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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08/30
    보은사터, 혜미읍성, 만리포(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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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6/08/21
    갑갑해서(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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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06/08/15
    유레루 -> 남산(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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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6/08/08
    요즘 이것 저것(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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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6/08/01
    10여년만에 수영(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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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사터, 혜미읍성, 만리포

충남 서산에 있는 보은사터에 다녀왔다.

이제 유홍준을 더이상 좋아하진 않지만(좋아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왕짜증이지)

그사람 덕분에 이런 것에 관심을 갖고 구경다니 게 된 것은 사실이지.

그러니 용서해줄까?

어쨌든 꽤 매력적인 오층석탑이다.
 

난 여기서 주로 흑백사진을 찍었는데 너무 오래된 필름을 아까워서 그냥 썼더니만... -.,-;;


호랑나비가 내 손에 앉아 꽤 오랫동안 있었다.

처음엔 날아갈까봐 조심조심하며 사진을 찍었는데 나중엔 하도 안날라가서 쫓아냈다.^^


보은사터에서 멀지 않은 곳에 서산마애삼존불이 있다.

'백제의미소'라고 불린다는데 평소 보던 다른 불상들과는 표정이 많이 달랐다.

아주 편안해 보이기도 하고 좀 장난기 있는듯도 하고.

차라리 맑은날 옆에서 빛이 들어왔으면 불상의 표정이 잘 살아났을텐데

흐린날에 인공조명 아래서 찍으니까 표정이 제대로 나오질 않았다.



 



혜미읍성으로 이동



삼각대 이용해서 같이 찍었다.

물속에 들어갔다 나와 찍었더니 내 헤어스타일이 상당히 부담스럽다.

만리포 해수욕장. 아마도 개장 마지막날이었을 게다. 물속은 대따 차더라.




본인이 이 사진 맘에 들어할랑가? 

디카로 찍은 것은 내가 메일로 보내줬기 때문에 다 본 것이지만 흑백필름으로 찍은 것은 여기서 처음보게 되는 건데...


인화한 것을 디카로 다시 찍었더니 사진이 좀 찌그러져서 테두리를 잘라냈다.

피곤해서 흑백사진을 이것밖에 안뽑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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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갑해서

그래, 오로지 갑갑해서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진보 블로거의 성향이나 수준에서 보면 아주 낮은 수준의 글이 될 것 같다. 하지만 내 블로그에는 오프라인 인맥들이 제법 들어오고 그 중 '진보'와는 그닥 상관 없는 이들도 제법 있기 때문에 누구에겐 뻔한 얘기를 주절주절 늘려 놓는 것이 될 것이고 누구에겐 다소 어리둥절한 글이 될 수도 있겠다. (높은 수준은 어차피 내가 안된다) 처음에 블로그를 만들고 나서 아는 이들에게 내 블로그 주소를 알려주곤 했다. 그런데 그게 언제부턴가 족쇄가 되더군. 글 쓸 때마다 신경써야 하는 일들이 생기게 되면서 어떤 것들은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도 아예 못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어차피 장단점이 있기에 그게 안좋다는 말은 아니다. 아버지 때문에 송탄에 내려와 살게 되면서 민노당 활동을 하고 있다. 당원들과 제법 친하게 지내고 있고 그 쯤 되면 내 블로그를 알려줄만한 상황인데도 난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않았다. 왜냐고? 정치적인 성향이 나랑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같은 민노당을 하면서 정치성향이 너무 다르다는 게 뭔 말이냐고? 이러니 아는 사람은 다 알고 모르는 사람은 전혀 모르는 얘기를 시작해야 한다.


내가 민노당원이면서도 민노당 이미지를 깍아먹는 짓을 하려니 좀 거시기 하지만 처음에 얘기 했잖아? 너무 갑갑해서 그런다고. 아는 사람은 다 알고 모르는 사람은 전혀 모르는 민노당의 정파를 아주 거칠게 나누자면 NL과 PD로 나눌 수 있다.(자세히 나누면 꽤 많고 민노당 내부 사정을 아는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양분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것 같다. 사실 정책을 보면 사민주의정당에 가깝고 말이다. 우야뜬 그게 내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 이건 아니니까...) 내 자신이 운동권도 아니었고 어느 정파에 속해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확실한 건 NL과는 한~참 다르다는 것이다. 아주 거칠게 사람들은 이렇게 구분하기도 한다 < NL은 모든게 '민족'으로 귀결되고, PD는 '계급'밖에 모른다.> 민족이란 개념 자체가 근대에 생긴 것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원래 있었던 것처럼, 그리고 영원히 계속될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일종의 종교처럼 사람들의 머리속에 의심없이(또는 의심해서는 안되는 것처럼) 박혀있다. (민족이란 개념이 허구란 것은 따로 다루자) 그래, 까짓거 민족이란게 있다고 치자. 그래서 뭐? 다른 민족보다도 우리민족은 일단 잘 살아야 된다고? 우리가 바라는 이상향이 2천년간 흩어져 있었고 2차대전 중 처참하게 대량학살 당했으나 다시 뭉쳐 다른 이들을 학살하는 유대민족인가? 그래도 강하기만 하면 좋은 건가? 일단 난 통일에 반대하진 않는다. 외세에 의한 분단이라는 것에도 100% 동의하고 분단에 의해 우리의 현대사가 뒤틀어졌다는 것에도 동의한다. 문제는 통일을 위해서 어떻게 해야하는가이다. 다시 말하면 이 문제는 '북한을 어떻게 볼 것인가"로 갈 수 밖에 없다. 7~80년대 북한을 제대로 보자는 세력들이 '진보'였다는 걸 인정한다. 내 조카는 "바보도 아니고 아무리 어렸다고 하지만 북한사람들한테 뿔이 달렸다는 걸 어케 믿었어?"라고 하지만 난 아주 어렸을 때 정말 그렇게 믿었던 것 같다. 똘이장군을 보면서 그게 사실이라 믿었고 말이다. 그러니 "북녁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네"라고 하는 것이 그 시대 진보였던 것은 인정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북쪽에 대한 정보가 완전히 막혀있는 시대가 아니다. 수구꼴통들이야 북에 대한 인식이 그대로일 수도 있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이제 거기 그냥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니 '북한에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 살아요'라고 하는 것만으론 진보적이라고 하기 민망하다. 하물며 진보라고 자처하면서 '미국에 대항하기 위해서 북한의 핵은 어쩔 수 없다'라고 주장하는 이들을 보고 있자면 놀랍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하다. 80년대에서 90년대 초반 북한과 NL의 핵심 주장은 '반전 반핵'이었다. 한반도에선 어떠한 일이 있어도 핵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고 최종적으로는 인류의 평화를 위해서는 핵이 지구상에서 사라져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한반도에서 핵이 사용된다면 그 여파는 한반도 전체를 죽음의 땅으로 만들 것이라는 것이었고, 그건 사실이다. 북한의 원래 마음과는 상관없이 아주 진보적이고 옳은 주장이었다. 그러다 북한이 핵개발을 시작하면서 얘기가 180도 바뀐다. '자위를 위한 핵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라는 것. 미국의 압제에 맞서기 위한 핵은 불가피한 선택이고, 이것만 성공하면 미제국주의에 대등하게 맞설 수 있다는 것이다. 얘기가 너무 길어질 것 같다. 할 얘기가 많으니 나중에 다시 해야겠다. 한번에 얘기를 끝내려고 너무 무리하게 말만 많이 꺼냈는데 재미없더라도 아예 몇차례에 걸쳐서 써볼까? 한가지만 마무리하고 끝내자. NL의 주장을 그대로 적용하자면 미국과 대항하는 나라들은 모두 핵을 개발해야 한다는 말인가? 아님 누군 되고 누군 안된다는 말일까? 되고 안되고는 누가 판단할 건데? 아님 우린민족만 되고 남들은 다 안된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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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루 -> 남산

토요일

밤늦게 영화를 보기로 했는데 아무리 뒤져봐도 주류스런 영화관에선 볼만한 영화가 없다.

사실 동대문에서 옷도 사고 새벽에 영화보며 밤새려는 계획이었는데...

 

그래서 유레루를 보러갔다.

- 유레루는 '흔들리다'란 뜻의 일본어라는데 제목 참 그럴듯 하다.

다리도 흔들리고, 인간도 흔들리고, 인간 관계도 흔들리고, 우리의 기억이란 놈도.

 

메종드 히미코에 나온 무쟈게 잘생긴 오다기리 죠를 보러갔다가

(이 남자다)

 

다른 남자에 반해서 영화관을 나왔다.

(이 남자 말이다. 연기가 경장하더라!!!)

 

 

 



날은 덥고, 모기는 많고

남산타워를 배경으로 이리저리 찍어보는데 사진은 마음대로 안나오고

그나마 남산타워 불은 거의 다 꺼졌고

결국 포기!

 

남산에서 내려다 본 서울 야경이 기대한만큼 그럴듯 하지는 않더라.

내 사진도 그럴듯 하진 않다.


백열등이 많이 켜진 동네라 색감이 그림같을 것 같았는데 그림같아 보이나??

밤에 찍는 사진은 연습이 대따 많이 필요하단 걸 절실히 느꼈다.

물론 쉬울 것 같진 않았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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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이것 저것

- 실업급여 정식으로 취업하여 월급을 받아본 것은 10년이 넘은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 몇년전 사촌형이 취업할 생각이 없냐고 하기에 '없다'고 했더니 그러면 자신의 회사에 다니는 것처럼 명의를 빌려달라고 했다. 별 생각없이 그러겠다고 했는데 나중에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찜찜했다. 다시 안된다고 하기는 그렇고 말이다. 덕분에 회사에서 의료보험도 내주고 연금도 내주고 하는 게 됐다. 그러면서 내게 인건비 지급하는 걸로 해서 수입을 줄이고 세금을 떼어먹었겠지 뭐. 그래서 찜찜했던 거고. 사촌형은 이사로 있었는데 이번에 회사 경영을 축소하면서 나오게 됐고 나도 같이 정리를 했다. 정리해고 형식이어야 실업급여를 탈 수 있기 때문에 형은 내가 실업급여를 탈 수 있게 하려고 해고 당한 것으로 처리해주었다. 그러면서 내게 신신당부했다. "꼭 타먹으라"고 말이다. 실업급여는 6개월까지 탈 수 있고 내 연봉을 감안하면 총액이 600 내지 700만원 정도까지 탈 수 있다. 한나절을 고민하다 '포기'하기로 했다. 사실 '포기'라는 말도 좀 웃기지. 원래 내 것도 아닌 것을 '포기'한다니. 그 돈 받아서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좋은데에 써 볼까 고민도 잠시 했는데 그것도 구차한 것 같아서 깨끗이 포기했다. 예전엔 (그 때는 이렇게 되지 않았던 상황) '그걸 타게되면 해외여행이나 가야지' 하고 농담처럼 말하곤 했었는데... 나의 결벽증?을 아는 사촌형은 실업급여 신청했냐고 추궁할텐데 거짓말에도 젬병인 나는 그래도 거짓말을 해야할까, 아님 '바보' 소리를 들어야 할까? 케케케 그래도 마음이 대따 편하다. '받을까'를 고민할 때는 너무 불편했거던^^


그냥 그랬다. 보통은 '그냥 그랬다'라는 표현은 '별로다'에 가깝게 쓰이지만 내가 한 말은 말 그대로 '그냥 그랬다'는 것이다. 그닥 좋지도 않고 그렇다고 나쁘지도 않고 말이다. 기술적으로는 잘만든 것 같고, 내가 박해일과 변희봉을 좋아하니까 그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괴물 소리와 음악을 포함해서 전체적으로 음향이 과도한 것도 같고 스토리가 너무 뻔하게 돌아가는 건 좀 실망스러웠고 뭐 아주 좋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실망스럽지도 않았던 영화에 대해 깊이 생각해서 글을 쓸 생각은 별로 없다.(사실 생각이 별로 없는 거지) 다만 괴물이 죽을 때는 마음이 아프더라. 괴물이 무슨 죄를 지은 것은 아니잖아? 그냥 인간과 같이 공존할 수 없는 것 뿐이지. 괴물한테 잡혀먹힌 가족 처지에서야 원수이지만 괴물은 생존을 위해 본능에 충실한 거잖아. 고질라 죽을 때도 속상했는데 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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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만에 수영

평택청년회 사람들과 용두리 해수욕장에 다녀왔다.

난 회원도 아니고 더더욱 청년도 아니지만 다들 민노당 사람들이라 같이 갔다.

요즘 아침마다 대추리 상황을 알리는 홍보활동을 하고 있는데

이와 관련된 사람들의 단합대회쯤 된다.

 

카메라를 들고 있으면 적당히 참여하면서도 적당히 주변인으로 남아있을 수 있어

내게 딱 맞는데, 이 사람들은 그냥 내버려두질 않는다.

술도 잔뜩 먹었고, 단체운동은 극히 싫어하는데 축구도 했다.

수영도 하고, 술에 취해 씨름하는 걸 사진찍다 말고 씨름도 한판했다.

당연히 졌지. 그냥도 힘들었는데 -.-;;

사진찍다 끌려가 물에 빠져 디카용 배터리와 메모리카드가 짠물에 젖었다.

메모리카드는 말리니까 괜찮은데 배터리는 맛이 갔다.

 





웬 보트까지 있나 했는데 전에 대추리 들어갈 때 사용했던 보트라 한다.

 


 

나도 같이 물에 들어가 찍었는데 카메라에 캠코더까지 들었지

술도 먹었지,

물은 가슴까지 찰랑찰랑 거리지

아주 불안해 죽는줄 알았다.



씨름할 때는 정말 많이 먹어서 사진을 어케찍었나 싶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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