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08/11/10 13:23
Filed Under 손가락 수다방

- ‘아내가 결혼했다’와 ‘미쓰 홍당무’-

 

비수기라는 가을 극장가에 대조적인 두 여성의 활약(?)이 눈부시다. 비독점적 다자간 연애에서 더 나아가 비독점적 다자간 결혼을 눈앞에 보여 화제가 되고 있는 ‘아내가 결혼했다’의 주인아(손예진 분)와 신인 여성 감독의 참신한 데뷔작이자 공효진 최고의 연기를 유감없이 선보인 ‘미쓰 홍당무’의 누구에게도 관심 받지 못하는 왕따 양미숙이 그 두 주인공이다.

 

먼저, 주인아. 그녀는 예쁘다. 자신의 사랑과 감정에도 솔직하고 당당히 요구하기도 한다. 그녀는 한국 드라마에서 전형적으로 남성의 역할이던 두 집 살림(?)을 한다. 주인아와 함께 살아가는 두 남자들은 서로를 싫어하기도 하지만 형님, 동생이라며 익숙한 드라마의 한 장면을 연출한다. 여자 입장에서 남자들만 하던 두 집 살림을 여성이 한다는 사실은 한편 통쾌한 설정이었다. 비독점적 다자간 결혼이라는 어려운 말이 붙어서 그렇지 그리 새로운 현상도 아닌 것을 남녀의 역할을 바꾼다는 의미에서 신선했다.

 

인아는 예쁘다. 게다가 애교도 넘치고 예쁜 눈웃음을 가졌다. 첫째 남편이 삐져 있는 동안 요리도 하고, 청소도 하고 빨래도 한다. 평상시 직장에서는 일을 잘 하고 똑똑하며 남자들과 어울려 일을 할 줄도 알고 돈도 잘 버는 전문직이다. 게다가 양쪽 시댁에까지 잘한다. 평일에는 회사에서 밤 새가며 열심히 일하고 주말에는 첫째 남편 마음 풀어주려고 요리에, 청소, 빨래까지 마다 않는다. 영화에 나오지는 않지만 평일 저녁에는 둘째 남편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 또 집안일을 챙기고 남편을 즐겁게 해주었을 것이다.

 

시댁에서도 생글생글 웃어가며 제사와 같은 집안 대소사에서 굳은 일을 해 낸다. 이러니 양가 시댁 식구들도 모두 인아를 좋아한다. 거기다가 여자들은 무조건 싫어하고 남자들은 무조건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진(?) 축구의 열혈 마니아이기도 하다. 게다가 인아는 섹스도 잘 한다. 남자들이 홀랑 넘어갈 지경의 섹스를 선보이는 그녀는 남자들의 성적 판타지까지 채워줄 줄 아는 여자이다. 게다가 서열(?)상 위인 첫째 남편을 존중하여 둘째 남편과 섹스를 할 때는 피임도 철저하게 해서 태어난 아이의 생물학적 아버지가 누군지 명확하게 알 수 있게 배려(?)까지 한다. 도대체 뭐 하나가 부족한 게 없다. 남자들의 입장에서 그녀는 정말 ‘완벽한’ 여자이다.

 

다음으로 양미숙. 왕따로서의 존재감이 확실한 그녀이다. 고등학교 시절 존재감이 너무 없어 친구들이 찾지도 않던 그때, 안티 전략으로 존재감을 각인 시키는 방법을 깨닫는 한편 안면 홍조증이 생겼다. 사람들은 다 그녀를 싫어한다. 못 생겼고 상황 판단 못 하고 눈치 없다. 그녀는 같은 러시아어 교사인 예쁜 후배 여선생에게 밀려 고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전환배치(?) 당하고 전공도 아닌 영어 교사를 하게 된다. 아침에 영어 학원 다니고, 학교 와서 애들한테 무시당하면서 수업하고, 수업 끝나고 쫓아다니는 남자 선생 와이프의 벨리 댄스 학원가고 밤에는 사랑을 쟁취하기 위한 그녀만의 작업(?)으로 잠 잘 틈이 없다.

 

얼굴 못 생기고 능력 없고 눈치도 없고, 심지어 섹스 경험도 없는 그녀는 (그녀만의 착각이기는 했지만) 좋아하던 학교 선생한테는 성폭력을 당하고 다니던 병원의 피부과 의사한테는 버림받는다. 결국 그녀가 희망을 발견한건 학교에서 왕따 당하고 있던 학생과의 연대이며 쏟아지는 쓰레기와 밀가루를 폭죽으로 생각하는 현실도피에서였다.

 

영화를 보면서 너무나 완벽해 보이는 인아의 삶이 참 고달파 보였고 심지어 욕이 나올 지경의 남성 중심성이 느껴졌다. 인아는 평일날 일하고 두 집 남편 챙기고 틈틈이 시댁도 챙기고 일도 하는 그녀는 도대체 언제 쉬는 걸까? 지치고 힘들 때 친구가 필요할 때 그녀는 어떻게 그 스트레스를 풀었던 걸까?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는 남자친구에게 ‘난 내거야’라고 이야기 할 줄은 알지만 그녀는 자신의 무엇을 ‘자신의 것’이라고 이야기한 것일까? 남성들의 완벽한 판타지. 영화가 끝나고 내려오는 길 내 뒤의 두 여학생들은 ‘결국 손예진이니까 가능하다는 거 아니야?’라고 그들끼리 이야기한다. 글쎄 손예진이니까 가능한가 싶기도 했지만 사실 슈퍼우먼 ‘주인아’이기 때문에 그나마 설득력이 있는 영화가 된 것은 아닐까? 그리고 결국 못 생긴 ‘양미숙’은 그러니까 그냥 그런 코미디의 소재로 끝날 수 있는 것 아닐까?

 

그나마 영화적으로 괜찮은 것은 남성적 판타지로 가득 차 있는 ‘아내가 결혼했다’보다는 역설적으로 그런 현실을 위트 있게 보여주고 연대를 통한 가능성과 성폭력범 남편을 혼내고 미숙의 갈 길을 잡아 줄 수 있는 여성이 나오는 ‘미쓰 홍당무’였다. 구체적으로 설명은 못하겠지만 ‘아내가 결혼했다’를 보고 나니 모래가 입 안 한 가득 있는 느낌이었지만, ‘미쓰 홍당무’는 마음 한편이 싸 하니 아리기는 하지만 비교적 상쾌한 느낌이 있었다고나 할까?

 

영화는 영화대로 재미있게 즐기면 그만인 매체 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결국, 여성은 예쁘건 안 예쁘건 원하는 데로 살기 힘든 세상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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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10 13:23 2008/11/10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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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흐린날 2008/11/21 03: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 도시의 영화관까지 섭렵하셨군요~ 하하하
    어여 D시에서 술 한잔 해얄텐데,,, 참... 해가 저물고 있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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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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