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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양하기와 지향하기

※이 글은 <학부모와 함께하는 학교운영위원회>라는 교육 월간지에서 청탁을 받아 쓴 초고이다. 쓸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 원고료가 있다고 해서 쓰기로 했는데(^^), 영 맘에 들지 않는다. 어쩌면 전부 새로 쓰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아직 송고 하지 않았고 있는데, 조금 시간이 남았으니 더 고민해보고...

 

           지양하기와 지향하기

 

                                                           양산여고 교사 이헌수

 

  지양이란 '더 높은 단계로 오르기 위하여 어떠한 것을 하지 아니함.' 또는 '어떤 사물에 관한 모순이나 대립을 부정하면서 도리어 한층 더 높은 단계에서 이것을 긍정하여 살려 가는 일.'을 말한다.
지향이란 ' 생각이나 마음이 어떤 목적을 향함.' 또는 '동기(動機)인 목적의 관념에 대하여, 그것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수단 및 예상되는 결과의 관념을 이름.'을 말한다.
  우리의 학교를 돌아보면 지양하는 것은 무엇이고 지향하는 것은 무엇인지가 불분명하다. 아주 편하게 비교육적인 것을 지양하고 교육적인 것을 지향한다고 하면 되겠지만, 그렇게 말하는 것은 교육적인 것의 가치(철학적) 판단을 배제한 공문구이거나 동어반복의 오류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학교 안만이 지양과 지향이 불분명한 것은 아닌 듯하다. 학교를 둘러싼 교육 관련 제집단도 이 불분명함에서 벗어나지 못하였거나, 심지어는 지양만 있고 지향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예를 들어 '학사모'라는 단체의 경우는 지향은 없고 '전교조 지양'만이 존재하는 듯해 보인다.
  여기서 교육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가치(철학적) 판단을 논한다면 길어지거나 논란만 많아질 뿐 실제적인 의미는 잃어버릴 것으로 생각되기에, 나의 가치 판단 속에서 지양해야 되는 것에 대한 대략과 지향해야할 것에 대한 나름대로의 상(像)을 말해보고자 한다.
  지금까지는 교육정책이 학교에 현실화 되는 과정을 보면 교육부→시도교육청→지역교육청→학교로 이어지는 수직적 관료체제를 통해 배타적이고 관료적으로 진행되어 왔다. 이 구조를 배타적이라 하는 이유에는 이 구조의 사이사이 어디에서도 교육의 주체는 항상 들러리일 수밖에 없기에 그렇다. 이로 인해 교육 제반의 민주화와 자치가 불가능하거나 왜곡되었고, 이로 인한 비현실적이거나 비민주적인 교육정책이 강행된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비민주성에 의해 우리의 학교 교육은 '대안'이라는 이름에도 밀리고, '공교육'에서도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판단이 전적으로 옳다면, 한 가지는 분명해진다. 지양해야 하는 것은 바로 배타적 정책결정구조와 관료행정이라는 것이다. 교육 주체들(교사, 학부모, 학생)에게 실질적인 교육 정책 결정 구조에 의사를 개진하고 관철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주는 것, 관료적 행정의 독점적인 감독적 지위를 지원의 체제로 바꾸는 것이어야 한다는 지향을 얻을 수 있다.
  이에 언급한 지향을 현실화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몇 가지를 말해보고자 한다.

 

 

<직접적인 교육주체의 참여권 강화>


  교육 주체를 교사, 학부모, 학생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이 말이 실상은 '듣기에만 좋은 빈말'임은 누구나 안다. 교사는 학교 내에서 교육과정 편성이나 운영에 있어서 참여할 통로를 차단 당하고 있으며, 있다고 하더라도 형식적 절차 이상의 의미는 없다는 것이 학교 운영의 실제 모습이다. 학부모는 기껏해야 교사들 밥이나 사주며 뒤치다꺼리하는 정도의 역할 이상을 요구받지도 않을뿐더러, 인습적으로 그들은 그러한 요구를 하지도 않는다. 요구한다고 하더라도 수용될 리는 물론 없다. 학생은 교육 주체라기 보다는 교육의 대상으로서만 간주되며 언제나 훈육과 교도가 필요한 대상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의 분위기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제도의 개선이 가장 효과가 빠르고 실제적일 것이다.
  교사회를 법제화하여 일상적 학교 운영에 있어서 그 결정이 실효를 가질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교육과정을 편성하고 평가할 수 있는 권한, 교원 인사와 관련(인사위원회)하여 자문적 성격이 아닌 실질적 권한을 갖도록 하여야 하는 것이다. 학교 운영위에서 교사 일반의 의사를 개진하고 관철시킬 수 있는 지위와 권한이 실질적으로 주어져야 하는 것이다.
  학부모에게는 학교 운영, 교육활동 전반에 대해서 '알권리'와 '평가할 권리'가 있어야 한다. 학교 제반 운영에 대한 알권리는 언제나 가능해야 하며, 학교 운영에 대한 학부모의 평가의 권리가 실질적 의미를 갖도록 배려되어야 한다. 물론 이에는 교사의 교육 활동에 대한 권리까지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부모회의 법제화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학생회는 교육의 대상으로서의 지위만이 아니라 주체로서의 지위를 주어야 한다. 학생회 임원 선출이 직선제로 이뤄져야 함은 물론, 피선거권에 대한 제한(성적과 관련한)은 없어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학생회에 예·결산권을 실질적으로 부여함으로써 학생회의 자치적 능력을 키워야 한다. 이에 나아가서 교사의 교육활동에 대한 평가권까지 고려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를 위해서는 학부모회와 마찬가지로 법제화가 선행 요건일 것이다.
  교육주체들에게 법적 지위를 부여함으로써 실질적 권한을 강화하는 것이 배타적 정책결정을 넘어서는 방법일 것이다. 물론 이러한 시행에 따른 부작용에 대한 여러 가지 우려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우려는 초창기의 시행착오이지 고착화되는 문제는 아니리라 생각한다.

 

 

<교직 사회의 수평화>


  학교의 구조는 교장→교감→부장교사→평교사로 이뤄지는 수직적 구조를 갖고 있다. 일부 교원단체에서는 여기에다가 수석교사까지 끼워 넣어서 수직적 구조를 더욱 강화하고자 하나 이는 전적으로 현 학교의 폐해를 심화시키는 결과만을 만들뿐이다.
  OECD 국가들의 학교 체제를 살펴봐도 우리 나라와 같이 수직적 구조를 갖고 있는 곳은 드물다. 교장의 우리 나라 학교 교육 체제의 본보기가 되었던 미국에서조차도 이와 같은 수직적 구조를 갖고 있지 않다.
  교직 사회의 수평화를 위해 필요한 최초의 조치는 교장선출보직제여야 한다.
  교장은 학교의 행정을 총괄하고, 일정 정도의 수업을 담당하도록 한다. 학교장은 교사의 학생 교육과 교사회, 학부모회, 학생회의 교육적 활동을 지원한다. 또한 교장은 학교자치의 정신에 입각하여 수평적 리더십으로 학예와 교무를 총괄하며 학교를 민주적으로 운영하도록 한다. 교장에 대한 선출·보직은 단순히 교육 주체들의 학교 참여의 통로가 열린다는 의미 뿐만 아니라 학교 내에서 교장에 대한 절대적 권력으로의 인식을 수평적 관계로의 인식의 전환을 가져 온다는 점에서 코페르니쿠스적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교장의 선출 보직에 이어 부장급 교사에 대해서도 선출·보직이 이뤄지게 될 것이고, 학교 전체적으로 선출·보직을 통한 인사의 원칙이 확립될 것이다. 이는 봉건적 가부장적 질서의 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학교 체제에 신선한 바람이 되어 많은 부분에서 실질적인 교육 개혁의 성과를 가져올 것이라 생각한다.

  개혁에 대한 많은 우려 중에서 권위의 상실로 인한 문제를 많이들 얘기한다. 선출·보직이니 학생들까지 평가의 권한을 주면 그렇지 않아도 땅에 떨어진 교권이 어찌 되겠냐는 둥의 얘기들을 한다. 그러나 권위는 강제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우려에 대해서는 앤서니 기든슨의 말로 대신하며 지금까지의 개혁적인 것으로 편향된 얘기들을 갈음한다.

 

"전통과 관습이 영향력을 잃어가고 있는 사회에서 권위를 확립하는 유일한 길은 민주주의를 통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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