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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후기]아내가 결혼했다.

아내가 결혼했다

박현욱 지음
문이당 2006.03.10
펑점

소설가 김연수는 이 글을 '논쟁적이다'라고 평을 했다.

분명히 '발칙한 아내'가 불륜과 양다리와 두 집 살림을 하는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 현재의 도덕관념에서 보면 분명히 천박한(?) 이 이야기가 왜 재밌지? 우선 이 소설은 비현실적인 만큼 판타지 소설마냥 재밌다. 그럼에도 이 소설은 재미에만 머무르지 않는 문학의 미덕을 보여준다. 김연수의 말처럼 누구나 할 말이 생기는 '논쟁적' 미덕이 있다.

 

이 소설을 읽은 남성은 모두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거나 이런 '년'에 대해 성토를 한다고 들었다. 그럴 수 있다 싶다. 대한민국의 남성들 중 지금도 이 시간에도 두 집 살림을 하거나, 바람을 피거나, 어쩌면 벌건 대낮부터 낯선 곳에서 오입을 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그런 남성들은 걸려도 용서 받을 가능성이 높다. 대한민국이기 때문에. 여성은? 물론 용서 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왜? 대한민국이니까. 그런 대한민국에서 여성이 두 남자를 당당하게 거느리는 얘기가 어찌 대한민국 남성의 가슴에 열불을 지르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이 소설이 여성취향적이거나 여권주의자의 소설은 결단코 아니다.

이 소설의 중심를 '발칙한 인아'가 지배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여전히 남성적이다. 축구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이유는 이 소설의 남성적 장치이다. 여성이 남성의 지위와 논리 속에서 이야기를 진행한다는 면에서만 보면 여성주의적일 수도 있겠으나, 나는 "아내가 결혼했다"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여성이나 남성이 아니라 '사랑'이라 생각한다. 사랑 없는 결혼이 무의미하다면, 사랑이 유지되는(있는) 모든 결혼 양식은 유효하다는 것이다.

사랑 없이 자식 때문에, 살아온 정 때문에라는 비겁한 말보다는 이혼이 훨씬 아름답다. 동의한다. 사랑이 결혼의 전제조건이라면 당연히 난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정말 사랑이 결혼의 조건인가? 오로지 사랑만이 결혼의 조건인가는 나는 여전히 의심한다(오해가 없길... 내가 사랑 없는 결혼을 했다거나 사랑 없는 결혼을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전적으로 오해다). 속물적이라는 비난을 받더라도 자본주의는, 아니 그 어떤 시대도 오로지 '사랑' 때문에 결혼하지는 않았다. 그나마 명분으로만이라도 결혼의 전제로 사랑 운운한 것은 최소한 개인을 발견하는 근대에 이르러서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 소설은 '사랑=결혼'을 말하는 순정 소설이다. 오로지 결혼의 조건을 '사랑'이라 말하는 이 소설이 어찌 순정소설이 아니겠는가? 다소 과격하고 비현실적이라는 둥, 비상식적이라는 둥의 얘기를 듣는다 하더라도 작가가 말하고자 한 바가 난 결코 '발칙한 인아'에 있다고 보지 않는다. 오로지 사랑을 전제하는 낭만적인 결혼을 말한 것이리라 여긴다.

또 하나 결혼이라는 제도가 갖는 폐쇄성에 대한 얘기도 이 소설의 중요한 한 축이라고 여긴다. 이 폐쇄적 결혼양식이 남성 중심임은 부인할 수 없다. 나 역시 그런 편리 속에 있기에 더욱 잘 안다. 결혼이라는 현재의 문화양식이 지배적 흐름이고 여타의 시도는 모두 '불륜'이므로 이를 어쩌지는 못하겠으나 문제가 있는 것은 분명하고, 어떤 방향이어야 할지는 모호하지만, 그냥 문제가 있으니 문제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렇게 얘기하면 니네 마누라가 말이야 어쩌구 하면서 말꼬리 잡는 사람이 있을 텐데, 그런 꼬리잡기는 어릴 때나 하는 것이니 신경쓸 필요는 없겠지^^)

 

성석제는 심사평을 이렇게 썼다. '빠르다, 신선하다, 흥미진진하다' 맞는 말이다. 나는 덧붙이고 싶다. '뒤집힌다.' 속도 뒤집히고 웃다가 뒤집히고 생각도 뒤집힌다. 그러면서도 책을 덮으며 나는 이렇게 박수를 친다. "소설은 소설일 뿐 따라하지 말자, 소설은 소설일 뿐 따라하지 말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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