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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후기]누구나 디아스포라일 수 있다.

디아스포라 기행

서경식 지음 | 김혜신 옮김
돌베개 2006.01.16
펑점

 

디아스포라: 디아스포라는 ‘이산(離散) 유대인’ ‘이산의 땅’이라는 의미로도 사용된다. 이는 그리스어에서 온 말로 ‘분산(分散) ·이산’을 뜻한다. 역사적인 서술에서 이 단어는 헬레니즘 문화 시대와 초기 그리스도교 시대를 통해, 그리스 근역(近域)과 로마 세계에서 유대인의 이산을 가리키고 있다.                                               -두산대백과사전-


이 책의 저자인 ‘서경식’은 모어(母語)를 일본어로 사용하고, 모국어(母國語)는 한국어이며, 국적(國籍)은 한국이나 스스로는 ‘조선 반도’에 자신의 정체성을 둔 ‘재일조선인’이다. 일본어가 모어(母語)인 탓에 그는 ‘옮긴이’가 필요하다.

예술에 관한 에세이스트라고 소개하고 있긴 하나, 정확히 그가 일본의 대학에서 무엇을 전공했고, 무엇을 가르치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내가 알게 된 것은 그가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그 어떤 공간에서도 처음엔 타의에 의해서, 다시 자의에 의해서 ‘디아스포라’가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읅으면서 “플라이 대디 플라이(카네시로 카즈키 지음, 양억관 옮김, 북폴리오)”를 떠올렸다. 재일 조선인(또는 한국인) 작가 자신이 일본 소수민족(조선인을 포함한)이 되어 주류 일본 사회와 동화되지 못한(않은) 채 비상을 꿈꾸는 그 낙천성이 떠올랐다. 디아스포라가 언제나 절망 속에서 머물지는 않는다. “디아스포라 기행”에 언급하고 있는 디아스포라들은 절망을 내면화하고, 그 절망의 힘으로, 김훈 식으로 표현하면 ‘온 몸으로 밀고가’면서 이뤄낸 예술의 경지를 보여준다. 그것을 서경식은 역시 ‘온 몸으로 밀’면서 쓴 언어로써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단지 안타까운 것은 나의 천박한 예술 경험이 저자의 경험치에 너무도 미달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함량미달인 나에게조차 ‘디아스포라’는 많은 영감을 준다.

이 책을 읽으면서, 또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끝끝내 의문문 하나를 만들고 말았다.

<국가적, 역사적 맥락에서만 디아스포라가 존재하는가?>

우리 사회의 비정규직이나 경제적으로 궁핍한 이들은 우리 사회의 실재하는 디아스포라가 아닌가 말이다. 한국어를 모국어와 모어로 사용하나, 상류층과 그 고급한 이들이 쓰는 언어적 양상과는 사뭇 다르며, 사회보장제도 안에 놓여져 있기는 하나 시혜적 태도 앞에서 언제나 몸을 낮추어 ‘받아먹도록’ 또는 ‘기생한다’는 식의 상황이 그들을 디아스포라가 되도록 할 것이며, 다시 디아스포라를 선택하게 되지 않냐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경제적 상황을 떠나도 우리 사회는 계속해서 디아스포라는 양산하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역사의 진보’를 적극적으로 직설적으로 말하는 이는 우리 사회의 또다른 디아스포라이다. 여성의 절대적 권리와 평등을 말해도 우리 사회는 디아스포라이다. 학교에서 ‘평가’의 비서열화, 절대성, 교수자의 피드백만을 얘기해도 디아스포라이다......

그럼에도 디아스포라는 절망을 내면화한 힘으로, 온 몸으로 밀면서 나아간다. 나아가야 하는 거이다.


“(일본어)의 50음도를 점차로 쳐달라고 해 혀로 핥아보았지만 어쨌든 처음엔 아무거도 느끼지 못해요. 그래서 계속 하고 있으면 어깨는 결리지, 눈은 빨갛게 충혈되지, 눈물을 뚝뚝 떨어지지, 침은 나오지, 종이는 금세 끈적끈적해져요. 그래서 젖어도 점자의 점이 지워지지 않는 종이를 쓰는 거지요. 예를 들자면 그림염서라든가, 달력의 표지라든가 말이에요. 그런 종이에 점자를 쳐주면 처음엔 매끌매끌하던 게 조금 있으면 딱딱해져서 구멍이 난단 말이지요. 그래서 이렇게 하고 있으면(혀를 내밀고 고개를 흔들며) 젖어서 미끈미끈해져요. 언제나 처럼 침이겠지 하고 핥고 있으면 눈이 보이는 사람이 보고, ‘어어 이봐, 피가 나와’ 하는 거예요. 혀끝에서 피가 나오는 거지요”                   - 디아스포라 기행, 230쪽,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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