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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중-일, 적인가 동지인가

가깝고도 먼 中-日, 적인가 동지인가?
이코노미스트誌 특집기사   
기동훈련 중인 일본의 해상자위대


[이코노미스트誌 특집기사]

일본과 중국. 일반적으로 두 나라는 옛날부터 가깝고도 먼 나라로 알려져 있다. 더욱이 근세에 들어서는 양국은 처절하게 전쟁을 벌인 적대 국가이기도 했다. 그 후유증은 오늘날까지 치유되지 않고 남아 있다. 영국의 시사경제전문지인 이코노미스트(Economist)는 특집기사(4월1일자)를 통해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일본과 중국의 영토*역사분쟁을 심층 분석했다. 이에 본지는 기사의 전문을 소개한다.<편집자주>

日中, 경제적 상호 의존관계

만일 아시아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두 나라(일본, 중국)가 서로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자 한다면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는 쉽게 찾을 수 있다. 실제로 지난해 중국은 홍콩을 포함할 경우 미국을 제치고 일본의 제1위 교역대상국으로 부상했으며 일본은 미국과 함께 중국의 가장 중요한 교역대상국이다.

9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의 기업인들은 중국과의 경쟁을 우려했다. 그러나 이는 기우에 불과했다. 일본과 중국의 경제관계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상호 의존관계로 바뀌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은 중국의 값싼 물건을 사들이고 있으며 중국인들은 일본의 정교한 장비를 자국으로 들여와 공장을 가동시키고 있다.

한편 일본과 중국은 동남아시아와 동북아를 아우르는 동아시아공동체 구축에도 함께 참여하고 있으며 달러 환율의 하락을 막는데 있어서도 서로의 이해관계를 공유하고 있다. 특히 지난 2000년에 일본과 중국은 외환위기를 피하기 위해 ASEAN 국가들과 함께 외환위기가 있을 경우 각국은 자국의 보유외환을 상호 교환한다는 ‘치앙마이협정’을 약정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증권거래자들과 음모이론가들 사이에서는 일본과 중국이 경제뿐만 아니라 조만간 국제문제에 있어서도 공조체제를 갖출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물론 이와 같은 전망은 여러 정황으로 봤을 때 충분히 설득력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동안 일중양국은 고위급 군사회담을 갖기도 했으며 90년대 말까지만 해도 중국의 지도자들은 중국이 본받아야할 경제 모델로 일본을 꼽았다.

日, 中의 군사력 팽창 우려

그러나 최근에는 이와는 반대되는 전망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즉 지난 세기 쓰라린 라이벌 관계였던 일본과 중국이 여전히 긴장관계를 지속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지난해 11월 10일 일본 최남단 오키나와(沖繩)현 사키시마(先島)제도의 일본 영해를 중국의 한(漢)급 원자력 잠수함이 세 시간 동안 휘저었다. 이 때문에 일본에는 비상이 걸렸다. 핵 잠수함이 사전에 아무 통보 없이 영해에 들어왔다면 이는 공격이나 다름없는 행위였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결국 일주일 뒤 중국이 일본에 유감을 표명하면서 해프닝으로 끝나는 듯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중국이 잠수함 함대의 규모와 전력, 활동범위 등을 확대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이런 사건이 계속 발생할 게 확실시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중국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잠수함은 70여대로 2010년까지 20대가 추가된다. 증강 분은 첨단 장비를 갖춘 스텔스형 잠수함이다. 이 중 3대가 원자력 추진이다.

이렇게 되면 중국은 비록 성능 면에서는 뒤질지라도 수치상으로는 미국보다 더 많은 잠수함을 갖게 된다. 이러한 중국의 ‘잠수함 세 불리기’는 이웃 나라들을 자극하고 있다. 동북아시아의 상품 수출과 에너지, 원자재 수입에 이용되는 해상 수송 항로를 사실상 중국이 장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일본은 최근 미국과의 합동 안보 성명서에, 대만에 대한 중국의 점증하는 위협을 우려하는 구절을 공개적으로 포함시켰다.

이에 대해 중국은 일본이 대만문제에 관여하는 것은 내정간섭이자 헌법을 개정한 뒤 군사력을 증대하기 위한 상징적 움직임이라며 일본을 비난했다. 지난 12월 발간된 일본의 방위백서는 중국을 자국에 대한 ‘위협’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에 중국은 국방비 증액으로 맞서고 있다. 중국의 올해 국방비는 지난해보다 12.6% 늘어난 2500억 위안(약 30억 달러)에 달한다. 이는 지난 1996년 이후 연 10년째 이 어지는 두 자리 수 증액이다.

중국의 올해 국방비는 물론 미국의 4000억 달러(400조원), 일본의 470억 달러(47조원)에 비하면 아직 절대액수에서 적다. 그러나 다른 예산에 숨겨진 것으로 의심되는 유사 국방비 항목을 따질 경우 상황은 달라진다. 현재의 최대 4배, 최소 2배는 된다는 것 이 일반적인 평가다.

한편 일중 양국의 고위급 외교 관계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난 2001년 이후 일본의 고이즈미 총리는 중국을 공식적으로 방문한 적이 없다. 물론 중국도 지난 1998년 장쩌민이 일본을 방문한 이후 공식적인 중국 지도자의 일본 방문이 없는 상태다. 이는 지난 1972년 양국의 외교관계가 정상화된 이후 가장 긴 양국간 외교관계의 공백기라고 할 수 있다.

센카쿠 제도를 둘러싼 영토 분쟁

특히 일본과 중국은 영토분쟁중이다. 양국간 영토분쟁의 핵심은 센카쿠제도(釣魚島*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둘러싼 영유권 분쟁이다. 갈등의 1차적인 씨앗은 석유자원이다. 5개의 무인도로 구성된 이 섬에서 1970년대 석유 매장이 확인되면서 양국간 영토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일본이나 중국 모두 역사적인 근거를 들이대며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특히 중국의 경우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 20년 동안 수시로 센카쿠제도에 상륙해 시위를 벌여왔다.
일본과 중국의 영토분쟁

현재 일본 방위청은 센카쿠제도의 경계 태세를 강화하기 위해 이 섬에서 가까운 사키시마(先島) 제도에 육상자위대 200명을 주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일본 정부는 지난 2월에도 센카쿠제도에 설치된 등대를 국유화해 중국의 반발을 샀다. 대만 역시 센카쿠제도가 일본의 식민통치를 받기 전부터 대만 동부 이란(宜蘭)현에 속한 지역이라며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동중국해의 중국*일본 중간수역에서 벌어지는 천연가스 확보 분쟁도 현재진행형이다. 이는 중국의 춘샤오(春曉) 천연가스전 개발을 둘러싼 갈등으로 이 지역은 일본과의 경계해역에서 불과 5㎞ 떨어졌다. 일본은 중국이 이미 1986년 해저지질조사를 통해 일본과 배타적 경제수역(EEZ)이 겹치는 중간지점을 넘어서까지 엄청난 천연가스와 석유가 매장되어 있음을 파악했다고 보고 있다.

일본은 그동안 사실관계를 중국 측에 문의하는 한편 상세 데이터 제출을 재차, 삼차 요구했으나 중국은 공동개발 제안만 되풀이하고 있는 상태다. 일본과 중국 정부는 지난 99년부터 ‘해양법문제에 관한 중*일 협약’ 체결 협상을 시작했지만 이것도 진전이 없다. 이처럼 점증되는 일본과 중국의 긴장관계는 결국 두 나라의 경제적 의존관계가 심화됨에 따라 사라지게 될까? 현실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두 나라의 관계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상호의존과 상호경쟁 관계

전문가들은 중국과 일본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맹주 자리를 놓고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면서도 동시에 순망치한(脣亡齒寒)의 의존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상호의존과 상호경쟁의 양면을 지닌 관계’로 보고 있다.

역사를 보면 중국은 19세기 이전 까지만 해도 일본에 대한 승자였다. 그러나 20세기 들어와 일본은 정치경제적으로 중국을 앞질렀다. 일본은 대만과 조선을 속국으로 만든 후 중국을 침략 했다. 특히 2차 세계 대전 이후 일본이 60~70년대 고도의 경제성장을 달성한 반면 비슷한 시기 중국은 경제적으로 낙후돼 있었으며 문화대혁명의 여파가 사회 전반을 휩쓸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 30년 동안 중국의 등소평은 중국의 경제 체제를 계획경제에서 자본주의경제체제로 바꾸어 놓았다. 이에 따라 중국이 다시금 일어서고 있다. 현재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중국의 경제성장을 기회로 보는 동시에 우려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현재까지 경제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아직까지 중국을 다른 나라들처럼 경계하고 있지는 않다. 이유는 앞서 말했듯이 일본과 중국의 경제관계가 상호의존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일본과 중국이 장기적으로 자원 확보를 둘러싸고 상호 경쟁관계에 들어설 것으로 보고 있다.  

치열한 日中간 자원 확보전쟁

일례로 중국은 지난해 일본을 제치고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원유 수입국이 됐다. 이 때문에 지난해 일본과 중국은 러시아가 건설하게 될 사상 최초의 시베리아 석유 파이프라인(송유관)이 자국을 경유하도록 하기 위해 서로 경쟁했으나 러시아는 결국 일본의 손을 들어줬다.

양국학자와 관료들은 오늘날 일본과 중국 사이의 대립관계가 생기게 된 근본적인 원인을 20세기 역사에서 찾는다.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양국의 대립은 상호 불신(mistrust)에서 비롯된 것이다. ‘중국사회과학원’의 가오 헹(Gao Heng)박사는 일본의 정치인들 중 일부는 여전히 대만을 속국으로 만들기를 원하는 것 같다며 대만의 군인들이 일본에서 비밀리에 훈련을 받는 것을 예로 들었다.

그러나 가오 박사의 경우 일본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그의 부모는 과거 일본군을 피해 지하 굴에 숨어 살았으며 박사 자신도 이 시기(1939년)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한편 최근 나고야에서 열린 비공개 경제 단체장들의 모임에서 일본의 한 경제인은 최근 동아시아에서 중국이 보이고 있는 영토적 야심 그리고 자원 확보에 대한 야망은 1930년대 히틀러가 추구했던 ‘레벤스라움’(Lebensraum*게르만 인종을 위한 영토 확보)과 다를 바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중국의 이와 같은 야심을 일본은 어떠한 희생을 치러서라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양국의 자존심과 불신의 대결은 군중집회나 인기에 영합하는 정치판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지난해 8월 베이징에서 개최된 아시안컵 축구대회에서 중국의 젊은 관중들은 일장기를 태우고 일본의 외교관 차량을 파손시키는 등 한바탕 난동을 부렸다. 이와 같은 난동은 얼마 전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전범(戰犯)들의 신위가 모셔져 있는 도쿄의 ‘야스쿠니신사’를 고이즈미 총리가 방문했을 때에도 발생했다.  

당시 일본의 경제 인사들은 중국과의 경제관계를 고려해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 참배를 만류했다. 그러나 고이즈미 총리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은 존경받아 마땅하다며 재계 인사들의 충고를 뿌리쳤다. 고이즈미 총리의 발언은 일본이 더 이상 중국의 압박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것으로서 매우 함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아시아에서 중국만이 유일하게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참배에 항의하는 나라는 아니다. 한국도 중국과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그동안 중국처럼 집단적인 대규모 반일 시위는 없었으며 대부분 한일 양국 정부관계자들의 유감표명으로 끝나곤 했다.  이처럼 아시아에서 일본과 중국의 관계는 유럽에서 독일과 프랑스의 관계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차이가 있다면 일본과 중국에는 아직까지 지난 1984년 베르덩(Verdun)에서 “다시는 역사에 과오를 남기지 말자”면서 함께 손을 잡았던 독일의 헬 무트 콜과 프랑스의 프랑수아 미테랑 같은 지도자가 없다는 점이다. 특히 독일과 프랑스가 1945년 이후의 역사를 왜곡한 사례가 없는 반면 일본의 경우 역사교과서를 통해 20세기 초반 일본의 중국 침략을 정당화 하는 한편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이 중국에 가한 최대 잔혹행위의 하나인 난징대학살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민주주의-공산주의의 대립

중국도 역사를 왜곡하기는 마찬가지다. 중국은 지난 1989년 천안문 사태 당시 비무장 상태의 시위대를 무력 진압했던 중국 공산당의 과오를 감추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역사교과서를 통해 반일감정을 고취시키고 있다. 이처럼 일본과 중국의 긴장관계는 서로가 정치*경제*역사적 이해관계를 너무나도 잘 인식하고 있는 가운데 발생하고 있다. 특히 양국의 긴장관계는 공산주의(중국)와 민주주의(일본)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양국의 정치체계가 바뀌지 않는 한 앞으로 계속될 것이다.

이 때문에 유럽연합(EU)과 같은 동아시아 공동체를 구성하려는 양국의 노력은 필연적으로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동아시아공동체와 같은 연합체제는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의 국가 주권을 공동체에 양도하려는 의지가 수반되어야 한다. 그러나 중국의 경우 어느 한 순도간도 자국의 주권을 양도하는 것에 대해 고려해 본적이 없다. 물론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일본과 중국도 현재 쟁점이 되고 있는 국가주의적 성향을 버리고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인다면 양국의 긴장관계는 완화될 것이다.

이를 실현키 위해 일본은 야스쿠니 신사의 지위와 관련된 문제, 그리고 과거 전쟁피해자들에 대한 보상 문제를 진지하게 검토해봐야 할 것이다. 중국의 경우 일본과 관련된 중국 역사를 학자들이 충분한 토의를 거친 후 서술할 수 있도록 장려하여 반일 감정을 부추기는 행동을 자제해야 할 것이다. 특히 중국은 현재 심각한 갈등을 야기하고 있는 해양주권문제와 관련해 일본과 진지한 협상을 시작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야스쿠니 문제의 해법은 2006년 선출될 신임총리가 고민해야 한다. 고이즈미 총리는 국가의 자존심이란 차원에서 일본의 알링턴 국립묘지 격인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야스쿠니 신사는 1940년대부터 민간종교시설이기 때문에 정부는 그곳에 안치된 전범을 옮기라고 명령할 헌법상의 권리가 없다고 고이즈미 총리는 말했다. 이점은 사실이나, 알링턴이나 프랑스의 무명용사 묘지처럼 총리가 논란의 여지없이 참배할 수 있는 정부가 운영하는 묘지를 설치하는 것이 해법이 돼야 함을 의미한다.

한편 모든 전시 배상은 1951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으로 해결되었다는 것이 일본의 공식적 입장이라는 것이 보상 이슈의 핵심이다. 하지만, 최근 독일이 강제노동에 대해 보상을 재개하기로 한 것처럼, 일본도 강제노역이나 전시의 정신대 여성들에게 포괄적인 보상을 제공하라는 압력을 계속 받을 가능성이 크다.

전시 동기 및 행위에 관한 일본 내부의 논의가 발전의 징표인 것만은 틀림없다. 다원적인 사회에서, 일본이 잘못한 것이 뭐가 있냐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소수의 견해가 중국의 발전에 따라 일본도 힘이 필요하다는 선동과 정치적 감정과 결합할 경우 힘을 얻게 된다. 따라서 일본과 중국의 경우 패권추구 대신 화해를 추구할 때만이 긴장은 가라앉을 것이다.

김필재 기자 spooner1@


김필재기자  2005-04-05 오후 4: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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