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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10/08/27
    신적 폭력과 역사의 구원 - 벤야민의 메시아적 정치신학
    김강
  2. 2008/07/06
    다시, 글을 쓸 테요.
    김강
  3. 2008/06/14
    촛불이 아니었다면...(3)
    김강

신적 폭력과 역사의 구원 - 벤야민의 메시아적 정치신학

신적 폭력과 역사의 구원

발터 벤야민의 메시아적 정치신학 2010.08.27. 소장학자 컨퍼런스 발표문

  


[김강기명_신적폭력과역사의구원0817.hwp (92.50 KB) 다운받기]

 

성문이 일곱 개인 테베를 누가 건설 했던가? / 책에는 왕들의 이름만 적혀 있다.

왕들이 손수 바윗덩어리들을 끌고 왔을까? / (중략…)

역사의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승리가 하나씩 나온다. / 승리의 향연은 누가 차렸던가?

십 년마다 한 명씩 위대한 인물이 나타난다. / 그 비용은 누가 지불했던가?

그 많은 사실들. / 그 많은 의문들.

-B. 브레히트, 「어느 책 읽는 노동자의 의문」

 

 

0. 들어가며

 

‘폭력’의 반대는 ‘비폭력’인가? 언뜻 보면 자명해 보이는 폭력과 비폭력의 대립은 조금 자세히 그 모습을 들여다보면, 그것을 목적을 위한 어떤 ‘수단’의 자리에 위치시켰을 때만 가능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것이 권력의 유지이든, 아니면 어떤 ‘정의’를 위해서건, 그러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서 폭력과 비폭력을 사유하게 될 때 양자는 대립된 것으로 나타난다. 폭력을 이렇게 사유하는 것은 사실상 폭력 자체에 대한 사유 없이 오직 폭력의 ‘적용’에 대해 논하게 됨으로써 사실상 어떤 목적이나 현행질서를 승인하는 효과를 가져오게 된다.

따라서 폭력에 대한 비판은 수단으로써 무력행사가 있느냐 없느냐를 넘어선 폭력 그 자체에 대한 사유를 요구한다. 대체 폭력이란 무엇인가? 왜 어떤 행위는 실상 별다른 힘을 발휘하지 못해도 ‘폭력’으로 인지되고, 어떤 행위는 매우 강압적이고 강력함에도 ‘폭력’으로 인지되지 않는 것인가? 폭력에 대한 질문은 이러한 내용을 포함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텍스트가 바로 발터 벤야민의 「폭력 비판을 위하여」이다. 벤야민의 이 글이 우리에게 특히 더 중요한 것은 그의 폭력에 대한 분석, 혹은 폭력 비판이 하나의 신학적 사유로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여기서 신학이란 하나의 세속에 대한 신학적 사유를 말한다.

통상 신학이란 곧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등의 유일신 종교의 자기 정체성을 해명하는 어떤 학문이나 혹은 교리 정도로 이해된다. 혹은 아주 좁게는 ‘신에 대한 형이상학적 학문’으로 이해될 때도 있다. 그러나 신학의 오랜 역사를 되돌아보면 오히려 신학이 그렇게 사용되고 이해되었던 기간이 거의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구미 각국에서 정치와 종교의 분리가 보편화된 이후에야 신학은 오늘날 우리가 통속적으로 이해하는 그 영역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던 것이다. 계몽주의는 신학을 성공적으로 교회 속으로 추방했다고 믿었다. 세계를 지배하던 신학은 교회의 예배 속으로 퇴각했으며, 과학의 발전으로 말미암아 삶은 더 이상 신을 원인으로 하지 않고도 해명될 수 있는 것이 되었다. 계몽주의자들은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여, 신의 계시에 의지하지 않고 오로지 인간적이고 자연적인 차원에서 정치를 생각하려 했다. “신학은 […] 왜소하고 흉측해졌으며, 모습을 드러내서는 안 되는 것”이 된 것이다.

그러나 정작 서구 근대의 역사를 돌이켜 보건데, 신학은 계몽주의 시대 이후에도 정치세계 속으로 끊임없이 재침투를 감행해 왔다. 그것은 더 이상 ‘기독교 신학’의 모습으로가 아니었다. 신학은 하나의 ‘세속 신학’으로, 혹은 ‘신학적인 것’으로 재출현했던 것이다. 로베스피에르의 ‘최고 존재의 제전(祭典)’으로부터 소렐과 아나키즘, 볼셰비즘 등의 ‘신화적 정치이론들’을 거쳐 파시즘 독재에 이르기까지, 어떤 면에서 “근대 국가이론의 중요 개념은 모두 세속화된 신학 개념이었다.”

20세기에 들어와 이러한 세속적 ‘정치신학’에 대한 성찰은 두 명의 천재적인 사상가, 칼 슈미트와 발터 벤야민에게 이르러 정점에 다다르게 된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한 사람은 나치의 계관법학자로, 또 한 사람은 나치에 쫓기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혁명적 비평가로 살았던 인생의 모습만큼이나 정치신학에 있어서도 다른 길을 걷게 된다. 하지만 벤야민의 정치신학은 슈미트의 반대편에 놓여 있지 않다. 오히려 벤야민은 슈미트의 정치신학의 논의를 깊이 성찰하고 받아들였고, 그것을 넘어선다. 이 글의 전반부에서는 폭력과 주권에 대한 논의를 중심으로 슈미트와 벤야민의 정치신학을 각각 ‘주권자의 정치신학’과 ‘메시아의 정치신학’이라는 이름으로 정식화하여 비교해보려 한다. 그리고 후반부에는 신적 폭력의 논의와 결부된 벤야민의 역사의 구원에 대한 탐구를 다루어 볼 것이다.(그리고 어쩌면, 그것을 통해 “파시즘에 대한 투쟁에서 갖는 우리의 입지가 개선될 것이다.”)

 

 

1. 주권자의 정치신학 VS 메시아의 정치신학

 

“정상은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하나 예외는 모든 것을 증명한다.

예외는 원칙을 보장할 뿐이지만 원칙은 대개 예외에 의해서만 생존한다.

-칼 슈미트,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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