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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가, 남한인가, 꼬레아(COREA)인가

■ COREA국호는 회복되어야 한다


                                               

                                                21세기코리아연구소 연구위원 정형기, 2003.10.25


 * 아래는 조선대 교지 ‘민주조선’에 기고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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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필승 COREA!, FORZA COREA!
지난 월드컵 때 코리아반도 이남에서는 4천만이 모두 목놓아 외치던 구호이다. 정부와 대회 관계자들은 모두 KOREA를 사용했는데, 왜 사람들은 COREA를 사용하였을까? 선수들도 축구협회에서 제작한 KOREA로 표기된 운동복을 입고 뛰었는데, 사람들은 선수들과 똑같은 옷을 입고 응원을 하면서도 굳이 국호만은 COREA이기를 바랬다.
월드컵 이후 COREA국호회복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인터넷 공간에서 카페와 커뮤니티들이 우후죽순 솟아나는 등 기층에서부터 벌어지기 시작한 이 운동은 이제 남북 학자들이 모여 학술교류를 진행하고, 국회의원까지 평양을 방문하여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사용할 한반도기에 COREA국호를 표기하자는데 합의하고 돌아왔다. 북이 참가했던 부산 아시안게임과 대구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도 남북이 공동응원을 하면서 COREA를 힘차게 외쳤다. COREA국호를 회복하는 것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다.
그러면 우리는 왜 국호를 ‘변경’한다고 하지 않고 ‘회복’한다고 하는가? 회복이란 외부적인 요소에 의해 본래의 질이 자기의 본성에 맞지 않게 변경되었던 것을 다시 되찾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 회복의 단계를 거치면 본래의 것으로 돌아갈 뿐만 아니라 이전보다 더욱 발전하게 된다. 병에서 회복하면 면역능력이 강화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를 철학 용어로 ‘부정의 부정’이라고 한다.

*출처: http://www.21corea.org/corea/corea_01.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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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국호표기가 서양에 처음 알려졌던 것은 고려시대인 1200년대부터이다. 프랑스 선교사인 루브류끄가 프랑스 국왕 루이 9세의 명령으로 몽골에 파견되었다가 1255년 8월에 귀국하여 발표한 여행기(linterarium fratris William de Rubruquis de ordine fratrum Milorun)에는 중국 동쪽에 ‘까울레(CAULE)’라는 나라가 있다고 쓰여있다. 1296년에는 이탈리아 상인 마르코폴로가 중국을 여행한 후 동방견문록을 썼는데, 이곳에도 우리나라를 까울리(CAULY)라고 표기하였다. 이 외에도 우리나라에 대해 적혀 있는 서양의 문헌을 보면 COREA, CORAY, COREY, CORIE, COEREE등 모두 첫 글자가 ‘C’로 시작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헌뿐만 아니라 당시 제작된 지도에서도 우리의 국호를 모두 COREA로 표기하였다. 유럽인들의 세계지도 작성 역사상 처음으로 우리나라 지도를 포함시킨 네덜란드 사람 빼뜨로 프란치오의 ‘세계지도’(1594년)로부터 시작하여 1894년에 미국에서 출판된 도서 ‘은둔국조선’에 부록으로 첨부된 조선지도 등 16세기 초에서 19세기 말까지 간행된 20여 가지의 코리아반도가 포함된 세계 및 아시아 지도 중 거의 모든 지도들에서 우리나라 국호를 COREA로 표기하였다. 1943년에 일본의 지도학자 마쓰모또 겐이찌가 편찬한 ‘유럽고판일본지도집’에 소개된 19개의 코리아반도 지도 중에서 우리나라 국호의 외래어 표기 첫 글자를 ‘K’로 표기한 것은 1734년에 러시아사람인 요한 키릴로브가 제작한 ‘러시아지도’와 1840년 필리프 프란츠 폰 시볼트가 제작한 ‘일본지도’뿐이다. 여기에서 러시아 사람이 작성한 ‘러시아지도’에서 우리나라 국호의 첫 글자를 ‘K’로 표기한 것은 러시아어 자모에서 ‘ㄱ’음을 나타내는 것이 ‘K’밖에 없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이처럼 우리 국호의 첫 글자를 ‘C’로 표기하는 현상은 19세기 말까지 프랑스어나 포르투갈어, 영어, 네덜란드어 등 그 어종에는 관계없이 유럽에서 모두 다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조선 정부도 서양과의 외교문서에 COREA를 공식적으로 사용하였다. 1882년 5월 22일에 미국과 체결한 조미수호통상조약에 국호의 영문표기를 ‘KINGDOM of COREA’로 쓰면서 COREA를 우리나라의 국호표기로 정식 인정하였다. 이때로부터 1910년 8월 한일합방에 의해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기기 전까지 대외문서에서 COREA는 우리나라의 공식 국호로 널리 사용되었다.
우리 국호의 첫 글자가 700여 년 동안‘C’로 사용되다가 ‘K’로 바뀐 것은 일제가 우리나라를 넘보기 시작한 1990년대부터이다. 국제적인 회합이나 문서의 작성에서 나라이름들의 나열은 해당언어의 자모순에 따른 것이 관례이다. 영어 표기의 경우 조선의 국호표기인 COREA의 첫 문자 ‘C’는 일본의 국호표기인 JAPAN의 ‘J’에 비해 자모순에서 훨씬 앞서므로 COREA가 JAPAN의 앞에 놓이게 된다. 당시 조선을 식민지지배의 대상으로만 여기고 있던 일본의 대조선인식에 보면 조선이 일본의 앞에서 거론되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에 일제는 교묘하게 우리의 국호를 KOREA로 바꾸기 위한 공작에 착수하게 된다.
일제는 우선 같은 제국주의 국가인 영미 등 서양의 친일인사들을 동원해 국호왜곡을 치밀하게 준비해 나간다. 미국의 친일적 선교사였던 아펜젤라는 자신이 간행하던 잡지 ‘코리언리포지터리’(1897.12)에서 일본의 학자들 속에서 제안된 주장을 쫓아 ‘ㄱ’의 영어 등가물이 ‘K’이므로 ‘C’를 쓰는 것은 낡은 방법이라는 괴이한 논리로 KOREA국호를 정당화하려 하였다. 즉, 700여 년간 우리나라와 세계가 공인하여 온 COREA라는 표기가 언어학적 원리에 맞지 않는 낡은 표기이므로 그 첫 글자를 K로 바꿔 써야 한다는 것이다.
1864년부터 일본에 와서 근무하였고, 1880년부터는 요꼬하마영사, 1884년부터는 조선에서 영국총영사까지 지낸 바 있는 윌리엄 조지 아스톤도 일제와 결탁하여 우리의 국호를 왜곡하는데 일조한 사람 중의 하나다. 아스톤의 저술을 보면 1876년 영국황실아시아협회의 잡지에 낸 논문을 제외하고는 1878년 이후로 줄곧 KOREA를 사용하고 있다. KOREA의 쓰임이 맹아적 단계였던 1880년대의 주요한 5개의 영문문헌자료들에 가운데서 4건이 아스톤의 저작이었다는 것, 그리고 그것들이 모두 그가 일본에서 활동한 1884년 이전 시기의 것들이라는 사실을 보아도 당시 일제의 코리아표기 왜곡에 아스톤이 얼마나 발벗고 나섰는가 하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외에도 헐버트, 커즌, 게일, 비쇼프 등 영미의 친일 인사들이 일제와 결탁하여 국호 왜곡 과정에 깊숙이 관여하였다.
제국주의국가의 친일세력들을 동원하여 우리의 국호를 왜곡할 준비를 마친 일제는 조선을 강점하면서 본격적으로 국호를 왜곡하기 시작하였다. 일제는 우선 통감부와 총독부에서 발행하는 모든 관보에 우리의 국호를 의도적으로 KOREA로 표기하였다. 조선통감부시정년감과 같은 연보들과 조선의 재정개혁(1906년), 조선에서의 새로운 진보(1910년), 조선정부년보(1924, 1927, 1931년) 등의 관보는 일문판과 함께 영문판으로 출판 발행되었는데, 이 영문판 관보에 조선을 모두 KOREA로 표기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는 이 관보에 인용한 사료의 인용문에서까지 나타나고 있다. 한일의정서(1904), 한일협정(1905) 등 인용문의 원본에는 우리의 국호가 COREA로 표기되어 있는데, 사료를 인용한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KOREA로 표기하였다. ‘조선어 사용 금지’, ‘창씨개명’등과 함께 3대 민족말살정책 중의 하나였던 국호왜곡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 완성되었다.
한번 왜곡된 국호는 해방 이후에도 복원되지 못하였다. 미국에 의해 이승만파쇼정권이 수립된 이남에서는 일제식민지배하에서 친일로 호위호식하던 매국노들을 대거 입각시켰다. 뼛속까지 친일이 배어있던 그들은 분단 이후 지금까지 미국과 친미독재정권에 기생하여 살면서 여전히 권력의 보호망 안에서 각종 특혜를 누리면서 살고 있다. 그들에게는 애초부터 국호를 회복할 의사도 능력도 없었다. 국호왜곡과정에 참여하였고, 친일파들을 목적의식적으로 보호했던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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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세에 의해 국호가 강제로 변경되었다는 사실이 이렇게 다양한 증거로 드러나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일부에서는 국호 회복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중앙일보의 박철희는 KOREA는 이미 국제적으로 정착된 국호라면서 엄청난 비용을 들여서까지 국호를 바꾸어야 하겠느냐고 주장했다. 국호회복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일본에 대한 자격지심이라는 충고(?)도 잊지 않는다.
보수논객들의 공통된 논리에 의하면 대부분 세계가 영어 공용화가 된 상황에서 영어식 표기인 KOREA를 쓰는 것은 당연하다거나, 국호변경은 비용이 많이 든다는 것이다. 이들이 토론마당에서 흔히 내세우는 시기상조론이 나오지 않는 걸 보니 COREA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게 사실이긴 사실인가보다.
이들의 주장은 논리적 모순을 가지고 있다. 첫째, 영어공용화시대이기 때문에 영어식 표기인 KOREA를 써야한다는 것은 어디에서도 그 근거를 찾을 수 없는 논리적 모순이다. 그들의 논리에 의하면 우리말을 외국어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전자법이나 전사법에 따라 써야 된다고 한다.
국어를 로마자로 표기하는 방식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우리말의 발음을 그대로 로마자로 옮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말 표기에 쓰이는 글자, 즉 한글의 철자를 로마자로 적는 것이다. 전자를 전사법이라고 하고, 후자를 전자법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신라, 종로’라는 단어를 로마자로 적을 때, 전사법에 따라 발음을 로마자로 옮기면 ‘Silla, Jong-no’로 옮겨질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전자법에 따라 철자를 로마자로 옮기면 ‘Sinra, Jong-ro’로 옮겨진다.
그러나 전자법에 의해 표기하기 위해서는 그 나라의 글자가 있어야 하고, 또 맞추어 적는 방법이 있어야 한다. COREA가 사용되기 시작한 1250년대는 우리민족이 한자를 사용했던 시대로 훈민정음이 창제되기까지는 아직도 200여 년이 더 남아있던 때이다. 훈민정음이 창제된 후에도 한글은 ‘언문’으로 불리며 여전히 홀시되어 일반적으로 사용되지 못하다가 조선 후기에 들어선 후에야 비로소 대중화되었다. 우리나라의 존재가 해외에 알려지기 시작한 1250년대에는 우리민족의 글자가 있지도 않았고 따라서 전자법에 의거해서 표기할 수가 없었다. 특히 19세기 말엽까지 세계적으로도 전자를 어떻게 하겠는가 하는 방법이 널리 유포되지 않았던 시대이다. 이런 것들을 고려하여 볼 때 우리의 국호에 전자법을 적용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또한 우리나라 국호표기는 그 어떤 규범적인 성격을 띤 특수한 문자나 부호에 의한 표기가 아니라 라틴문자에 의한 표기이기 때문에 전사법을 적용하는 것도 옳지 않다.
한 나라의 국호가 전사법이나 전자법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과 경험에 의거해 어원을 밝히는 역사어원론에 근거해서 표기되어야 하는 것은 상식이다. CANADA(캐나다), COLOMBIA(콜롬비아), CAMEROON(카메룬), 콩고(CONGO), 코스타리카(COSTA RICA), 캄보디아(CAMBODIA), 키프로스(CYPRUS) 등 우리말의 ‘ㅋ’에 해당하는 나라들의 국호의 첫소리가 모두 ‘C’로 쓰인 것인 것은 이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의 국호 표기를 영어식 표기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국호표기가 역사적으로 일단 형성, 고착되면 그 표기를 계속 대를 이어 전승하여 쓰는 것이 옳은 것이다. 국호표기는 일단 형성, 고착되면 그것이 전례에 따라 그대로 계속 쓰여 내려오면서 그 나라의 상징으로 된다. 바로 COREA가 우리나라 국호의 상징으로 된 것이다.
둘째, 국호를 변경하는 비용이 많이 든다는 주장은 분단체제를 유지하려는 논리의 연장에 있다. 국호회복운동은 과거 우리의 국호가 COREA였던 것을 되찾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동시에, 반세기의 분단시대가 종결되고 코리아반도가 재통일될 때 사용할 우리의 국호로 COREA를 사용하자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남북의 학자들이 공동으로 학술토론회를 개최하기도 하고 국제대회에서 사용할 코리아반도기에 COREA국호를 표기하자는 남북간의 합의도 나오는 것이다.
6.15 공동선언이 발표된 이후 코리아반도의 재통일은 눈앞에 다가온 현실이다. 코리아반도가 재통일된다는 것은 지구상에 새로운 국가가 등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새로운 국가가 등장하여 새로운 국호를 사용하는 것은 비용이 드는 문제가 아니다. 혹여 비용이 든다 하더라도 어차피 우리민족이 치러야 할 비용이며, 또 통일된 마당에 기쁜 마음으로 기꺼이 치를 수 있는 비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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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호를 회복하는 운동은 우선 외세의 간섭을 배격하고 민족의 자주권을 회복하는 운동이다. 일제에 의해 왜곡된 우리의 국호를 되찾아 민족의 존엄을 지키는 운동이다. 그리고 미국으로부터 자주적이지 못한 오늘의 시점에서 이 운동의 의의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대낮에 여중생을 장갑차로 깔아 죽여도 가해자 미군을 처벌할 수 없어 장갑차라도 구속시키라는 말밖에 할 수 없는 코리아반도 이남의 현실에서 미국으로부터 자주권을 되찾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다. 일제로부터 해방되자마자 인천을 통해 진주한 맥아더 군대는 그들의 포고령에서 스스로 밝혔듯이 코리아반도 이남에 ‘점령군’으로 들어왔다. 그들이 총독부 건물에 걸려있던 일장기를 내리고 그 자리에 성조기를 올리면서 시작된 코리아반도 이남의 예속체제는 현재까지 수많은 억울한 죽음을 낳아왔다. COREA국호회복운동은 변혁운동세력뿐만 아니라 시민운동세력까지 포함하여 대중적으로 광범위하게 민족자주의식을 고양시킬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국호왜곡 과정에 개입한 미국의 책임을 묻는 것으로부터 시작될 이 운동은 민족의 자주권을 회복하는 운동을 더욱 고조시킬 수 있을 것이다.
국호를 회복하는 운동은 또한 사회의 민주화를 이룩하는 운동이다. 나날이 높아가는 국민들의 민주적 요구를 가로막고 있는 수구세력들은 일제시대 친일파의 후예들이며 해방 이후 현재까지 친미사대주의를 고수하고 있는 세력들이다. 그들은 지난 월드컵 때 ‘붉은악마’가 입은 응원복을 두고 색깔론을 폈던 사람들이고, ‘FORZA COREA’라는 구호에 알레르기를 일으킨 사람들이다. 이들은 COREA국호되찾기운동이 대중적으로 확산되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KOREA국호고수론을 펴고 있다. 사회의 민주적 발전을 방해하는 이 세력들을 반대하고 자주적 민주정부를 구성하는 데에서 국호회복운동은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국호를 되찾는 운동은 또한 민족통일을 앞당기는 운동이다. COREA국호가 해외에 알려지기 시작한 때는 최초의 통일국가였던 고려시대였다. 앞으로 재통일될 날에 새로운 국호를 ‘대한민국’이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사용할 수 없는 상황에서 ‘고려’는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국호가 될 것이다. 6.15공동선언이 발표된 후 우리 민족끼리의 기치를 높이 들고 민족자주, 민족화해의 운동이 적극 전개되고 있다. 이런 조건에서 제기된 COREA국호되찾기운동은 그 자체가 6.15공동선언실천이며 조국통일운동이다. 그러므로 이 운동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낮은 차원의 조국통일운동이자 통일국호를 제정하는 궁극적인 조국통일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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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세에 의해 강제로 왜곡되고 고착화된 우리 국호를 COREA로 바로잡는 것은 재통일을 눈앞에 내다보는 오늘의 시점에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초미의 과제가 되었다. 부정의 부정을 거쳐 다시 되찾을 COREA는 일제 강점 이전의 COREA면서도 그렇지 않다. 다시 되찾을 COREA는 더 이상 외세로부터 수탈당하는 나라가 아니며, 지배자의 탄압에 숨죽이는 나라가 아니며, 갈라져 서로에게 총을 겨루는 나라가 아니다. 다시 되찾을 COREA는 외세나 매국노에 의해 만들어지는 국호가 아니라, 우리 민족 모두의 뜻을 모아 만들어지는 우리의 국호이다. 다시 되찾을 COREA는 코리아민족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새로운 시대의 국호이다.
KOREA는 예속과 독재와 분단의 상징이다. 자주와 민주와 통일의 시대를 살아갈 우리들에게 KOREA라는 옷은 유행에 한참 뒤떨어진 낡은 옷이다. COREA를 우리의 옷에 새기고, 얼굴에 새기고, 머리와 가슴에 새겨 넣자. 새 시대에 걸맞는 우리의 국호, 그것은 ‘COREA’이다.(21세기코리아연구소 연구위원 정형기, 2003. 10.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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