뭐, 신념따위 굳건한 사람도 아니고, 사상으로 칠갑한 적도 없는 평범한 사람인데, 과거 학생회 조금 해 본 경험이 이렇게 내겐 상처가 되어 있을 줄 몰랐던 거외다. 솔직히 운동권들의 그 음습함이나 멜랑꼴리한 분위기, 조직 위계, 편가르기, 후줄근함, 찌질함, 까칠함 뿐만 아니라 언제 올지 모르는 혁명, 말도 안되는 상상력의 신봉, 누구의 말대로 ‘상상된 (민중적)공동체’ 속에서 꿈란같은 종말론적 집단처럼 그렇게 보낸 시간들, 집회와 현장의 치열함 속에 언제 잡혀갈지 모르는 불안감 등등 나와는 근본적으로 맞지 않은 것을 견뎌낸 시간들이었오. 오직 책임감, 누구도 부여하지 않은 책임감 때문에. 으구, 씨바.

 

근데 통합진보당의 작태가 그런 꼴을 보여주고 있단 말이오. 예전 기억은 되돌려 놓고 싶지 않으오. 정말. 재미있으라고 쓴 것도 아니고, 내가 얘길 해야 앞뒤가 맞을 거 같은 강박 때문에. 또 한 켠에 내가 쓴 글에 누가 비난하고 난도질 할까봐, 겁도 나오. 그렇게 찝찝하고 겁이 나는 이유가 뭘까.

 

길게는 생각해보지 않았다오만 먼저 내가 통합진보당의 당사자도 아닌데 일단 다른 사람들에게 부끄럽다는 것이오. 김재연씨의 당당함이, 너무나 나에겐 창피한 일이오. 그녀가 싫고 좋고를 떠나, 한겨레 2쪽 상단과 경향신문 5쪽 상단의 그 표정에서 그 어린 친구의 고뇌 보다 똘기로 충만한 그 당당함과 기성정치인에게서 풍겨오는 그 대범함에 놀라오. 안쓰러워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오.

 

다음으로 당랑권파들이 전국운영위원회 개최를 막는 장면이외다. 손피켓을 들고 있는 그들의 표정에서 묻어나는 비장함은 촛불집회와 다름 아니었오. 결사항전을 불사하는 식민지 조국의 통큰 해방꾼들 마냥, 저 구국의 심정은 한 두해만에 만들어지는 건 아니오. 이미 신앙인의 단계를 지나 순교자적 헌신과 열반으로 가는 수도인들과 흡사하기 짝이 없단 말이오. 아마 고엽제, 북파 공작원 등 이들이 가스통에 불붙여 집회를 시작했을 때의 충격처럼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앞뒤 가리지 않는 그들이 무서울 수 밖에 없다오.

 

왜 무서울 수 밖에 없느냐면, 적어도 정치를 하는 정당에서 토론하고 협상하고 그런 여지 없이 신념으로, 신앙심으로, 순복음교회 신도들의 집단 항의와 다르지 않는, 그런 집단 최면에 놀랐다는 거오. 한 치도 양보할 수 없다는, 그들의 눈빛을 봐왔소. 인간의 품성을 그리 금과옥조처럼 외치는 이들이 결국 전장에서 폭탄들고 탱끄 밑으로 뛰어드는 것을 최고의 품성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다시 말하면, 그들은 그들이 목숨 걸 일이 아닌데, 목숨을 걸고 있는 극단을 보여주고 있기에. 난 그들의 광기에 놀라고 그것이 무섭소. 너무나. 다시 말하지만 난 트라우마 덩어리가 암세포 다발처럼 주렁주렁 매달린, 속좁고 겁많은 사람인지라, 이렇게 말하는 것 자체도 두렵소.

 

사상투쟁이라는 전장에서 가열차게 싸워오신 분들이야 작금의 사태를 관전하는 재미가 있으시겠으나, 난 여전히 이렇게 주절대고 떠들어도 맘이 좋지 않고, 계속 불안하고 불편한 상태오. 도대체 왜 이럴까 하는 생각이 드오. 가만히 스캔해 보니, 이정희 대표의 표정과 말에서 느끼는 찝찝함도 한 몫하오.

 

그녀의 말투, 그녀가 쌓아 놓은 신뢰. 물론 난 개인적으로 이정희씨 같은 사람에 대한 호감은 없으나, 그 동안의 얼굴에서 뿜어져 나오는 비장함은 결국 그것마저 광기로 연결되오. 면도날 하나도 들어갈 수 없는, 공기 한 줌도 비집고 새어나가지 못할 정도의 그 폐쇄적인 태도. 실망을 넘어 그 또한 무섭소. 사람이 저렇게 바닥을 보이는 구나, 하며 말이오. 에구, 힘들다...결론을 맺긴 해야 하는데. 마음 영, 시원치 않네....(계속)

 

에구..니미랄..짤방이나 하나 올려두오.

 


씨바, 이게 멘붕상태지뭐. 내가 이래. 지금.
 

사용자 삽입 이미지

 

MB 덕에 젊은 사람들, 정치 관심 가졌는데...결국 MB와 뭐가 다르냐능..으구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뽀르노 보다 더 진한, 그들...(1)

사실 바쁘오. 정말 바쁘오. 요즘. 한때 여기에 글을 올리고, 남의 글을 훔쳐보는 재미로 살았던 그 날들이 참으로 그립기만 하오. 가끔씩 글을 올리고 싶을 때면 몇 시간이고 고민해서 쓰기도 하고, 그냥 갈겨대기도 했지만 요즘에는 글 쓰는 것도 신통하지 않아 남의 글이나 잠시 빌려 읽으며 보낸 시간이 벌써 몇 해 째가 되는 구려.

 

여튼 각설하고. 이건 좀 남겨 둬야 겠다는 생각에 여길 들어오고 나니, 사실 다시 의욕이 사라지는 터라. 어찌할까를 고민하다, 결국 한글에서 한참을 쓰다 지우다를 반복하고 여기에 다시 올려보오. 씨바, 이거 누가 봐달라는 것도 아닌데, 왜 올리고 지랄인지는 모르나. 뭔가 이렇게 올려두면 누군가 공감하는 건 둘째치고 나 혼자 이 공간에서 떠들고 소리치고 나면 속이 좀 후련해질까봐.

 

요즘은 힘이 없어 보지 않으나,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뽀르노 잡지를 접하게 되었오. 그때 우리 동네는 배타는 아버지를 둔 아이들이 많았다오. 근데 걔네들 집구석에 놀라가면 그런 잡지 한 두 개, 비디오 테이프 한 두 개 쯤은 무슨 손님 접대용으로 다들 장롱 옥상이나 화장대 바닥에 꽂아두고 있었던 터라.

 

여튼 그 때 처음으로 뽀르노 잡지를 보고 난, 남자 아이치고는 굉장한 충격을 받은 걸로 기억되오. 친구는 나에게 호감의 표시로 그걸 보여줬지만, 난 그 때 솔직히 뭔가 모를 죄책감과 동시에 그 죄책감 속에서 피어나는 욕망 사이의 혼란스러운 감정들. 도대체 뭔가. 찝찝한 기분, 너무 조카튼 기분, 보고 싶지 않음과 다시 보고 싶음 속의 이중적이고 복합적인 말로 설명이 안되는.

 

그것도 계속 보면 중독도 되고 무감각해진다면서도...그 시절 그 패닉상태와 같은 마음 속 개떡같은 감정들이 뭔가와 계속 중첩되어 나타나냐 이것이 내 얘기의 핵심이오. 들뢰즈도 모르고, 가타리도 모르고, 보드리야도, 바티이유도 모르는 내가 이걸 휘황찬란하게 야부리까기는 불가능하고. 여튼 다이렉트로 첫 뽀르노 기억 이후 연결되는 유사 찝찝함으로 바로 넘어가오.

 

대학교 3학년때로 기억하오. 총학생회 선거에 관여하게 되면서 우리 선본에 치명적인 악재들이 쏟아지는 가운데, 결국 더러운 꼴 다보고 개망신 당해가며 완주는 했으나. 선거가 끝나고 선본 사무실로 썼던 동아리방에 신문지 깔고 모여 앉아 족발을 시켜놓고 술을 마시며, 남은 감정들을 정리할 때쯤. 같은 과 NL 후배가 우리쪽 선본으로 와서, 여러 어려움이 많았음에도 선거 잘 치러서 고생했다고 그러면서 술을 한 잔 얻어먹고 있었으나.

 

내 기억으로 공대 선배로 기억하노라. 우리 선본방에, 아마도 새벽 2시쯤, 그 개새끼가 똑똑 한 뒤 그냥 들어와 그 후배님의 목덜미를 잡아채 밖으로 데려간 것이 아니오. 화들짝 놀라 우리가 밖으로 나가니, 내가 아직도 정확히 기억하외다.

 

“시팔새꺄, 니가 뭐라구 저기 기웃대고 지랄이야. 선배들 부를때까지 나오지 말랬지?”

 

대답할 겨를도 없이, 순식간 무릎으로 그 후배의 안면을 강타하고 코구멍에서 김치국물이 주르르 흐르니까, 무슨 광주항쟁 진압때가 기억나더이다. 그리고 내가 항의하며 왜 사람을 때리고 그러느냐, 우리 과 후배가 찾아온게 무슨 문제냐, 이러고 그 새끼에게 지랄을 하니, 그 개새끼 하는 얘기가 걸작이라.

 

“입다물어”

 

무서웠소. 정말. 대여섯이 찾아온 선본방에 고요함만 가득했다오. 그리고 어정쩡하게 취한 상태에서 난 집으로 돌아갔다오. 선본방 밖엔 여전히 선혈이 낭자해 있더이다. 한 참 지나 그 후배를 만난 뒤, 약수터에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런 매질이 여러 차례라, 걱정하지 말라며 나를 오히려 안심을 시키더이다.

 

그리고 소인 이제 선거판에서 기웃거리지 않겠다, 다짐했었오. 그리고 휴학하고 시민단체에서 들어갔소. 다시 학교에 복학하니, 단과대 선거한답시고 염병들을 하고 있는지라, 그저 학교가면 술이나 처먹고 취해서 돌아오는게 일과라, 별로, 아니 아예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다오. 근데 후배 놈 둘이 찾아와서, 선거를 꼭 좀 도와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오. 씨바, 내 진짜 선거 안하고 싶은-이미 한 해 전 우리 아버지도 선거(정치와는 무관하오)같은 걸 하게 되었는데, 그걸 도왔으나 결국 패배-맘 굴뚝 같았으나, 마지막 한 번이려니, 하며 목장갑을 끼게 되었오. 마지막 한 번이라. -계속(솔직히 한 번에 다쓰려니, 너무 힘드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쌍용차 동지들_죽으면 안돼요

2009년 7월 24일, 어머니를 모시고 쌍용차로 향했을 때 찍은 동영상이다.

아마 여기에도 올렸을 텐데, 다시 한번 올려본다. 어머니의 외침이 잔잔하게

동지들에게 전해지길, 다시 마음 다해 바래본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안철수, 박원순

그들에 관한 책과 인터뷰를 읽고 난 뒤 드는 느낌은, 청춘들을 위로하며 자기계발하라는 것 외엔 다른 감상이 들지 않는다. 뭔가, 해봐라. 나도 해봤다, 이건데.

 

이택광이 '안철수 현상과 지속가능한 괘락의 평등주의'라는 글 중 한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자기계발의 논리는 한 마디로 자기를 좀 더 안정적으로 착취해주기를 바라는 역설을 함축한다."

 

몇 문장만 보태고 고치면, "자기계발의 논리는 한 마디로 자기를 좀 더 합리적으로, 지속가능하게 착취해주기를 바라는 역설을 함축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이소선...가시다.

진보넷 블로그. 한 동안 발길을 끊었었다. 그 이유가 무엇이 되든간에, 여유가 없었다.

사실 지난 7월 17일, 밤 전화가 왔었다. 이소선에게서.

 

"잘 있냐? 보고 싶다. 색시도 잘있지? 내가 너무 보고 싶어서 가고 싶지만 꼭 안부만은 전해라. 아이가 나오면 꼭 안겨달라. 몸조리 잘 해라."

"걱정마시라. 근데 몸은 좀 어떤가?"

"몸이 별로 좋진 않아도 괘안타. 걱정마라. 근데 발목이 아프다. 걷지를 못한다."

"걷지 말고 쉬시라. 저번처럼 뜸 같은 놓고 그러지 마라. 병원으로 데려갈테니 내일 내가 휴가 내고 가겠다."

"알았다. 기다리겠다."

"내일 오전에 전순옥과 연락해서 한일병원으로 가자"

 

그렇게 근 30분 가깝게 통화를 하고 다음 날, 난 바쁜 일로 인해서 이소선을 병원에 데리고 가지 못했다. 다행히도, 전순옥이 병원에 데려갔고 발목에 물이 찬 것을 빼고 아침도 잘 자셨단다. 그리고 그날 밤, 전화가 왔다.

 

"쓰러지셨다. 의식이 없다."

 

그리고 병원으로 달려갔고, 이소선은 삶과의 사투를 시작했다. 의식과 무의식과의 경계가 없었다. 응급실에서 심장이상이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고 수술을 시작했다. 다행히 심장은 문제가 없었다. 원인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이소선은 살아있었다. 다시 응급중환자실로 옮겨져 저체온요법을 시작했다. 담당 의사는 우리에게 그랬다.

 

"워낙 고생을 많이 하신데다 고령이시라 지금 상황이 그리 좋지 않다. 기대는 하지 마라. 하지만 의료진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리고 새벽까지 체온을 앗아가는 치료를 시작했고, 이틀이 지난 후 어머니는 혈색이 돌아오고 장기손상도 많이 호전되었다. 2주가 지나 온몸을 비틀기 시작했고, 꼬집으며 싫은 티를 낼 정도로 의식을 찾으려는 본능적 움직임이 많아졌다. 의사 또한 희망고문이 되지 않을 정도의 조심스런 낙관을, 재활이라는 단어를 썼었다. 그렇게 좋아지려나 싶었다.

 

서울대병원에서 보낸 시간을 정리하고 한일병원으로 옮기기 전, 이소선은 힘주어 스스로 70% 가까이 스스로의 호흡을 시작했고, 난 믿었다. 의식 따윈 버려도 살아만 있어라고. 우리 약속하지 않았나, 이 정권 하에서는 죽지 말자고. 김진숙이도 지금 죽으면 안된다. 우리 모두 이 순간에 살아서 싸워야 하지 않나. 그래서 나, 지금은 안죽는다. 약속한다고. 그래서 그 약속, 믿었다.

 

8월 30일. 나는 첫딸을 낳았다. 그리고 이소선이 가장 먼저 생각났다. 우선 전순옥에게 전화했다.

 

"병원 옮기고 나서 한일병원에서 공격적으로 시술하고 있다. 엄마를 잘 알고 있으니까 엄마도 잘 견디실 거다. 외와 폐에 물은 다 뺐다. 그리고 자기호흡을 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걱정마라. 잘 될거다."

 

그리고 9월 3일. 소식이 왔다. 이제 모든 걸, 정리하고 가볍게 떠나는 날을 정하신 거다. 천만 노동자의 어머니 같은 거 하지 말고, 그저 전태일 만나러 가셨다. 나오는 울음도 결국은 이소선을 질투해서다. 그리도 보고 싶어하는 아들보러 가는데, 우린 너무 오래동안 엄마를 붙잡고 있었다고 생각할게다. 어짜피 병원도 싫어하지 않았나.

 

몇 년전 몸이 좋지 않아 한일병원에 입원 시킨 적이 있었다. 그 때, 엄마는 못견디고 병원복을 입고서 그대로 탈출했지 않나. 얼마나 찾았나. 그때. 그리고 또 한일병원에 입원했을 때, 내게 할 얘기가 있다며 병원 밖으로 나가 병원복 안아꼬깃하게 말아둔 담배를 꺼내, "불 있제?"라고 하며 담배 하나 꺼내 피며, 내게 그러지 않았나.

 

"병원은 너무 갑갑하고 싫다. 담배도 못피게 하고. 또 도망갈까"

 

싫어하는 병원, 떠나는 게 그리도 좋으면 그렇게라도 가야된다면 붙잡지 않을테니, 천천히 가도 되는데. 터져나오는 눈물이 그치지 않아도, 그렇게 가야 된다면 잠시 눈을 뜨고, "가께" 한마디만 해도 되는데. 여하간 4일 뒤면 전태일 만나러 간다. 엄마 좋아하던 문목사도 만난다. 참 고마워하던 조변호사도 만난다. 좋겠다. 엄마는. 슬픈 농담이 살아있는 사람을 더욱 아리게 만들어도, 엄마가 좋다는 거라면 이제는 그렇게 하셔도 된다는 그 말만 하게 된다.

 

-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9월 7일까지. 담담하게 소식을 전합니다. 부의금은 받지 않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비행기에 개그맨을 태운 기장님 이야기

비행기에 개그맨을 태운 기장님 이야기


-  서울남부지방법원 2010.10. 22. 2009가합22809 해고무효확인 등 -

 

원칙 - 사실 필자는 이 꼭지에서 판결문을 골라잡는 원칙이 있었다. 근데 이게 엉뚱한 곳에서 터지는 바람에, 김샜다. ‘보온병’과 ‘자연산’의 원칙. 따끈따끈 하되 포탄인지 보온병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아리까리한 사건. 최종 3차 가공된 대법원 판례보다 자연산 활어 마냥 1심 청정수에서 퍼덕 거리고 독자들이 많이 찾는 사건.

 

언론 - 보온병과 자연산 원칙에 따라 선택한 판례들. 양념소스 살짝 발라 얘기하면 법과 법감정이 견우직녀 상태이거나 세계관 대립이 오세훈씨와 서울시의회의 긴장 정도 되어야 한다는 말씀. 따라서 이런 판결문, 대부분 언론에 보도된 것들이 많다. 허나 기자들, 저들 쓰고 싶은 것만 쓰니 사실관계, 왜곡 다반사다. 특히 보수언론들. 사실관계, 정확히 보여주냐, 아님 뒤트느냐에 따라 독자 망막에 비늘을 벗겨주기도 하지만, 독자들의 두 동공이 콧대에서 상봉하도록 만들기도 한다.

 

기사 - “국내 모 항공사 소속 항공기 기장 A씨(54)는 평소 괄괄하고 행동에도 거침이 없는 성격이었다.”
이 사건, 징계해고를 보도한 언론들의 첫 문장이 이렇다. 그것도 필자가 찾아본 몇 개 신문들이,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원본 기사에서 ‘ctrl+C’와 ‘ctrl+V’를 해서 보도했다. 원본 기사는 하나일테니 당연히 항공기 기장을 만난 기자도 한 명일게다. 사실 안 만났을 거라는 심증은 있으나.


여튼 징계해고 사건의 본질은 ‘회사가 왜 직원을 해고했는가’에서 출발한다. 왜? 회사가 짤랐으니까. 근데 기사는, 아무개씨의 평소 괄괄하고 거침없는 성격에서부터 시작한다. 어떤 뉘앙스를 느꼈는가. 괄괄, 거침없음. 일단 ‘짤릴 만 하네’로 시작되는 음흉한 복선이 느껴지지 않는가.

 

입장 - 입장 바꿔 생각해봐, 사실 할 말이 닳고 닳으면 은장도처럼 꺼내드는 역지사지 카드. 허나 입장 바꿔도 누구 입장에, 어떤 입장에 서는지는 그 개인의 인격완성 정도를 가늠하는 척도를 넘어서는 세계관의 문제다. 작년 배추값 오르면서 서민들이 반찬걱정에 시름하고 있을 때, 어르신 그랬다. 입장 바꿔 생각해본다는 게 양배추로 김치담가 먹으랜다. 양배추 가격도 천정부지로 튄 상태였지만, 군대 갔다 온 사람의 입장을 전혀 고려 못한 어르신의 그 말씀. 전 너무나 싫어요. 양배추 김치. 차라리 그냥 과메기를 사먹으라고 하지.


여하간 해고 사건, 양측이 주장하는 사실의 진위를 대칭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사건을 대리한 입장이 아닌 한 독자, 제3자가 양측 모두의 입장에 서 보게끔해야 한다. 그런데 해고사건들은 ‘내가 사장이라면’이라는 입장에서 바라보는 경향이 적지 않다. 이 사건에선 ‘승객입장’이라는 옵션까지 슬며시 끼어든다.

 

그러다 보니 사건의 본질 보다 개인의 잘못이 원심에 놓이게 되고 모든 힘이 가운데로 쏠릴 수밖에 없게 된다. 비행기의 양쪽 날개를 대칭해 볼 수 있는 ‘객관’이라는 타이틀을 얻기 위해서는 비행기 몸통까지 샅샅이 훑어 줘야 한다. 그래서 사실관계, 정확하게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한쪽의 사실관계 - 징계해고된 기장. 사측의 이유. 기장이면서도 비행근무시 조종사 모자와 재킷을 미착용한 점, 5분 늦게 탑승한 승객 3명에 대해 객실사무장에게 “늦게 오면서 웃으면서 들어”왔다는 이유로 “사무장! 지금 들어오는 세 사람한테는 음료서비스 하지 마!”라고 한 점, 부사무장에게 인격모독과 성희롱 소지의 발언을 했다는 점. 결정타. 비행근무시 개그맨 김 아무개씨를 ‘조종실’에 탑승시킨 채 항공기 운항을 한 점. 사측, 권고사직. 한 달 내 권고사직 안할 경우, 징계해고. 결국 징계해고. 여기까지가 반쪽짜리 사실관계.

 

다른 한 쪽의 사실관계 - 유니폼 미착용. 운항일반교범에는 조종사 모자와 재킷을 착용하도록 하고 있단다. 법원도 이 시건 기장이 ‘모자’를 착용하지 않은 것은 징계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조종사 ‘재킷’의 경우에는 판단이 달랐다. 회사가 꼭 재킷을 입지 않아도 된다고 했기 때문이다. ‘와이셔츠만 입어도 된다’고 하는 사실이 숨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부분은 징계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음료 서비스. 이륙 시간 보다 5분 늦게 탄 승객에 대하여 객실사무장에게 음료서비스를 하지 말라고 한 사실. 실제 그 승객들이 들었을 가능성이 낮았고, 3명의 승객에 대해선 대승적(?)으로 ‘음료서비스는 제공되었다’는 점 등을 들어 징계사유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인격모독 및 성희롱 발언. 여승무원에게 “얼굴이 너무 못생겼다”라고 한 발언이 모욕감을 준 것은 사실이나 성희롱 발언에 대해서는 피해자가 ‘성희롱을 당한 적이 없다’고 이 사건 기장에게 문자를 보낸 적이 있어 사실상 징계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허나 이 세 가지는 통큰 치킨의 양념소스에 불과하다.

 

무단출입 - 조종실에 개그맨을 무단출입하게 사실. 언론과 독자가 주목하는 부분이다. 사건의 노른자위이기도 하고. 만약 필자가 조종사 뒤로 가 조종사의 두 눈을 가리고 다정하게 ‘누구게?’라고 하며 이쁜 짓을 했다 치자. 이게 비행기 내에서 가능하다면 비행기 탈 사람 없다. 승객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조종실에 웃기는 사람을 출입하게 한 자체는 웃을 수 없는 일임이 분명하다.


법원도 다른 회사의 사례를 들어, 대한항공이 기장의 어머니를 탑승시켜 정직 1개월의 징계를, 아시아나 항공이 비인가자를 조종실에 무단탑승 시킨 것에 대해 정직 3개월의 징계처분을 했다는 점을 들었다. 여기까지는 필자도, 독자들도 징계가 불가피하다는 것에 고개를 아래위로 끄떡일 테고. 다음부터는 판단의 문제다.

 

해고무효 - 기장님의 해고가 과하다는 것이 법원 판단이다. 왜? 괄괄하고 행동에 거침이 없는 성격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 해고가 부당하다는 것이 아니라, 개그맨 무단출입이 한 번의 우발적 행동인데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괄괄하지 않고 되레 사측에 선처를 호소했다는 점을 들었다. 여기서 필자와 독자들의 입장이 나뉠 수 있다.


법원은 당시 54세였던 이 기장님이 사측에 창의적 의견을 적극적으로 제안해 ‘특별공로상’을 받은 바 있고, 그 전에는 징계처분을 받은 바도 없으며, 회사의 절반에 못 미치는 125명의 직원들이 탄원서까지 제출해 줬다는 점을 참작해 줬다. 물론 그건 그거고, 잘못은 일벌백계해야 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해고가 부당하다는 걸 판단하는 기준이 해고자의 성격을 뜯어 고쳐 개전의 정이 얼마나 감정이입 되는가의 여부는 아니다. 이 사건과 같이 징계의 대상이 되는 행위가 얼마나 무거운 지를 정확히 저울에 올려 가늠하는 판단의 섬세함이 필요하다. 그 섬세함은 법이란 바늘귀에 사건이라는 실을 꿰는 일과도 같아야 한다. 


가까운 절에 가보라. 명부전(冥府殿)이 있다. 영(靈)의 법원이라고 보면 되지 않겠는가. 그 명부전 가운데에는 지장보살이 있고 좌우로 도명존자와 무독귀왕, 그 양 옆에는 10명의 심판관이 있단다. 자기업(業)에 따라 지옥과 극락이 결정되는데 그 결정까지 무려 10번의 심판을 받는다고 한다. 판결에 실수가 없도록 하여 다음 생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서란다.

 

저승의 일도 이렇게 신중히 결정하는데 하물며 개똥밭에 굴러도 좋은 이승에서 그보다 못해서 되겠는가. 이승의 판결문에는 ‘더 이상 근로관계를 지속시키기 어렵다’는 말을 쓴다. 뒤집어 근로관계를 지속시킬만한 이유가 있다면, 10번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만큼의 섬세함과 신중함이 필요하지 않을까. 정초에 만난 판결이 많을 걸 생각하게 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