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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읽은 <공산당 선언> 중 가장 쉽고 이해가 잘 돼 좋았다.

강유원의 고전강의 공산당 선언

강유원 지음
뿌리와이파리 2006.05.20
펑점

대학 1학년 때던가 2학년 때던가 고집스레 이 책을 읽었다. 도무지 무슨 말인지도 모른채, 글자만 읽었다. 그리고 대학 5학년을 다니면서도 읽었던 듯 싶다. 그리고 졸업하고 사회단체 일하면서도 읽었던 듯하고, 교직에 나와서도 또 읽었던 듯한데, 별스레 기억나는 것이 없었다. 다만 "유령이 떠돈다"는 말과 국가를 "부르조아를 위한 위원회"라 칭하는 그 명쾌한 '선언'만이 남았던 듯하다. 하도 오래된 기억이라 정확하지 않지만, 이 팸플릿을 읽고 나면 항상 비판적 의식이 용솟음쳐올라 무엇에 대해서든 써야 한다는 느낌을 받곤 했던 듯하다. 이번에도 ...

"하나의 유령이 한국교육에 떠돈다."로 적고 "전교조 몰이 사냥에 MB와 뉴리아트, 조중동이 신성동맹을 맺었다."는 식의 패러디가 대학시절 대자보 초안을 쓰듯 떠올라 곤혹스럽다. 그런데 쓰고 싶다.

 

이 책은 내가 읽은 <공산당 선언> 중 가장 쉬웠다. 쉽다고 느낀 이유가 진짜로 쉽게 이해되도록 쓰였을 수도 있고, 프랑스 혁명과 서양사를 모른 채 읽었던 시절이 아닌, 제법 머리가 굵어진 지금이라서 좀더 쉽게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을 테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유쾌하게 재밌게 읽었다는 것이다.

 

아직도 공산당 어쩌고하면 빨갱이라는 부정적 어감에 덧씌워 몰매를 맞는 세상이기는 하지만, 공산당 선언에서 말하는 역사의 변혁과 기어코 反자본주의적이어야 하는 간명한 얘기-사람을 돈으로 보지마!-는 여전히 감동적이고 유효하다. 예전 지회 홈페이지에 '나는 사회주의자' 어쩌구했더니 '과격'이라는 딱지를 붙여주던 우리 전교조 사람들에게 이 책을 읽고 권하면 또 뭐라 할런지.... 그래서 잠시 물러서서 나는 '反자본주의자'라고 '선언'해볼까 싶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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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후기]누구나 디아스포라일 수 있다.

디아스포라 기행

서경식 지음 | 김혜신 옮김
돌베개 2006.01.16
펑점

 

디아스포라: 디아스포라는 ‘이산(離散) 유대인’ ‘이산의 땅’이라는 의미로도 사용된다. 이는 그리스어에서 온 말로 ‘분산(分散) ·이산’을 뜻한다. 역사적인 서술에서 이 단어는 헬레니즘 문화 시대와 초기 그리스도교 시대를 통해, 그리스 근역(近域)과 로마 세계에서 유대인의 이산을 가리키고 있다.                                               -두산대백과사전-


이 책의 저자인 ‘서경식’은 모어(母語)를 일본어로 사용하고, 모국어(母國語)는 한국어이며, 국적(國籍)은 한국이나 스스로는 ‘조선 반도’에 자신의 정체성을 둔 ‘재일조선인’이다. 일본어가 모어(母語)인 탓에 그는 ‘옮긴이’가 필요하다.

예술에 관한 에세이스트라고 소개하고 있긴 하나, 정확히 그가 일본의 대학에서 무엇을 전공했고, 무엇을 가르치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내가 알게 된 것은 그가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그 어떤 공간에서도 처음엔 타의에 의해서, 다시 자의에 의해서 ‘디아스포라’가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읅으면서 “플라이 대디 플라이(카네시로 카즈키 지음, 양억관 옮김, 북폴리오)”를 떠올렸다. 재일 조선인(또는 한국인) 작가 자신이 일본 소수민족(조선인을 포함한)이 되어 주류 일본 사회와 동화되지 못한(않은) 채 비상을 꿈꾸는 그 낙천성이 떠올랐다. 디아스포라가 언제나 절망 속에서 머물지는 않는다. “디아스포라 기행”에 언급하고 있는 디아스포라들은 절망을 내면화하고, 그 절망의 힘으로, 김훈 식으로 표현하면 ‘온 몸으로 밀고가’면서 이뤄낸 예술의 경지를 보여준다. 그것을 서경식은 역시 ‘온 몸으로 밀’면서 쓴 언어로써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단지 안타까운 것은 나의 천박한 예술 경험이 저자의 경험치에 너무도 미달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함량미달인 나에게조차 ‘디아스포라’는 많은 영감을 준다.

이 책을 읽으면서, 또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끝끝내 의문문 하나를 만들고 말았다.

<국가적, 역사적 맥락에서만 디아스포라가 존재하는가?>

우리 사회의 비정규직이나 경제적으로 궁핍한 이들은 우리 사회의 실재하는 디아스포라가 아닌가 말이다. 한국어를 모국어와 모어로 사용하나, 상류층과 그 고급한 이들이 쓰는 언어적 양상과는 사뭇 다르며, 사회보장제도 안에 놓여져 있기는 하나 시혜적 태도 앞에서 언제나 몸을 낮추어 ‘받아먹도록’ 또는 ‘기생한다’는 식의 상황이 그들을 디아스포라가 되도록 할 것이며, 다시 디아스포라를 선택하게 되지 않냐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경제적 상황을 떠나도 우리 사회는 계속해서 디아스포라는 양산하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역사의 진보’를 적극적으로 직설적으로 말하는 이는 우리 사회의 또다른 디아스포라이다. 여성의 절대적 권리와 평등을 말해도 우리 사회는 디아스포라이다. 학교에서 ‘평가’의 비서열화, 절대성, 교수자의 피드백만을 얘기해도 디아스포라이다......

그럼에도 디아스포라는 절망을 내면화한 힘으로, 온 몸으로 밀면서 나아간다. 나아가야 하는 거이다.


“(일본어)의 50음도를 점차로 쳐달라고 해 혀로 핥아보았지만 어쨌든 처음엔 아무거도 느끼지 못해요. 그래서 계속 하고 있으면 어깨는 결리지, 눈은 빨갛게 충혈되지, 눈물을 뚝뚝 떨어지지, 침은 나오지, 종이는 금세 끈적끈적해져요. 그래서 젖어도 점자의 점이 지워지지 않는 종이를 쓰는 거지요. 예를 들자면 그림염서라든가, 달력의 표지라든가 말이에요. 그런 종이에 점자를 쳐주면 처음엔 매끌매끌하던 게 조금 있으면 딱딱해져서 구멍이 난단 말이지요. 그래서 이렇게 하고 있으면(혀를 내밀고 고개를 흔들며) 젖어서 미끈미끈해져요. 언제나 처럼 침이겠지 하고 핥고 있으면 눈이 보이는 사람이 보고, ‘어어 이봐, 피가 나와’ 하는 거예요. 혀끝에서 피가 나오는 거지요”                   - 디아스포라 기행, 230쪽,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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