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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8/08
    [번역] 독일의 안티파 운동(2)
    김강

[번역] 독일의 안티파 운동

독일어 위키의 "Antifa" 항목의 (약간의 요약)번역입니다. 

출처: http://de.wikipedia.org/wiki/Antifa 

 

 


 

 

안티파

“안티파”라는 개념은 1980년대부터 다시 확산되기 시작한 “반파시즘” 및 “반파시스트 운동”을 지칭한다. 특히 반파시즘적 스펙트럼 안에서 좌파, 급진좌파, 자율주의 그룹이나 조직을 말한다. 많은 경우 반유대주의나 민족주의적 이데올로기에 대한 거부를 강조하는 경향을 보이며, 네오나치에 대한 반대운동과 역사수정주의적 경향에 대한 반대에 있어 의미 있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여러 안티파 그룹들, 특히 자율주의 씬의 그룹들은 독일에서 헌법수호청의 감시를 받고 있다. 

 

기원

반파시즘 행동의 개념과 이념은 무솔리니의 반대자들이 “안티파시스트”로 스스로를 이름붙였던 이탈리아에 기원을 두고 있다. 독일에서는 1923년에 공산당에 기반을 둔 준군사조직 “붉은전선투쟁동맹”(?)의 한 부분으로 “반파시즘 행동”이 존재했다. 이들의 목표는 당시 흥기하고 있었던 파시즘에 저항해 싸우는 것이었다. 처음에 반파시즘 행동의 회원들은 공산당으로부터만 충원되었지만 이후에는 모든 사회주의 정당과 조직들로부터 나오게 되었다. 반파시즘 행동은 자신들의 과제를 혁명적 투쟁을 수행하는 것이기 보다는 바이마르 공화국이 파시즘을 통해 “야만으로 추락”하는 것을 막는 것으로 설정했다. 

 

 

당시 두장의 붉은 깃발이 오른쪽을 향해 휘날리는 이들의 로고는 당시 “혁명적 미술작가연맹”(BRBKD) 소속이었던 막스 카일손과 막스 겝하르트가 고안한 것이다. 이 두 장의 붉은 깃발은 사민당과 공산당을 상징한다. 깃발을 둘러싼 링은 “파시즘으로부터의 구원”을 상징하는 링이라고 한다. 이 로고는 전체적으로는 파시즘에 맞선 통일된 노동운동을 상징한다. 코민테른이 제안하고 독일공산당이 받아 않은 “사회주의 파시즘”의 구호—이후엔 폐기—로 인해 이 이 로고에서 외쳤던 노동운동의 통일은 더이상 적실성을 잃게 되었다.

 

아돌프 히틀러의 권력탈취 이후 “반파시즘 행동”의 개념은 1933년부터 점점 사라져갔으며, 개별화 된 공산주의자들의 저항운동에서만 사용되었다. 민족사회주의 독재 시절에 있었던 반파시즘 행동의 한 역사적 예를 찾을 수 있다면 초기에 있었던 “뫼싱어 총파업”을 들 수 있다. 

 

동독

2차 세계대전기간 동안 반파시즘 학파나 서클은 소련의 독일 포로들 사이에서 맑스-레닌주의 교육과 반파시즘 계몽을 담당했다. 그래서 이후 동독의 통일사회당(SED)의 지도 아래에서 안티파의 개념은 서독과 미국의 (추정된) 파시즘적 발전에 대한 반제국주의적 투쟁을 위해 사용되었다.

 

재등장

1980년대에 서독 지역의 점거자들과 자율주의 운동으로부터 소위 “안티파” 그룹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들은 우선 무엇보다 극우파의 폭력에 맞서 네오나치 공격의 희생자들을 보호했다. 이와 함게 시도되었던 것은 이들의 관점에서 극우파의 범위에 속하는 정당과 사회운동 조직들이 기획환 활동들을 방해하고 망치는 것이었다.— 독일민족민주당(NPD)의 당대회나 다양한 나치 관련 그룹들의 데모 등등.또한 안티파는 부분적으로 전통적인 반파시즘 조직인 “나치정권의 박해자 연합-반파시즘 동맹”(VVN-BdA) 등과 함께 정보를 교환하는 등의 일도 한다. 

 

 

반파시즘은 원래 자율주의 운동의 행동영역이 아니었다. 하지만 일부 그룹들이 스스로를 1920년대와 나치시기의 반파시즘 저항운동의 전통 속에서 조명하기 시작했다. 

 

독일 통일 이후 다시 기승을 부린 민족주의와 극우파의 폭력으로 인해 안티파의 주장이 힘을 얻게 되었다. 특히 자율주의 운동 안에서 반파시즘은 가장 주요한 영역을 차지하게 된다. 1990년대 내내 서독과 동독 지역 모두에서 안티파 그룹들이 발흥하게 된다. 

 

이러한 발전은 1990년 괴팅엔에서 “아우토노멘 안티파 M”가 건설됨으로써 시작되었다.(참고로 2007년 사회당 대선후보였던 금민은 90년대 독일 유학을 하면서 이 조직에서 활동을 하는데...) 새롭게 조직된 그룹들은 자신들의 중심적 행동분야가 반파시즘 운동임을 분명히 하였다. 92년에는 이 그룹들 일각이 “반파시즘행동/전국조직”(AA/BO)로 조직된다. 이 그룹에는 괴팅엔의 “아우토노멘 안티파 M”외에도 “안티파 행동 베를린” 등의 조직이 소속되었다. 2001년에 AA/BO는 해산하지만, 동독과 서독 모두에서 여전히 안티파 조직들의 구조는 강하게 남아 있다. 

 

이 21세기의 첫 해에 안티파 내부에서 분열 경향이 나타난다. 이러한 분화는 소위 “반독일”과 “반제국주의” 그룹들 사이에서 벌어졌다. 무엇보다 근동문제에 대한 입장이 이 싸움에서 주제가 되었다. 이들은 서로를 “반유대주의”(반독일주의 쪽에서 반제국주의를 향해)와 “이슬람혐오”(반제국주의 쪽에서 반독일주의를 향해)로 비난했다. 2004년 중반엔 괴팅엔 아우토노멘 안티파 M과 안티파시스트 행동 베를린이 분열되었다. 

 

그러나 2005년 말 경 부터는 이러한 분열주의의 감소가 관측되고 있다. 극단적인 반독일주의나 반제국주의가 모두 안티파 운동에서 그 의미를 잃었으며 대부분의 안티파 그룹들은 양쪽 모두를 거부하고 “반교조주의”를 지향하고 있다. 

 

행동들

이들의 주요 활동은 부분적으로는 국내외의 극우파나 우익보수주의 세력에 대한 조사, 계몽, 자료 정리 및 홍보를 들 수 있다. 이와 더불어 격렬한 데모 역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예를 들어 극우파씬에 속하는 상점이나 클럽, 술집들, 극우파 정당이나 조직의 행진에 저항하는 대항 시위 등)안티파 그룹들은 때로 다른 정치 영역의 조직이나 개인들과 함께 일한다. 이들은 좌파로부터 청년사민당(Jusos), 녹색당 청년, 노조들 뿐만 아니라 기독교쪽 행동그룹이나 지역의 시민조직들과도 함께 일한다. 

 

오늘날 안티파 운동은 또한 반인종주의 그룹들이나 난민조직들과 연대하는 것을 과제로 삼고 있다. 안티파 조직들은 망명신청자들과 난민들, 장애인들, 또 여러 종류의 주변화된 소수자들의 권리 확장을 위해 매우 활동적으로 일하고 있다. 

 

자율주의 안티파 그룹들은 네오나치에 맞선폭력투쟁을 옹호한다. 또한 극우파나 민족주의, 또 인종주의적이거나 반유대주의적인 정당이나 조직들의 집회나 시위, 회의, 당대회 등을 격렬하게 고립시킬 것을 호소한다. 때에 따라서는 안티파 자율주의 그룹의 조직원들과 경찰 혹은 극우파 조직들 사이에서 시가전이 벌어지기도 한다. 

 

안티파 씬의 새로운 행동분야 중 하나는 “데이터 안티파” 혹은 “가상세계 안티파”라 할 수 있다. 이들 그룹은 극우파 웹사이트나 온라이샵 혹은 포럼들을 해킹하거나 극우파들의 기밀정보를 폭로하는 활동을 벌인다. 

 

안티파에 대한 비판

안티파에 대한 가장 빈번한 비판은 이들이 국가의 폭력독점을 거부하고 폭력투쟁을 옹호한다는 것이다. 안티파 내부에서 폭력 사용에 관한 토론은 매우 광범위하고 자세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 토론에서는 광범위한 비폭력, 연좌시위와 같은 시민불복종 행동들에 대한 참여여부, 폭력적 도구의 사용 및 신체에 대한 폭력행사 등이 매우 논쟁적으로 다뤄지고 있다. 

 

연방 헌법수호청은 많은 안티파 그룹들을 폭력적 극좌 씬으로 규정하고 감시하고 있다.이러한 대응은 이들이 수직적인 조직구조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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