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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북핵폐기 다자주의적 접근해야 - 미 CSIS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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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폐기 다자주의적 접근 방식 바람직
미 CSIS 보고서 "'협력적 위협 감소'프로그램 북한에도 적용 가능"
2006년 동북아시아 지역 국제정치의 화두는 ‘한반도 비핵화’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북한 핵 폐기다. 장기적으로는 북한이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생화학무기들을 비롯한 모든 대량살상무기(Weapons of Mass Destruction: WMD)와 장거리 미사일을 없애는 것이 숙제로 남아 있지만, 단기적인 초점은 핵 폐기에 모아진다.

지난 2005년 9월 19일 중국 베이징에서 남북한을 비롯한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6자회담 참가국들이 합의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북한은 ‘핵무기 폐기와 핵계획 포기’를 약속했다. 아울러 핵확산방지조약(NPT)에 재가입하겠다고 말했다. 이는 2004년 9월 북한이 미국의 적대적인 대북정책과 안보위협을 끝내지 않는 한, 6자회담에 참가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지 꼭 1년만의 긍정적인 변화다.

초점은 북한이 언제 어떻게 핵을 폐기할 것인가다. 미국 부시행정부는 북한이 핵 폐기 합의문 서명 뒤 몇 달 안에 이행되길 바라는 입장이다. 핵폐기야 빠르면 빠를수록 바람직한 일이지만, 우격다짐으론 될 일이 아니다. 6자회담 참가국을 비롯한 다자주의적 참여, 특히 무엇보다 당사국들인 남북한 사이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악수하는 6자회담 대표.

미 워싱턴에 자리한 영향력 큰 싱크 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최근에 내놓은 한 보고서는 북한 핵폐기를 순리적으로 풀어가는 한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CSIS가 카네기평화재단(CEIP)의 후원을 받아 진행해온 연구의 성과물 가운데 하나인 이 보고서의 제목은 ‘6자회담과 저쪽: 협력적인 위협감소와 북한(The Six Party Talks and Beyond: Cooperative Threat Reduction and North Korea)’. 보고서의 3인 공동작성자는 조엘 위트(CSIS 국제안보분야 선임연구원) 존 월프스댈(CSIS 국제안보분야 연구원) 오충석(CSIS 국제안보분야 객원연구원)이다.

핵 폐기따른 '위협감소기금' 지원

보고서 제목에 들어있는 ’협력적인 위협감소‘(CTR)란 대량살상무기들(핵무기, 생화학무기 등 통칭 WMD)을 보유한 국가가 국제사회와의 협력관계 아래 위험스런 무기들을 폐기해 나가는 프로그램을 일컫는다. 1991년 소연방이 해체되면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옛소련 소속 공화국들은 미국, 유럽국가들과 손을 잡고 WMD와 관련 시설물들을 폐기 정리해왔다. 이 작업은 10년 넘게 이어져 2002년의 경우, 선진 8개국(G-8)은 ’위협감소기금‘ 명목으로 200억 달러를 WMD 폐기에 쏟아 부었다.

미국은 2005년 입법을 통해  ’위협감소기금‘을 옛 소련 소속 공화국들뿐만 아니라 북한과 같은 다른 국가들에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미국의 매파들 사이에서는 북한과 주변 이해관계국들이 함께 뜻을 모아 핵폐기를 추진한다는 CTR 방식이 북한에게는 통하지 않을 것이란 회의적인 시각이 없지 않다. 그렇지만 CSIS 보고서의 결론은 긍정적이다.

“지난 10년 동안의 역사를 돌아보면, 정치적 환경을 적절히 조성할 경우라면 평양 당국과의 CTR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 프로그램은 대량 살상무기의 위협에 대한 투명성을 높이고 장기적인 해결책을 내놓음으로써 미국과 북한 모두에게 이득이 될 것이다.
6자회담의 재개와 더불어 가까운 시일 안에 CTR 프로그램을 효과적으로 적용하기 위한 실질적인 단계들을 밟아야 한다. 그 속에는 북한에 파견돼 일하게 될 중국과 한국의 인력 훈련도 포함된다. 미국도 지난 경험에 비춰 지도적인 역할을 맡아야 한다”

협력이란 일방통행이 아닌 쌍방통행이다. 이 보고서는 CTR 프로그램에 처음부터 북한사람들을 참여시키면서 프로그램 자체를 ‘한국화’(Koreanizing)할 필요성이 있음을 지적한다. 러시아처럼 북한에서도 CTR 프로그램이 효과적으로 작동하려면 상호협력이 중요하다는 관점에서다.

보고서는 CTR 프로그램이 북한에서 효과적으로 작동하기 위한 조건을 달았다. 다른 무엇보다 미국이 러시아에 1990년대 초에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북한에게도 비적대적인(non-adversarial) 접근방식을 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려면 북한에 파견된 요원은 북한 당국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짓이나 스파이 행위는 삼가야 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북한 노선은 실용주의다”

지난날 동북아시아 지역의 상황을 돌아보면, 다자주의와는 거리가 멀었던 게 사실이다. 힘에 바탕한 일방주의가 지배적이었다. 보고서는 CTR 프로그램이 북한에서 성공하려면 다자주의적 접근방식이 바람직하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지금껏 진행돼온  베이징 6자회담은 다자주의에 바탕한 외교적 노력의 표현이라 말할 수 있다. 보고서는 6자회담의 구성원이 아닌 유럽연합 회원국들도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를 위해 나름의 역할을 해낼 수도 있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보고서는 6자회담에서의 미국의 지도적 역할을 강조하면서도 중국의 정치적 지원이 중요하며, 특히 한국이 미국에게는 북핵문제 해결에 더욱 중요한 파트너임을 새삼 확인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알렉산더 브시바우 주한 미국대사가 북한을 '범죄정권'이라고 부르는 등 대북 비난을 쏟아낸 것은 6자회담은 물론 한반도 평화 노력에 도움이 되지 않을 듯하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이 보고서가 북한 이데올로기의 기본요소를 실용주의(pragmatism)로 파악하고 있다는 점이다. 비록 실용주의가 현실적으로 적용되는 과정에서 얼마간의 제한이 따른다 하더라도, 미국의 영향력 큰 싱크 탱크가 낸 보고서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리더십을 실용주의로 파악했다는 점에 큰 의미가 있다.

이 보고서에서 논란이 되는 대목은 북한의 핵폐기에 드는 비용의 상당부분을 한국이 부담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보고서는 한국이 ‘남북한위협감소법’(Inter-Korean Threat Reduction Act)이란 법을 국회에서 통과시켜, CTR 프로그램에 기금을 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 법적 근거를 마련한 뒤, 기존의 남북협력기금 규모를 늘리거나, 별도의 재정기반을 마련하는 방식으로 최대 연 3억2000만 달러로 추산되는 북핵폐기 관련 비용을 부담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아래는 92쪽 분량에 이르는 보고서의 주요내용이다.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와 탄도미사일은 동북아시아, 미국, 그리고 국제사회에 명백하고도 현존하는 위험스런 존재다. 따라서 그것들을 분명히 제거하는 것은 지역평화와 세계적인 핵무기 비확산 측면에서 중요한 일이다. 베이징 6자회담은 북한의 핵무기 개발노력이 지닌 위협을 제거하려는 노력에서 비롯됐다. 그렇지만 그 과정은 쉽지 않을 것이다. 핵무기, 생화학무기, 미사일 개발계획을 없애는 과정은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잇달아 관련 협약을 맺어야 하고 많은 비용이 들 것이다.

미국의 회의론자들은 CTR 프로그램이 북한과 같은 비밀스럽고 적대적인 체제에 적용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 믿는다. 그렇지만 역사는 워싱턴과 모스크바 사이에 팽팽한 긴장이 흐르던 시절에도 CTR 프로그램이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북한과 다른 나라들 사이에 ‘정치적 정상화’(political normalization)를 위한 노력이 기울여진다면, 북한에게도 CTR 프로그램이 효과적일 수 있다.

2002년 핵위기가 일어나기 전까지 북한에서는 정부-비정부기구-국제기구 요원들이 머물며 다양한 협력 프로그램들을 추진했었다. 앞으로도 미국, 일본과 북한 사이에 외교관계 정상화를 위한 노력을 이어나갈 경우, CTR 프로그램은 북한의 핵 위협을 제거하는 데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

WMD 제거과정에서 말다툼들이 반드시 일어날 것이다. 그런 말다툼이 확대되는 것을 막으려면 우호적인 관계뿐 아니라 문제를 대화로 풀어가려는 의지가 중요하다. 정치적 대화와 기술적 대화가 서로 어우러져야 한다. 기술적 이슈가 문제가 될 때엔 정치적 대화로 타결점을 찾고, 정치적 분위기가 좋지 못할 때는 기술적 대화가 실용적으로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다.

CTR 프로그램 가운데 무엇보다 먼저 비핵화 과정이 추진돼야 한다. 6자회담이 타결돼 북한 비핵화가 추진되더라도 기술적인 어려움들이 기다릴 것이다. 따라서 핵폐기에 적어도 5년 이상의 시간이 걸리며, 비용도 2억 달러에서 5억 달러, 상황에 따라선 그 이상 들 것이다. 그 비용 속에 △핵무기 원료로 쓰이는 플루토늄을 북한 바깥으로 수송하는 비용 △원자로를 비롯한 핵무기 제조설비의 해체와 핵폐기물 처리를 비롯한 환경정화에 드는 비용 등이 포함된다.

CTR 프로그램에 따라 북한의 핵시설들이 해체되면, 평화적인 목적으로 전용돼 북한경제에 이바지 할 수 있다. △평화적인 핵연구소가 설립돼 의학용과 산업용의 방사성 동위원소를 생산하는 데 힘쓰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경우처럼 평양에 국제과학기술센터를 설립, 북한 과학자와 기술자들을 양성하는 중심기관으로 키울 수 있다. 한국의 기업들이 평양 국제과학기술센터와 함께 상업적인 프로젝트를 추진할 경우, 북한 과학자들에게 민간부문의 새로운 역할을 맡는 계기를 마련하게 될 것이다. 아울러 북한 핵기술자들이 민간부문의 필요에 맞춰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줘야 한다. 결론적으로 북한핵 폐기는 북한에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주는 쪽으로 이뤄져야 한다.

이 보고서의 건의사항은 다음과 같다.

◆ 미국의 지도력이 발휘돼야 한다: CTR 프로그램이 다자주의적 외교적 합의로 빛을 보려면 미국은 한반도에서의 이해관계와 능력, 경험에 바탕해 그 나름의 지도력을 발휘해야 한다. 워싱턴 당국은 이 보고서가 내놓은 원대한(far-reaching) 제안들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 다자주의적 능력(multilateral-capacity)을 키워야 한다: 미국의 잠재적 파트너들, 특히 중국과 한국의 협조를 얻어 북한에서 핵폐기 업무에 종사하게 될 관리, 전문가들을 일정한 기준 아래 교육시켜야 한다. 아울러 미국은 북한으로 하여금 CTR 프로그램에 대한 이해를 높이도록 애써야 한다.

◆ 비정부기구들(NGOs)을 활용해야 한다: 비정부기구들은 정부 차원의 공식 채널의 접촉을 돕고 보완하는 비공식 대화에 익숙한 전문가들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이 나서서 방사선 보호, 건강물리학, 환경문제와 같은 비논쟁적인 주제를 놓고 북한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북한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 국내의 정치적 지지와 기금을 확보해야 한다: 한국은 ‘남북한위협감소법’(Inter-Korean Threat Reduction Act)을 만들어, CTR 프로그램에 기금을 대야 한다. 남북협력기금을 늘리거나, 별도의 재정기반을 마련하는 방식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그 규모는 최대 연 3억2000만 달러(또는 한국 국방비의 2%)에 이르겠지만, 실제로는 이보다 밑돌 것이다.   

◆ 조직화가 중요하다: 국내외적인 기구들이 받쳐줘야 베이징 6자회담의 합의사항이 실천에 옮겨질 수 있다. 북한 핵폐기를 감찰하는 고위급 위원회, 북한의 제반 정치적 경제적 이익을 실무적으로 챙겨주는 하위급 위원회, 그리고 핵폐기 작업이 일정에 따라 제대로 시행되는가를 확인하는 하위급 위원회 등이 구성돼야 한다.
만일 한국정부가 CTR 프로그램에 따른 북한 핵폐기 작업의 주도적인 역할을 맡는다면, 대규모의 CTR 사무국을 설치해 여러 부처와 회사들의 지원업무들을 조정해야 한다.

◎김재명:국제분쟁전문기자 겸 국민대강사. 1952년생. 서울대 철학과 졸업. 뉴욕시립대 국제정치학 박사과정 수료. 경향신문사 기자, 중앙일보 차장, 프레시안 뉴욕통신원 역임. 저서로 한국현대사의 비극:중간파의 이상과 좌절(2003.선인출판사), 나는 평화를 기원하지 않는다:국제분쟁전문가의 전선리포트(2005.지형출판사)

※ 외부 칼럼은 국정브리핑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등록일 : 2006.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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