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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후기]고전읽기의 즐거움

천천히 아주 천천히 때때로 읽기에 좋을 듯하다. 한번에 다 읽기에는 내용이 연결되지 않아 쉽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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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다산의 마음

박혜숙 지음 | 박혜숙 옮김
돌베개 2008.06.30
펑점

다산 선생 역시 한 사람의 아비였고, 남편이었고, 누군가의 동생이었고, 그리하여 따뜻한 피가 흐르는 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도 갈등하고 돌아보며 자신을 다듬어 갔다. 그는 바로'흔들리며 핀 꽃'이었다.

 

이 책은 수오재기로 시작한다. 고딩들도 아는 글이며, 수능 시험에도 나오는 글이니 더이상 무슨 말이 필요한 글이겠는가. 이 책은 다산 선생의 의식을 엿볼 수 있는-결코 깊이는 아니다. 짧은 글이고 편집된 글이기에, 더구나 그의 방대한 저서를 두고 발췌된 책을 보고 그를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면 이는 교만이다-친철한 편집이 돋보인다. 생애의 18년을 귀양지에서 보내야 했지만 좌절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자신의 학문적 업적을 이루는 바탕으로 삼는 그의 돋보이는 낙관적 자기 성찰과 의지는 한 편의 다큐멘터리이다. 그러면서도, 귀양지에서 가족과 자신의 형제와 자식을 생각하는 그 절절함은  또 한 편의 휴먼드라마이다.

 

그간 다산의 글들과 생애에 관한 책을 읽었고, 읽다가 힘들어 그만 둔 책도 있는데, 읽다 그만 둔 책에는 박석무의 <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만나다>라는 책이 있다. 힘들어 유난히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아 힘들어 중간에 놓아버렸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책의 내용이 새록새록해졌다. 독서는 읽다가 그만 둔다고 하더라도 읽은 만큼은 의미가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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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롱뇽의 친구들-2조 5000억과 145억

  우리가 함께하여 낮은 울타리가 되고

                              우리가 함께하여 도롱뇽의 친구가 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 먼저 물들었기 때문입니다.

.

 

 

문득 쌀쌀해진 겨울의 초입입니다.


오랜만에 편지글을 드리면서 어떻게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지 망설이게 됩니다. 

지금부터 저는 지난 몇 달 동안 제 마음에 거칠고 엉글게 엮여있던 이야기들을 드려보려합니다.


여러분들은 혹, 지난 10월 한 달 동안 중앙일보를 비롯한 몇 곳의 신문 한 귀퉁이에 조그맣게 실려 있었던 

‘천성산 손실에 관한 정정, 혹은 반론 보도문’ 을 본 일이 있으신지요. 

저는 여러분들이 무심히 보아 넘겼을지도 모르는 단 몇 줄의 반론 보도문을 싣기 위해 꼬박 1년 동안

몸에서 떨어져 나간 깃털이 허공을 떠돌듯 세상을 부유하며 다녔습니다.  

 

3000건이 넘는 천성산 관련기사를 정리하여 15개의 언론사에 3차례에 걸쳐 공문을 띄우고, 청와대 정책실을

비롯하여 170배나 과장된 천성산 손실 문제를 아무런 의심없이 인용하였던 대학과 연구소 등에 30통이 넘는

공문과 편지글을 띄우는 일도 그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잡습니다. 중앙일보 2008년 2월 25일자 E 면 ‘지표보다 현장 챙겨 기사 중’

본지 2008년 2월 25일자  E 면 ‘지표보다 현장 챙겨라 립서비스 경제는 이제 그만 중’ 기사에서 천성산 터널 공사가 중단 된 기간은 10개월이 아니라 6개월 이기에 바로 잡습니다. 공사가 중단 된 6개월 동안 시공업체가 입은 직접적인 손실은 145억 원이라고 밝혀왔습니다.

 

현제  대부분의 기관과 교수님들은 질문 자체를 무시하여 답신조차  않는 상황이며 간혹 답신 하신 분들도

자신들이 인용한 잘못된 추정치를  믿을 수 밖에 없었던 정황에 대한 변론으로 일관하고 있기에 때로는 

분이나 속을 끓이기도 하였습니다.

 

게다가 이제 관용구가 되어 버린 천성산 손실 문제에 대한 반론 보도문이 실린 후,   오히려 지인들로 부터 

'이제와서 다 끝난 일을 들추어 바로잡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질문을 받아야 했으며, 거대 언론인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를 상대로 소송까지 제기하며 나홀로 법정에 서는 저를 염려하는 눈길을 모른채 회피

해야 했습니다. 

 

  지인들의 염려는 현실적이어서 신문 한 모퉁이에 게재된 반론문은 그동안 과장된 수치 때문에 천성산에

일이 일어났는지, 그로인하여 천성산 문제가 어떻게 확장되어 갔는지,  현 정부는 이 문제를 어떻게

비약 시키고 있는지,  한 비구니가 겪은 아픔이 무엇인지에 대하여는 아무런 설명도 지 않고,  법정에

조선은 여전히 "도대체 무슨 보도가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수 없다" 하고,  반론문까지 게재했던 동아는  

역설적으로 "합의보도문의 게재를 이유로 위와 같은 수치를 인용 할 기회 자체가 원천적으로 봉쇄되어야

한다는 것은 언론의 자유에 대한 있을 수 없는 간섭이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라변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천 날의 굶주림도 한 끼의 배부름으로 잊는다지요. 

저는 돌연히 시작하는 이 이야기의 끝에 얼마전 제가 주고 받은 한통의 편지 글을 소개하여 드릴까합니다. 

 

이 편지글은 얼마전까지 가장 예리하고 혹독하게 천성산 문제를 비판했던 서울대 박효종 교수님께서 보내

오신 답신 글로 이  이야기를 옮겨 놓음으로  제가 왜 모두가 끝난 일이라고 하는 이야기를 붙잡고 아직도

세상을 깃털처럼 떠돌고 있는지,  다시 법정에 서는 천성산 이야기를 통하여 정말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무엇이며 우리가 아직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답을 함께 찾아 보고 싶습니다. 정정해야 것은

손실 수치가 아니라 치유해야 할  상처가 아직 우리 가슴과 이 땅에 너무나 많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인용하는 것을 허락하여주신 교수님의 편지글과 제가 보내드린 멜을  조심스레 옮기며 한동안 머뭇거렸던 

초록의 공명 이야기를 다시 시작합니다.

  www.chorok.org

환경친화적 정부를 자처하며 도롱뇽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는 한 여승의 '로맨티시즘'을 살리느라 천성산 공사를 지연시켜 2조5000억원의 국고손실을 초래했다.

                                                             <2008 신동아2월호 / 한국경제 2008년 1월 서울대 박효종교수>

 

 

 박효종 교수님께                            보낸날짜 2008년 10월 03일                  

 

귀의 삼보 하옵고,

저는 지난 7년 동안 천성산 환경 보존 대책위원장으로 활동하고 도롱뇽 소송의 대변인으로 법정에 섰던

지율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교수님께서 지난 1월 16일자 한국경제 신문과 신동아 등에 천성산, 도롱뇽

소송 관련 기사와 기고를 하신 일이 있습니다.


이에 직접적인 당사자로서 또한 천성산 대책위원장으로서 천성산 문제의 이해를 위한 간략한 자료를

첨부하여 드립니다. 자료를 검토하여 보시고 교수님께서 주장하신 부분과 잘못 이해 된 부분에 대하여

회신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지금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를 상대로 소송 중에 있으며 공식적으로 발표 된 모든 문건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공식적인 자리를 준비하기 전, 천성산 문제에 대하여 먼저 교수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천성산 대책위 지율합장

 첨부 : 천성산 손실문제 정리 자료.hwp    

                                                                                                 

                                                                                                   

지율스님께                                     보낸날짜 2008년 10월 04일

 

안녕하십니까. 서울대학교 윤리교육과의 박효종교수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스님의 글월을 받아보고

마음에 깊히 느낀 바가 있어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2008년 1월16일자 한국경제신문에 천성산공사를 지연시켜 2조5천억원의 국고손실을 초래했다고

쓴바 있습니다. 또한 신동아등에도 그같은 내용의 수치를 사용했습니다.그런 금액은 당시 언론에서 보도

내용을 인용하여 쓴 것이었습니다.


이제 스님의 글과 첨부된 내용을 보고 시공업체가 밝힌 직접적 손실금액은 145억이라고 밝힌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점과 관련, 그동안 과장된 수치를 사용하여 쓴 것에 대하여 참으로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또한 그동안

스님께서 받으셨을 심적 고통에 대하여 정말로 마음 아프게 생각하며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습니다.


또한 앞으로 이 문제에 대한 글을 쓸 때 상기와 같은 내용을 적시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다시 한번 송구스럽고 죄송스러운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받아들여주십시요.

감사합니다.                                                                                                            박효종 교수드림 

 

지율입니다.                          보낸날짜 2008년 10월 25일

 

망설임 속에서 글을 드립니다.

지난번 제가  교수님께 반론의 글을 부탁 드린 일이 있는데 기억하시는지요.

혹, 언론을 통해서 보셨는지 모르지만 저는 이 문제로 조선, 동아와 나홀로 소송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소송을 결코 싸움이나 투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천성산 손실 문제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사실관계의 인과로 풀어가야 할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기고가  어렵다면 지난번 교수님께서 주신  답신 메일 글을 제가 인용 할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셨으면 합니다. 혹,  다른 의견이 있으시면 말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지율합장

 

지율스님!                               보낸날짜 2008년 10월 25일

 

안녕하십니까. 지난번 지율스님께 보내드린 글속에  저의 뜻이 담겨있습니다.

당연히 물론 저의 답글을  인용하실 수 있습니다.

사실 관계에 있어서 잘못된 점을  늦게서나마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                                                                                                             박효종 교수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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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언한다, 내가 전교조 교사다!

 

전교조 교사의 명단을 공개하겠다고 뉴또라이트가 난리가 났다. 궁금하단다. 어느 학교에서 어떤 전교조 교사(그 사람들은 빨갱이 교사라 부른다더군)가 있으며, 그 학교 학생들이 얼마나 진학을 좋은 데로 하는지도 궁금하고, 학생들이 얼마나 빨갛게 물들었는지도 성토하고 싶다고 난리다.

전교조에서는 본인 동의 없는, 탄압의 의도가 있는 공개 압박을 협박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랬더니 뉴또라이트는 전교조 교사들이 스스로 부끄러워 공개를 꺼린다고 멋대로 해석한다. 어떤 단체에서 다른 단체 회원의 명단을 그 단체 회원의 동의 없이 일방 공개하겠다고 하면 일방적으로 공개 당하는 단체 회원들을 어떤 태도를 취할까? 뭐 그딴 건 일단 제쳐두자. 합리적 이야기가 어차피 되지 않는 ‘뉴또라이트’이니 굳이 내가 토론의 자세를 취할 필요는 없지 않나 싶다. 난 내 정보를 그들, 뉴또라이트가 공개하길 바란다. 왜냐하면 그런 식의 정보공개는 불법이고, 불법적인 공개는 소송을 걸 수 있다니 말이다. 말로 안 되면 법으로라도 말해야겠기에 난 원한다, 그들이 내 정보를 그들 맘대로 공개하길. 그러면서도 일말의 걱정이 있긴 하다. 그 놈의 법이란 것이 별로 상식적이지 않다는 것이 걸린다.

그래서 내 스스로 선언하기로 했다. 내가 전교조 교사라는 것을!

나는 이헌수이다. 경남 양산의 양산여자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으며 현재 교직 경력 10년차이며 소속 단체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으로, 정확하게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경남지부 양산지회 양산여고 분회 소속이다. 그간 전교조 지회에서 사무국장도 했고, 연대부장도 했고, 정책부장도 했고, 지부 대의원도 했고, 전국 대의원도 했다. 한미 FTA 반대 집회도 열심히 쫓아 다녔고, 교원평가 저지 투쟁도 열심히 했고, 각종 이슈의 연가투쟁도 열심히 다녔고, 연가 투쟁과 관련하여 징계 운운할 때 징계 동의를 거부하기도 했고, 최근에는 촛불집회와 관련하여 학생들에게 영상도 보여주고 학생들과 토론을 시도하기도 했고, 일제고사 저지 투쟁 집회도 가고, 反MB 집회라면 다 쫓아다니려고 노력하고, 보수적 자유주의자들이 사람 사는 세상을 망치고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요즘의 사회적 관심사는 대운하를 비롯한 환경재앙을 어떻게 실제적이고 효율적으로 저지할 것인가 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

수업은 제대로 하냐고 묻고 싶을 것이다. 내 정보를 공개했으니 우리 학교 학생들에게 물어보시길.....

자, 내 얘기는 대충 했으니 이제 전교조 교사가 누군지 궁금해 하는 당신, 당신 정보를 공개해봐. 나도 궁금하거든. 도대체 개인 정보를 궁금해하는 파파라치형 뉴또라이트가 누군지. 서로 공개하는 것이 공평하잖아. 나를 궁금해 하는 당신, 넌 누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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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후기]아내가 결혼했다.

아내가 결혼했다

박현욱 지음
문이당 2006.03.10
펑점

소설가 김연수는 이 글을 '논쟁적이다'라고 평을 했다.

분명히 '발칙한 아내'가 불륜과 양다리와 두 집 살림을 하는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 현재의 도덕관념에서 보면 분명히 천박한(?) 이 이야기가 왜 재밌지? 우선 이 소설은 비현실적인 만큼 판타지 소설마냥 재밌다. 그럼에도 이 소설은 재미에만 머무르지 않는 문학의 미덕을 보여준다. 김연수의 말처럼 누구나 할 말이 생기는 '논쟁적' 미덕이 있다.

 

이 소설을 읽은 남성은 모두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거나 이런 '년'에 대해 성토를 한다고 들었다. 그럴 수 있다 싶다. 대한민국의 남성들 중 지금도 이 시간에도 두 집 살림을 하거나, 바람을 피거나, 어쩌면 벌건 대낮부터 낯선 곳에서 오입을 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그런 남성들은 걸려도 용서 받을 가능성이 높다. 대한민국이기 때문에. 여성은? 물론 용서 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왜? 대한민국이니까. 그런 대한민국에서 여성이 두 남자를 당당하게 거느리는 얘기가 어찌 대한민국 남성의 가슴에 열불을 지르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이 소설이 여성취향적이거나 여권주의자의 소설은 결단코 아니다.

이 소설의 중심를 '발칙한 인아'가 지배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여전히 남성적이다. 축구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이유는 이 소설의 남성적 장치이다. 여성이 남성의 지위와 논리 속에서 이야기를 진행한다는 면에서만 보면 여성주의적일 수도 있겠으나, 나는 "아내가 결혼했다"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여성이나 남성이 아니라 '사랑'이라 생각한다. 사랑 없는 결혼이 무의미하다면, 사랑이 유지되는(있는) 모든 결혼 양식은 유효하다는 것이다.

사랑 없이 자식 때문에, 살아온 정 때문에라는 비겁한 말보다는 이혼이 훨씬 아름답다. 동의한다. 사랑이 결혼의 전제조건이라면 당연히 난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정말 사랑이 결혼의 조건인가? 오로지 사랑만이 결혼의 조건인가는 나는 여전히 의심한다(오해가 없길... 내가 사랑 없는 결혼을 했다거나 사랑 없는 결혼을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전적으로 오해다). 속물적이라는 비난을 받더라도 자본주의는, 아니 그 어떤 시대도 오로지 '사랑' 때문에 결혼하지는 않았다. 그나마 명분으로만이라도 결혼의 전제로 사랑 운운한 것은 최소한 개인을 발견하는 근대에 이르러서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 소설은 '사랑=결혼'을 말하는 순정 소설이다. 오로지 결혼의 조건을 '사랑'이라 말하는 이 소설이 어찌 순정소설이 아니겠는가? 다소 과격하고 비현실적이라는 둥, 비상식적이라는 둥의 얘기를 듣는다 하더라도 작가가 말하고자 한 바가 난 결코 '발칙한 인아'에 있다고 보지 않는다. 오로지 사랑을 전제하는 낭만적인 결혼을 말한 것이리라 여긴다.

또 하나 결혼이라는 제도가 갖는 폐쇄성에 대한 얘기도 이 소설의 중요한 한 축이라고 여긴다. 이 폐쇄적 결혼양식이 남성 중심임은 부인할 수 없다. 나 역시 그런 편리 속에 있기에 더욱 잘 안다. 결혼이라는 현재의 문화양식이 지배적 흐름이고 여타의 시도는 모두 '불륜'이므로 이를 어쩌지는 못하겠으나 문제가 있는 것은 분명하고, 어떤 방향이어야 할지는 모호하지만, 그냥 문제가 있으니 문제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렇게 얘기하면 니네 마누라가 말이야 어쩌구 하면서 말꼬리 잡는 사람이 있을 텐데, 그런 꼬리잡기는 어릴 때나 하는 것이니 신경쓸 필요는 없겠지^^)

 

성석제는 심사평을 이렇게 썼다. '빠르다, 신선하다, 흥미진진하다' 맞는 말이다. 나는 덧붙이고 싶다. '뒤집힌다.' 속도 뒤집히고 웃다가 뒤집히고 생각도 뒤집힌다. 그러면서도 책을 덮으며 나는 이렇게 박수를 친다. "소설은 소설일 뿐 따라하지 말자, 소설은 소설일 뿐 따라하지 말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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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후기]회화를 보는 눈

그림을 배우러 다닌 지 두 달째다. 소묘를 일 주일에 두 번씩, 두 시간씩 하고 있다. 마음을 잃고 어찌하지 못 하다가 시작한 그림에 제법 재미를 느끼고 있다. 중학교 시절 미술 선생님과 사생대회를 나갔었던 기억, 대학 시절 자유선택으로 미술사를 수강했던 기억들이 나름 미술에 대한 나의 끊이지 않는 애착이었다고 난 믿고 있다.



그림은 역시 보는 즐거움이 가장 크다. 그런데 어떻게 보는 것이 잘 보는 것이냐는 즐거움에 앞선 다른 문제이다. 즐겁기야 춘화가 즐거울 수 있지만, 그것은 잘 봐야 할 이유는 별로 없다. 시를 읽으면서 시의 즐거움과 달리, 시를 쓴 작가의 마음을 떠올려보고, 당대를 생각하여보고, 낱낱의 시어와 시의 구조를 탐구하여 봄으로써 시를 더 잘 읽을 수 있는 것처럼, 그림도 그렇다. 그림의 무엇을 보는 것이 잘 보는 것인가에 대해 이 책은 조근조근 얘기해준다. 같은 대상도 작가의 의도에 따라 어떻게 달라질 수 있으며, 심지어는 추상화의 의도에 대해서까지 말해준다. 형식미에 대한 얘기에서는 '선 중심'의 그림과 '채색 중심'의 그림의 비교를 통해 그림의 형식미를 정말 쉽게 얘기해준다.



그림을 그리는 시간 동안 나는 일체의 잡다함을 잊을 수 있어 좋다. 그림을 보는 것도 아마 그럴 것이다. 그에 앞서 그림이 주는 감동을 나는 때때로 경험하곤 한다.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미술책에서 봤을 때의 충격과 그런 피카소가 '청색시대'라고 불리는 규비즘 이전의 또다른 그림들이 주는 차가우면서도 비극적인 그림들, 종교화들이 주는 상징과 그림의 구석구석에 장치된 화가의 의도를 발견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그 즐거움, 신화를 재해석해는 화가의 인문학적 지식들, 이 모두를 '감동'이라는 말 외에 뭐라 달리 표현할 수 있을까?



전시회를 가고 가고 싶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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