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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경동교회 예배당
1.
작년에 인구 센서스 통계를 기초로 한 종교인 자료가 개신교와 천주교에 충격을 주었다고 한다.
개신교는 자체 통계보다 "너무 적어서!"
천주교는 자체 통계보다 "오히려 많아서!"
놀랐다고 한다.
여튼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개신교의 감소와 천주교의 약진이라고 한다.
그리고 새로운 천주교인 중 상당수가 개신교에서 이동한 신자라는 통계도 있었다.
개신교에서 천주교로 이동한 사람들은 어느 개신교 연구기관의 조사에서
천주교의 장점을 "조용하고 경건하며 영성적인 분위기"라고 말한다.
말하자면 시끄럽지 않고, 뭔가 자신의 마음을 차분히 잡아끄는게 있다는 말일게다.
2.
개신교의 예배에서 중요한 것이 설교와 (최근에는) 밴드를 동원한 경배와 찬양이라면
천주교의 예배에서 중요한 것은 예전이다.
최근 나는 '경동교회'를 나가기 시작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경동교회는 예전 중심의 예배를 드린다.
목사님 설교는 신학적이면서도 짧고 간명하고(할렐루야!)
건축가 김수근이 만들어낸 지극히 아름다우며, '경건'을 강조한 예배당 속에서
성도들은 - 물론 천주교나 성공회에 비하면 상당히 현대화되었지만 - 예전 중심의 예배를 드린다.
예배를 드리면서 예배의 중심이 설교가 아니라는 느낌이 분명하게 들었다.
말하자면, "분위기"랄까. 그 예전의 형식을 따르고, 그 아름다운 건축물 안에서 느끼는
그 '경건하며 조용한' 그 분위기야말로 예배의 중심이다.
3.
설교 비평가로 유명해진 정용섭 목사라는 분이 계시다.
이분은 현재의 지극히 미국식 상업주의로 물든 예배의 대안으로
성서일과에 따른 설교와 예전 중심의 예배를 이야기한다.
그가 볼 때에 예배는 교회의 전통 속에 있어야 하며, 공교회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최근 카톨릭의 성장과, 경동교회에서의 나의 경험을
과연 '전통'이나 '공교회적'이라는 이름으로 담아낼 수 있는 것일까?
과연 천주교로 개종한 사람들은 '새 것'이 싫어서 '전통'으로 돌아간 것일까?
나는 똑같은 형식의 예전을 고수한다 하여도 50년 전의 예전과
지금의 예전은 다른 것이라고 생각한다.
똑같은 형식의 예배를 드리더라도, 그 때 참여하는 사람의 예배자-주체성과
지금 참여하는 사람의 예배자-주체성이 같지 않다는 말이다.
50년 전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예전은 '전통'이고 어떤 면에선 '보수'였다.
그리고 소수의 사람들에게 '공교회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개신교에 실망하여 천주교로 발길을 돌리는 사람들이나
나 같은 사람에게 예전이란 무엇보다 "아름다움"이다.
개신교의 말의 성찬이나, 세속적이고 시끄러운 예배를 벗어나
일종의 미학으로서의 경건함, 조용함, 고색창연함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소위 '포스트모던적'이라고 불리는 현대의 문화현상에 가까운 것이지
'교회 전통'이라거나 '공교회적'(혹은 '삼위일체적 예배')같은 신학적 주제로 설명하기는 부족한 것이 아닐까.
한 10여년 전부터 유행한 요가나 대중적인 동양 영성 프로그램이나
최근 주목받는 관상기도나 수도원 프로그램 등에서 우리는 비슷한 현상을 만난다.
4.
뭐, 그럼 나쁜 건가?
성경적이고 신학적인 게 아니라 결국 문화적이고 '포스트모던'한 거라면 나쁜 건가?
별로 신앙적이지 않은 예배태도인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간의 '미학을 끌어안지 못하는 신학'이 문제였던 게지.
아마도, 이런 경향은 좀 더 이어질 것 같다.
경배와 찬양으로, 대형 밴드로 몰려갔던 대형교회들은
곧 다시 돈을 들여서 예배당을 개조하고, 예전을 도입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기 전에,
민중교회랄지, 성공회같은 작은 교단이랄지, 혹은 여기저기의 작은 교회들이
이 예배와 영성의 미학적 측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큰 돈 없이도 예배당의 분위기를 쇄신할 수 있는 '비법' 같은 것도 좀 공유되면 좋겠고.
아무튼.
경동교회에서 예배드리다가 들었던 생각을 끄적끄적...
댓글 목록
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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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성당의 묵주라든가, 미사보 이런 게 너무 좋아요(믿음은?글쎄요...)이런 게 미학적으로 느껴지거든요. 경건함의 미학이랄까...사실 미사포 같은 경우는 굉장히 여성억압적인 느낌이 드는데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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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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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상징이란 건 아무리 그것이 명시적으로 무언가를 나타낸다고 해도 의미가 중층적인 것 같아요. 특히 영성의 '미학적 측면'은 앞으로도 계속 주목받게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저도 예전에 근본주의적인 신앙인이었을 때나, 프로테스탄티즘의 우상파괴주의에 심취했을 땐 학을 떼던 것들이 요즘은 전혀 다르게 보이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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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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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종의 미학으로서의 경건함, 조용함, 고색창연함을 즐기고 있는 것"을 "소위 '포스트모던적'이라고 불리는 현대의 문화현상에 가까운 것"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잘 이해가 안가네요.너무 일반화한 것 아닐까요?
예를 들어 저의 집안은 불교와 유교-희한하게도 그 덕(?)에 어릴 때부터 사서삼경을 읽어야했습니다 ㅠ ㅠ-짬뽕된 집안인데, 절에 매력을 느껴 찾는 사람들도 절의 형식적 미학이 선사하는 경건함속에서 자기 자신을 무념무상에 빠뜨려 사물을 직관적으로 응시하고자 그러는게 아닐까 싶을 때가 많습니다. (저도 그렇구요)
주지 스님이나 종교적 지도자 없이도 자기 자신 스스로가 종교적인 정신상태가 되곤 하는 그런 태도..... 보통 선불교가 이런 경향 아닐까요?
그래서 수백년 동안 내려온 이런 태도를 극히 현대적인 사조인 포스트 모던과 결부시키는 게 어쩐지 좀 잘 이해가 안가네요.(???궁금..)
그리고, 경건함과 미학을 강조하는 경향도 나름대로의 약점이 있음을 감출 수는 없다고 봅니다.
굳이 말한다면, 해당 종교가 특별히 강조하거나 주입하는 교리가 없는 듯 보이는 상태 자체가 오히려 과도한 형식적 미를 추구하는데 올인하도록 만드는게 아닐까하는 기우입니다.
(일종의 느슨한 '이념적' 상태+종교의 개인주의화(?)가 형식적 미를 강화하는 경향속에서 부패나 저급한 세속화와 나란히 존재 혹은 은폐하는 현상. 중세에도 이런 경향이 나타나지 않았나요? 서양 종교는 잘 몰라서..)
그리고 덧글에 나와있길래 덧붙이자면, 이슬람교에서 여성들이 쓰는 히잡이나 챠도르같은 것은 어찌봐야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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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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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산/당연히 그런 경향이야 몇천년 전부터 있었겠죠^^ 다만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같은 형식과 전통을 따른다고 할 때에도 과거와 현재의 주체성이 상이할 수 있다는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특히 기독교의 경우 그게 두드러진다고 말씀드린 것이구요.'소위 포스트모더니즘'을 근대 이성주의와 대비시켜서 미학적 측면을 강조하는 그런 측면이 있긴 있지요. ('소위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한 건 그 용어에 그닥 만족하지 않고 있기에...^^;;)
그리고 히잡이나 챠도르의 경우에도 사물이 단 하나의 의미만 갖는 건 불가능할테니까요. 또 어떤 사회에서 히잡을 쓰는가도 그것에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고 봅니다. 이란에서의 차도르와 영국이나 프랑스에서의 그것이 같을 수는 없겠지요.(같으면서도 같지 않은...)
그리고 저는 그러한 미학적 신앙이 '좋다'는게 아니고, 현재의 그러한 경향이 강화되는 추세다 정도의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야말로 대안이다."라는 거 사실 저는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그런 말은 대부분 '구라'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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