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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2/02
    인문학으로 세상과 만났던 시간
    나랑
  2. 2009/11/28
    민우회가 꿈틀댄다! 변화한다! 와우!(10)
    나랑
  3. 2009/11/25
    바이엘치는 아티스트(11)
    나랑
  4. 2009/11/07
    말하기 대회를 끝내고...(5)
    나랑
  5. 2009/10/31
    가해자 김00의 항소심 재판을 보며 생각한다.(27)
    나랑

인문학으로 세상과 만났던 시간

아쉬움 가득했던 한뼘 인문학 마지막 시간.
한뼘 인문학 마지막 시간은 '전문가와 규모에 목매는 사회가 우리에게 남긴 것들'을 주제로 진행되었습니다.

 

 

 

저 나랑은 아침에 지옥철을 타면 발 디딜 틈없이 사람들에 낑겨서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는 것도 고단하지만, 사람들의 무표정한 얼굴을 보는 것도 참 마음이 무겁더라구요.
마치 전쟁터에 나가듯이 전투적으로 앞만 보고 걸어가는 사람들, PDP로 드라마를 보며 혼자 낄낄대는 사람을 봐도 왠지 행복해 보이지는 않았지요.

세상은 왜 이렇게 미쳐 돌아갈까, 나는 왜 이렇게 무력할까, 저 속도전에 발맞추지 않으면 나만 도태될 것 같은 불안함, '이건 아닌데...'하면서도 '에라 모르겠다...'하고 따라가는 내가 싫기도 했지요.

 

인문학 강의를 통해서
우리는 세상이 왜 이렇게 돌아가는지, 나는 왜 이렇게 살아가는지 그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어요. 머리로 이해하면서 마음도 치유되는 느낌이었지요. 그래서 참가자 중 어떤 분은 "사회를 이해하면서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나봐요.


가슴이 뻥 뚫리는 대안은 찾지 못했지만 아마도 대안은 누군가 속시원~히 제시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야 하는 것인가 봅니다.
"행복해지려면 깨어있어야 한다"는 참가자의 말씀처럼,
우리가 늘 깨어있을 수 있다면  대안을 향한 모색도 그 발걸음을 뗄 수 있지 않을까요?

  

 

여기, 참가자들이 직접 쓴 멋진 후기 한번 보실래요?^^


인문학을 공부하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1人.

시간을 내어 인문학 강의를 듣지 않았다면 몰랐을, 그렇지 않았다면 한참 후에나 알았을지도 모를 사실들이 그동안 나를 짓누르고, 옴쭉달싹도 할 수 없게 했던 날들로 부터 해방감을 맛보게 할줄은 처음 강의실에 앉기 전엔까지 알지 못했다.

 

인구가 너무 많아서 생기는 온갖 병폐들이 세상을, 사회를, 개인을 어떻게 지배하고 파괴해 가는지, 그 짐과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김과 동시에 개인이 느끼지 않아도 될 불필요한 감정들까지 지워버려 나중에는 그 원인이 개인에게 있는지 사회에 있는지 구분할 수 없게 된 지금의 사회.

스트레스와 정신 질환이 흔해진 것이 오히려 정상적인 현상이라는 말이 위안으로 다가와 슬플뿐이었다.


'나는 왜 이럴까' 스스로를 탓하지 않아도 될만큼 이 사회는 병이 깊다.

그걸 깨닫고 난뒤, 난 개인이 책임지지 않아도 될 문제에는 감정을 동요하지 않게 하려 한다. 4주간의 강의가 나에게 준 위안이자 자유다.

                                                                                            -by 달빛

 

 

 

언젠가부터 ‘나는 왜 이토록 불안한가’란 고민에 시달렸습니다. 그동안 인문학 강의를 들을 수 있는 기회라면 마다하지 않았던 것은 지적 갈증 때문만은 아닙니다. 뭔가 선각자들이 갖고 있는 해답을 훔쳐보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이 땅에서 위태롭게 버티고 서서 가운데가 뻥 뚤려있는 느낌을 받곤 했습니다. 그럴 때 나는 왜 이토록 다른가란 항구적인 물음이 계속됐습니다. 그럴 때마다 어쩌면 이것이 선천적인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그런 저에게 이번 인문학 강의는 의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우선 나만 불안한 것은 아니었다는 위로, 우리 외부의 병폐가 그 원인이다라는 결론이 조금쯤 힘이 됐습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대재앙이나 작은 사회의 추구 같은 게 조금 비현실적인 기대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조금 기운 빠지고 우울해진 부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좀더 높은 곳으로, 좀 더 크게, 좀 더 많은 부를 요구하는 사회 안에서 아주 의미있는 목소리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미쳐버린 도시에서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조금은 희망적이라는 기대를 가져봅니다. 자, 이제 2부 강의를 시작하죠? ^^*

                                                                                         - by 여정

 

 


 

 평가지에 담긴 '말말말'...

 

- '교육'과 국가이데올로기의 관련성이 충격적으로 남았다. 새로운 시각을 접할 수 있는 강의였다.


- 소외된 우리가 조직 내에서 저지르는 비인간성을 들여다봐야겠다고 느낌.


- 강의가 조금 무미건조합니다. 다양한 강의기법을 시도해 보시면 진짜 인기 강사가 되실 것 같습니다.^^


- 막연하여 말로 표현하기 힘들었던 부분을 잘 찝어서 시원하게 알게 되었으나, 대안 부분의 답답함이 남아있네요.


- 사회를 조금이나마 이해하면서 스스로를 용서하고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 요즘 갖고 있던 여러 가지 고민들의 근본적인 원인을 찾은 듯 합니다. 감사합니다.

 


박민영님, 그리고 참가자 우리 모두
참 반가웠고

수고많으셨습니다.

 

 

한뼘 인문학

1강 후기  www.womenlink.or.kr/nxprg/board.php

 

2강 후기  www.womenlink.or.kr/nxprg/board.php

 

3강 후기  http://www.womenlink.or.kr/nxprg/board.php?ao=view&bbs_id=main_news&doc_num=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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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우회가 꿈틀댄다! 변화한다! 와우!

민우회에 첫 발을 내디딘지

2달이 조금 넘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노동운동에 대한 그리움과 죄책감에 시달리곤 했는데

요즘의 나는

확실히 민우회에 몰입하고 있다.

 

민우회는 2010년 '변화'를 결의하고 있다.

활동가들만의 운동, 사무실 안의 운동이 아니라

회원, 대중과 소통하는 운동으로 새로 태어나는 것이

내년 민우회의 핵심 기조다.

 

그래서 우리는

평가부터, 총회부터 이전과는 다르게 하기로 하였다.

활동가들끼리의 내부 평가만 하지 말고

회원들, 다른 단체 활동가들을 직접 만나서

민우회 활동에 대한 평가를 듣는 것이다.

 

지난 2주 동안 나는

소모임에 들어가서 회원들을 만났고

민우회 전 상근활동가,

한국성폭력 상담소 활동가,

함께하는 시민행동 활동가를 만났다.

 

일정은 좀 빡셌지만

참 의미있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책상에 앉아서  나 혼자 고민할 때엔

풀리지 않던 문제들, 불투명한 전망, 자신없음이 가득했는데

만나서 함께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그것들은 점점 작아지고

그 자리에 민우회의 변화에 대한 기대,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 새로운 열정이 꿈틀댄다.

 

나는 정보업무를 맡고 있어서 그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나누었는데

특히 시민행동 활동가를 만나고 나서 많은 생각을 했다.

 

세상은 변하고 있고

사람들이 이슈를 형성하는 방식, 운동에 참여하는 방식도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집회를 열고 거기에 참가하지 않아도

온라인 서명을 하고 블로깅을 하면서 이슈를 형성하고 그것이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온라인 상의 활동이 오프라인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여기에 어떻게 개입할 것인가.

 

민우회의 많은 활동은

온라인 상에 충분히 구현되지 않고 있다.

이번 주에도 우리는 혼인빙자간음죄에 대해 정말 많은 인터뷰를 했는데

그 시간을 조금 떼어서 블로깅을 한다면

온라인 상에서 우리의 인지도도 높아질 것 같은데. 

네이버 검색 창에 '여성단체'를 치면

첫 페이지에 민우회가 뜨지 않는게 너무 속상하다.

 

우리가 지켜가야 할 것들이 원칙과 내용이라면

운동을 구현하는 방식, 사람들과 만나는 방식은 좀 더 유연하고 다양해져야 하지 않을까.

세상의 변화에 대해 좀 더 고민하고 함께 공부하고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접점을 끊임없이 찾아나가는

민우회가 되고 싶다.

 

참 고마운 것은

민우회가 이런 나의 고민을 귀 기울여 들어주는

열린 조직이라는 점이다. ㅎㅎ

 

내년, 민우회의 '변화'

그리고 그 변화를 만들어 갈 나 자신을 기대한다.

민우회가 꿈틀댄다! 변화한다! 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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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엘치는 아티스트

베르나르 베르베르와의 대화-
 
"Q : 당신의 소설은 항상 기발한 상상력으로 가득 차 있다. 
창의력이나 상상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A:  상상력 또한 거듭되는 훈련과 습관이 중요합니다.
따라서 규칙적인 생활이 필요하죠. 
저는 16살때부터 지금까지 매일 오전에 네시간씩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중 1시간 30분은 간밤에 꾼 꿈을 기록하는데 씁니다.
이것이 상상력을 높이기 위한 나의 규칙적인 습관입니다.
꿈은 제약이 없고 자유로운 무의식의 세계를 반영하죠.
이것이 바로 상상력의 두번째 요소입니다.
상상력을 증진시키기 위해서는 모든 제약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
 
 
말하기대회를 준비하면서
내가 느끼는 대로 표현하는 행위의
자유로움과 해방감,
그 맛을 알았다.
 
말하기대회는 끝났지만
나를 표현하는 무언가를 계속 하고 싶었다.
 
고민 끝에
다음주부터 친구에게 일주일에 두번씩
피아노를 배우기로 했다. 점심시간을 쪼개서...
 
사실 난 노래를 하고 싶은데
악보를 못 보기 때문에
피아노부터 배워보려고 한다.
 
얼마전에 결혼한 오빠가
피아노를 놓고 갔기 때문에 집에서 연습도 할 수 있다.
 
베르베르의 말처럼
표현과 창조에는 훈련과 습관이 필요하다.
꾸준히 훈련해야지.
 
친구가 나보고 이제 아티스트란다.
그래, 나 바이엘치는 아티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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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기 대회를 끝내고...

치유의 큰 산 하나를 넘은 기분이다.

아직은 얼떨떨하기도 하고

좀 홀가분하기도 하고...

 

당분간은 그동안 지친 몸을 추스려야겠다.

계속 미뤄두었던 글쓰기 작업도 차근차근 해 봐야지.

 

이제

내 인생의 진짜 주인공으로

멋지게, 신나게 살꺼야!

물론 나랑 넌 지금도 충분히 멋지고 빛나지만!

 

옴이 찍은 사진,

무대에서 내려와서 옴과 오랜 포옹.

옴의 품 속에서

수천마디의 말보다 더 값진 위로와 지지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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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 김00의 항소심 재판을 보며 생각한다.

지난 21일, 민주노총 김00 성폭력 사건의 가해자 김00의 항소 재판이 있었다.

우리가 재판에 주목하는 이유는 성폭력의 정의가 법에 달려있다고 믿기 때문이 아니다. 재판은 성폭력이 왜 문제이고, 가해자는 어떤 지점을 반성해야 하며, 피해자는 왜 위로받아야 하는지-그 정확한 이유들을 따지는 과정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형이 많이 나와도, 엉뚱한 이유를 들어 가해자를 처벌하려 한다면 우리는 그 판결을 환영하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형량이 어떻게 나오더라도, 정확하고 핵심적인 문제를 짚어낸 판결이라면 우리는 이 판결이 읽어낸 지점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질 것이다.

이번 재판을 방청하면서 우리는 여전히 변하지 않은 가해자들의 태도를 접했고, 무엇이 문제였는지 이 글을 읽는 분들과 함께 짚어보고자 한다.


첫째, 재판부와 가해자, 변호인 측 모두 피해자와의 합의 여부를 가장 중요한 포인트로 두고 있었다. 합의를 위해 열심히 쫓아다녔으면 노력한 것이고, 그럼에도 합의가 안 이루어졌으면 재판부도 안타까워하는 모습이었다.

합의를 종용하는 것은 피해자를 두 번 죽이는 일이다. 하기에 노동조합 성폭력 관련 규약규정에서는 ‘합의 종용’을 2차 가해로 명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가해자와 가해자 변호인은 이러한 운동질서 내의 질서와 규율은 철저히 무시하고, 오직 법적으로 형량을 줄일 수 있는 방안에만 골몰하였는지, 합의를 종용하며 끊임없이 피해자를 괴롭혔다. 가해자의 부인이 피해자가 근무하는 직장으로 수차례 찾아와 피해자에게 합의를 요구해서 급기야 피해자가 이사까지 하는 상황이 벌어진 바 있다. 법정에서는 사죄한다면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바깥에서는 부인으로 하여금 피해자를 쫓아다니게 해서 피해자의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런 기만적인 태도를 버리지 않으면서, “구속된 상태로는 피해자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마치 출소하면 자신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더 잘 할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 하는 가해자를 보며 우리는 할 말을 잃었다.


둘째, 가해자 변호인과 피고인들(2차 가해자들)은 피해자와의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피해자의 피해의식, 과장된 분노 탓으로 돌렸다.

‘민변’ 소속이라는 가해자 변호인에게 묻고 싶다. 피해자 앞에서도 그렇게 말할 수 있는가? 변호인은 합의를 하지 못한 이유가 피해자가 객관, 냉철함을 잃은 상태이기 때문이라면서, 노조에서 피해자의 요구를 다 수용했는데 피해자가 고소를 해서 피해를 자초한 측면이 있다는 말까지 했다. 이것은 명백히 피해자에 대한 비난이며 명예훼손이다.

진상규명 특위에서 권고한 사항에 대해서 민주노총과 전교조가 어떻게 지지부진하게 처리해 왔으며, 전교조 재심위원회에서 어떻게 2차 가해자들에게 면죄부를 주었는지 정녕 모르는가.

고소를 해서 피해를 자초했다고? 민주노총이나 전교조 지도부가 사건을 책임지고 해결하려고 했다면 피해자가 고소를 했을까? 조직적으로 해결해 보려고 했으나 외면당하고 결국 법에 기댈 수밖에 없었던 피해자의 배신감과 절망감을 저들은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바로 그런 식의 태도와 논리가 피해자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고 있다는 사실을 왜 모르는가.


셋째, 가해자 변호인은 피해자 주변인들이 피해자의 이성적인 판단을 저해하고 있다고 했다.

피해자 지지모임을 명확히 지칭하지 않았지만 누가 봐도 피해자 지지모임이라고 유추할 수밖에 없다. 피해자 지지모임을 특정 정파의 정치적 행위로밖에 보지 못하는 저 구태의연한 사고. 피해자에게 그렇게 사죄한다고 하면서도, 피해자를 지지하는 모임에 대해서는 철저히 격리하여 음해하는 이중적 잣대.

피해자 지지모임 카페에 가입한 250명의 사람들은 어떤 정파의 조직적 결정으로 모인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모여든 것이다. 단체나 노조에 속한 사람들도 많지만, 단체나 노조 뒤에 숨는 것이 아니라 모두 개인의 이름으로 피해자를 지지하고 가입한 것이다. 또한 전교조 대의원대회 당시 발의한 안건은 피해자 동지가 직접 작성한 것으로 무척 단호하고 명확했다. 그런데 가해자 변호인은 마치 피해자가 주변 사람들에게 휘둘리는 것처럼 왜곡하고 있다.


넷째,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하는 것이 피해자가 치유되는 길인 것처럼 아전인수하며 ‘용서’마저 다그치는 모습을 보였다.

2차 가해자 이** 의 경우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해야 치유와 평화가 찾아오는데 용서를 못하고 있다면서, 재판부가 먼저 사회적 용서를 해서 피해자가 치유할 수 있는 길을 열어달라는 말을 했다. 피해자 치유의 길은 피해자가 스스로 선택할 것이며, 그 과정에서 용서를 하든 말든 그것은 피해자의 선택이다. 죽을 때까지 용서를 안 할 수도 있고, 설사 용서 못 한다고 해도 당신들이랑 상관없이 아주 아주 잘 살 수도 있다. 치유든 용서든 피해자의 속도와 방식으로 하면 되는 것인데, 왜 가해자들의 항소심에 맞춰서 치유를 하고 용서를 하라고 난리인지?(그래서 사과문도 재판 직전에 냈는가?)

당신들이 할 몫은 스스로를 성찰하는 것이다. 뼈를 깎는 심정으로 스스로를 성찰하면 될 것을, 왜 피해자에게 이래라 저래라 주문하는가? 왜 용서가 치유라고 강변하는가? 그것도 2심 선고공판 전에 하라고 시기까지 친절하게 정해주는 것을 고마워해야 할지?
이제는 피해자가 용서의 미덕을 모른다고 비난할 건가. 어떻게 그렇게 가해자 중심적인가.

다섯 번째, 2차 가해자들은 성폭력은 개인적으로(우발적으로) 발생한 일이었고, 조직적으로 자행했다는 혐의는 검찰의 정치적 공세라고 말했다.

정치공세라고 하기 전에, 왜 지도부에 대해 그런 의혹들이 생기는지 천천히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지도부 은닉에 비혼 여성들을 동원해온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부부관계, 혹은 애인관계로 보이는 것이 공권력의 감시망을 피해 갈 수 있는 유효한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웃기지만, 그것을 ‘조직적 임무’로 포장해서 여성 활동가들에게 들이댔을 장면을 상상하면 분노가 치민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사생활을 무방비로 침해당하면서도 고스란히 감내했을 여성 활동가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발생한 성폭력이 우발적인 것이라고? 여성 활동가들의 인권보다 그 놈의 ‘조직적 임무’를 늘 우선순위에 두는 조직적 분위기가 바로 이번 성폭력 사건의 숨은 범인이다.

여섯 번째, 가해자 김00와 2차 가해자들 모두 재판정에서 피해자의 실명을 계속 부르면서 말하는 것을 보며 분노를 넘어 참담함마저 느꼈다.

그것이 자신들의 진정성을 표현하는 것이고 그래야 재판부가 선처해 줄 것이라고 생각 했는가. 진정성을 표현하겠다는 방법까지도 어쩜 그렇게 자기중심적인가. 사죄한다는 사람들이 ‘피해자의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성폭력 사건에 있어)가장 기본적인 원칙조차도 어찌 그렇게 쉽게 내동댕이치는가.

2차 가해자 손00은 전교조 소식지에 실린 공개 사과문에서도 피해자의 신원을 노출했다. 보수언론마저 최근의 어린이 성폭력 사건을 피해자 이름이 아닌 가해자 ‘조두순 사건’으로 명명하는 마당에 사죄한다면서, 매일 새벽 기도한다면서 정작 재판정에서 피해자의 실명을 버젓이 불러대는 저들과 과연 우리가 소통할 수 있을까. 동지라는 이름으로 함께 투쟁 전선에 나설 수 있을까....


이번 재판은 김00 성폭력 사건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며 가부장적인 문화가 팽배한 조직과 그 조직 속의 개인들은 결코 쉽게 변하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가해자 김00은 “차라리 공안사범으로 불리면 떳떳하겠지만, 앞으로 평생 안고 살아갈 ‘성폭력범’이라는 낙인-주홍글씨가 두렵다”고 했다. 가해자에게 묻고 싶다. 한 여성의 인권을 침해하고도 별 일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지? 당신은 성폭력을 너무 가벼이 여겼기에 그러한 처벌과 낙인에 대해 너무 과도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20년 동안 활동가로서 진자리를 마다하지 않은” 당신에게, 그 ‘진자리’에, 여성과 여성의 인권은 없었다. 당신의 명예와 20년 운동의 역사가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그 밑에 한 명 여성 활동가의 인권이 눌리고 짓밟힐 이유는 없다.


2009년 10월 30일
민주노총 김00 성폭력 사건 피해자 지지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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