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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유럽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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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유럽- 오랜 전통과 역사를 가진 구대륙, 다양한 문화의 보고, 풍요로운 삶을 누리는 복지사회, 자유로운 사상과 정치적 자유의 땅.

유럽은 한편으로는 우리에게 부러움의 대상이다. 하지만 또 다른 관점에서 보면 유럽은 개인주의와 자국 문화 우월주의가 판치는 곳이며, 미국과 경쟁하는 또 다른 패권주의이며, 과거 영광의 향수에만 젖어있는 민족들로 비춰지기도 한다. 비교의 대상으로건, 선망의 대상으로건 아니면 비판의 대상으로건 우리는 자주 유럽을 언급한다. 유럽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관점에 따라 세상은 다르게 보인다. 또한 사람은 자신의 계급적 처지와 당파성에 따라 똑같은 현상이라도 제각각 다른 해석을 한다. 유럽을 바라보는 관점과 시각도 마찬가지다. ‘유럽은 이렇다’라는 해석이 어떤 이에게는 유럽찬양론으로 비칠 수 있고, 또 어떤 이에게는 유럽비판론으로 비칠 수도 있다.

한때 우리 사회에서 ‘미국을 바로 알자’는 지성인들의 지미(知美)론이 반미(反美)라고 비판되기도 했었다. 어쨌거나 선진국으로서의 유럽 나라들은 우리가 뒤쫓아 가야 할 앞선 나라들이지만, 경제적으로 우리와 치열하게 다투고 있는 경쟁국가들이기도 하다.

희망적 모델이자 닮지 말아야 할 '반면교사'

유럽은 우리에게 미래사회의 희망적 모델이 될 수도 있고, 닮지 말아야 할 반면교사가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유럽은 어떠한가’라는 현상적 분석이 아니라 ‘그것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라는 점이다. 유럽이라는 물건의 질을 따지자는 것이 아니라 이 물건의 용법을 알고 활용하면 우리에게 많은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유럽의 지성사는 이데올로기와 사상의 준거모델을 제공하고 있고, 유럽의 역동적 사회사는 사회적 이슈의 풀(pool)로서 손색이 없다. 이미 우리에게 유럽사회는 사고에 있어서 하나의 준거모델이 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12월 14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제1차 동아시아정상회의(EAS)에서 공개적으로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총리의 신사참배에 대한 반대 입장을 표명하면서 “독일은 일부 영토까지 포기할 정도로 역사인식을 철저히 청산했다”는 사례를 들었다. 이런 독일의 역사인식은 단순한 사례가 아니라 대일 입장 표명에 있어서 정책적인 준거가 되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 과거사 청산과 독일 통일의 교훈

우리의 과거사 청산문제에 있어서도 프랑스의 사례는 자주 인용되고 있다. 나치로부터의 해방을 맞이한 프랑스에서는 역사적 정기를 바로 세우기 위해 2차 세계대전 당시의 나치 협력자들을 대대적으로 축출하는 대숙청을 단행했다. 천재 작가 로베르 브라지야크가 총살됐고, 르노자동차의 루이 르노 회장은 수감 중 옥사했으며, 민족주의 사상의 대부 모라스와 프랑스 최고급 식당 맥심의 사장도 감옥에 갇혔다.

프랑스의 대숙청은 대문호·대기업 총수·유명 배우를 가리지 않았다. 99만 명의 사람들이 나치협력 혐의로 체포되었으며, 이중 즉결처분되거나 사형이 집행된 사람들만 1만 명에 달했다. 결국 우리와 전혀 다른 선택과 결단을 취했던 프랑스는 오늘날 과거사의 인식이 우리와 본질적으로 다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프랑스의 대숙청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역사적 교훈에 가깝다.

우리 민족의 궁극적 염원인 민족통일 문제에서도 독일은 단골 메뉴로 등장한다. 노태우 정권 때 북방정책의 모델이 되었던 것은 서독정부의 동방정책(Ost Politik)이다. 하지만 북방정책은 동방정책의 본질적 문제의식을 담아내지 못했기에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동방정책이 동독과 동독의 우방을 지원함으로써 동독의 국제적 입지를 강화시켰던데 비해 북방정책은 북한과 북한의 우방을 분리함으로써 오히려 국제사회에서 북한을 고립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던 것이다.   

유럽을 뒤흔든 사건이 주는 시사점들

때로는 유럽 사회를 강타한 사건들을 보면서 불행을 준비하고 예방하는 반면교사로 삼을 수도 있는 것이다. 영국에서의 광우병 파동, 스페인 민족주의 집단의 테러사건, 프랑스의 석면 대참사와 AIDS 혈액 수혈파동 등이 그러하다. 우리는 유럽을 혼란으로 빠뜨린 이런 사건들에서 충분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역사는 반복되지 않으며 똑같은 사건이 되풀이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역사적 흐름이나 사회발전의 방향에서는 충분히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다. 아날학파(Annales)의 태두인 역사학자 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은 정치사를 ‘사건사(l'histoire événementielle)‘라고 조소하며, 역사흐름의 파악은 수세기에 걸친 이른바 중장기(longue durée)라는 시간적인 개념에 입각해서 볼 때만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개별적인 역사적 사건은 하나의 물거품 같은 것으로 역사 전체의 흐름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고 했다.

물론 거시적으로 이런 역사적 관점은 중요하다. 하지만 사건사는 사건사 나름대로의 의미를 갖는다. 사건 하나 하나가 앞뒤의 맥락 없이 발생하지는 않으며 각각의 사건은 충분한 사회적 모순과 시사점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유럽에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근대 이후 유럽은 세계사의 중심이었다. 지성사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인류가 공유하는 많은 사상과 이데올로기와 가치는 유럽에서 만들어졌다.

인간에게 역사는 거울이다

역사적 인식은 언제나 중요하다. 인류는 역사라는 시간의 궤적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고 과거-현재-미래는 연속적이기 때문이다. 전국책(戰國策)에 나오는 고사성어 중 ‘전사지불망 후사지사(前事之不忘 後事之師)’라는 말이 있다. ‘지난 일을 잊지 않음은 뒷일의 스승이 된다’는 의미다. 인간에게 역사는 하나의 거울이다. 우리는 역사라는 거울을 통해 과거를 반추해봄으로써 현재를 개척할 수 있고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

사회의 발전과 진보는 일국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가 공유하는 보편적인 가치의 문제이다. 따라서 정치·경제·사회·문화적으로 선진적인 나라들의 역사는 일국사가 아니라 인류사의 한 부분이 될 수 있고 다른 나라에게도 역사적 거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역동적인 유럽의 사회사는 사회적 이슈와 이념과 가치의 생생한 교과서다. 유럽 사회사를 통해 배울 것은 배우고 버릴 것은 버리면 된다. 유럽은 장점도 많고 나름대로 문제점도 많다. 유럽이라는 다른 산의 돌이 우리 사회의 미래라는 ‘옥’을 가리는데 도움이 된다면 유럽은 충분히 우리의 거울이 될 수 있다.

유럽의 궤적과 고민속에서 찾는 우리의 미래

그들의 사고와 이념의 궤적, 그들이 사회를 변화하고 발전시킨 과정, 그들이 제기했던 사회적 이슈들, 그들의 현재의 고민들을 살펴보면서 그 속에서 옥석을 가리고 우리에게 필요한 옥들을 찾아낸다면 우리 사회의 미래는 그만큼 더 희망적일 수 있다. 또한 그들의 좌절과 혼돈 속에서 우리 사회에서 발생할지도 모를 불행의 개연성을 찾아내고 대비한다면 우리는 미래의 불행을 줄일 수 있는 것이다. 유러피언 드림 속에서 우리는 코리언 드림을 그려내야 할 것이고 그들의 좌절 속에서는 우리의 불행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요즘 황우석 교수팀의 연구 문제로 온 사회가 들끓고 있다. 난자 공여문제로 불거진 연구윤리 논쟁, 국익과 진실 간의 갈등 문제, 언론의 취재윤리 논란 등은 유럽 사회들도 이미 홍역처럼 한번씩은 겪었던 문제들이다. 유럽의 과거와 현재라는 거울을 통해 우리는 의외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최연구: 프랑스 마르느 라 발레 대학교에서 ‘남북통일과 독일통일의 지정학’이라는 논문으로 국제관계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겨레 21 파리통신원, 르몽드 디쁠로마띠끄 한국어판 편집위원을 역임했고 한국과학문화재단 전문위원, 사이언스타임즈 편집장 겸 주간을 거쳐 현재 한국과학문화재단 BSC구축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 '프랑스 문화읽기(중심, 2003)' '르몽드(살림,2003)'등이 있다.
등록일 : 2006.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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