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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호] 여초교사는 과연 문제일까?(최고봉/ 교사)

여초교사는 과연 문제일까?

 

 

최고봉 | 교사

 

*여초현상이 문제다?

언론에서는 교사 사회에 여성이 많아서 문제라고 한다. 성역할을 이야기하며 사내 아이들이 여성화되고 있다는 호들갑을 떤다. 일부에서는 남성 쿼터제를 도입하자는 주장을 내놓기도 한다. 실제로 이미 교사의 70% 이상이 여성이라는 통계가 나와 있다. 일부 국가에서는 교사의 90% 이상이 여성이라는 뉴스도 들려온다. 그러나 대부분 여초현상이 문제라는 주장은 하지만, 무엇이 여초현상을 불러일으켰는지 분석하지 앟고 있다. 또한 여초현상이 과연 문제인지, 그리고 여초현상이 문제라면 근본적인 해결책은 무엇인지 언급하지 않고 있다.

 

*여초현상의 원인

교사사회의 여초현상은 사실 오래 전부터,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존재하는 문제이다. 여초현상은 특히 대학교육보다는 초등과 보육단계에서 매우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것은 교사라는 직업의 성격 및 사회적 지위와 관련이 있다. 사회는 돌봄을 여성에게 적합한 것으로 규정한다. 일반적으로 나이가 어린 아이일수록 돌봄을 더욱 많이 필요로 한다. 따라서 이른 발달단계를 담당하는 교사일수록 여성들에게 적합한 노동이라는 사회적 인식이 팽배하다.

남성들은 이런 직업을 기피한다. 돌봄은 매우 가치있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는 못한다. 따라서 남성이 이런 직업을 선택할 경우 상당한 편견을 극복해야 한다. 예컨대, 한국사회에서 남성 유치원 교사는 매우 보기 드물다. 이것은 마치 남성 간호사를 보기 어려운 것과 같다.

초등교사라고 해도 이와 다르지 않다. 초등교사는(특히 저학년을 담당하는 교사는) 어느 정도의 돌봄을 담당해야 한다. 따라서 초등교사를 선택하는 남성들은 어느 정도의 사회적 편견을 경험한다. 예컨대, '남성 초등교사들은 대범하지 않다'는 편견은 직업선택에 있어 어려움으로 작동한다.

여초현상은 교사라는 직업을 여성들이 선호하고, 남성들이 상대적으로 덜 선호하면서 생기는 현상이다. 여초현상이 사회에서 자주 언급되는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번째는 학생들의 성역할에 혼란이 오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두번째는 남성들의 피해의식이다. 첫번째의 경우 필자는 별로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다. 여초현상은 보육과 유아, 초등 등에서 나타나는데  굳이 문제삼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된다. 문제는 두번째이다. IMF 이후 취업의 기회가 제약된 상황에서 교사와 공무원 시험에 응시자가 많이 몰리는데, 여성들이 많이 합격하면서 남성들이 보는 시각이 악화되었다. 그렇다고 이것이 과연 여초현상의 본질일까?

 

*여초현상의 본질적 해결책

그러나 이것은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다. 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여성의 노동이 선별적으로 허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실 여성들은 직업을 선택함에 있어 차별받거나 배제되고 있다.(이것은 인권위원회와 여성부, 심지어 국제연합 등 많은 단체들이 지적하고 있는 사실이다.) 여성의 직업선택을 차별하거나 배제하는 것은 제도적인 것도 있고, 비제도적인 것도 있다. 비제도적인 것이라고 벽이 낮다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편견은 비제도적인 것이지만, 매우 강력한 차별을 만들어낸다.

남성중심적 사회에서 여성은 안정적인 직장을 가질 확률이 낮다. 예컨대, 비정규직의 70%는 여성이다. 여성은 교육받을 기회, 취업의 기회, 승진의 기회 등에서 차별받고 있다. 여성의 입장에서 학교는 매우 안정적인 직장일 뿐 아니라, 교사는 사회적으로도 인정받는 직업이다.(그러나 남성의 경우 취업의 기회가 더 넓으므로 이런 장점은 줄어든다.) 따라서 교사가 되려는 여성이 더욱 많을 뿐더러, 학력 역시 더욱 높다. 여성들은 물러설 곳이 없기 때문에 교사와 공무원 등 공개채용시험에 크게 의존한다. 이런 직업은 안정성이 높기 때문에 더욱 인기가 좋다.

여초교사는 남성중심적 사회가 만들어낸 결과물이지, 원인이 아니다. 여초교사 문제를 남성쿼터제로 풀려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여초교사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고자 한다면, 사회를 보다 평등하게 만들어 나가야 한다. 여성도 보다 안정적이고, 보다 성취감 있으며, 자신의 적성을 살릴 수 있는 직업을 가질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쿼터제는 대안이 아니다.

사실 필자는 여초현상이 문제가 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학교에서 물리력이 필요한 대부분의 일은 여교사도 가능하다.(필자는 현장교사이다.) 이를 문제삼으면서 성별쿼터제 도입을 주장하는 세력은 사실 다른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왜 이들 세력은 국회의원, 장관, 도지사, 도의회 의원, 교장 등에서 여성쿼터제 도입을 강력하게 주장하지 않을까? 이들 대부분은 이미 남성에 의해 전유물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필자는 교사 성별쿼터제 도입 주장은 진지한 사회성찰이 결여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사회에서 돌봄에 대한 가치를 다시 한 번 환기시키고, 이 사회가  보다 성평등하게 재편된다면 쿼터제는 필요없다. 쿼터제 도입에 앞서 이런 논의를 제기하는 것이 필요한 것 아닐까?

 

 

[투데이] 2006년  새내기 맞이 특별호(통권 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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