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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선언

 

Manifest der Kommunistischen Partei

Karl Marz, F. 뚷딘




 

“철학자들은 세계를 단지 다양하게 해석해 왔을 뿐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테제들」에서



 

* 제목설명 : “공산주의 당파의 선언”, 1848년 런던에서 발간된 30페이지 단행본의 제목


하나의 유령이 유럽에 떠돌고 있다. 공산중의 유령이. 옛 유럽의 모든 세력들이 이 유령을 잡기 위한 성스러운 모리 사냥을 위해 동맹하였다. 교황과 짜르, 메테르니히와 기조, 프랑스의 급진파와 독일의 경찰관들이.

정권을 잡고 있는 자신의 적수들로부터 공산주의적이라는 비방을 받지 않았을 반정부당이 어디 있으며, 더 진보적인 반정부 인사들과 자신의 반동적인 적수들에게 공산주의라고 낙인 찍는 비난을 되돌리지 않았을 반정부당이 어디 있는가?

두 가지 결론이 이러한 사실로부터 나온다.

공산주의는 이미 유럽에 모든 세력들에게 하나의 세력으로 인정받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공산주의자들이 자신들의 견해, 자신들의 목표, 자신들의 지향을 전세계 앞에 공공연하게 표명하여, 공산주의의 유령이라는 소문에 당 자신의 선언으로 맞서야 할 시기이다.

이러한 목적으로 매우 여러 국적의 공산주의자들이 런던에 모여,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플랑드르어, 덴마크어로 발표될 다음의 선언을 기초한다.


“이제까지의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다.”


“봉건 사회가 몰락하면서 생겨난 현대 부르주아 사회는 계급대립을 폐지하지 않았다.”


“수많은 자유를 단 하나의 인정사정 없는 상업자유로 바꾸어 놓았다.”


“하지만 부르주아지는 자신에게 죽음을 가져오는 무기들을 버려 냈을 뿐만이 아니라, 이 무기들을 지니게 될 사람들도 낳았다. 현대 노동자들, 프롤레타리아들을 낳았다.”


“부르주아지의 몰락과 프롤레타리아트의 승리는 똑같이 불가피하다.”


“계급과 계급 대립이 있던 낡은 부르주아 사회의 자리에 각자의 자유로운 발전이 모두의 자유로운 발전의 조건이 되는 연합체가 들어선다.”


“공산주의자들은 자신들의 견해와 의도를 숨기는 것을 경멸한다. 공산주의자들은 자신들의 목적이 이제까지의 모든 사회질서의 폭력적 전복에 의해 달성될 수 있을 뿐임을 공공연하게 선포한다. 지배 계급들로 하여금 공산주의 혁명 앞에서 전율케 하라. 프롤레타리아들에게는 족쇄 말고는 공산주의 혁명에서 잃을 것이 아무 것도 없다. 그들에게는 얻어야 할 세계가 있다.”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




1. 선언은 왜 쓰여졌나!


그나마 남아있던 봉건적 잔재들이 하나둘 불타고, 산업혁명, 프랑스혁명, 그리고 자본주의가 도래하였다. 수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노동력을 팔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시대, 자본가 자신들조차 끝없는 경쟁을 위한 끝없는 착취를 일삼아야 한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1837년 프랑스나 스위스에 거주하는 독일 수공업자들이 만든 ‘추방자동맹’에서 급진적인 성원들이 독립하여 바이틀링을 지도자로 추대한 ‘의인동맹’을 조직한다. 이 단체는 독일의 노동자들과 수공업자들의 최초 비밀조직이다. 맑스와 엥겔스는 동맹과 관계를 맺으며, 바이틀링파의 애매한 인도주의 노선과 대결할 필요를 느꼈고, 당시 동맹의 성원들이 우호적으로 생각하던 ‘진정한’ 사회주의 조류의 실체를 드러내 그 유파를 격파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1847년 동맹에 가입한 맑스와 엥겔스는 동맹을 개조하기로 합의한다.

1847년의 유럽은 위기를 맞고 있었다. 기근이 있었고, 이 기근은 곡물의 흉작으로 이어졌다. 굶주린 백성들의 항의와 투쟁이 폭발하는 가운데 자유주의적 정치 세력들이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었다. 프랑스에서는 선거권 개혁 운동과 함께 다양한 유토피아적 평등주의 경향들이 일었다. 프로이센의 국왕 빌헬름 4세는 주의회를 소집할 수밖에 없었으나, 의회 내 다수파인 부르주아들과의 대립으로 인해 의회는 곧 해산하였다. 폴란드, 이탈리아, 아일랜드에서는 민족 해방 투쟁의 물결이 확산되고 있었고, 잉글랜드에서는 차티스트 운동이 상당히 많은 수의 노동자들을 집회장으로 불러냈다. 1840년대 말의 유럽의 위기는 자본주의와 함께 생겨난 사회세력들이 이전의 지배 집단인 봉건 세력들에게 저항하며 비롯된 것이었다.

의인동맹 대회는 1847년 6월에 런던에서 열렸다. 이 대회는 훗날 ‘공산주의자동맹 제 1차 대회’로 불리게 되었으며, 엥겔스의 노력으로 다음과 같은 사항이 결정되었다. 1. 단체의 명칭을 ‘공산주의자 동맹’으로 변경한다. 2. 단체의 구호를 ‘만인은 형제다’에서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로 바꾼다. 3. 엥겔스가 작성해 둔 ‘공산주의자 신조 표명’을 동맹의 규약으로 삼기 위해 토의에 부친다. 엥겔스는 ‘신조표명’을 수정하여 「공산주의의 원칙들」을 작성했지만, 문답형식으로 된 이 문서는 동맹의 강령으로 삼기에는 부적절하다고 판단되었다. 같은 해 11월 29일부터 열린 공산주의자 동맹 2차 대회는 강령 채택을 미루고, 그 집필을 다시 맑스와 엥겔스에게 위임했다.

맑스와 엥겔스가 1847년 말부터 1848년초에 브뤼셀에서 집필한 선언이 ꡔ공산주의 당 선언(Manifest der Kommunistischen Partei)ꡕ이다. 노동자 계급의 최초의 국제적 조직인 공산주의자 동맹이 무언가 커다란 일이 벌어질 것을 예감한 1848년 “자신들의 견해, 자신들의 목표, 자신들의 지향을 전세계 앞에 공공연하게 표명하여, 공산주의의 유령이라는 소문에 당 자신의 선언으로” 맞선 것이 바로 ꡔ선언ꡕ인 것이다.



2. 선언은 무엇을 말했는가!

ꡔ선언ꡕ에서 맑스와 엥겔스는 공산주의 운동(혁명운동)의 출현을 바라보면서 부르주아와 권력의 두려운 상태를 그리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탄생과 발전과정을 설명하고 자본의 탄생과 함께 태동한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의 적대감의 증폭을 폭로한다. 봉건제와의 투쟁에 함께 했던 부르주아를 반동 계급으로 탈바꿈했던 역사가 바로 그것이다.

ꡔ선언ꡕ은 자본주의의 속내를 철저하게 폭로한다. 노동자 계급은 잔인하게 착취당하며 사적 소유를 바탕으로 한 모든 사회적 가치를 화폐로 환원시켜 비인간적 사회를 만들고 전쟁의 역사를 야기시켰다고 말한다.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는 부르주아는 노동자들을 대공장에 집중하고 분업의 시대를 열면서 생산관계를 더욱 밀착시키는 일정한 토대 위에 생산하다. 그러나 맑스와 엥겔스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스스로 발전시킨 생산력을 파괴하지 않을 수 없는 모순을 설명하며 자본주의 체제 전반의 철폐를 위한 길이 도래할 것을 예언한다. 또한 맑스와 엥겔스는 부르주아가 자본을 생산하면 할수록 자본주의를 철폐할 혁명 세력으로서 프롤레타리아트를 창출해 왔다고 단언한다.

마지막으로 혁명을 준비하고 혁명의 시기 공산주의자들의 임무와 역할을 피력하고 반동적 조류에 대한 비판을 잊지 않으며 당당히 공산주의를 선언한다.

우리는 여기서 맑스와 엥겔스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다. 착취의 역사는 사적 소유의 역사이다. 다라서 사적 소유는 철폐되어야 한다. -맑스의 사적 소유에 대한 개념은 착취다- 또한 부르주아가 그러하였듯이 소멸해 가는 어떠한 지배계급도 자발적으로 역사의 무대를 떠나지 않는다. 오직 계급투쟁과 프롤레타리아의 혁명을 통해서만 타도될 수 있다.



3. 1848년과 2002년


앞에서 보아 온 바와 같이, ꡔ선언ꡕ은 19세기 중엽에 역사상 처음으로 공산주의자들이 자신들을 설명하기 위해 쓴 문서이다. 공산주의가 무엇인지, 공산주의자들은 어떤 사람들인지가 분명하게 설명되고 있지 않고 유령처럼 소문으로만 입에 오르던 상황에 대처하여 그 사상과 사람들을 또렷한 말로 설명할 필요에서 생긴 문서이다. 맑스와 엥겔스는 당시의 정황과 필요에서 ꡔ선언ꡕ을 집필하였다.

주된 내용을 살펴보면, 당시 유럽에 닥친 위기는 자본주의로부터 나왔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부르주아적 사적 소유의 폐지’를 통해 ‘각자의 자유로운 발전의 조건이 되는 연합체’를 만들어야 한다. 공산주의자들은 ‘자신들의 목적이 이제까지의 모든 사회 질서의 폭력적 전복에 의해 달성될 수 있을 뿐’임을 공공연하게 선포해야 한다.

맑스와 엥겔스가 ꡔ선언ꡕ 집필 이후 죽을 때까지 한 일은 자신들이 도달한 결론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 노력은 한편으로는 현실에서 벌어지는 사태들에 개입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그러한 사태들을 분석하면서 자신들의 생각을 보충하고 완성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부르주아적 사적 소유의 폐지가 모든 인간의 자유로운 생활의 기초가 될 수 있는가? ꡔ선언ꡕ이 대결하고자 했던 상황은 지금 사라졌는가? ꡔ선언ꡕ이 발표된 지 150여년이 지난 오늘날에는 이 두 가지 질문이 유령이 되어 전세계를 떠돌고 있다. ꡔ선언ꡕ은 공산주의와 공산주의자가 무엇인지를 “선언”했을 뿐, 이 질문에 답하고 있지 않다.

2002년 현실의 모순들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 지는 순전히 우리의 몫이다.




*참고 문헌

「공산주의 선언」, 김태호 옮김, 박종철 출판사, 1998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 선집 1권」, 김세균 감수, 박종철 출판사, 1991

「서양사 강의」, 배영수 편저, 한울,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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