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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호] 3불 정책 논란과 한미FTA의 닮은꼴 구조

3불정책 논란과

한미FTA의 닮은꼴 구조

 

 

하재근/ 학벌없는 사회 사무처장

 

3불정책은 대학입시에 대한 국가의 규제다. 이것을 폐기하라는 것은 대학입시를 자유화하라는 소리다. 여기서의 자유화는 시장화를 의미한다. 각 개별주체의 이익극대화와 선택의 자유를 국가가 제한하지 말하는 것이다. 한미FTA도 개별 경제주체들의 이익극대화와 선택의 자유를 확대하는 시장화 정책이다. 그러므로 3불정책 폐기 주장과 한미FTA는 본질적으로 그 사고방식이 같다.

한미FTA는 서비스업에 개방과 자유화라는 충격을 줘서 구조조정을 촉발하고, 소비자의 선택권을 넓혀 소비자에게 이익을 주겠다는 정책이다. 3불정책 폐지라는 충격파는 교육서비스업에 충격을 줘서 구조조정을 촉발하고, 소비자의 선택권을 넓힐 것이다.

한미FTA 추진측은 구조조정으로 경쟁력이 향상될 거라고 한다. 3불정책을 없애자는 이른바 일류대들은 3불정책 폐지로 대학경쟁력이 살아날 거라고 한다. 자유시장에서의 자유선택이 촉발하는 무한경쟁이 경쟁력을 향상시켜줄 것이라는 논리다.

무한경쟁은 국가의 규제상태에선 이루어지지 않는다. 공급자(투자자)의 자유로운 경영권과 소비자의 자유로운 선택권이 보장될 때에만 무한경쟁이 가능해진다. 무한경쟁이야말로 경쟁력 향상의 원천이라고 생각하는 시장화 세력은 자유화와 소비자 선택권 확대를 만사형통의 주문으로 여기게 된다.

한국 교육이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는 건 세상이 다 안다. 문제의식은 공유할 수 있으되 그 해법은 제각각이다. 시장화 세력은 자유화와 소비자 선택권 확대로 이 문제를 풀자고 한다. 국가의 규제로부터 교육을 시장에 ‘개방’하자는 것이다.

한미FTA에서 교육부분은 일단 유보되었지만, 이것은 우리 정부가 ‘지켜낸’ 것이 아니라 ‘얻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대통령은 서비스업 부분 협상 결과에 불만이 있다고 했다. 우리 정부의 목표는 고등교육서비스 개방이었는데 미국 자본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결과다. 현재로선 그들이 구태여 한국에 들어오지 않아도 한국인들을 상대로 교육장사를 하는데 별반 부족함이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고등교육을 개방하려는 정부가 3불정책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알려지는 상황은 기괴하다. 개방의 충격파는 곧 3불정책에겐 쓰나미가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미 지금도 3불정책은 쓰나미를 맞고 있다. 개방, 자유화가 정책기조이므로 대학이 사실상 본고사를 보고, 사실상 고교등급제 시행에 정부가 제동을 걸지 않기 때문이다.

 

▲ 각 대학들의 3불정책 폐지 주장에 김신일 교육부총리(사진)까지 나서서 반론을 폈다. 그러나 이 주장이 얼마만큼의 진실성을 갖는 것일까?

 

논술가이드라인이 있다는 것은 논술가이드라인만 지킨다면 본고사를 보란 얘기다. 대학들은 어떤 식으로든 특목고생들에게 특혜를 주고 있다. 고교등급제도 절반은 시행되고 있는 것이다. 즉, 현재 3불정책은 절반쯤 무너진 상태다. 개방, 자유화 정책기조와 3불정책이 충돌하므로 당연한 귀결이다.

 

90년대 개방, 자유화 기조 이후 민생이 파탄 나는 사이 교육도 파탄이 났다. 이것이 개방의 결과다. 흔히 개방하면 외국에 대한 개방만을 생각하는데, 개방의 또 다른 의미는 ‘국가에 의해 보호되어 왔던 영역이 시장에 개방됨’이다. 한미FTA는 강력한 시장개방 정책이다. 3불정책 폐지 주장은 이미 상당부분 개방된 한국 입시부문을 더욱 강력하게 시장개방하자는 주장이다. 양자는 이상동몽(異床同夢)이다.



■3불정책 폐지의 미래


본고사가 전면 허용되면 대학들은 저마다 어려운 문제를 내 일류학생을 뽑으려 무한경쟁에 돌입한다. 이 어려운 문제들은 껍데기만 남은 중등교육서비스부문에 외부 충격으로 작용한다. 이에 따라 중등교육서비스부문에도 보다 어려운 입시를 위한 무한경쟁이 촉발된다. 중등부문등급제(고교등급제)는 강력한 경쟁유인으로 작용한다. 사교육서비스부문에서도 보다 어려운 문제를 위해 급속한 혁신이 이루어진다.

외부충격과 자유경쟁은 중등교육서비스부문을 구조조정에 성공한 승자와 실패한 패자로 쪼갠다. 그 기준은 당연히 일류대 진학률이 될 것이다. 등급이 다른 학교들간에 평준화는 말이 안 된다. 고교평준화는 깨진다. 기존의 고교평준화란 국가규제 때문에 선택권을 제약당했던 소비자들은 확연히 갈린 고등학교의 성적표를 보며, 그에 따라 일목요연하게 진열된 등급별 상품들 사이에서 자유롭게 선택권을 만끽하게 된다. 소비자 후생이 증대된다.

한미FTA 추진자들은 한미FTA로 한국 경제의 비효율성이 줄어드는 구조조정이 일어난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자유화 경쟁은 비효율성을 급격히 줄이는 경향이 있다. 3불정책 폐지로 확대되는 교육자유화 속에서 한국 교육의 비효율성은 급격히 줄어들게 된다.


즉 일류대 진학률과 상관없는 불필요한 교육은 모두 버려지게 되는 것이다. 불필요한 교육을 고집하는 학교는 고교등급 하락이라는 준엄한 심판을 맞는다. 존엄한 인간이나 창조

적인 인재를 만드는 것같은 비효율성은 폐기되고, 일류대 진학률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중등교육의 생산성이 향상된다. 교단의 비효율성인 일반 교사는 폐기되고 비정규직 입시강사나 입시강사형 교사들이 점점 늘어나게 된다.

 

▲서울대 등 몇몇 대학들의 3불제 폐지 시도에 여기저기서

  반대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가난한 집 아이들은 일류대에 들어갈 가능성이 극히 희박하므로 학교 입장에선 생산성을 저해하는 비효율성이 된다. 평균 깎아먹는 아이들을 배제해야 무한경쟁에서 승리해 등급이 올라간다. 학교는 가난한 집 아이를 기피하는 경쟁을 시작하게 된다. 그리하여 결국 혁신의 승자가 상위 등급 학교로서 중상층 자녀를 독식하게 된다. 일류대 입장에서도 가난한 집 아이들은 비효율성으로서 기피대상이다. 3불정책 폐지를 통해 중상층 자녀들은 자연스럽게 일류고에서 일류대로 넘겨지고, 일류고-일류대를 잇는 엘리트 트랙에서 비효율성은 완벽히 제거된다.

 

지방대, 삼류대들은 3불정책이 있건 없건 아무 상관이 없다. 3불정책으로 불이익을 당하는 건 소수 일류대와, 특목고, 자사고들, 그리고 그것을 선택하려고 하는 중상층 소비자들이다. 3불정책 폐지는 그들에 대한 교육차별이 사라짐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신들만의 성을 쌓을 수 있게 된다. 개방 자유화로 증대된다는 소비자 후생의 진정한 수혜자는 결국 부자들뿐인 것처럼 교육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

진다. 

가난한 사람들은 고교평준화 시절에는 누리지 못했던 삼류고등학교를 선택할 권한을 만끽하게 된다. 과거에 그들에겐 삼류대학을 선택할 자율권만이 주어졌었으나, 본고사와 고교등급제는 삼류고등학교를 선택할 자율권, 삼류 사교육을 선택할 자율권까지 지금보다 더욱 큰 폭으로 안겨주게 된다.

한미FTA 소비자 후생 증대 논리에는 저렴한 수입품으로 인해 일반 국민의 소비수준이 나아진다는 것도 있으나, 교육자유화 공간에서 나올 저렴한 교육 트랙엔 박탈감을 제외한 그 어떤 만족감도 없기 때문에 한미FTA보다 교육자유화가 더욱 악랄하다. 그러나, 저렴한 수입품은 결국 국내 기업 붕괴나 혹은 국내 노동자 저임금화로 귀결되어 모든 국민의 삶의 질을 박탈하고, 저렴한 교육 트랙은 그 국민의 자식들의 미래를 박탈한다는 점에서 결국 초록은 동색이다.


한미FTA로 양극화가 심화되는 것처럼, 3불정책 폐지의 교육자유화는 교육격차를 심화한다. 본고사로 팽창될 사교육에 의해 국가는 내부분단 상태가 된다. 고교등급제로 일류고 선택경쟁이 격화됨에 따라 초중등 사교육이 팽창하고, 조기 유학이 급증한다. 내부분단이 심화된다. 기여입학제는 워낙 노골적인 것이어서 달리 설명이 필요 없다.


■자유화 정책 기조를 전복해야


정부는 말로는 3불정책 지킨다면서 실제로는 자유, 개방을 정책기조로 삼고 있다. 대학이 3불정책을 어기면 처벌하면 그만이다. 처벌하지 않는 이유는 정책기조가 자유화에 있기 때문이다. 3불이 문제가 아니라 개방, 자유화 기조를 전복해야 한다. 이 기조가 있는 한 기득권 세력의 발호는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 때문이다.

한미FTA는 산업정책의 차원에선 외부에 대한 개방이 문제이지만, 공공성 차원에선 시장에 대한 개방이 문제가 된다. 정부는 이 두 가지 개방 원칙을 90년대 이래 견지해왔다. 서비스업 부문을 시장에 개방하기 위해선 국내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의 저항을 뚫어야 하는데(예컨대 전교조), 외부에 대한 개방은 그 전선을 손쉽게 돌파하게 만든다. 이것이 이른바 외부발 충격이다.

이런 식의 정책을 추진하면서, 지켜져도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정부정책기조 안에 이미 그것이 폐기될 가능성까지 내포되어 있는 3불정책이란 것 하나 가지고 일류대란 기득권세력과 대립하는 모양새를 연출하는 한국 정부. 이미 수많은 것을 얻고도 3불정책의 명시적 폐기를 통해 최후의 피 한 방울까지 짜내겠다는 기득권세력은 뻔뻔하고, 3불정책 하나로 이른바 ‘서민의 편’이라는 정부의 이미지가 유지되는 한국 사회 여론지형은 기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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