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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할아버지라는 재산

할머니 할아버지라는 재산
 
 
바느질 하시는 걸, 장 담그는 걸, 나무 키우는 걸, 문에 창호 바르는 걸,
옛날 노래 부르는 걸 배우면 좋겠어.
그런 것들 가르쳐주는 작은 학교, 주말학교, 그런 것 있음 좋겠어.
노래 잘 하는 할머니반, 재밌는 이야기 할머니반, 장 담그고 김치 담그는
할머니반, 식물박사 할아버지 할머니반, 바둑과 장기 도사 할아버지반,
텃밭 가꾸는 할아버지반…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직접 선생님이 돼서 가르쳐주시면 좋겠어.
그분들, 세월 만큼 지혜가 쌓여서 얼마나 하고 싶은 이야기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많을까.

처음엔 말씀이 많으실거야. 오래 묵혀있고 엉켜있어서,
깊고 깊은 항아리처럼, 오랜 혼잣말처럼,
긴 실타래처럼 말씀이 많으실거야.
하지만 점점점점, 이야기를 덜어내고 덜어내면서,
쏟아내고 쏟아내면서 스스로 가뿐해지실 거야.
그리고 우리에게 건강한 지혜와 정을 나눠주실거야.
그런 학교, 그런 모임, 그런 방송 프로그램 있음 좋겠어.
우리는 은연중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방 안으로
마을 안으로 몰고 우리 스스로도 급히 노화시키고 있으니,

우리가 더 지혜로워지려면 품성이 넉넉해지려면 정이 깊어지려면
눈이 넓고 밝아지려면 그분들의 것이 우리에게로 건강하게 이어져야지.

그분들의 깊은 항아리와 우리의 빈 항아리가 서로 만나면,
쌓인 이야기 쌓인 지혜 우리에게 덜어주고 나면,
우리는 튼실해지고 그분들은 밝아지겠지.
그렇게 순환이 되면, 더 힘쎈 나라가 될거야.
 
백은하 / 글.그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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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시게..

        여보시게....
        돈있다 유세하지 말고
        공부 많이 했다고 잘난척 하지 말고
        건강하다 자랑하지 마소.

    명예있다 거만하지 말고
    잘났다 뽑내지 마소.
    다 소용 없더이다.






    나이들고 병들어 자리에 눕으니
    잘난 사람 못난 사람
    너 나 할 것 없이
    남의 손 빌려서 하루를 살더이다.

    그래도 살아 있기에
    남의 손으로 끼니 이어야 하고
    똥 오줌 남의 손에 맏겨야 하니
    그 시절 당당하던 그 모습 그 기세가
    허무하고 허망하기만 하더이다.






    내 형제 내 식구 최고라며
    남 업신여기지 마소.

    내 형제 내 식구 마다하는 일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그 남이
    눈 뜨고, 코 막지 않고도
    따뜻한 마음으로 미소 지으며
    입으로 죄짓지 않고 잘도 하더이다






    말하기 쉽다 입으로 돈 앞세워
    마침표는 찍지 마소.

    그 10 배를 준다해도 하지 못하는 일
    댓가 없이 베푸는 그 마음과
    천직으로 알고 묵묵히 자리 지키는
    그 마음에 행여 죄 될까 두렵소이다.






    병들어 자리에 누으니
    내 몸도 내 것이 아니온데
    하물면 무엇을 내 것이라 고집하겠소.
    너 나 분별하는 마음 일으키면
    가던 손도 돌아오니






    길 나설적에 눈 딱 감고
    양쪽 호주머니에 천원씩 넣어
    수의복에는 호주머니가 없으니
    베푸는 마음을 가로막는 욕심 버리고

    길가 행인이 오른손을 잡거던
    오른손이 베풀고
    왼손을 잡거던
    왼손이 따뜻한 마음내어 베푸소






    그래야 이 다음에
    내 형제 내 식구 아닌
    남의 도움 받을 적에
    감사하는 마음,
    고마워 하는 마음도 배우고
    늙어서 남에게 폐 끼치지 않고
    고옵게 늙는다오








 
 
아시겠는가......?





 
< 오리온의 블로그.. 에서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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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그 간절한 기도

오늘 서울에서 영주로 내려왔다..

간절히 바라면 된다는 말..끝까지 믿고 간절히 기도했었다.

할아버지들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한 물음은 매일 매일 나 스스로에게 체면을 걸었고

내 삶의 이유이자. 집착. 그리고 열정이었다.

예전에 함께 일하던 동료들의 매주 만들어지는 영상물에 그들의 거시적인 결과에 만족하는 모습을 보며 나 스스로 포기하고

나온 내 자신을 더 채찍질하고 스스로를 두둔했다.

푸른영상이라는곳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던 날이 기억이 난다.

추위가 가시지 않은 시린 바람을 맞으며 사무실에 올라가며 나 스스로 긴 호흡을 내쉬고 들이쉬었다.

끝까지 잘 해기를, 영화를 만들어 낼 수 있기를, 도중에 포기하지 않기를..

 

일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봄이 온다..

사람의 일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라는말..나를 위한 말인가 싶었다..

갑작스럽게 밀려드는 나의 개인적인 어려운 상황들은 정신을 못차리게 만들정도로의 시련이다.

거기에 무릅을 꿇고 끝까지 내 자리에서 물러서지 않기를 기도했었다.

  

내 간절한 기도가 이루어진것일까..

어제 동료에게 할아버지들의 이야기가 푸른영상의 이름을 단 작품으로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소리를 지르며 기뻐해도 모자랐을테지만 그 기쁨을 속으로 밀어넣는 나는 떨고있었다.

제작년 겨울부터의 촬영, 그리고 4차까지의 쓰라리고 힘들었던 내부시사, 오랫동안 부었던 적금을 깨서

내 소유의 카메라를 샀던일..

술을 마시고 헤어지며, 걸어오는 내내 무슨정신으로 걸어왔는지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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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나는 계속 배우면서 나를 갖추어 나간다.

언젠가는 나에게도 기회가 찾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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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최민식>

 

나는 평생을 가난한 사람들과 그들의 삶을 촬영해 왔다.
나의 사진 속에 등장한 그들은 가난하지만 따뜻하고 인간적인 순수함을 지니고 있다.
나는 나의 사진을 통해 인간적인 감정을 표현해냈으며, 그것이 순간포착으로 뒷받침되고 있다.
나의 사진 속에서 삶의 진실을 발견할 수 있도록 노력해 왔으며, 사진과 삶에 새로운 경지를 열고 차가운 비판과 따뜻한 고발성의 비판을 나타낼 수 있도록 고민 해왔다.
한 점의 사진을 말하는 것은, 그저 찍힌 사실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볼 때마다 깊이가 있어야 하며, 감동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사진작업과 인생과 예술적 포부가 하나의 조화를 이루어져 나타나 있어야 한다.
사진 작업을 할 때에는, 사진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회답을 얻고자 해야 한다.
그리고 '사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가져야 할 것이다.
사진은 관념이 아니라 살아있는 존재임을 명심하자.

남들이 지나가는 말로「사진은 왜 하는가, 돈도 안 되는데」라고 하지만 지금까지 돈을 위한 사진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내 인생에 오직 하나의 행운이 있었다면, 이는 아마 내가 독학으로 사진에 미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내가 겪어 왔고 아직도 나를 조롱하는 모든 불행에 대해 신에게 감사하고 싶은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나는 마치 사진만이 나를 구원해 줄 수 있다고 여겼으며, 사진이 곧 나의 삶이고, 삶이 곧 사진이 되어 왔다. 솔직히 사진은 나에게는 종교 이상이다. 내가 일생동안 찍어온 사진의 역사는 바로 나 자신의 삶의 느낌을 정직하게 전하려 한 것이다.

나의 눈은 항상 낮은 데로 향해 있으며, 나의 평생을 함께 해 온 카메라의 렌즈 또한 한없이 낮은 데로 치열하게 움직여 왔다. 목숨을 걸고 소외된 이웃만을 카메라에 담아 온 것이다. 나를 이처럼 만든 계기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1955년 일본에서 본「스타이켄」의 <인간가족> 사진집이다. 그 책은 나에 엄청난 감동을 주었고, 나는 오래 기다리던 소식이 당도한 것처럼 사진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이것이 내게 닥쳐올 일들의 희미한 서막임을 감지했다.

짓밟힌 꽃에서 풍겨나는 향기가 더 진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힘들고 소외된 인간들에게는 가진자에게서 느낄 수 없는 삶의 깊은 고뇌와 철학이 있다. 바로 그들을 주제로 10권 이상의 사진집을 발행했고, 그 속에 등장한 인간군상들에게서 가슴 저미는 삶의 향기를 느낄 수 있도록 노력했다.

나의 사진 찍기의 궁극적인 목적은 인간의 존엄성과 인류 평화에 닿아 있다고 할 수 있다. 나의 힘이 미치는 한, 우리시대에 함께 호흡하고 있는 민중전체를 사진에 담으려 하고 있다. 그리하여 후세에 내가 살아간 시대의 전체적인 사회 구조가 이러했다는 역사적 증언으로서의 기록을 남기리라 마음먹은 것이다. 이것은 사진가로서 가지는 나의 역사의식이라 생각한다. 나의 사진은 사회적 성격과 함께 철학적 성격을 띠고 있으며, 현실성과 영원성이 대립되는 양극의 세계를 하나로 통합하고 있는 것이다.

사진가의 길을 가면서 의식주를 해결하기가 무척 힘들었다. 생활을 내팽개치고 사진만 찍으러 다니는 가장을 좋아할 리 없다. 사회 고발적 측면을 강조한 사진 때문에 유신과 군사독재 시절에는 곤욕 깨나 치렀다. 이러한 오랜 수난들은 집안을 빈털터리로 만들고 말았다.바로 그 무렵 누군가가 나에게 구원의 손길을 주었다. 나의 작가정신과 인간정신 탐구를 지켜봐 온 카톨릭 쪽에서 나의 인간가족 탐구를 지원하고 나선 것이다. 경북 왜관소재 분도 출판사의 독일인 임 세바스틴 신부가 나의 사진집 「인간」 4,5,6,7,8집 모두 도맡아 출판해 주었다. 임 신부의 경제적 지원은 시대상황 때문에 극비로 이루어 졌으며, 정신적인 격려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사진은 어떤 휴머니즘적 몫이라고 나는 항상 생각해 왔다. 나는 늘 가난한 사람을 순간 포착한다. 그것이 내 생명력의 힘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가난 속에서 행복을 느끼고 있다.
나의 사진을 들여다보면 우리가 이미 겪었던 일과 지금 겪고 있는 일, 그리고 무엇으로도 감출 수 없는 상처가 묻어난다. 나의 사진 속에는 활자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숨쉬고 있다. 나는 누구보다도 평등한 애정으로 지극히 휴머니즘적 입장에서 우리들 가슴속 깊이 무엇인가를 새겨 주려 한다.
나의 사진은 예술적 감동보다도 사회적 문제를 지닌 인간과 그들의 삶을 앵글에 담고 있다. 서민들의 사진은 지울 수 없는 우리의 영원한 삶의 전부다. 서민들에 대한 고뇌를 가진 사진가 만이 진실한 창작의 소유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 마음이 곧 사진가의 정신이다.

진정한 리얼리즘 사진가로서 나는 어떤 것에 대해서도 눈을 감을 수 없다. 사진창작은 무엇을 결과로 남기는 것인가? 사진이 사회비판을 하지 않으면 대체 무엇을 추구한다는 말인가? 나의 사진은 이러한 물음에 대답하고자 노력해왔다.
표현하고 싶은 것을 찾아 열중해 왔으며 후미진 곳을 외면할 수 없었다. 내가 가질 수 있는 훌륭한 그 특성이란 대상을 보고 본질을 찾아내는 능력이다. 인간이 머무는 곳은 나의 사진영역이며 인생 그 자체가 소재인 셈이다. 사진이 예술이든 아니든 아무래도 좋다. 사진을 감상하는 사람이 사진을 통하여 무엇인가 공감한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사진가는 그 시대에 있어야 한다. 따라서 그 시대에 있지 않게 되면 자연히 사진 적인 작품은 존재치 않을 것이 분명하다. 어디에 가더라도 같은 인간은 없으나 어디에 가더라도 인간은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나는 꾸민 것, 느껴지지 않는 것, 가식적인 것을 부정한다. 삶에 보다 깊이 감동되면 될수록 사진작업은 더욱더 힘있는 것이 될 것이다.
"아아, 나는 지금 이곳에 살고 있다." 나는 창작할 때 이렇게 실감한다.
내 사진의 태반을 차지하는 가난한 사람들 ..... 지울 수 없는 얼굴들이다. 나의 인생을 사진에 꽉 차게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나의 사진은 생명체의 요소를 지니고 있다. 어린 시절과 청년시절의 험난한 체험이 바탕이 되어 있다. 내가 민주화를 위해 뛰어 들 때는 사진도 투쟁적이었다. 작업을 위해 나는 미쳐야 했고, 소명의식을 가지고 날마다 투쟁을 벌이는 창작의 인간으로 정립되고자 했다.

이름 없는 서민의 표정이나 모습에서 생생한 친밀감을 느낀다. 인간을 주제로 하는 까닭은 사진이 사람과 사람을 잇게 해서 인간적인 조화를 이루게 하는 것이다.
나는 사진을 통하여 좀 더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어 휴머니즘적인 정의사회를 만들어 보려는 신념뿐이다. 아마 앞으로도 그렇게 나의 길을 걸어 갈 것이다. 그것이 외로운 길일지라도......

어떻게 '내 의무를 다하면서 그들을 위하여 창작을 계속해 나갈 수 있을까?'를 항상 생각하고, 허튼 수작으로 시간을 낭비할 수 없게 하는 절대적인 빛이 있다고 자부하며, 가난한 그들과 함께 살다가 죽을 것이다.

-사진작가 최민식-

1957년 일본 동경중앙미술학원을 졸업.
이때부터 독학으로 사진을 연구하면서 창작에 몰두하며 인간을 소재로 사진을 찍기 시작.
1962년 대만국제사진전에서 처음으로 2점이 입선된 이후 미국,독일,프랑스,영국 등 20여개국의 여러 사진공모전에서 220점이 입선,입상.
1968년 개인 사진집[인간] 제1집을 낸 이후 1999년[인간]제10집을 출간하고 [리얼리즘 사진의 사상],
[작품 사진 연구],[세계 걸작 사진 연구] 등의 많은 책을 펴냄.
1970년부터 미국,독일,프랑스,일본 등 7개국에서 15회의 개인 초청전.
부산시문화상(1967), 한국사진문화상(1974), 도선사진문화상(1980), 현대사진문화상(1985), 예술문화대상본상(1987), 봉생문화상(1994), 대한사진문화상(1995), 백조사진문화상(1996) 등을 수상.
현재 한국사진작가협회 자문위원, 미국사진작가협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 있으며, 인제대학 및 부산예술대에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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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를 치러갔따꼬!

오늘 홍할아버지가 우리집(?)에 놀러오셨다.

할아버지가 계신 봉도각에서 내가 있는곳까지는 버스를 두번이나 갈아타야 올수 있는 1시간거리.

젊은 사람에겐 짧은 거리일 수 있지만 올해 92세가 된 홍할아버지에게는 숨찬 거리이다.

 

몇십년전 해입은 양복을 입고 놀러오신 홍할아버지,

마침 점심때가 되어 음식을 준비하고 있는중에 할아버지 뉴스를 보며 뭐라 하신다.

 

이해찬 총리가 <골프>를 치러 간것에 대한 비평이셨는데..몹시나 못마땅해 하시는 모습이었다.

나라가 어려운 시기에 <콜프>를 치러 간다고...<콜프><콜프>..

골픈지 콜픈지 뉴스에선 난리가 났다.

세상이 말세라고 가끔 말하시는데,  지금이 그땐가 보다.

 

홍할아버지는 정확하게 어떤일이 있었을때 골프를 치러갔는지 언제 언제다 라고 하시면서

다 외고 계셨다....

난 뭐 관심없어서 언제언제 일일이 외고 있진 않았는데 할아버지 참 기억력도 좋으시다.

눈도 어둡고 귀도 어둡고 다 시원찮다고 말씀하시는 홍할아버지, 참 귀엽다. ^^

 

<안보고 있는것 같지? 다 보고 있다구~똑바로 하란 말이얏!>

 

봉도각에서 할아버지들에게 소원을 물어본적이 있다.

나: 할아버지~소원이 뭐예요?

할아버지: 국회의원 주라라...

나: 네?

할아버지: 국회의원 주라라고...뭐 그렇게 많냔 말이지...

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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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소풍> ,할아버지들의 브이~

젊은이들은 시간의 소중함을 모르며 참된 가치를 구분하지 못하고 막연히 미래를 기대한다.

하지만 노인들은 시간의 소중함을 알고 과거의 삶을 되돌아보며 노년의 삶을 관리하고
더 이상의 시행착오를 없애기 위해서 결정에도 신중을 기한다.

젊은 세대는 재물이나 권력, 명예를 위해 살게 되지만
노인들은 그것이 인생 성공의 전부가 아닌 것을 이미 겪어 알기에, 좀 더 가치 있는 것을 생각한다.

젊은 세대는 잘 살기 위해 ‘재(財)테크’에 가치를 두지만
노년은 ‘생(生)테크’에 가치를 둔다. 이것이 노년의 삶이 가치 있고 희망적인 증거이다.

- 서경석 <노년이란?> 중에서(생활성서 2006. 2월호 특집 ‘노인과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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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눈으로 밤새기

쥬느님의 [우울스러운 불면의 시간] 에 관련된 글.

걱정거리가 많아서 그런가...

아니면 정말로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이기 때문인가. 정말이지 생각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이런 나의 생각들...

 

사실, 이곳에 그대로 내 느낌을 옮겨적는다는것은 빨가벗고 있는 기분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 나는 얼마나 수없이 옷을...

지금 무슨 얘기를 하는거야...

잠을 못자 그런지 별 소리가 다 나온다...

 

얼마전에, 아주 오래전 첫 직장이 있던곳을 다녀오는 일이 생겼었다.

그곳은 충북 청주였는데 사실 나를 몹시도 우울하게 만들던 곳이었다...

그땐 정말이지,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그 좌절감에 힘들어 하던 곳.

모처럼 그때 자취를 하던(한두달뒤, 다른 편한 곳으로 옮겼지만) 집을 찾아가 봤는데, 정말 그대로였다....

 

이곳처럼, 나 지금도...그때와 그대로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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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복잡하다..

이렇게 저렇게 그냥...이라는 말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직 후반작업은 저만치 남아있고, 급한 마음 갖지 않고 가던 길도 돌아가겠다고 생각하는 중이다.

 

인생 굵고 짧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지만, 사실 그게 쿨한거지만....

사람은 뜨거운 피로 만들어졌기에 쿨할수만은 없다는게 나만의 논리..

빨리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서 손에 쥐기보다..계속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는게 어떨까하는게 나의 생각이다...

 

어제,<소풍>이 순흥면이라는곳에서 만들어 지고 있어서 그런가..

이 지역의 방송국에서 찾아왔었다..뭐 딱히 할말은 없었다.

다만, 남루한(?) 나의 작업실과 얼룩진 도배지가 쬐끔 그랬으나...뭐 괜찮았다.

 

기자의 질문은 제작비는 얼마나 들었나?부터 힘들지는 않나...노인분들과 촬영하기 힘들지 않나..

뭐 이런 질문을 쏟아내더니..

오늘 아침 뉴스를 보고 나니, <비인기장르,독립영화의 힘>이란 타이틀로 약 1분 30초 정도가 나왔다..

혹시나 어떻게 내보낼까싶어 궁금한 마음에 난 지난밤 뜬눈으로 밤을 샜다.

젠장...아...자야지...근데, 잠이 안오네...

 

요즘....너무나 머리가 복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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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소풍> 편집을 마치고...

 

할아버지들에게 어울리는 음악도 작곡해서 넣어보고...

타이틀도 만들어보고...나름대로 열심히 하고는 있으나, 정말 완성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아직까지 부족한것이 너무나 많아서, 지래 확 포기해 버리고 싶은 생각까지 든다.

그러나 나를 도와주는 친구들이 너무나 고마워서 포기할 수 없다.

NEVER GIVE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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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해보기, [내 인생의 네가지]

쥬느님의 [내 인생의 네가지] 에 관련된 글.

함께 하자고 하면...해야지요...

뭐 딱히 네가지씩 쓸게 있나 고민을 해봤는데...없는데요..



 

Four Jobs I’ve had in my life(일생에 가졌던 네 개의 직업)
- 작가: 그저그런 잡지사 글과 방송 다큐멘터리를 썼다(언론 노동자)
-  PD : 시사 다큐멘터리의 연출을 했다( 다큐외에 잡스럽고 쓰레기같은 것도 연출했다)
- 독립영화인 : 꼭 만들고 싶은것이 있어 목메고 있다(뭐 만들어 놓은게 아직 없어 감독이라하기엔 뭣하다)
- 하나는 남겨두는 센스..(앞으로 뭘 할지는 나도 모르겠다)


I can watch over and over(몇 번이나 다시 볼 수 있는 네 가지 영화)
-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 (형식이 맘에 든다)

- 천국의 아이들 (동심은 언제나 그립다)
-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내 인생 최고의 영화다)
- 우나기 (대사가 너무 좋다)


Four places I have lived(살았던 적이 있는 네 곳의 장소)
- 강릉 : 생각만 해도 가슴이 따뜻해지는 내 고향

- 청주 : 가슴을 쓸어내리며 삶을 되돌아보던 내 첫 직장이 있던곳
- 서울 : 뭐라 말할수없는 수 많은 기억과 추억들을 간직한곳

- 영주 : 노인다큐를 찍고 있는 곳이기도 하며,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지내고 있는 장소


 Four TV shows I love to watch(좋아하는 네 가지 TV 프로그램)
- 프렌즈:채널을 돌리다 만나면 오랜친구만난것 마냥 반갑다
- 각 채널 만화영화: 어릴때부터 좋아했다

- 각 채널 영화: 보고있으면 하루가 지루하지 않다
- 똘레랑스 <차이 혹은 다름>:몸담았던 프로그램이다 보니 안가던 정도 간다


Four places I have been on vacation(휴가 중 갔었던 네 곳의 장소)
- 삼천포 : 작년 여름 남해를 돌며...이국적인 섬의 모양에 흠뻑...
- 제주도 : 섭지코지, 바람 정말 대단하더이다...
- 영덕 : 횟집에서 민박도 하며, 포장마차에서 술 한잔...
-지리산 : 공기하나는 정말...


Four websites I visit daily(매일 방문하는 네 개의 웹싸이트)
- 진보넷(블러그, 참세상)
- 싸이월드
- 다음
- 푸른영상


Four of my favorite foods(가장 좋아하는 네 가지 음식)
- 해삼(낚시하다가 처음 먹어보고 그 후론..)
- 양장피(입맛없을때 아니면 돈이 생겼을때 중국집으로 달려간다. 여기 양장피 주세요..^^)
- 가자미회(집에 가면 부모님이 항상 사주신다. 음식이기 이전에 향수같은..)
- 오이도라지무침(엄마가 잘 하신다, 그래서 어릴때부터 많이 먹었다. 반찬 중에서는 최고인줄 안다)


Four places I would rather be right now(지금 있고 싶은 네 곳의 장소)
- 강릉:친구들과 부모님이 계신 곳에서 살고 싶다..
- 파리:왠지 다 못보고 온것 같다...놀다 쉬다 놀다 쉬다...하고 싶다
- 원주:친구가 요즘 힘들어 하니까 가서 얼굴 보고 등 도닥거려주고 싶다

- 영주 서천 모퉁이 포장마차: 좀전에 먹은 술이 막 깨고 있다...그 전에..


Four bloggers I’m tagging(태그를 넘기는 네 명의 블로거)
-나도 솔직히 이 어려운 작업을 넘겨주는 일은..폭력적이라 생각한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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