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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들은 문수동자

이 글은 교육잡지 ‘좋은 엄마’에 2001년 5월 실렸던 것입니다.

                                                     내 아들은 문수동자  
                                                                                                                                                                                                                                             마을공동체교육연구소    문 재 현

  10여 년 전 오대산 상원사로 답사를 가서 문수동자상을 본 적이 있다. 어린이 체형에 살이 토실토실 쪄있는 문수동자를 보면서 지혜의 화신인 문수보살이 어린이로 형상화 된 것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꼈다. 노인의 지혜가 존중되는 농경사회에서 어떻게 그러한 형상화가 가능했는지 신기하게 여겨졌다.
  그런데 늦게 결혼해서 아이를 길러 보면서 왜 문수보살을 어린이로 형상화 한 것인지 알게 되었다. 아기는 호기심의 덩어리였다. 눈에 띄는 모든 것이 호기심과 관심의 대상이었고, 끊임없이 질문이 쏟아져 나왔다. “저 산은 왜 저렇게 생겼어?”, “왜 이 산은 높고 저 산은 낮아?”, “ 장미꽃은 왜 빨개?”, “왜 김치를 먹어야 되지?”  등등....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변은 개념적 지식이 아니라 아이들의 감성과 이해 수준에 맞아야 하는데  항상 부족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의 이러한 질문이야말로 모든 부모와 사회집단이 직면했던 현실이었고, 이로 인해 한 사회가 교육체계를 갖출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그런데 아이의 호기심은 강력했지만 또 한 없이 연약한 것이었다. 내적 동기가 부여된 질문이 아니라 새로운 사물과 상황에 대한 자연발생적인 질문이었기 때문에 주변의 반응이 없을 경우 바로 그 불꽃이 꺼져 버렸다.  그것을 보면서 아이들을 위해서는 안정되고, 따뜻한 가정과 함께 협조적이고 반응이 풍부한 지역사회가 반드시 있어야 된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고, 공동체 교육에 대해서 진지한 접근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옛날 마을에서의 육아방식들 아이 어르는 소리, 아이들노래(전래동요), 이야기를 복원하고 마을의 자연환경과 역사를 공부했다. 그리고 그런 내용들이 아이들 발달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또 다양한 생활 환경 속에서 가정, 어린이 집, 학교, 마을 사람들간에 가치의 연속성이 보장되는 인간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 연구하고, 이러한 경험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자 마을공동체교육 연구소를 만들었다. 아들이 나에게는 삶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게 한 문수동자였던 셈이다.    
  그런 경험 속에서 우리 나라 부모들의 교육열이 세계적이라는 말에 대해서 심각한 문제 의식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교육은 아이들의 자라남에 대한 관심이고, 진정한 교육열이라면 아이들의 삶에 진지하게 참여할 때 가능한데, 아이들의 요구를 부정하고, 자신의 욕망을 투사하는 부모들의 태도에서 참다운 교육열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현대 교육학의 흐름을 반영한 새로운 연구결과에 의하면 한사람의 교육적 성취는 지능이나 적성, 끈기 등 개인적 능력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가정이나 마을 등 관련 사회단체의 지원과 협력, 공감적 반응, 수용적 태도에 달려있다고 한다. 요즘 학교교육에서 경쟁이 아니라 협동학습이 강조되고, 통합교육, 지역화교육이 강조되는 것은 이러한 경향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교육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부모와 지역사회, 교사가 지역사회 안에 있는 모든 것을 교육자원으로 개발하고 자원으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아이들의 또래 관계, 가정, 마을에서의 사회적 상황과 경험, 자연환경을 스스로 발견하고 아이들이 거기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도록 부모가 먼저 공부하고 공동체적 교육환경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사고는 자기 자식만을 경쟁사회에서 이길 수 있는 인간으로 기르기 위해서 발버둥치는 부모들은 참으로 수용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아이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아이들의 내적인 동력이 경쟁 속에서 소모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믿고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자유롭게 발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요즘 들어 부모대상 교육을 많이 하는데 그 때 마다 몇 가지 질문으로 강의를 시작한다. 아이들과 어떤 놀이를 하는가? 집(마을) 가까이 있는 산 이름과 생태환경을 알고 있는가? 살고 있는 마을의 역사를 아는가? 마을(아파트단지)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가? 이러한 질문을 하는 이유는 자기 아이만 바라보고 있는 부모의 시선을 아이들 전체와 공동체로 돌리기 위한 것이다. 지금까지는 제대로 답변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는데 좋은 엄마 독자 여러분이 이러한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부모가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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