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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주의 언론운동론 비판

 

4. 기존 언론운동론 비판 - 레닌주의, 히틀러, 김일성 등


  헤게모니에 대한 이론들이 혁명을 이뤄내지 못한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 발달했다면 혁명에 성공한 제3세계 국가들에서는 구체적인 언론운동론이 발달했다. 그러나 앞에서 말했듯이 이런 언론운동론들이 혁명 후 결과한 모습들이 과연 바람직한 것이었는지, 아니 심지어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부르주아 언론보다 못한 것은 아니었는지는 적잖이 의심스럽다.


ㄱ. 레닌주의

  남한의 언론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언론운동론이라면 레닌주의 언론운동론을 빼놓을 수 없다. 레닌이 아니라 레닌주의를 비판하려는 것은, 레닌이 러시아라는 구체적 상황 아래 혁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언론을 활용한 방식 그 자체가 아니라 러시아 혁명 이후 레닌의 저작들이 경전화되어가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하나의 교조이기 때문이다. 흔히 NPN으로 약칭하는 레닌의 전국적 정치신문론은 수많은 운동 세력들이 반복해서 따라했던 바 있고, 선전/선동의 이분법 또한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 레닌주의 언론운동론이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일반이 아니라 현실적 적용에서다.

  여기서는 레닌의 언론운동론을 당대의 상황과 연결지어 개략적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선전”과 “선동”이라는 용어의 차이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들을 먼저 분류한 것은 러시아 맑스주의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플레하노프인데 그 차이는 다음과 같다.


선전 - 많은 내용을 소수의 사람에게 전달하는 것.

선동 - 적은 내용을 다수의 사람에게 전달하는 것.


그럼 이제 레닌주의 언론운동론의 변천사로 넘어가자.


서클선전 - 러시아에서 노동운동이 거의 발달하지 않은 시기에 사회민주주의자(맑스주의자)들은 노동자들을 서클로 조직하고 선전을 수행했다. 그러나 당대에 자생적으로 발생하고 있던 노동운동과 거의 결합하지 못했다.


경제선동 - 마르토프 등이 발표한 “선동론”에 힘입어 활발한 경제선동이 일어났다. 경제선동의 성과로 1896년 직물노동자들의 거대한 파업이 일어나게 되고 이후 러시아 사회민주주의는 경제주의에 빠져든다.


전국적 정치신문 -  레닌은 1901- 1902년 사이에 노동계급의 혁명적 당(조직)의 건설을 위한 구상을 했으며, 노동계급 신문의 공적 기능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이스크라” 제4호(1901년 3월 13일)의 기고문에서 당과 신문의 연결에 관해서 논했는데, 신문은 이데올로기 뿐 아니라 주체의 네트웍을 통해서 당의 조직을 형성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즉 조직의 센터로서 신문을 논한 것이다. 당은 지역에서의 강한 정치적 조직을 필요로 했으며, 정기적으로 배달되는 신문은 지역에서의 직업혁명군 양성에 일조했다. 레닌은 조직자로서의 신문을, 당 조직 구성원 간의 의사소통을 원할히 하며, 작업을 배분하고, 조직화된 노동을 공동의 결과물로 승화시키는 중심기구로 봤다. 지금까지 언론의 집단적 선전자, 선동자 등으로서의 기능에 조직자를 첨가시킨 것이다. 레닌은 노동자 민주주의 형성을 3단계로 잡고, 그 가능성을 “종합적 정치의 노출에 관여하는 조직(자)”으로서의 언론에서 찾은 것이다.


신문조직이 당의 하부로 - 신문을 통한 당조직 건설이 어느 정도 이뤄지자 레닌은 신문조직을 당조직의 하부에 둔다. 그러나 신문에 대한 기본적 입장은 그대로 유지되는 데 “당의 신문에 대한 우위”와 “조직자로서 신문”이라는 두 가지 입장은 교조적으로 소련에 적용되면서 민주주의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가 된다.


우리가 비판적으로 살펴볼 것은 두 가지이다.


첫째, 소련의 레닌주의 언론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소련의 레닌주의 언론관은 소련 민주주의의 발전을 크게 저해했다. 언론이 당의 노선에 따라 인민을 조직하는 기능으로 제한되면서 언론의 자유는 유명무실해졌던 것이다.


둘째, 한국에서 레닌주의 언론운동론 적용의 현실성

  레닌이 운동을 펼쳐나갔던 시기는 정치적으로는 짜리즘 전제정이었으며 경제적으로 자본주의가 태동하던 시기로 프롤레타리아가 전인구의 2%에 불과했으며 높은 문맹률과 광대한 영토, 운동의 고립분산성에 의해 고통받던 시기였다. 반면 오늘날의 한국은 87년 이후 형식적 민주주의를 쟁취했으며 반도체, 자동차를 중심으로 하는 고도로 발전된 자본주의 국가로 이미 노동자 계급이 인구의 절반을 넘어서는 약 2500만명(노동자는 1300만)이고 세계에서 가장 높은 문자해독률과 “한류 열풍”으로 대변되는 동아시아로 수출할 정도로 발전된 문화산업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이미 레닌주의 언론운동론을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으며 실제로도 레닌주의 언론운동론이 한국 운동에서 실제 전술로서 구사된 것은 90년대 초반까지이다. 그러나, 여전히 레닌주의 언론운동론을 고수하고 있는 운동세력이 군소하게나마 존재하고 또한 80년대 레닌주의의 세례를 받은 운동가들의 관념 속에 레닌주의 언론운동론이 강하게 지배하고 있다.

 



ㄴ. 나치의 선전론

  히틀러에 대해서 “언론운동”이라는 말을 붙이기는 어렵지만 그의 선전 이론은 가히 전설적이며, 언론운동가들 외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일종의 환상을 던져주고 있다. 일단 히틀러, 국가사회주의(National Sozialismus:Nazi), 제3제국의 선전정책에 대해 알아보자.

  나치의 선전론에는 선전/선동을 구분하지 않고 선전으로 통칭한다. 일반적으로 나치의 선전에 대한 대중 최면에 주목하는 오해가 나타나곤 하는데, 실제로 나치가 생각한 선전이란 “현재의 경향과 신념을 강화시키는 것”이며 “감정뿐만 아니라 이성에도 호소하는 것”이다. 1차 세계대전의 패배 이후 수립된 바이마르 정부는 정치, 경제적인 문제에 대해 대단히 무능했으며 나치는 그러한 상황을 가장 잘 이용했다. 실제로 나치에 표를 던진 많은 이들은 나치가 자신의 이해를 대변한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나치는 어떻든 물질적인 성과들을 대중들 앞에 내놓았던 것이다.

  물론 나치의 선전론에 있어서 대중최면도 무시할 수 없다. 발터 벤야민은 파시즘을 “정치의 미학화”라 불렀는데 주로 정치행사를 거대한 의식(儀式)으로 만들어내는 것으로 드러난다. 대표적인 예를 하나 들자면 히틀러는 오후6시를 택해 거대한 스타디움을 꽉 매운 군중 앞에 선다. 대중의 시선은 히틀러에게 모이도록 무대가 구성되어 있으며 태양은 마치 후광처럼 히틀러의 머리 위에 드리운다. 군중심리와 함께 이런 연출효과는 청중들로 하여금 히틀러를 광적으로 지지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나치의 선전에서 중심을 이뤘던 것은 “민족공동체”와 “지도자”였다. 그것은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 하나의 지도자”라는 말로 요약되는데 박정희를 경험한 한국에서는 그리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아니다. 나치가 발흥했던 독일은 민주주의 헌법의 모범적인 사례로 불리우는 바이마르 헌정이었다는 것을 상기할 때 여전히 한국에서 적용가능성이 존재함은 부인할 수 없다. 실제로 97년 대선 때 몰아친 박정희 광풍은 나치 선전의 한국적 재판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ㄷ. 김일성주의 선전선동론

  레닌주의 선전선동론은 역사적인 측면에서, 나치 선전선동론은 이론적인 측면에서 비판적으로 짚고 넘어가야할 필요가 있다. 그에 반해 김일성주의 선전선동론은 앞의 둘에 비하면 어느모로 봐도 격이 떨어지나 레닌주의 선전선동론과 나치 선전선동론의 결합이라 볼 수 있다는 점과 한국 운동에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할 때 비판적으로 고찰할 필요가 있다. 김일성주의 선전선동을 아리스토텔레스 수사법을 적용하여 논거발견술, 논거배열술, 표현술로 나누어 알아보자.


  논거발견술 - 사회주의와 민족주의

  김일성주의에서 사회주의란 우리가 일반적으로 통칭하는 사회주의가 아니라 일종의 지배담론으로서 사회주의이다. 북한의 모든 사회적 결정들은 “사회주의 건설”이라는 목적아래 종속된다. 또한 북한의 사회주의는 일종의 전체주의로서 사회주의인데 이는 수령을 “뇌수”로 하는 사회유기체설에서 극대화된다. 이는 민족주의와 결합되어 “우리식 사회주의”라는 형태로 드러난다.


  논거배열술 - 동어반복과 신화적 언어

  김일성주의의 논거배열방법은 동어반복적이며 신화적이다. 조금 희화화해서 말하자면 김일성주의의 내용의 절반은 김일성주의가 과학적이라는 것이다. 또한 주체를 강조하지만 실제로 “주체”라는 어휘는 “수령”을 의미하는데 이러한 언어의 마법적 사용은 혼란을 불러일으킨다.


표현술 - 반복성, 대중성, 민족성

간단히 말하면 한자어보다는 고유어를(민족성), 어려운 말보다는 쉬운 말을(대중성), 같은 말을 계속 반복(반복성)하는 것이 김일성주의 표현술의 특징이다. 특히 반복성에 대해 말하자면 같은 말을 나열하는 것 뿐만아니라 정형화된 어구를 반복하는 것까지 포함한다. 이는 월터 옹이 “구술문화와 문자문화”에서 서술한 구술문화의 특성과 유사한데 이러한 표현법은 한 마디로 외우기 쉽다는데 특징이 있다.

김일성주의 수사학의 특성은 나치보다 더 강화된 세뇌적 언어이며 언론구조에서는 레닌주의의 집중화된 언론을 보다 더 강력하게 집중화시키고 있다. 김일성주의 선전선동은 언론운동이라 볼 수 없고 독재적 국가권력을 전체주의적으로 유지하는 방식이라 보아야할 것이다.



5. 서유럽의 언론이론

  부르주아 언론에 대한 심도 깊은 고찰이 진행된 곳은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이었다. 아직 자본주의가 발달하지도 못한 수 많은 제3세계 국가들에서는 혁명이 우후죽순처럼 발생하는데 반해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된 국가들에서는 오히려 노동자 계급이 계급으로 자신을 형성하지도 못했던 것이다. 토대가 상부구조를 결정한다는 당대의 보편적 인식에 반하는 이러한 현실은 유럽의 공산주의자들로 하여금 토대에서 상부구조로 경제에서 정치, 언론으로 눈을 돌리게 하였고 그 이론적 실천의 성과물들로 헤게모니와 이데올로기, 공론장 등에 대한 풍부한 성찰을 남겼다. 여기서는 이 이론들에 대해 개략적으로 알아보기만 하자. 여기있는 내용들은 그람시에서 일부분을 제외하고, 대부분 “제2대학 학술/학회 커리큘럼 자료집 제1판”에서 수정/발췌했다.

 

  ㄱ. 그람시

  “그람시”라고 하면 조건반사적으로 “헤게모니”가 떠오를 정도로 이와 관련된 풍부한 고찰을 남겼지만 실제로 그람시는 단순히 이론가만은 아니었다. 그람시에 대한 해석의 방향에는 두 가지가 존재하는데 그것은 그가 활동했던 이탈리아의 “어중간함”에서 기인한다. 이탈리아는 서유럽의 국가이면서도 모순적이고 불균등한 자본주의적 발전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탈리아의 “후진성”에 주목하면 그람시는 “불균등 발전”에 대한 이론가로 해석할 수 있으며 이탈리아의 “선진성”을 중심으로 파악하면 그람시는 “선진자본주의국가에서의 혁명”에 대한 이론가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런 혼란을 더욱 가중시키는 것은 그의 후기 저작 전체가 “옥중 수고” 즉 감옥에서 작성한 노트로 그것도 검열을 의식해 비유적이고 추상적인 어법으로 쓰여졌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그람시의 주장은 이런 것이다라고 제시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지만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범위 안에서 그람시에 대해 알아보자.

  먼저 헤게모니 개념부터 살펴보자. 그람시는 부르주아 지배는 단순히 힘에 의한 지배가 아니라 부르주아의 세계관,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에 대한 대중의 동의에 바탕을 둔 것이라고 주장했다. 즉, 부르주아 지배를 가능하게 하는 헤게모니는 힘과 동의, 지배와 도덕적 지배의 배합을 통해 행사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람시가 강제력이 동의의 본질적 구성요소라는 것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다만 동의과 강제력이 유동적으로 결합해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국가는 단순한 억압기구라고 볼 수 없다. 국가는 강제력을 행사하는 기구라고만 볼 수는 없다. 국가는  대중을 문화적이고 도덕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교육적이고 도덕적인 기능을 수행한다. 국가가 이런 역할을 수행하는 이유는 바로 시민사회의 존재 때문이다. 시민사회는 단순히 경제적인 관계로 환원될 수 없는 상부구조이다. 이 상부구조를 장악하기 위해서는 강제적인 것뿐만 도덕적이고 지적인 노력이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국가는 정치사회로만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와 정치사회의 결합으로 구성된다. 다음의 그림을 참조하라.


 

 

외곽호

 

 

 

헤게 

모니 

 

참호

동의

 

힘, 권력

정치권력

강제력

 

시민사회

 

 

 

정치사회

 

 

<시민사회와 정치사회>


  이러한 시민사회의 존재 때문에 혁명의 전략 또한 달라져야 한다. 그람시는 혁명전략을 러시아혁명과 같은 국가권력장악전략인 기동전과 헤게모니에 기반한 혁명인 진지전으로 나눈다. 물론 현대 서구사회에서는 필연적으로 진지전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왜냐하면, 시민사회가 거의 발달하지 않은 러시아에서는 기동전이 가능했지만, 시민사회가 두텁게 형성되어 있는 서구에서는 헤게모니를 장악하는 식의 진지전만이 혁명을 가능하게 한다고 믿었다.

  진지전에서는 사회주의 정당이 대중의 지지기반 위에서 최후의 정치적 공격을 가하기 이전 시기에 사회주의적 이념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합의의 차원에서 대중의 지지를 획득하려고 시도하는 단계에 상응한다. 따라서 진지전은 지배그룹과 직접 대결을 회피하면서 헤게모니의 지형 위에서 정치권력을 장악하는 단계에 까지 미치지 않는 시민사회와의 전쟁을 의미한다. 즉 외곽호 내부에 있는 참호를 먼저 분쇄하자는 논리이다. 요컨대 단순히 정권과 물리적 권력의 탈취만으로 진정한 혁명이 성취될 수 없고, 먼저 시민사회를 장악함으로써 ― 즉, 헤게모니의 기반을 획득함으로써 ― 만이 사회주의혁명은 성공적 완결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람시의 다음의 말이 이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한 사회 그룹은 정부의 권력을 획득하기 이전에 ‘지도력’을 행사할 수 있고, 사실상 이미 행사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은 실로 그러한 권력의 획득을 위한 기본조건들의 하나이다.”


  ㄴ. 알튀세

알튀세는 과학으로서의 맑스주의를 정초하기 위하여 토대환원론, 경제주의, 목적론 등에서 벗어난 역사유물론을 재구성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 반헤겔주의, 반경제주의, 반주의주의, 반인간주의를 표방한다. 이 중 가장 핵심적인 것은 바로 헤겔적 모순론의 극복이다. 알튀세는 헤겔의 변증법과 맑스의 변증법은 명확하게 구분된다고 보는 것이다. 헤겔변증법은 ‘모순의 단순성과 보편성’으로부터 출발한다. 하지만 알튀세는 모순의 복합성과 특수성을 강조하면서, 모든 모순을 하나의 기원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는 것을 반대한다. 단순한 기원적 통일성에 기반하는 헤겔주의적 표현적 총체성 개념은 모순의 다양성과 복합성을 생각할 수 없도록 만들며, 하나의 중심과 본질을 남김없이 포괄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알튀세는 맑스의 변증법에서 모순은 헤겔주의적 단순성을 넘어, 모순의 불균등 발전과 그들간의 응축과 전치로서 설명된다고 본다. 따라서 하나의 문제를 결정하는 것은 여러가지 모순이 중층적으로 결정되어 있다는 것(중층결정)이다. 또한 사회 역시 여러 심급들이 서로 얽혀있는 복합체이며, 어떤 심급도 다른 심급으로 환원될 수 없으며, 어떤 심급도 다른 심급의 본질일 수 없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알튀세가 위와 같은 설명이 갖는 상대주의적 위험을 피하기 위해 ‘최종심급에서의 경제결정’이라는 단서를 집어넣는다는 점이다. 이는 경제는 스스로가 언제나 지배적인 요소는 아니지만 특정한 사회에서 어떤 요소가 지배적이 될지를 궁극적으로 결정해 준다는 뜻이다. 여기에다 알튀세는 “최종결정의 고독한 순간은 오지 않는다”는 말을 덧붙이는데, 이는 최종심급이 궁극적인 원인, 실체, 본질은 아니며, 논리적으로 최종결정을 해야하는 그러한 시기가 시간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알튀세는 초기저작에서 이데올로기적 문제틀과 과학적 문제틀을 비판하면서 이데올로기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취한다(허위의식으로서의 이데올로기). 하지만 후기(1967년 이후)에 들어서는 “주체를 생산하는 이데올로기”라는 개념을 통해 이데올로기가 갖는 적극적인 의미를 해명한다. 알튀세는 이데올로기가 물질적 존재이며 주체를 질서에 편입시키는 사회적 힘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러한 이데올로기가 작동하기 위한 물리적 장치로서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ㄷ. 라클라우/무페

포스트맑스주의라는 개념을 말 그대로 해석하자면, 맑스주의 이후의 맑스주의를 일반적을 뜻하는 말이겠지만, 일반적으로 포스트맑스주의라고 할 때는 라클라우와 무페의 견해를 뜻한다. 이러한 이들의 견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담화’라는 개념이다. 이것은 소쉬르의 구조언어학을 그 이론적 배경으로 한다. 소쉬르의 언어이론에 따르면 기호와 실제대상은 자의적으로 결합되어 있다. 책을 책이라고 부르는 것에는 어떠한 필연적인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을 사회적 적대와 연결시켜 보면, 사회적 적대라는 것 역시도 ‘실제적인 측면’보다는 ‘담화’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쉽게 이야기하면 실제로 계급현실이 어떠한지와 실제 그것을 언어적 틀로 담아내는 ‘담화’사이에 필연적인 연관성이 없다는 것이다. 또 소쉬르는 기호는 기호사이의 차이값으로 인해 성립한다고 했다. 예컨대, 책이 책인 것은 공책이 아니기 때문에 책이라는 것이다. 이를 응용하면, 사회적 적대는 특정계급들 사이의 객관적이고 구조적인 이해관계의 충돌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계급들 사이의 헤게모니 투쟁의 결과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라클라우/무페는 노동자계급이 중심이 된 생산관계변혁을 위한 투쟁보다는 ‘보편적인 자유와 평등을 성취하기 위한 사회관계의 변형을 위한 담화적 조건의 창출’이 당면과제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어차피 담화적 투쟁이기 때문에 굳이 노동자계급이 수행해야한다는 필연성은 없다.


  ㄹ. 하버마스

  하버마스의 이론을 모두 살펴보는 것은 조금은 힘겨운 일이다. 그 이유는 하버마스가 자신의 이론으로 수용하는 사상들이 워낙 많기 때문이다. 그의 책의 뒤에 있는 참고문헌에는 서구사상의 웬만한 저작은 모두 모아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하버마스의 이론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우선 하버마스의 “의사소통행위이론”의 내용을 확실하게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언어를 매개로 한 의사소통행위가 왜 사회이론의 출발이어야 하는지만 이해한다면 나머지를 이해하는 것도 그리 어렵지만은 않다. 하버마스의 이론적 목표를 천박하게나마 정리해 보면,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서 언어가 매우 중요하며, 시민들이 언어를 통해 자유롭게 대화하고 토론하고, 합리적인 결론에 도달하는데 있어서 아무런 제약이 없는 상태를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맑스와의 관계를 살펴보는 것이 순서라고 할 수 있다. 하버마스는 맑스가 노동을 중심으로 한 생산패러다임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한계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하버마스는 맑스의 생산패러다임을 의사소통행위에 기반한 상호작용패러다임으로 대체하고자 한다. 이에 대한 학계의 평가는 다양하다. 장은주나 장춘익의 글은 하버마스의 패러다임이 맑스를 대체할 수는 없지만, 그 보완일 수는 있다는 입장이다. 즉 맑스가 주체를 억압하는 물질적 조건(경제적 토대)를 변혁하려고 했다면, 하버마스는 주체의 자율성을 회복하기 위한 정치적·문화적 조건(의사소통적 조건)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직 완성되지는 않은 생각이지만, 하버마스의 이러한 생각에 귀를 기울여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니체나 푸코식의 이론이 시원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새로운 사회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하는 실천적인 물음에는 그다지 도움을 주지 못한다. 반면 하버마스는 좀더 적극적으로 새로운 세계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으며, 그것이 꼭 푸코식의 비판과 배치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하버마스식으로 경제적 토대의 변혁에 대해 무관심한듯한 태도를 취하는 것은 여전히 문제이다. 물질적 생산관계를 변화시키지 않고, 자유로운 의사소통적 구조가 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과제로 두가지 목표(물질적 생산관계의 변혁과 의사소통구조의 확보)를 설정해야 한다는 견해에 귀를 기울여 볼 필요가 있다. 더군다나 현실사회주의가 몰락한 가장 큰 이유를 ‘민주주의’의의 문제, 주체들의 자율성이 억압되었다는 문제에서 찾는다면 말이다.


6. 마치며

  자평하기에 서론에서 밝힌 목표 즉 대학언론운동의 이론적 과제를 밝히겠다는 이 글의 목표를 온전하게 달성하지는 못했다. 그만큼 언론이론 자체가 걸쳐있는 분야가 방대하며 철학, 심리학, 사회학, 정치학, 경제학, 언론학 등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를 요구한다는 말로 변명을 해보려고 한다.

  우리가 살펴본 바와 같이 하나의 실천이었던 언론운동들은 대중을 자신의 것으로 전취하는데 몰입한 결과, 민주주의와 배치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당대의 민주주의를 가로막고 있는 언론의 현실태를 분석하는데 천착한 이들은 다만 하나의 해석으로만 자신을 자리매김했을 뿐이었다.

  글의 초두에 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을 살펴본 것은 지금 우리에게 요구되는 이론이 단순히 세상을 바꾼다는 목적합리성에 매몰된 것도, 현실의 분석에만 파묻힌 것도 아닌 고대 수사학에 필적하는 종합적이고 방대한 체계 즉, 오늘의 현실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 속에서 대안적 세계를 창출할 수 있는 현실적이며 과학적인 운동의 방법들을 정립하는 것이다. 오래 전 어느 실천적 철학자가 남긴 금언은 아직도 우리의 좌우명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철학자들은 세계를 해석하기만 했을 뿐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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