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여행까지는 아니고, 말 그대로 어딜 갖다왔다는...

30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01/23
    여주(5)
    무위
  2. 2006/01/16
    제주 1(6)
    무위
  3. 2006/01/15
    뜻하지 않았던 제주도 여행
    무위
  4. 2005/11/27
    촛불 축제(2)
    무위
  5. 2005/03/30
    화성침공? ^^(4)
    무위
  6. 2005/02/24
    귀농한 인환씨를 만나러
    무위
  7. 2005/02/02
    변산반도(5)
    무위
  8. 2005/01/11
    소록도
    무위
  9. 2005/01/10
    지리산 올라가기(2)
    무위
  10. 2005/01/10
    낯선 곳으로 여행/추억 속으로 여행
    무위

여주

제주 사진도 아직 3분의1밖에 안올렸는데 그 새 또 놀러갔다 왔다.^^

남한강이 흐르는 여주 신륵사와 고달사지

잘 모르기도 하고 귀찮기도 해서 설명은 대~충



 

 부도가 정말 크다.

 

 부드러운 돌에 섬세한 조각들이 있는데 사람 손이 많이 탔는지 대부분 엉망이다.

낙서도 무지하게 많이 되어있고.

 

 

 신륵사 앞에는 남한강이 흐른다.

오히려 강 건너편에서 절을 찍어야 제대로일텐데...

 

 

 

 앞은 절벽인데 사진속에선 아무렇지도 않군.

 앞엔 오리떼, 뒤엔 오리배.

 고달사지 안내견?

여기선 내내 이녀석과 함께 했다.

아무래도 구멍가게 삐끼같다. 쏘세지 3개 사줌.

 발굴작업을 하는 중인가 보다. 그래서 보기엔 아주 거시기한 풍경이다.

 

 

 

 

 

 

 

 

 

 

 

 

 

 

 

 

 

 

 마지막으로 간 세종대왕릉

 

 

다른 계절에 또 가야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제주 1

실제로는 둘째날이지만 첫날은 장례식장과 술집밖에 간 곳이 없기 때문에 실질적인 제주도 구경은 이날부터다.

새벽3시가 넘어서 잠을 잤지만 치토스는 서울로 출근을 해야 하기 때문에 마냥 늦잠을 잘 수는 없었다.

아침에 '몸국'을 먹었다.

치토스가 제주도에 오면 기본적으로 몸국을 먹어야 한다고 했다.

내가 대체 뭘로 만들었냐고 했더니 치토스는 자신의 몸을 비비꼬며  "몸으로 만들었다니까"

'몸'은 바다에서 나는 해초 이름이었다.

아침에 다시 장례식장을 들렀다가 탑동으로 갔다. 바닷가를 좀 거닐다 치토스는 공항으로 출발.

 

*사진이 많다. 로딩이 부담스러울 수도.



바람은 무지하게 불었지만 날씨는 따듯했다.

어차피 시간 제약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것저것 많이 돌아볼 욕심도 없었기 때문에 바닷가를 계속 걸었다.

낚시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저 배를 타면 목포나 부산으로 간다고 한다. 부산까지 12시간!

비행기 타면 서울까지 50분인데...

바닷가 곳곳에 이런 계단이 있었는데, 나의 빈곤한 상상력으로는 용도를 알 수가 없었다.

물속에 빠져죽는 자살용 계단? ^^

그런데 그 계단으로 해녀가 올라왔다. 카메라 전원을 켰지만 한발 늦었다.

화면 왼쪽에 돌색깔에 해녀가 뭍혔다.

이곳은 보도블럭도 이렇다.

 용두암 가는 길 

'용연' 마치 산에 있는 계곡 같지만 사실 바닷물이다.

 이렇게 바다와 이어져 있다.

 용두암에 가려면 저 배 위쪽에 있는 다리를 건너야 한다.

(물에 신경쓰느라 노출을 줄였더니 다리가 잘 안보인다.)

다리 위에서 한 장.

바람이 많이 불어 제법 불안하다.

제주에는 이렇게 어느곳에나 무덤이 있다.

 

 용두암에 도착

 

 용두암 바위에서 먹을 것을 팔고 있었다.

나의 점심식사. 술은 생각도 안했는데 아주머니의 꼬임에^^

이 꼬마 녀석이 돌을 집어 물에 던지자 아주머니가 소리쳤다.

"야! 돌던지지마. 일부러 짊어와 깔아 놓은 거야"

 

 시도 때도 없이 비행기가 떴다.

 용두암 끝에 있는 아주 작은 동굴 위쪽에 해가 살짝 걸렸기에 찍었는데 노출에 신경을 안썼더니 엉망이다.

그래서 노출을 바꿔 다시 찍었다.

위 사진과 전혀 다른 시간 다른 장소의 느낌 아닌가?

말보다 아저씨 표정이 더 재밌다.

 

다음 목적지로 가려고 도로쪽으로 가는데 마음에 드는 나무 한그루가 보였다.

 나중에 알고보니 제주도에선 아주 흔한 '팽나무'라고 한다.

다음엔 관광지가 아닌 그냥 동네 사람들이 운동삼아 많이 가는 별도봉으로 갔다.

뭍의 언어로 말하자면 '동산'쯤 될까?

제주에서는 '오름'이라고 한다.

하긴 이런 모습의 동산을 뭍에서 볼 수는 없는 것 같다.

사진을 제대로 못찍어서 내 말이 실감날 만한 사진은 불행히도 없다.

별도봉

이번에도 노출에 따라 이렇게 달라진다.

실제의 밝기는 두 사진의 중간정도지만 그렇게 찍으면 죽도밥도 아니다.

 여기에 오르면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온다.

산책로를 따라 왼쪽은 온통 갈색

오른쪽은 바다

저 멀리 한라산이 보인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뜻하지 않았던 제주도 여행

원래 1월에 여행을 좀 갈까 했다.

그런데 주요한 행선지 중의 하나인 곡성의 친구가 WTO반대시위를 위해 홍콩에 간 후 연락이 안됐다. 입건된 11명에 꼈을 확률은 낮아보였는데 핸드폰이 계속 꺼져있어 연락을 할 수 없었고, 계획을 계속 미루다 전화 한통을 받았다.

 

용산에 있는 술친구(?)였는데 자신의 누님이 갑작스레 세상을 떴다는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누님은 나와 동갑이었다.

문제는 장례식장이 제주도라는 것.

30분쯤 고민하다가 결정을 내렸다.

겸사겸사 내려가기로 말이다.

저녁 비행기를 탔다.

 



피곤해서 사진은 내일 올리고 일단 자야겠다.

아까 곡성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홍콩에서 어제야 올 수 있었다고 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촛불 축제

내가 사는 평택은 앞으로 미군기지가 이전하기로 한 곳이다.

매일 저녁 평택역에선 미군기지 이전반대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고

오늘은 대규모 촛불축제가 있던 날이다.

49제까지는 어머니께서 아버지에게 상식을 올리겠다고 했기 때문에 촛불축제에는 꽤 늦게서야 가봤다.

아는 사람이라고 해봐야 큰누나가 어딘가에 있을 거고, 우리 분회의 민노당 사람 한 명을 알 뿐이다.

 

사진 찍는 사람들이 아주 많았고, 그래서 나는 별로 사진 찍을 마음이 들지 않았다.

어차피 쪽수 채우러 간 거였고 말이다. (쪽수 채우는 것, 참 중요한 일이지^^)


이런 사진 찍을 때마다 '어여 카메라 바꿔야지'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내 카메라가 나쁜 건 아닌데 감도가 360까지 밖에 조절이 안되서 야간에 후레쉬없이 찍기엔 아주 열악하다. (이런 사진 후레쉬 터뜨리면 촛불도 안보이고 아주 꽝이다.)

누군 "명필이 붓가리냐?"라고 하지만 명필이 아니기에 붓이라도 좋은 걸 쓰고 싶은 마음이다.


자신의 땅을 빼앗기게 생긴 대추리 사람들이 합창을 하러 나왔다.


이 사진은 뽀샆으로 뭔가를 지운 것이다. 뭘 지웠을까? 원본 이미지는 제일 아래에.


생각보다 많이 모이진 않았다. (황우석 교수를 지키기 위한 촛불집회도 오늘 열렸다는데 쩝)


이 곳은 외국인이 아주 흔한 동네지만 촛불을 든 외국인은 낯설기에...

 

 




'청로 안마'가 너무 거슬려서리 ㅎㅎ

 

며칠 전 어머니랑 산에 갔다가 어떤 어르신들끼리 하는 얘기를 들었다.

"어제 평택역에서 사람들이 미군기지 이전을 반대한다며 뭐라고 하기에  '난 미군들이 많이 왔으면 좋겠다'고 얘기했어....중략... 땅 빼앗기게 된 사람들 처지야 안됐지만, 어차피  그런다고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포기해야지"

 

어차피 싸워봐야 소용없을 것 같았던 매향리도 승리했다.

영구집권 할 것 같던 박정희도 쫄따구 총맞고 뒈졌고,

전두환, 노태우의 군부집권도 그당시엔 도저히 끝낼 수 없을 것 같더니, 요즘 세대는 아예 그런 야만의 시대가 있었는지 조차 모르는 세상이 됐다.

 

그 어르신께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남은 여생 그냥 그렇게 생각하고 사세요.

근데 우린 좀 다르걸랑요.^^"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화성침공? ^^

몇년만에 수원 화성에 다시 가 보았다.

 

일요일 오후

아버지도 안좋으신데 어머니까지 허리병이 나서 심난했다.

서울에 갈까말까 망설이느라 아무 약속도 잡지 않은 상태였다.

물론 용산에 가서 불법 DVD라도 몇장 사올까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그러다 우리동네까지 뚫린 전철도 타볼겸,

오랫만에 사진도 찍어볼겸 해서 비교적 가까운 수원 화성에 갔다.

그런데 초입부터 짜증이 좀 나기 시작했다.

 

일요일이라 사람이 많은 것이야 그러려니 했다.

입구에 있는 설명을 보니

70년대 국방유적 복원 사업의 하나로 복원이 시작됐다는 설명이었다.

그냥 '유적 복원'이 아니라 '국방'유적 복원이라니

역시 위대한 박통 깍까 시절다운 발상이다.

그래, 그것도 괜찮았다.

온 나라를 병영화 하고, 온 국민의 생활 깊숙히까지 군사문화를 찬연하게 꽃피우게 했던

박정희 덕에 복원이라도 시작했으니 까짓거 넘어가 주자.

 

나를 짜증나게 만든 것은 이런 것들이었다.



"공사중"

복원을 위한 공사라면 얼마나 좋겠냐만은 이건 그게 아니다.

흙길을 없애고 시멘트를 쳐바르면서 야경을 위해서 바닥에 조명을 까는 공사다.

밤에 보면 열라 멋지겠지? 기다렸다 그 멋진 야경사진을?

시멘트 깔아 놓으면 비가와도 질퍽거리지 않고 되게 좋겠다. 그지?

빌어먹을.

몇년 전 왔을 때는 없었던 기념품 판매점.

그 옆에 만들어 놓은 "효원의 종"

일반 시민도 칠 수 있다.

단--!!!!! 타종권이란 걸 돈주고 사란다. (자본주의 만세다)

"타종 안내"는 더 웃긴다.

돈내면 3번 칠 수 있는데 무식한 중생들이 아무 생각없이 칠까봐 걱정이 됐나?

친절하게도 무슨 소원을 빌어야 하는지까지 지정해 주셨다.

- 1타: 부모의 건강 기원 (고아는 치지 말라?)

- 2타: 가족의 건강 기원 (부모는 가족 아닌가? 뭘 따로 쳐?)

- 3타: 자신의 발전 기원(차라리 부적을 사라!)

'사적 제 몇호'라고 되어 있는데 올라가 보면 수원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오면서

수많은 낙서도 한 눈에 들어온다.

근데 복원이라는게 시멘트 바르는 방법밖에 없나?


사진을 몇 장 찍기는 하는데 도무지 흥이 나질 않았다.

그래서 오우삼인양 비둘기나 찍고

화성 바로 옆에 있는 50년 역사와 전통의 이발관이나 찍고.

유치찬란함의 백미는 역시 '화성열차'

서울대공원에 있는 코끼리 열차에서 영감을 얻었나?

지난 번에는 성 안쪽으로만 돌았는데 이번에 성 바깥쪽으로 나가봤다.

이 사진을 왜 올렸을까?

다음 사진을 보고 알아 맞출 것.

나중에 복원 된 벽이다.

두 개가 합쳐지면 이렇게 된다.

성벽 아래에는 조명시설이 줄줄이 박혀있다.

이번에 처음 가 본 것이었다면 그러려니 했을 것도 같다.

그런데 몇년 전의 모습과 비교가 되면서 정말 '꽝'인 일요일 오후가 되버렸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귀농한 인환씨를 만나러

너무도 허전한 '다녀오기' 카테고리를 채워볼 요량으로 퍼온다. 아무데도 갈 수 없는 사정상 이 카테고리를 없앨까도 생각해봤지만 설마 마냥 이렇게 살기야 하겠냐는 희망으로 살려둔다.

 

다소 우발적으로 전남 곡성을 가게 됐다.

그러다 보니 열차표도 예매를 못했고, 토요일인지라 아침 8시 기차밖에 없었다.

인환씨는 5시정도 되야 일이 끝나는데 난 4시간 정도 먼저 곡성에 도착했다.

일단 역근처에 있는 식당을 찾았는데 두 군데밖에 없었다.

그 중 하나는 중국집. 예까지 와서 중국집을 가긴 싫었다.

백반을 시켰는데 12가지 반찬에 동태찌게까지 나왔다.

역시 전라도다.

전라도 음식치고는 그렇게 감동적이지 않았지만 다양한 반찬에 만족스런 점심이었다.

기차역에 있는 지도를 보니 5Km 떨어진 곳에 도림사가 있다고 한다.

걷기에도 만만하고, 시간 때우기에도 만만하다.

도림사를 찾아가다 길을 물으니 아저씨가 길을 가르쳐 주면서 하는 말.

"걸어가려고요? 솔찬히 먼데..."

 

 

솔찬히 걸어서 도림사에 도착했다.

배경에 묻혀서 처음엔 이 녀석들을 보지 못했다.

내가 카메라를 들이대니까 긴장해서 그렇지 실제 모습은 너무나 귀엽다.

하는 짓도 그렇고.

털색깔이 너무 특이해서 마치 들개 같았다.

나하고 잘 놀던 녀석이 다른 등산객들이 지나가자 짖어대기 시작했다.



인환씨가 두 개에 5천원 주고 산 드럼통으로 만든 난로다.

몇 번의 실패 끝에 내가 간 그 날에야 시운전에 성공했다.

난로옆에 있는 녀석은 서울에서 같이 내려온 누이.

 

원래 이름은 '루이'였다고 한다.

그런데 종자도 시골에 어울리지 않는데 이름까지 '루이'라면

자칫 왕따당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가장 근접한 이름으로 바꿨다고 한다.

'누이'로. 성까지 같이 부르면 '오누이'

 

나를 가슴 아프게 만든 녀석이다.

진돌이의 공격으로 한쪽 눈이 빠졌다.

 

진돗개를 일본으로 데려가 종자개량을 했다는 야키다. (맞나?)

 

누이와 진돌이는 정말 친구같았다.

진돌이가 너무 사고를 많이쳐서 문제였지만.

기르던 기러기도 물어 죽이고,

좋다고 내게 달려들어 머리로 내 턱을 쳐받는 바람에 정신이 없었다.

 

마당 너른 집. 먹고 사는 걸 떠나서 그냥 바라보기엔 너무나 좋아보였다.

 

드디어 보호대를 풀었다. 그동안 제대로 긁지 못해, 한참을 긁고 문지르고 난리였다.

8살이나 먹었는데, 재롱떠는 것이 너무나 귀여운 녀석이다.

 

산에서 따온 이름모를 열매로 염색을 해보았다.

 

인환씨 밭 바로 앞에 있는 저수지.

지난 여름에 여기서 수영을 했다고 한다.

물론 수영금지라고 써있지만.

 

요만큼이 인환씨가 뭘 심어놓은 밭이고,

이만큼이 앞으로 풀뽑고 돌 골라내고 해서 밭으로 일궈야 할 곳이다.

실제로 보면 무지하게 넓다.

 

수확의 기쁨?

배추씨를 심고 비닐을 덮어놨는데 한달만에 와보니 많이 자라 있었다.

이건 마늘. 따뜻하라고 겨를 덮어놨다.

 

그리고 섬진강으로 갔다.

사실 사진 찍으러 간 것도 아니었고, 이런 얘기를 쓰려고 시작한 것도 아니었다.

귀농을 선택한 인환씨의 얘기도 들어보고, 그들이 사는 모습도 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걸 여기에 쓸까 했다.

많은 얘기를 듣고, 많은 걸 느끼고 오긴 했는데, 정리가 안된다.

뭐, 사실 안될 것도 없긴하다. 그런데 별로 쓸 자신이 없다.

쓰는 게 잘하는 짓인지도 모르겠고 말이다.

그들이 예쁘게 살아가는 모습에 대해 쓸 수도 있을 것이고,

그들이 겪고 있는 고생에 대해서도 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겨우 하룻밤 자고 오면서 보고 느낀 것에 대해 주절대는 것이

너무 같잖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조금 더 고민해봐야겠다.

초여름쯤에 다시 가기로 했다.

 

 


2004년 초에 다녀온 것이다.

아버지께서 병이 나는 바람에, 초여름에 다시 가겠다는 약속은 지키지 못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변산반도

디지탈 시대에 필름 카메라를 쓴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 참으로 귀찮고 미련한 짓이다. (그것도 흑백필름을!)

일단 돈이 많이 든다. 필름값, 현상료, 인화료 등이 만만치가 않다. 게다가 인터넷에 올리려면 스캔을 받거나 디카로 다시 찍어야 하는데 그것도 무지 귀찮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 디카로 찍는게 그나마 덜 귀찮은데 디카는 필카와 가로세로 비율이 달라서 어차피 그래픽 프로그램에서 사진마다 일일이 다시 잘라내고 크기 조정을 해야한다.

 

아버지 때문에 집밖을 나갈 수 없는 나같은 경우에는 현상과 인화를 직접해야 하는데 디카에 이미 익숙해진 상태라  이짓을 해야하나 싶기도 하다. 빛이 들어오지 않도록 이중으로 커텐을 치고, 약품을 타고 확대기에 필름을 한장씩 끼고, 노출을 맞추려 몇번의 테스트를 하고, 뽑은 사진을 물에 씻어주고(수세) 집게로 하나씩 널어서 말려주고...

 

이틀전 그 짓을 했다. 2년여만에. 사진을 찍으러 다니는 것이 불가능하니 예전에 찍은 거라도 뽑아보고 싶었다. 참 미련하게 느껴지면서도 오랫만에 인화를 하니 기분이 좋았다. 오늘 올리는 사진은 변산반도에 갔을 때 찍은 것이다. 전에 몇장만 뽑아보고 말았었다. 변산반도에 관한 소개는 귀찮아서 못하겠다.

 

내소사에서 찍었던 것 같다. 나무결의 느낌이 예술인데 티카로 찍어서 사이즈를 축소했더니 그 느낌이 전혀 안난다.

 

큰 절 입구에 의례 있는 사천왕상


 

같이 간 친구.  이 친구가 결혼하기 전에 어디든 한 번 갔다 오자고 해서 떠났다.


 

절은 이렇게 자연과 자연스럽게 잘어울리는데, 예전에 양수리쪽에선가 산 비탈을 무지막지하게 밀어버리고 엄청큰 교회를 지어놓은 걸 보고 뜨악했다.

 

바로 윗사진의 문에 가까이 가면 이런 문양이다.


 

뽑고 나니 참 재미없는 사진인데 뽑아 놓은 게 아까워서.

 

사진으로 보니 그리 커 보이지 않는데 실제로는 무지 큰 건물이다. 왼쪽과 오른쪽 아래에 자세히 보면 사람이 있다. 


 

교회에서 헌금을 받듯 절에서도 받는데, 이렇게 기와에 쓰고 싶은 글과 자신의 이름을 남기기도 한다. 아마도 불전 짓는데 기와값을 보탠다는 식인 것 같다. 글 내용이 꼭 나 같은 인간이 쓴 것 같아서^^

 

내소사는 참 매력적인 절인데, 문제는 너무 유명해져서 사람들이 지나칠 정도로 많이 득실 거린다는 거다. 도저히 절을 둘러보는 '맛'이 나지 않을 지경이다. 짜증이난 친구와 나는 이름나지 않은 개암사를 찾아갔는데 아주 마음에 들었다. 난 절에 가면 법당안에도 들어가 구경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예를 갖추어 삼배를 드리고 나서 둘러본다. 그냥 세배하듯이 절을 하면 안된다. 손을 양어깨만큼벌려 엎드린 상태에서 손바닥을 뒤집어 손바닥이 하늘을 향하게 하면 된다.


 

개암사에서 만난 멍멍이들. 처음으로 제법 그럴듯한 역광사진을 찍었다. 그 당시 이 사진이 마음에 들어서 여러장을 뽑았더니 정혜가 비웃었다. ^^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소록도

밤새 운전을 하고 갔다.

소록도, 정말 멀더만.

녹동 선창장에 도착을 하고, 코앞엔 소록도가 보였다.

약간 낯설고, 약간은 떨리고, 조금 설레기도 하고.

 

 

어리버리 첫날- 자원봉사

 

대단한 영미씨다. 소록도까지 일감을 싸갖고 오다니!

영미씨는 컴터앞에 앉아 일을하고, 그런데님과 나는 자원봉사자 회관을 찾아갔다.

 

- 며칠간 하실 거죠?

"3일이요"

-단기로 하실 거니까 좀 힘든 일이어도 괜찮죠? 새벽 5시에 일어나야 하는데.

"...네."

(어, 이게 아닌데. 우린 자봉도 하지만 실컷 놀기도 할건데 이래서야...)

 

그런데님은 중환자병동에, 난 정신병동에 배치됐다.

 

잠도 못자서 몽롱한데, 무엇을 할지 몰라 어리버리한 첫날이었다.

한센병환자도 처음이고, 정신병동도 처음이고.

가자마자 물수건으로 얼굴과 손을 씼겨주란다.

처음 씼겨드린 할아버지는 한센병 때문에 눈도 없고, 손가락도 없다.

아니, 씼겨드리기 전에 한 일이 있구나.

할아버지께서 소변을 보시겠다고 했고, 난 이렇게 말했다.

"어떻게 해야하죠?"

 

주로 한 일은 씼겨드리기(제일 힘든 목욕시키기는 전날 했다고 한다.),

식사시키기(식사시간도 약간의 전쟁이다. 눈이 안보여도 혼자 드시는 분이 있는가 하면

떠먹여드려야 하는 분도 있다.), 기저귀 갈기, 소변 받기, 옷갈아입히기, 등등.

 

가장 나를 긴장시킨 것은 손톱깍아 드리는 것이었다. 그냥 손톱만 보면 무지 긴데,

손톱 밑을 보면 살과 늘러붙어 있는 경우가 많아서 조금만 잘못하면 피가 나기 때문이다.

손톱이 너무 두꺼워져 손톱깍기가 아예 안들어가는 경우도 많다.

 

3일간을 주로 병동에서 보냈는데 병동에서는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그곳 사진은 없다.

사진촬영이 금지되지 않았다해도 안찍었을 것 같다. 사진찍으러 간 것도 아니었고.

 

첫날 사진은 없다. 너무 피곤했고, 다음날 새벽 4시반에 일어나기로 했기 때문에

저녁에 선영씨집에 돌아오자마자 잠을 잤다. 그런데...

 

 

밤9시가 좀 안되서 영미씨가 깨웠다. 밤바다에 나가자고.

나나 그런데님이나 밤바다에 가고 싶었겠는가?

너무너무 일어나기 싫었는데 그래도 일어났다.

하루종일 혼자 있었던 영미씨와 놀아줘야겠다는^^ 의무감 땜시.

 

너무 피곤하고 졸려서 밤바다 좋은 줄도 잘 몰랐는데, 선영씨집에 돌아와 술을 먹으니 좀 말똥말똥해졌다.

송환 얘기도 하고, 소록도 얘기도 하고...

 



그런데님의 셀프샷. 자신의 변화하는 모습을 관찰하겠다나 뭐라나.


둘째날 점심시간에 선영씨집앞에서.


병동 바로앞 바다에서 


옛날에 사용했던 검시실 내부


일제시대때는 강제로 정관수술을 했다고 한다. 그 수술대

 

단종대 (이 동)

 

그 옛날 나의 사춘기에 꿈꾸던

사랑의 꿈은 깨어지고

여기 나의 25세 젊음을

파멸해 가는 수술대 위에서

내 청춘을 통곡하며 누워 있노라.

장차 손자를 보겠다던 어머니의 모습

내 수술대 위에서 가물거린다.

정관을 차단하는 차가운 메스가

내 국부에 닿을 때

 

모래알처럼 번성하라던

신의 섭리를 역행하는 메스를 보고

지하의 히포크라테스는

오늘도 통곡한다.

 


짱박혀 담배피기


그런데님보다 내 점심시간이 30분 더 길어서 영미씨와 좀 돌아다녔다.

 

 

둘째날

 

둘째날 자원봉사는 훨씬 수월했다.

몸은 피곤했지만 이젠 어리버리 단계를 지나 뭘 해야할지 감이 잡혔기 때문.

하루 자봉한 주제에, 새로온 자원봉사자들에게 뭘해야 할지 교육도 하고. ^^

 

홍구 할아버지라는 분이 계셨는데 어깨를 몇 번 주물러 드리곤 했다.

그런데 그 할아버지께서 내게 오라고 손짓을 하셨다.

자신의 침대에 와서 앉아보라는 것이다.

그리곤 창밖의 바다를 보라고 한다.

정신병동이라 창문에 비록 쇠창살이 쳐져 있지만 창밖의 바다는 아름답다.

잘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할아버지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다.

 

그러다 할아버지가 갑자기 우시는 거다.

난 어쩔줄을 몰라하고 있는데 간호사 지나가다 그런다.

"그 할아버지 원래 그래요."

 

그냥 혼자 생각해 보았다.

이 할아버지는 정신이 말짱한 편이었고, 나이는 여든이 넘으셨다.

혼자 걷지도 못하고, 기저귀를 차고 사신다.

자신이 이 병동에서 삶을 마감하게 될 것이란 걸 아시고 계실게다.

그런 저런 생각이 들면 울음이 안나오겠는가?

 

 

두 번째 밤바다

 

이날은 정신을 좀 차려서 카메라도 챙기고, 폭죽도 챙겨서 바다로 나갔다.

물론 맥주와 안주도 가지고 나갔다.

깜깜한 바다가에서 핸드폰 불빛을 이용해 나뭇가지를 찾아서 긁어 모았다.

그런데님의 집념으로 제법 그럴 듯한 모닥불을 피우고.

맥주로 병나발도 불고.

이게 뭔 사진이냐고?

믿거나 말거나 밤바다 사진이다.

낸들 어떻게 하나? 뵈는 게 없는데 어찌 찍냔 말이다.

바다는 보이지 않지만 잔잔한 파도소리는 들린다.

못온 사람들 부러워하라고, 무지 재미있는 척?하며 폭죽놀이를 했다.

 

 

마지막날

 

영미씨는 아침에 먼저 출발하기로 했다.

새벽에 일을 하고 긴 아침식사 시간을 이용해서 사진도 찍고 영미씨 배웅도 했다.

선영씨 집이고,

선영씨 집에서 문을 열고 나오면 이런 풍경이다.

선영씨가 일하는 어린이집.

말그대로 선영씨집 코앞에 있다.

두 번째 셀프샷. 뭐 바뀐게 있나?

 

거실에서 기념촬영

집앞에서도 기념촬영

선착장에서 배를 기다리며.

내가 찍은 그런데님 사진 중에 이게 젤로 맘에 든다.

 

드디어 배가 오고

혼자 씩씩하게 배를 타러가는 영미씨.

어제밤에 얼핏 사슴 한 마리를 본 게 전부였는데

오늘은 떼거지로 등장했다.

뻘에서 꼭 한 장 찍어야겠다기에.

근데 어두워서 셔터속도를 늦게 했더니 좀 흔들렸다.

뽀샾으로 보정을 좀 하긴 했는데...

어두워지는 바닷가에서 선영씨에게 요술풍선 강습.(그런데님 촬영)

자신의 컴터 바탕화면으로 쓰겠다고 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지리산 올라가기

젠장 벌써 7시군. 6시에 일어나려고 했는데.

하긴 어제 너무 늦게 잠자리에 들었지.

텐트치고 라면 끓여 먹고 나니 11시가 다 되어 가는데도

그 시간에 술을 먹기 시작했으니.

반딧불도 보고 밤하늘의 별도 보고

계곡 물소리도 들으며 술한잔 하다보면

친구와 뭔가 그럴 듯한 대화를 나눌 것도 같지만

우리의 일상이 누추하듯 우리의 대화 내용도 그냥 그렇고 그런 것들뿐이다.

늦게 일어났다고 또 라면을 먹을 수는 없으니 밥해 먹어야지.

어제밤에 귀찮아도 쌀을 담가두길 잘했군.

내가 한 밥이지만 정말 예술이야.

 

 

나이를 확인하다 ?

 

한신계곡-> 세석산장-> 장터목 산장-> 천왕봉-> 하동바위

코스를 정했으니 열심히 올라가야지.

난 그렇게 힘든 것까지는 모르겠는데, 이 녀석은 자꾸 나이 탓을 하네.

지가 맨날 대충 라면으로 때우고 운동도 안하니까 그렇지

어디 꼭 나이 때문이겠나.

하긴 맨날 술에 쩔어 살던 나도 별로 나을 건 없다.

 

내 눈치를 보며

"좀 쉬었다 갈까? 그리고 앞으로도 자주 쉴 것 같은데..."

어쩌겠는가. 쉬어야지.

"천왕봉까지 가려면 시간 안모자라냐?"

"걱정마. 충분해"

 

"야 여기 기억나냐? 10년전에 우리가 수영했던 곳인데"

나같은 길눈에겐 다 거기가 거기 같은데 기억날 리가 있나.

"수영했던 기억은 난다."

한여름은 지났다지만 그래도 8월이고, 날도 이렇게 더운데 수영이나 하고 갈까?

어제밤 계곡물에 씻을 때도 별로 차갑지 않았잖아.

 

 

어라? 물이 왜 이리 차가운 거야.

기껏 옷도 벗었는데 수영은커녕 발도 못담그겠네.

5초정도만 발 담그고 있어도 발이 시려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군.

분하다. 10년만에 수영 한 번 해보려고 했는데.

"야, 예전엔 이렇게 차가운 물에서 어떻게 수영을 했지?"

친구 왈 "그땐 한여름이었고 제일 팔팔할 때였잖아"

그래도 좋다. 수영은 못즐겼지만 눈과 몸은 이렇게 즐거우니.

계곡물은 그냥 마셔도 찜찜하지 않고.

그런데 이렇게 좋은 한신계곡 쪽에는 사람들이 왜 없지?

이쪽 코스가 좀 험해서 그러나?

 

 

길을 잃다.

 

올라갈수록 점점 험해지는군.

친구놈은 원래 그랬다치고,

난 왜 갑자기 힘이 쫙 빠지고 다리가 후들 거리지?

배고픈 건가?

친구가 건네준 쵸코바, 이거 완전히 마약이군.

먹자마자 힘이 확 솟네.

이런 효과를 전문용어로 '직빵'이라고 하나?

 

 

바위와 나무들이 온통 이끼로 덮인 모습이

플래툰 같은 베트남전 영화에서 본 정글 느낌이다.

이끼낀 바위는 정말 미끄럽다.

난 이렇게 계속해서 미끄러지며 헤메고 있는데

이녀석은 잘도 올라가네.

 

 

"범수야, 길 잃어 버린 것 같다."

엥? 이녀석 여기 출신 맞아?

지리산을 마치 제 앞마당처럼 얘기하더니.

반달곰이 좋아한다는 연죽만 지천으로 널려있군.

풀에 쓸리고, 나뭇가지에 긁히고,

에고 에고 길을 찾아랏!

 

 

막판에 많이 힘들었지만 어쨌든 1차 목표지점인 세석산장에 도착.

이제부터는 능선을 타고 가기 때문에

좀 전처럼 그렇게 가파른 곳은 없다고 하니 다행이군.

근데 날씨가 왜케 좋다냐?

 

내 눈엔 별 것도 안보이는데 이 녀석은 뭘 그리 감탄을 하지?

"야~ 구상나무가 살아남았구나!"

 

귀신같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빨지산들을 도저히 잡을 수가 없어

토벌군이 산에 불을 질렀다고 한다.

아직도 흙을 파보면 검은 재가 나온다나.

모든 나무가 불타 버린 그 곳에

구상나무 군락을 만들겠다고 묘목을 심었는데

자생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놈들이 이렇게 멋지게 살아남았으니 친구녀석이 감탄할밖에.

 

저기 보이는 곳이 천왕봉이라고? 저길 언제가냐?

시간도 꽤 된 것 같은데.

사진이고 뭐고 빨리 빨리 가야겠다.

 

그래도 촛대봉 꼭대기에는 올라가서 내려다 봐야지.

 

이 녀석은 이제야 마약을 복용하는군.

하긴 마약 대신 어제 절에서 얻어온 오이와 과일을 잔뜩 먹기는 했지.

 

"저~기 보이는게 바다야, 구름이야?

여기 올라오면 맑은 날에 바다가 보인다고 하던데."

 

 

어찌하오리까?

 

장터목 산장 가는 길.

핸드폰이 안터지니까 시간도 안나오네.

시계는 핸드폰에 내장된 건 줄 알았는데 시간도 전파를 통해서 받나 보다.

시계를 찬 사람에게 시간을 물어봤는데.

 

아이고 큰 일 났다. 벌써 3시가 다 돼 간다고?

우린 1시반이나 2시쯤 됐는 줄 알았는데.

아직 장터목도 제법 가야 하는데, 그리고 점심도 아직 안먹었는데.

천왕봉은 포기해야 하나?

 

시간이 넉넉하다고 자신있게 떠든게 미안했는지,

길을 잃어 시간을 허비한 것이 미안했는지

친구녀석은 자꾸 엄한 소리를 한다.

"산이란게 꼭 정상에 올라야 맛이냐?"

"천왕봉이 지리산에서 최고봉이라니까

사람들이 꾸역꾸역 올라가는 것뿐이지 사실 별 의미는 없다."

 

맞는 말이긴 한데 거의 다 와서 못올라가는 것도 좀 그렇잖아.

장터목에 도착하긴 했는데 시간 여유가 너무 없다.

해떨어지면 랜턴도 없는데 말이다.

이 녀석은 죽어도 못가겠다고 하니

이 참에 짐을 다 내려놓고 혼자 올라갔다 와야겠다,.

생라면 반개를 후다닥 깨먹고 출발하려는데

친구녀석은 아무래도 걱정스러운가 보다.

올라가는데만도 1시간은 족히 걸릴텐데 1시간안에 올라갔다 내려올 수 있을까?

그나마 한시간도 거의 맥시멈으로 잡은건데.

에라 중간에 돌아오더라도 일단 가보자.

 

 

급한 마음에 너무 오버를 했나보다. 아주 죽겠구만.

이 상태로는 시간안에 도저히 못갔다 오겠다.

10년 전쯤에 천왕봉을 못올라 갔다면 굉장히 짜증났을 것 같은데

이젠 그런 일쯤은 그냥 넘길 만한 여유는 생긴 것 같다.

아님 스스로에게 세련된 변명을 할만큼 교활해진 건가?

뭐 아무려면 어때.

가을에 다시 오지 뭐. 내년에 오던가.

1808M 제석봉, 그래 오늘은 여기까지다.

 

사진이나 몇장 찍고 가야겠다.

안내판을 보니

예전에 도벌꾼들이 극성을 부렸는데

그들이 증거를 없애려고 불을 질렀다고 써있다.

친구 말에 의하면 도벌꾼들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라는데

증거를 없애려고 불을 질렀다는 것은 좀 이상하다.

아무래도 우리 국군이 빨치산 잡으려고 불질렀다고 쓸 수는 없어서 이렇게 쓴거 아닐까.

'도벌꾼'을 '토벌군'으로 바꾸면 딱 맞는데.

그러고 보니 어제 문수사 가는 길목에 세워져 있던

'지리산 공비' 어쩌구 저쩌구 하는게 생각나는군.

 

이번 산행 때 쓸려고 미니 삼각대를 샀는데 한 번은 써먹어야 할 것 아냐?

셀프샷 한 장.

자, 이제 열심히 내려가야 겠다.

 

 

2003년 여름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낯선 곳으로 여행/추억 속으로 여행

10년만에 친구와 지리산에 갔다. 10년 전에도 이 친구와 갔다.

친구의 고향이 바로 지리산 밑자락인 경남 함양이다.

나는 시간이 널널한데 반해 이녀석은 무지하게 바쁘기에 일정을 짧게 잡았다.

 

 

문닫은 학교

 

우리가 택한 등산로인 백무동 계곡에 가려면 친구가 태어난 곳을 지나치게 된다.

친구가 다니던 초등학교에 들렀는데 이미 폐교된 상태였다.

초등학교를 두 군데 다녔는데 두 곳 모두 문을 닫았다.

아무도 찾지 않는 학교 운동장은 잡초만 우거져 있었고,

새끼를 낳은 개가 사납게 짖어댔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

곧 이녀석은 경계를 풀었다.

옛날 학교가 의례 그렇듯 이순신 동상이 근엄하게 서있다.

이승복 동상이 없는 게 오히려 좀 이상했다.

 

 

처음 가본 문수사 / 10년만에 찾은 문수사

 

어릴 적 형편이 아주 어려웠던 내 친구는 5년동안 절에 맡겨졌었다.

10여년만에 찾아가는 그 절로 가는 길 내내

친구는 감회에 젖어 계속 주절주절댔다.

지금은 도로가 뚫려 차로 금방 올라갔지만,

어린 초등학생이 산길을 따라 그 먼 학교를

5년동안이나 다니기엔 무척이나 힘들었을 게다.

친구의 옛날 사진 속의 절은

불전이 달랑 하나 있는 아주 작은 절이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달라진 모습이다.

난 이런 사진 별로 안좋아 하는데, 친구녀석이 자꾸 찍으라고 해서 찍었다.

이 녀석이 하고 싶은 것 중의 하나가 '식물도감'을 만드는 것이다.

전공이 뭐냐고? "화학공학" ^^ 박사과정까지 마쳤다.

두 꽃 중의 하나가 다알리아라고 한 것 같은데...

이게 더덕 꽃이라고 한다. 다른 화려한 꽃보다 더 정감이 간다.

절은 변했지만 친구를 돌봐준 스님은 그대로 계셨다.

지리산 자락에 있는 절답게 뱀도 돌아다녔다.

내려 오는 길에 호두를 땄다.

난 호두가 그렇게 생겼는지 몰랐다.

쌀밥 먹어보는 것이 소원이었던 어린 시절의 친구에게는

이 호두가 천하진미의 간식이었다고 한다.

밤늦게 백무동 계곡 야영장에 도착해서 텐트를 치기 시작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