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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의 페이비어니즘

* 늑대비님의 [[버나드 쇼] 부르주아 사회주의자] 에 관련된 글. 

쇼우의 페이비어니즘과 사회개혁관 연구

서 윤 교

버나드 쇼우(Bernard Shaw)는 19세기 후반 이후 기존의 극과 유사한 사실적인 소재를 다루면서도 그것들을 정치, 사회, 철학의 여러 문제들과 연관시키면서 사회라는 역사적이고 구조적인 체제 내에서 공존하는 인간의 삶과 현실을 다양하고 심도 있게 묘사하여 독창적인 사실주의 극을 확립시켰다. 아울러 그의 극은 사회비판의 주제를 냉소적 어조로 드러낸 사회문제극으로서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는 예술가란 현실의 모사 외에 어떤 비젼을 제시해야 하며 그러한 비젼을 통해 왜곡된 현실을 바로잡고 이상세계의 가능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관점을 지녔던 것이다. 그는 빅토리아조 시기의 사회경제적 모순으로 인한 정신적 혼란 속에서 사회개선의 필요성과 페이비어니즘(Fabianism)을 선전하였다. 

1880년대 후반에 명료한 특질을 지니게 된 페이비어니즘이란 어휘와 관념은  혁명에 대립되는 점진적 변화, 격변에 대립되는 점진주의, 합헌적이고 의회적 수단을 통한 사회주의의 달성(현존 정치정당과 지방정부에로의 침투를 통해) 그리고 진보적이고 사회개선적 세력과의 협력(순수한 관념적 입장에 대립되는 실용적 사회주의), 마르크스(Marx)의 프로레타리아니즘에 대립돼는 중산층의 지성주의(지적 존중)를 의미하게 된 것이다. 아울러 사회학의 역사적 기반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 페이비언협회의 실행위원으로 쇼우와 같이 활동했던 시드니 웹(Sydney Webb)은 사회적 유기체설(Social organism)의 개념의 후기다윈주의(Post-Darwinism)를 주장하고 있다. 그는 사회주의자의 목표로서의 정적인 유토피아의 개념을 거부하며, “사회적 진화는 모든 생명체의 진화에 대한 현재의 경로로 간주할 수 있고, 전략, 과정, 혹은 목적 -사회정의와 개선된 세계 등 -을 위한 수단으로서 진화는 혁명을 대체한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과정이 목적 그 자체가 된 것같이 보인다”1)라고 언급하고 있다. 생명과 제도라는 근본적 모순은 비실제성이라는 한계로 인해 혼란과 억압을 가져왔고 아울러 생명과 제도가 수평적 상호관계를 유지하지 못하고 위계질서의 구조 속에 폐쇄되어 온 것도 역사발전의 장애로 간주되었다. 모순에 대한 균형감각과 진보에의 의지는 현실과 초현실에 대한 인식에 공히 적용되어 그의 독특한 전략을 만들어내었다. 상황개선과 생명의 진화발전은 동시에 추진되어야 할 과업이므로 침투와 점진주의는 그의 사상과 문학활동에 기본 강령을 제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으며 이 침투와 점진주의가 페이비어니즘의 주요한 핵심사상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쇼우의 저서인 ꡔ페이비언논집ꡕ, ꡔ페이비언논집 1908판 서문ꡕ, ꡔ페이비언논집 1931판 서문ꡕ 등을 중심으로 그의 페이비어니즘 사상을 그리고 아울러 그의 일부 극작품을 통해 페이비어니즘과 사회의 점진적 개혁 사상, 마르크스(Marx)주의비판 등이 어떻게 드러나는지 검토할 것이다.



 

쇼우의 페어비어니즘, 사회개혁사상과 이러한 사상이 잘 나타나있는 극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가 살던 시대환경을 살펴보고, 그 가운데 페이비언 협회에 대해서 살펴보아야 한다. 영국의 산업혁명은 자본주의와 결탁하여 여러 가지 사회적인 병폐를 가져왔으며 ,그에 따른 고도 성장은 사회적 부조리의 만연이라는 부정적 결과를 낳았다. 그가 활동한 19세기 말은 기존의 절대적 세계관과 사상체계가 심각하게 도전을 받은 사상적 전환기였다. 마르크스의 사회주의이론이 기존의 경제사상 및 체계에 커다란 변화를 주었고,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의 ꡔ종의 기원ꡕ(Origin of Species)(1859)은 서구 문명의 정신적 지주인 기독교 사상에 충격을 주었으며, 이러한 가운데 영국 사회가 경제적으로 중산계층과 노동자들의 자유에 대한 요구가 높아져 노동자의 시위가 일어나고 경제공항의 조짐이 감도는 등 사회는 일대 변혁을 겪는 시기였다. 1870년 말 미국, 독일 등의 후진 자본주의 국가의 약진에 따라 영국은 불경기를 겪었다. 불황과 더불어 노동조건의 악화와 실업자의 증가로 노동자운동이 빈번했고, 챠티스트운동의 종식이래 사회주의 운동이 1880년대에 급격히 부활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가운데 쇼우는 예리한 통찰력으로 당시 영국 사회가 지니고 있던 갖가지 모순점들을 너무나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었고 따라서 그의 능동적이고 낙관적인 사고 방식이 사회 개혁 쪽으로 기울게 된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1882년 미국의 사회주의자인 헨리 조지(Henry George)의 연설을 듣고 감화를 받아 사회주의운동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그의 저서ꡔ진보와 빈곤ꡕ(Progress and Poverty)과 마르크스(Marx)의 ꡔ자본론ꡕ(Das Kapital)을 읽은 후에는 일생의 중대한 전환점을 맞이하였다. 그는 여기서 현실을 지배하는 자본주의가 낭비적이고 어리석음을 인식하였고 사회주의(Socialism)가 오히려 도덕적이며 지성적이라는 것을 자각하였다. 그러나 그는 곧 마르크스의 사상 중 계급투쟁이라든가 노동가치설 또는 혁명에 의존하는 사회개혁의 방법이 비실제적임을 발견하고 곧 마르크스의 사상을 거부했다. 그리하여 계급투쟁과 노동자의 혁명없이 점진적인 의식의 개혁을 통해 사회주의가 도래해야 한다는 페이비어니즘을 택하게 되었고, 당시 종교와 과학의 갈등, 사회경제적 모순으로 인한 정신적 혼란과 난민의식이 팽배했던 19세기 후반 영국적 상황에서 1884년에는 페이비언 협회(Fabian Society)에 가입하여 8여년을 사회개선의 필요성과 페이비어니즘을 선전하는 데 주력했다. 이 때의 사회활동이 많은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주어 그는 작가인 동시에 사회사상가로 인식된 것 같으며, 그의 극이 사회주의 사상의 선전 도구라거나 그의 시대의 사회주의사상과 관련된 여러 사상을 수합한 절충주의자라고 간주되었던 것 같다.

페이비언 협회는 마르크스주의에 반대하는 의회주의적, 점진주의적 경향의 영국적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영국의 지식인 단체였다. 사회주의 단체 중에도 미국의 철학자인 토마스 데비드슨(Thomas Davidson)의 영향을 받아 소수의 젊은 지식층을 중심으로 최고의 도덕적 가능성이 실천될 수 있는 사회실현을 추진하는 새생활동우회(Following of the New Life)가 조직되었고, 이 단체는 모든 개혁의 기본을 개인의 도덕적 개혁에 두려는 개인주의적 도덕주의자들의 모임이였다. 이 단체가 1880년 1월 4일 새로이 사회문제연구를 위한 단체를 창립하니  이것이 페이비언 협회의 시초가 되었다. 이 페이비언 협회를 설립한 사람들은 작가, 교수, 성직자, 관리 등 다양하게 구성된 지식층의 젊은이였다. 이 페이비언 협회에서 쇼우는 리더로서 활약하게 된다. 페이비언 협회의 활동은 다방면으로 확대되었고, 노동조합, 중산계층, 자유당, 보수당 등에 크게 영향을 미쳤고, 특히 후일 자유당이 1901년에 실시한 양로연금제도 제안하였고, 영국사회보장제도의 기초를 만들었다.

페이비언 협회는 1884년 5월 쇼우와 시드니 웹이 참여함으로써 활발해졌다. 페이비언 협회는 회원의 유입으로 조직화를 시도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조사, 연구를 통한 주장을 사회개혁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전파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협회에서 쇼우는 선전자역할을 맡았고, 실행위원회의 위원으로 선출되어 ꡔ페이비언 에세이ꡕ(Fabian Essays)를 웹 등의 실행위원회의 위원 등과 같이 저술하였다. 한편 연구 결과를 팜플렛 「페이비언 트랙트」(Fabian Tract)와 월간지 「페이비언 뉴스」(Fabian News)에 싣고, 강연과 집회를 통해서 그의 사상을 사회에 알렸다. 이 「페이비언 뉴스」는 모임에서 읽혀진 논문들을 요약하고, 서적에 대한 비평을 활자화하고, 선전에 유용한 사실들을 간행하고, 페이비언에 의해 이루어진 강연일지를 제공하는 등 페이비언 협회의 근황과 활동에 대한 정보제공을 목적으로 하였다. 페이비언 협회는 회원들에게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고 협회의 목표인 사회제도의 재건설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를 위해 일련의 소책자를 발간하였다. 페이비언 소책자 중 1884년 발간된 이후 페이비언 협회의 전략에 합치하는 것, 혹은 페이비언 협회의 전략을 확립한 것으로 평가되는 것은 제5호 「사회주의자를 위한 사실」(Facts for Socialists)이 최초이다. 쇼우와 시드니 웹은 1887년 말 제 7호 「진정한 급진주의 정강」(The True Radical Program)에서 자유당의 선거정강에 대하여 비난하고, 성인참정권, 선거비용에 대한 지불, 불로소득세, 철도의 국유화, 1일 8시간 노동 등을 요구하였다. 1889년의 「런던사람들에 대한 사실」은 대도시 런던에 대한 통계적인 사실들을 열거하고, 사회주의적인 원칙 위에서의 개혁을 제안하고 있다.1) 이 책자는 지방자치 사회주의에 대한 근원이 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으며, 제 14호 「신개혁법」과 제 17호인 「구빈법개혁」은 구빈법에 관한 다양한 계획과 개혁안을 엿 볼 수 있다. 마르크스 역사이론의 페이비언에 대한 영향은 ꡔ영국의 사회민주주의에로의 발전 과정ꡕ(English Progress towards Social Democracy) 이라는 소책자 제 15호에 나타나 있다. 이것은 「공산당 선언」에서 역사에 관해 언급한 부분과 매우 유사하다. 역사과정을 제시하고 있는 그 내용은 잉여생산을 위한 투쟁을 강조하고 있으며, 그 해결책은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진전과 집합주의적 소유권으로의 점진적인 변화를 통해, 생산 수단에 대한 개인 지배를 없애버리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2) 페이비언 소책자를 검토해 보면 관념적인 문제를 취급하거나 추상적인 이론문제에 대해 논의하고 있는 것은 몇 개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난다. 거의 모든 책자는 정리된 자료에 의해 분석을 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페이비언의 다른 저작에도 공통적이다. 쇼우와 웹의 ꡔ페이비언 논집ꡕ에서의 이러한 경험주의적 요소는 페이비언주의의 저변에 깔려 이 사상의 방법론적 토대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회주의 이론 전개에 앞서 먼저 정확한 사실에 대한 파악을 중시하고 있다는 것은 실증주의 사상으로부터의 영향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페이비언 뉴스」는 후일 독립적이고 독립된 회사로 경영되지만, 1913년 5월 이것은 노동당의 기관지가 아니라 페이비언주의의 잡지였고, 어떤 정당의 편견도 지적하지 않았다. 새 잡지에 쇼우는 정기적인 기고자로 활동하게 된다.

1889년에 쇼우 등에 의해 만들어진 ꡔ페이비언 논집ꡕ에 표현된 페이비언 사상의 주요한 특성을 살펴 보면 첫째로 단일지도자를 따르지 않고 여러 사람들의 생각 중에서 그들 자신의 노선에 적합한 것을 발전시키는 절충주의라는 것과 둘째는, 쇼를 비롯한 페이비언들이 지난 1세기동안 유럽사회를 사회주의로 향하게 하는 주요한 흐름이 경제적인 영향력과 함께 민주주의라고 믿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은 페이비언의 세 번째 특성인 점진주의를 낳았다. 맥브라이어(A. M. McBriar)는 페이비언들이 점진주의를 선택한 이유를 다음의 두 가지를 들고 있다. 하나는 새로운 민주주의에 대한 기대, 다른 하나는 사회주의의 도덕적 배경이 전체 사회의 구성원을 설득시키기에 충분하다고 하는 기대를 들고 있는데, 중요한 것은 영국의 경험주의적 전통으로 여겨진다. 페이비언들은 자본주의사회에 있어서도 계약의 자유와 사유재산제도를 그 근간으로 하는 순수한 방임주의는 이미 존재하지 않고, 자본주의는 점차 집합주의의 방향으로 변화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는데, 그래서 쇼우는 자연과 역사에 대한 진화론인 해석을 수용하여 영국에서 사회주의로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민주적, 점진적, 합헌적, 평화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쇼우는 민주주의가 사회주의의 정치적인 대행자이며, 국가의 중앙집권적 기구는 결국에 가서는 민주적인 힘에 의하여 장악된다는 것이다.

쇼우를 비롯한 페이비언들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으로서 사회주의적 정책의 실현과, 정치적 방법에 의한 사회주의의 목표달성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헨리 조지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볼 수 있다. ꡔ페이비언 논집ꡕ에서 쇼우는 모든 경제분석론이 토지경작에서 시작한다고 규정하면서, 사회주의의 시작에 대해 “인간은 자연이 준 이 임의적인 산물들이 그들에 대한 집단적 추구 속에서 각자에 의한 노동에 따라 그들에게 정당하게 배분하는 권력과 성의를 가지고 있는 어떤 기관에 의해서 가로채질 수 있다는 소망에 상당히 도달하게 되었고, 그 소망이 사회주의이다”3) 라고 언급하고 있다. 동일한 노력과 시간을 투여했을 때도 자연이 주는 보답은 균일하지 않다는 것이다. 한 지역내의 불균등한 생산물을 통괄하여 주민들의 노력에 비례, 배분하는 선의의 강력한 대리기구에 대한 소망이 쇼우의 사회주의의 시발점이라고 볼 수 있지만. 그러나 현실에서 불균등한 생산물 가격에 해당되는 돈은 지대란 명목으로 지주에게 돌아갔다. 인구증가, 기술진보, 산업화에 따른 지가상승으로 지대수입이 증대되자 활성화된 생산력의 과실 또한 지주계급에게 흡수되는 것처럼 보였다. 쇼우는 지대에서 자본주의의 특징적 독소를 발견했을 것이다. 따라서 노동자들이 창출한 가치가 유한계층에 의해 잠식되는 불합리를 인식하게 된 것이다. 헨리 조지의 토지단일세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한 쇼우는 토지공개념을 포함한 사회주의 이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결론짓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쇼우가 제시한 페이비어니즘의 실천전략은 자본주의 속에 침투하여 자유주의자와 제휴하고 의회에 진출하여 점진적으로 자신의 견해가 확산되도록 노력하고 기다린 후, 시기가 도래하면 변혁을 시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쇼우는 인간개조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고 보고 있는데, 그것은 인간이 전통적 생활방식과 사고방식에 젖어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새로운 생활양식과 개선된 세계를 창조 운영할 주체로서의 초인상정은 생명력의 진보의지와 연결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쇼우는 기존 종교의 인위적 체계를 공격하고 자신 나름의 종교를 구축한다. 완전한 신 대신 불완전한 초인의 탄생을 통하여 자신의 완성을 원하는 식이 되는 것이다. 그는 인간들이 문명 속에서 인위적 삶을 영위하고 생명력으로부터 이탈되어 있고, 개인적 이익에만 혈안이 되어 생명을 소모하고 있다고 보고 있는데, 쇼우는 독자와 관객으로 하여금 스스로를 자각하고 생명원과의 교류를 회복하는데 목표를 두고 있으며, 작품활동도 인간과 생명력 사이에 창조적인 교류를 차단시키는 모든 제도와 의식의 틀을 파괴하고자 하는 것이다. 점진적 개혁의 현실적 가능성에 주목한 페이비언들은 의회로 진출하여 자유주의자들 속으로 침투하는 전략을 수립했다. 특히 쇼우는 온건한 정신이 광기보다 덜 자극적이고 침투와 점진은 페이비언 정책의 시발이지 목표가 아니란 인식을 하고 있다. 페이비언들은 상대가 있음을 인정하고, 소기의 목적을 최대한 달성하기 위해 사용할 현실적 방법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지적 집단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그들의 의회 진출 시도는 그들이 의회주의 신봉자여서 보다는 그 외의 다른 개혁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며 비폭력의 선택도 폭력이 당시 상황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폭력의 사용은 진보세력의 소멸로 인도한다는 역사적 교훈 등을 프랑스혁명 등을 통해서 알고 있었다. 쇼우는 그의 저서 ꡔ페이비언논집 1908년판 서문ꡕ(Preface to the 1908 Reprint)에서 “페이비언들은 유산자들이 학살을 주저않는다는 것과 성공할 수 없는 혁명가는 중상, 위증과 무자비한 법적, 군사적 대량 학살을 기대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4) 라고 쓰고 있다. 이렇게 페이비언들은 폭력이나 소수 혁명가에 의한 체제의 전복이 아니라 대다수의 국민들에게 페이비어니즘의 정당성을 입증하고 국민이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게끔 하였다. 여기에서 페이비언들의 계몽적, 교육적 성격이 뚜렷이 나타난다. 페이비언들에게 있어서 교육의 중요성은 곧 국민적 자질을 질적으로 높이려는 시도였다고 할 수 있다. 쇼우는 인간에게 아무리 원초적인 생명력이 넘친다 할 지라도 페이비언주의자가 될 만큼 지적이지 못하거나 정치적으로 교육을 받지 못한다면 그에게 미래가 없다고 말한 것은 페이비언주의 하에서의 인간의 지식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잘 나타내주고 있다. 페이비언들에게 있어서 특히 쇼우에게 있어서 사회개혁을 하기 위해서는 국민 전반에 걸쳐 페이비언사상이 보급되고 전파되어 국민이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어야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페이비언사상을 국민들에게 보급시키고 확산시키는 일이야말로 그들의 임무였던 것이다. 쇼우는 페이비언의 본질적인 성격은 타협정신이라고 하고 있다. 타협이란, 한 사람의 신념이 다른 사람의 신념을 누르는, 그래서 결과적으로 패자와 승자가 생기고 강제에 의해서 한쪽이 굴욕적인 감정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그런 것이 아니다. 타협은 곧 설득이며 토론이다. 이러한 타협과 토론의 강조가 그로 하여금 토론극을 도입하게끔 하게 하는 것이며 ꡔ인간과 초인ꡕ과 같은 극을 통하여 등장인물인 앤과 테너, 램즈던의 심각한 사상적인 충돌을 유도하는 데서부터 출발하여 토론을 통해 모든 인물간의 갈등이 표출되고 긴장감이 더해 가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토론 방식은 결국 인류와 사회의 발전을 위해 자신이 주장하는 바를 담은 교훈적인 내용을 독자나 관객이 수용하도록 하는 한 과정이다. 여기서 쇼우가 강조하는 교육과 계몽을 살펴보면 첫째로 상식을 강조하는데 있다. 페이비언들에 있어서 사회주의는 연약함과 무지함으로부터 그들 자신의 앞길을 바라보고 선택할 수 있는 계몽의 길로 끊임없이 전진하는 한 단계에 불과하며, 따라서 사회주의의 기본적인 덕은 상식이외의 덕이 아니었던 것이다. 둘째로 사실과 지식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조하였다. 페이비언들은 사실이 중요하며 궁극적으로 사실의 영향이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하고 행동하고 결정시킨다는 것을 확신했다. 페이비언들은 정확성 부족은 단지 진보를 연기시킬 뿐만 아니라 더 큰 해를 가져다 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의심할 여지없는 사실과 확실한 권위있는 진술의 꾸준한 투하에 의해서만이 현금 자본주의의 부도덕성, 잔인함, 비효율성이 모든 편견 안에서 축출되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쇼우는 ꡔ홀아비의 집ꡕ(Widower's houses)에서 자본주의의 낭만적 이상에 빠진 대중이 사회적 현실을 인식하고, 사회주의로 가치관을 전도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 작품의 의미는 주인공인 사르토리우스(Sartorius)가 빈민 착취의 도덕성을 합리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비합리적인 관습과 현실과 유리된 이상적인 가치관을 부정하고자하는 사회의 개혁에 있다. 쇼우는 낭만적인 이상주의나 관습적 도덕률에서 벗어나 계층 간의 문제를 단절된 것으로 파악하기보다는 사회구조와 그 체계를 수용하는 사회주의적인 의식의 개혁을 강조한다. 쇼우가 이 극에서 전하려는 궁극적인 메시지는 자본주의가 존재하는 한 아무도 자본주의의 부패로부터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새로운 신념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하고자 하는 쇼우의 메시지라는 지적처럼, 이 극에서도 부패한 자본주의를 몰아내서 모든 경제적인 부패상을 제거하는 체제, 즉 페이비언체제로 들어가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이 쇼우의 의도이다. 그러나 쇼우는 이 작품에 나타난 사회주의적 개념이 비평가들에게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고 주장하며 자신이 지니고 있는 사회주의에 대한 개념을 밝힌다.


사회주의를, 마치 빅터 위고(Victor Hugo)의 레미제라블 ꡔLes Miserablesꡕ에서 절정화되어있지만 고통과 부정의에 대한 가난한 자의 항의와 함께 동정의 정신으로 받아드리려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단계의 사회주의는 슬럼의 공포를 단지 슬럼의 주인에 입장에서 잔혹한 개인적 비행의 결과로 간주하는 나의 작품에 주인공들의 후회에 잘 나타나있다.5)


쇼우가 추구하는 페이비언주의는 빈민의 비참함과 부자의 횡포를 역설하며 자본주의의 구조적인 모순의 주체인 중산층을 그 대상으로 중산층의 변화를 촉구하는 부르주아적 사회주의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페이비언주의와 마르크스주의(Marxism)를 살펴보면 페이비언주의와 마르크스주의는 평등, 자유, 그리고 우애라는 근본적인 사회주의 가치를 수용한다는 점에선 유사하지만, 보다 구체적인 문제에 관한 입장에서는 그 차이점이 현저하게 드러난다는 점이다. 첫째, 마르크스주의는 이론에 강하고 특정한 제안에 약한 반면, 페이비언주의는 이론에는 약하지만 처방에는 강하다. 둘째,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사회를 집합주의적으로 재구성하는 정치기구를 만들기 위해서, 기존의 국가를 부인하며 계급투쟁을 강조하고 혁명을 시도하는 반면에, 페이비언들은 사회주의 실현을 위해서 국가가 사회개혁사상을 수용해야 하며, 보통선거 기반의 민주정치에서 국가가 언제나 다수파에 의하여 지배되어야 하며, 의회민주적인 수단을 통한 사회주의의 진화를 확신했다는 점이다. 이는 페이비언들의 점진주의의 불가피성에 대한 신념에서 나온 것이다. 셋째, 페이비언들은 복지국가가 시장요소의 자유로운 활동을 수정하는 사회정책을 사용하여 시장경제와 공존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에 반하여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자본주의가 완전히 붕괴되기를 원했다. 넷째, 페이비언들은 복지국가를 지향하는데 있어서 마르크스주의자들보다 더 열정적이고, 복지국가를 상당한 성취로 간주하였다. 일부는 복지국가 자체를 목적으로 보았고, 일부는 사회주의를 향한 단계라고 보았다. 반면에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복지국가가 노동계급에게 어느 정도 혜택을 주기는 했지만, 오히려 그 주요 수혜자들은 자본가계급이라고 주장했다. 노만 존슨(Norman Johnson)은 복지 국가가 자본축척을 지지하고 자본주의체제를 정당화했다고 설명하고 있다.6) 1896년 쇼우는 사회주의자들이 자유주의적 환상을 견지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마르크스주의뿐만 아니라, 페이비어니즘 이외의 사회주의론을 프롤레타리아 자유주의의 지적 위장형태라고 규정한 바 있다. 그가 지적한 두 개의 환상은 혁명의 날을 황금시대의 시작이라고 보는 종교적 환상과 마르크스주의자적 계급 전쟁 드라마이다. 쇼우는 사회주의의 진정한 발전을 위해서는 자만과 타협에 대한 부단한 저항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쇼우의 자기반항은 변증법적 진화를 위한 행위이지 자기 진영내의 경쟁자를 증오하여 적과 제휴하는 급진주의자의 저급한 전략에서 나온 결과는 아니다. 그의 사회주의 허상에 대한 비판은 좌파들이 주장하는 역사적 필연성과 가상된 대중의 정치적 우월성에 대한 반발이라 볼 수 있다. 구체적 사실에 대한 쇼우의 판단은 물론 오류의 가능성은 내포하고 있으나 세계에 대한 총체적 분석은 상당한 설득력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쇼우는 자본주의에서 노동자와 자본가의 대립이 아니라 노동자와 유한자의 공존이란 모순을 발견하고 그 해결방법으로 구성원 전체가 노동하는 사회구조에로의 전환을 제안했던 것이다. 그의 작품 ꡔ페이비언논집 1931년 재판 서문ꡕ(Preface to the 1931 Reprint) 에서 “분배란 단지 물질적 생산물의 분배뿐 만 아니라, 일과 여가의 분배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한다.”7)라는 내용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제안은 그의 경제학뿐만 아니라 사상의 근간으로 도덕적으로 발전하는 사회에 대한 비젼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쇼우는 엥겔스(Engels)가 쓴 「사회주의, 이상국가 및 과학」(Socialism, Utopian and Scientific)에 대해 그의 저서 ꡔ버나드 쇼우의 서평ꡕ(Bernard Shaw's Book Review)에서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칼 마르크스와 프레데릭 엥겔스, 1848의 공산당선언의 공동저자로 사회 민주주의자들을 위한 고전적인 모델이지만 사실상 말하자면 학문적인 의미를 제외하고는 거의 실효성은 없다. 아울러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둘 다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들이며, 경제학자들의 군주와 같은 존재로써 마르크스는 그 자신과 엥겔스에 의해서 날조된 극적으로 허구적인 것이다.8)


결국 쇼우는 마르크스와 엥겔스 사상에 대한 철학적 취약성이 이러한 퇴화된 가치이론을 아이러니컬하게 만든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쇼우는 비록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이상주의적 관점에서 헤겔(Hegel)을 올바로 정립시키기 위해 시도하였지만 그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이컨(Bacon)이나 록크(Locke)의 형이상학에 반대되는 헤겔의 변증법의 옹호자가 되었고 일면 마르크스가 헤겔의 변증법을 정확히 이해할 수 없어서 가치이론이 실패가 되었다는 주장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쇼우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억눌린 노동자들의 혁명에 의한 개혁은 실현 불가능한 방법이라고 믿게 되었고, 중산층 계급의 양심의 혁명을 통해 유토피아를 건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중산층이 즐길 수 있는 극무대를 통해 사회주의를 설교함으로써 자연스러운 효과를 거둘 수있다고 믿었다. 인간의 양심에 호소하는 데 적극적으로 반응을 보일 수 있는 것은 노동자가 아니라 중산계층이라고 생각하여 그들이 이기심을 극복하고 인생의 목적을 전체 지역사회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두어줄 것을 호소한 것 같다. 쇼우가 이렇게 하게 된 것은 쇼우를 비롯한 페이비언들의 출신이 대부분 중류계층이고 여러 직업의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의 대부분이 중산계층 사상가이며 어느 누구도 하류계급으로부터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의 작품 ꡔ홀아비의 집ꡕ에서 주인공 트렌취(Trench)는 현실의 사회조직을 직시하지 못하는 중산층 이상주의자이지만 나중에 인간의 정의와 도덕 등의 가치관에 극심한 혼란을 느끼고 마침내 환상에서 벗어나 리얼리스트로 변모하게 되는데, 이와 같이 트렌취와 같은 중산층 계급의 도덕적 이상인 환상을 타파하는 곳에 쇼우의 문학의 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아울러 쇼우가 견지한 사회주의의 가장 중심이 되는 주장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보다도 더욱 열정적으로 부와 힘의 분배가 동등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회주의자들의 동등한 분배계획에 대한 긍정적 이유. 나는 그것이 나의 선호하는 계획이기 때문에 특별히 관심이 있다. 내가 수입의 불평등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 이상으로 수입의 평등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을 검토하도록 도와주고 있을 때, 당신은 내가 공평히 행위하는 것을 신중하게 보는 편이 좋을 것이다.9)


그의 작품 ꡔ바바라 소령ꡕ에서 등장인물인 언더샤프트(Undershaft)는 무기 제조 공장을 경영하는 백만 장자로 자본주의의 대표적 인물이다. 그의 종교는 전통적인 기독교에 구속받거나 얽매이는 것이 아니고, 돈과 화약에 의존한다. 이에 반해 그의 딸 바바라(Barbara)는 구세군의 소령으로 전통적으로 제도화된 기독교를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언더샤프트의 부에 대한 신앙은 물질주의의 상징으로 육의 세계를 나타낸다. 반면 바바라의 구세군 구호소에서의 봉사는 알프레드 터코(Alfred Turco)가 언급하듯이 정신의 세계를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바바라와 언더샤프트 사이의 대조가 더욱 명확히 그려진다. 그것은 그리스도와 대포 사이의 차이와 같다. 따라서 가장 가능한 용어로는 지혜와 권력사이의 갈등을 양극화했다.10)


언더샤프트는 돈에 그 첫째 가치를 부여하고, 또 돈을 가장 귀중한 것으로 여긴다. 가난하지만 정직하다는 등의 가난을 합리화하는 그의 말은 모두 거짓인 것이다.


가난한 자에게 가난이 축복인 양 내버려두고, 비겁한 자에게 겸손을 가르침으로 비겁한 자가 그의 비겁을 신조처럼 지키게 하라. (85)


여기서 극의 주요 주제인 돈과 도덕성, 즉 현실과 이상은 상호 연결되고, 상호 영향을 미치고 결국 융합한다. 언더샤프트의 공장으로 대표되는 힘의 중심을 향한 커진스(Cusins)와 바바라의 결합은 돈과 도덕의 결합을 의미하는 것이다.  다른 면에서 무력하지만 지적인 인물인 커진스에게 언더샤프트는 힘을 제공하여, 사상을 행동으로 바꿀 기회를 제공한다. 악을 제어하는 힘이 없이는 선을 위한 힘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커진스는 언더샤프트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는 평민에게 효과적인 무기를 제공하여 그들로 하여금 지식층들에게 대항할 수 있게 하고, 사회의 구조를 개선할 수 있도록 무기공장을 훌륭하게 운영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는 그가 지식층들이 보편 선을 위해 그 재능을 발휘하도록 할 만한 강한 힘을 일반인에게 주려고 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것은 커진스가 언더샤프트의 사회적 진보를 기초로 하여 지혜와 힘, 지성과 실용성을 화합하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쇼우가 주장한 사회주의 이상은 동시대의 사회주의와는 달리 자본주의를 이상적으로 개선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상세계의 지향점을 동등한 수입을 바탕으로 한 공동의 복지에 둠으로써 특히 공동체(community)속의 삶을 중요하게 여겼고 이기적으로 행복을 추구하는 것을 악덕으로 간주하였다. 아울러 쇼우는 결코 물질적인 것이 인생의 행복을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리고자 하였다. 그리고 가난을 미덕으로 여기는 태도를 타파하려고 하고 동시에 부가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믿는 사회 하류계층의 환상도 깨려고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쇼우의 사회주의적 사상을 우리는 물질적인 측면보다는 정신적인 측면에서 받아들이는 것이 타당하다. 요컨대 사회가 전반적으로 상향 발전되고 사회가 개혁되기 전에는 아무도 지신을 개혁할 수 없다는 쇼우의 인식 속에는 깊은 인도주의가 바탕을 이루고 있으며 이러한 이유로 앞에서도 페이비어니즘이라고 하는 것이 일면 마르크스의 프로레타리아니즘에 대립한 중산층의 도덕주의, 지성주의(지적 존중)이라고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쇼우의 이중성은 지금까지의 내용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그 당시의 급진적인 사고들을 흡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구시대의 특징인 점진주의와 낙관주의에  계속 머물러 있었다는 데 있다. 사회 변화와 개혁과 관련해 쇼우가 중요시한 것은 체제나 사회 구조의 변화가 아니라, 사회 구성원의 정신적 도덕적 의식 구조의 변모였다. 쇼우는 페이비어니즘의 평등 이념에 입각해 자본주의의 불평등을 공격하지만. 실제로 사회주의의 기능은 자유주의가 현실적 존재로 존재하도록 허용하는 것이어서, 자유주의자들은 쇼우의 사회주의가 자유의 방향으로 향하지 않을 것이라 지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자유의 영역확대라는 것은 경제의 빠른 사회화에 비하면 더딜 수밖에 없을 것이며, 진정 자유와 민주주의는 전 인구가 책임을 분담할 때만이 작용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쇼우는 책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인간은 자신의 생이 사회에 대한 유용성과 연관되어 있음을 각자가 인식하고 깨달을 때 비로소 도덕적 책임을 통감하게 된다는 것이다. 요컨대, 우리는 쇼우가 외계에 대한 통제에 인간 자신에 대한 통제도 포함시켜 자신과 상황에 대한 책임을 질 것을 주장하고 있지만 이러한 책임을 지고 실천할 수 있는 적합한 사회제도로 페이비어니즘을 주장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아울러 쇼우는 자본주의 운동법칙이나 역사적 필연성 등의 결정론적 입장에 대해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충돌했다. 그는 노사간의 이해 상충이 무산자들을 자발적으로 권력 투쟁에 임하게 할 것이라는 견해나, 역사법칙, 필연성, 불가피성 등의 개념과 용어에 반대했다. 아울러 무노동자가 노동자 위에 군림하는 사회제도는 타파되어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했으나, 그는 빈자의 순수성과 부자의 단점을 도식적으로 신봉하지 않았으며, 사회내의 어떤 한 집단에 대한 신념을 갖지 않은 것으로 생각된다. 쇼우는 교육과 제도개혁을 통해 무산계층을 소멸시키고 그들을 신사계층으로 재창조함으로써 사회가 전반적으로 상향 발전되어 가기를 원했다. 마르크스는 역사 발전의 동인을 물질적, 경제적 여건을 위한 급진적 계급투쟁으로 보았지만, 쇼우는 무엇보다도 평등주의에 기초를 둔 점진적인 사회 개혁을 주장했다. 따라서 마르크스주의는 역사에 대한 정치적 해석을 제외시키고 단지 경제적으로만 해석함으로써, 사회주의 그 자체만을 강조하여 민주주의를 이념적으로 크게 중요시하지 않았으며 그러므로 마르크스 사회주의이론은 공산주의의 길을 걷게 된 반면, 페이비어니즘에서 나타나는 사회주의는 영국적 전통 하에서의 정치적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발전 민주주의를 밑거름으로 한 정치토양에서 싹을 틔웠던 것이다. 요컨대 페이비언의 중추적 역할을 하며, 연극이라는 매체를 통해 사회 개혁을 유도한 쇼우의 기여는 문학적 측면 뿐 만 아니라 정치, 사회적으로 매우 크다고 결론 내릴 수 있다.

≪서경대≫

인 용 문 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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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A Study of B. Shaw's Fabianism and His Thought

of Social Reform

Suh, Yun-kyo

In the late 19th century when spiritual confusion through social and  economical contradiction and conflict between religion and science, and  sufferers consciousness surged in the Britain, Bernard Shaw joined the  Fabian Society and over eight years exerted himself for the propaganda of  the Fabianism and the need of social improvement. Bernard Shaw was one of the leaders as a member of the execution committee in the Fabian  Society. In taking active part in the Fabian Society, Shaw wrote Fabian  Essays with Sydney Webb. Here Shaw expressed his Fabianism well and published Fabian Tract and the monthly Fabian News, too.

Fabianism was formulated from the ethical attitudes obtained from the inversion of capitalistic logic and optional addition of economical knowledge from Marx, Ricardo, and Adam Smith as well as the influence upon J.S. Mill and Robert Owen. Shaw was greatly influenced by Henry George in the  realization of socialistic policy as the criticism of the capitalism and  object  achievement of socialism.

In the Fabian Essays in 1889 Shaw's wish was the formation of  beneficial agency organization which synthesized ill-balanced produce in a  region and distribute it as residents' effort, and he found that the land rent was the capitalistic toxin of the capitalism. Shaw tried gradual reformation  through the permeation into liberalists. Those days he pointed out  socialists' illusion boldly. He recognized that success or failure of a nation's  organization depends on how people operate it and found the realistic method of mass production of gentlemen class. But Shaw recognized that human remodeling needs a considerable time because men are accustomed to the traditional method of life and thinking. The presentation of Shaw's superman as the subject who can create and manage a new way of life and improved world may be connected with the progress will of Shaw's Life Force. He pointed out that the socialism as well as Marxism except Fabianism is the intellectual disguise of proletariat liberalism, criticizing that socialists have a point of view of liberalistic illusion. The illusion he pointed out is a religious one that the revolutionary day would be the beginning of golden age and the Marxist drama of class struggle.

Shaw insisted that the institution of human society must satisfy requirements of flexibility to keep face with the ascending movement of life and suggested that Fabianism would overcome defect of the capitalism and remove the socialistic illusion. It is reasonable that Shaw's socialistic thought is spiritual rather than material. Shaw's recognition that no one can reform himself before the society would develop upwards and reform itself is humanistic and for this reason, as I pointed out previously, Fabianism means moralism and intellectualism of the middle class against Marx's proletarianism. So we can judge that Shaw's Fabianism is conspicuously moral and intellectual.



주제어: 페이비어니즘, 사회개혁, 마르크스주의비판



이름 : 서 윤 교

소속 : 서경대학교

주소 : (집) 서울시 서초구 잠원동 한신 Apt. 213-501

Tel : 직장: 02-940-7207 휴대전화: 018-220-1878

E-mail: suhy@unitel.co.kr


원고접수일: 2002년 3월 31일     게재판정일: 2002년 5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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