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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대통령님~, 이것 좀 해 주세욧!” 청와대 청원게시판은 ‘소통 놀이터’

등록 :2018-02-15 09:38수정 :2018-02-15 09:58

 

지난해 8월 청와대 누리집 국민청원 게시판 개설
2월 중순 현재 11만7000여건…하루 평균 660여건 쏟아져
눈물겨운 청원에서부터 애교 섞인 제안까지
정치·경제·사회 등 각 분야 현안 의견 봇물
##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한 바에 따라 국가기관에 문서로 청원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청원에 대하여 심사할 의무를 진다.(헌법 제26조 1항과 2항)

 

## ‘국회의원 급여 최저 시급으로 주세요’ ‘시댁 호칭 개선 촉구 성평등(아가씨, 도련님) 국민청원’ ‘청와대에서 도시락 이용해 주세요’ ‘개성공단 재개해 주세요’….(청와대 누리집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청원 제목들)

 

 

이번 설 연휴엔, 세배 마치고 온 가족이 둘러앉아 ‘국민청원’을 화제로 삼는다 해도 어색하지 않겠다. 부모도 자식들도, 며느리도 조카도, ‘꼰대’들도 ‘초딩’들도 국민의 권리 ‘청원권’을 행사하는 시대다. 그만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이 뜨겁다는 얘기다.

 

청와대 누리집 ‘국민소통 광장’의 ‘국민청원 및 제안’ 게시판에는 24시간 끊임없이, ‘나라님’에게 들이대며 직언하는 청원이 쏟아져 들어온다. ‘청원할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면서, 나라에는 ‘심사할 의무’를 제대로 지라는 국민들의 요구다. 때로는 후련하고, 때로는 안타까운, 그리고 가끔은 씁쓸하기도 한 사연들이 담겼다.

 

한 편의점 알바생은 ‘오천원과 오만원(권) 색깔 구분시켜 주세요’ 제목의 청원을 올렸다. 지폐 색깔이 비슷해 5000원짜리를 받고 4만5000원을 거스름돈으로 내준 뒤 채워 넣어야 했던 경험을 적었다. 북한이 핵무기를 가진 상태로 남북이 통일을 이뤄야 유리하다는, ‘핵무기가 필요하다’ 청원, ‘동성결혼 합법화’ 청원, ‘정치인들은 국민모독죄를 만들라’는 청원도 있다. 평창겨울올림픽 개막식을 앞두고는 ‘아베 옆자리에 소녀상을~’, ‘아베 옆에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좌석을’ 요구하는 청원들이 쏟아져 눈길을 끌었다.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지난해 8월19일 개설 이래, 무려 11만7000여건의 청원이 올라와 있다(2월14일 현재). 국민들이 정부를 향해 하루 평균 660여건의 청원을 쏟아낸 셈이다. 지난해 말부터는 하루 1000여건을 훌쩍 넘기는 날이 대부분일 정도로 열기가 뜨겁다. 특히 새 쟁점이 국민 관심사로 뜨거나, 공분을 자아내는 사건·사고가 생길 때 청원이 봇물을 이루면서 게시판이 달아오른다. 같은 사안의 청원이 며칠 새 수백건에 이를 때도 있다.

 

게시판에 오른 청원이 한 달간 20만명 이상의 추천을 받을 경우, 청와대는 추천 마감일로부터 한 달 안에 해당 사안에 대한 답변을 하게 된다. 2월14일 현재까지 20만명 이상이 추천한 청원은 모두 13건이다. 이 가운데 ‘청소년보호법 폐지’ 청원과 ‘조두순 출소 반대’ 청원, ‘가상화폐 규제 반대’ 청원 등 7건에 대해선 답변이 나왔고, ‘나경원 의원 평창올림픽 위원직 파면’ 청원, ‘국회의원 급여 최저 시급 책정’ 청원 등 6건은 답변 대기 중이다.

 

지금까지 가장 많이 추천받은 청원은 ‘조두순 출소 반대’ 청원이다. 무려 61만5354명의 국민이 동의했다. 가장 빨리 20만명을 돌파한 건 ‘정형식 판사 판결 특별감사’ 청원이다. 지난 2월5일 올라온 지 사흘 만에 20만명을 넘어섰고 계속 추천자가 늘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청원 중 추천자가 가장 많은 것은 ‘나경원 의원 평창올림픽 위원직 파면’(14일 현재 35만여명) 청원이다.

 

이렇게 많은 국민의 의견·주장들이 시시각각 이 나라 정부를 향해 쏟아졌던 적이 있을까. 그것도 아무 제약 없이, 즉각적으로, 본인이 쓰고 요구하는 날것 그대로 고스란히 노출돼 다수의 국민과 실시간으로 공유된 적이 있을까. 지금 우리는 초유의 ‘국민청원 전성시대’를 맞고 있는 셈이다.

 

실효성 측면에서 보자면 ‘국민청원’을 통하더라도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국민의 요구대로 당장 명쾌하게 답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국민들의 호응은 뜨겁다. 부담 없이 손쉽게 자신의 의견을 정부에 전할 수 있고, 추천인 20만명이면 정부의 책임 있는 답변을 보장받으며, 답변을 못 받더라도 여론화에 일정한 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청와대 누리집은 이미 국민 토론방으로 떠올랐다. 진지하게 정책 대안을 제시하거나 잘못된 점을 바로잡아달라는 청원이 대부분이지만, 애교 섞인 개인 소망이나 장난기 서린 청원 글도 적지 않다. 편견과 욕설로 범벅이 된 비방글도 버젓이 올라온다.

 

청와대 누리집이 세상 돌아가는 일을 도마에 올려놓고, 지지고 볶고 싸우며 스트레스 풀고 노는, 일종의 ‘국민 소통 놀이터’로 자리잡은 셈이다. 이는 지난 정부들이 얼마나 대국민 소통에 소홀히 해왔는지, 국민들이 응답 없는 정부에 얼마나 스트레스 받고 지치고 응어리져왔는지를 드러내는 증거이기도 하다.

 

평소 정부 현안에 대해 할 말 많았거나, 뜨거운 현안이 뭔지 알고 싶은 분이라면 오늘 당장이라도 ‘국민청원’ 게시판에 들어가볼 만하다. 뒤적여보면 추천하고 싶은 청원도 많고, 눈물겨운 청원도 많고, 미소 짓게 하는 청원도 많다.

 

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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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국민청원 게시판에 글 올릴 때는 어떻게 써야 좀더 효과적일까. 추천 많이 받은 청원들을 살펴보니 대체로 다음과 같은 공통점이 있었다. 무엇보다 다수가 격하게 공감할 수 있는 사안이 주목도가 높다. 요점을 간추리고 사례를 들어 설득력 있게 써야 한다. 청원 제목은 핵심을 한눈에 알 수 있게 되도록 짧게 쓴다. 비방·비속어·욕설은 쓰지 않는다.

 

한번 올린 청원은 수정할 수 없다는 것도 알아둬야 한다. 최초 청원 내용이 나중에 엉뚱하게 바뀌는 일을 막기 위한 장치다.

 

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국민청원, 그것이 알고 싶다

 

투명성은 정부 몫이요, 궁금증은 국민 몫이다. 물으면 응답하는 게 국민 소통이다. 의견을 내면 살펴보고 상황을 설명해줘야 한다. 아픈 데 매만져주고, 가려운 데 긁어주는 것까지 포함된다. 국민청원 열풍이 불면서, 시시각각 새 청원이 쏟아지는 게시판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방문자가 하루 평균 20만~30만명에 이른다. 청와대 누리집을 관장하는 정혜승 뉴미디어 비서관을 통해 ‘국민청원’과 관련한 궁금증을 풀어봤다.

 

 

△ ‘국민청원’ 게시판을 만든 계기는?

 

세월호 참사 뒤 ‘세월호 특별법’ 입법 청원에 600만명의 국민이 참여했다. 그러나 당시 청와대에선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국민이 뜻을 모으면 정부가 관심을 갖고 응답하는 게 도리 아닌가. 응답하는 정부가 되자, 이런 고민을 담아 시작했다. 기존 여러 소통 통로가 있으나, 소셜미디어 시대인 만큼 국민과 직접 소통하는 공간을 만드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 답변 조건을 ‘20만명 이상 추천’으로 정한 이유는?

 

게시판 운영 초기엔, 추천인 수를 정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 호응을 받을지 막연했다. 그러다 “청원 답변 기준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대통령 말씀이 있었다. 검토 끝에 20만명 이상 추천이면 ‘국민적 관심사’라고 판단했다. 미국 백악관은 추천인 10만명 이상, 핀란드는 5만명 이상이면 답변에 나선다. 처음엔 20만명이 너무 높은 게 아닌가 생각했는데, 반응이 이렇게 폭발적일 줄 몰랐다. 5개월 남짓 만에 20만명 넘은 청원이 벌써 12건이다. 업무가 버거울 지경이다.

 

 

△ 대통령도 게시판을 직접 챙겨 보나?

 

규칙적으로 게시판을 챙기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참모회의 때 가끔 ‘이러이러한 청원도 올라왔더라’ 하는 것으로 보아 수시로 확인하는 건 확실하다.

 

 

△ 답변은 어떤 과정을 거쳐 나오나?

 

추천이 크게 늘면, 관련 사안에 대해 관심을 갖고 살펴본다. 20만명이 넘으면 청원 마감 한 달 안에 답변을 한다. 답변은 분야별로 각 부처 장관, 대통령 수석비서관, 특별보좌관 등이 맡는다. 답변자는 상황을 파악해 어떤 논의가 필요한지, 해결이 가능한지, 어떤 답변이 가능한지 검토한다. ‘권역외상센터 추가 지원’ 청원의 경우 보건복지부 장관이 이국종 교수를 장시간 면담한 뒤 답변에 나섰다. 답변은 누리집·블로그·페이스북·유튜브·트위터 등을 통해 공개한다. 영상을 편집해 올리기도 하지만, 사안에 따라 월~금요일에 진행하는 누리집 라이브 방송 ‘11시50분 청와대입니다’를 통해 생방송으로 공개하기도 한다.

 

 

△ 실제 문제 해결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청원 내용을 즉시 해결하거나 요청을 다 들어드리긴 어려운 게 사실이다. 다만, 국민의 관심사에 대해 정부가 어떻게 보고 있는지 알리고, 어떤 방식으로 해결이 가능한지 실태를 알아보아, 할 수 있는 것은 하고 안 되는 것은 안 된다고 진정성 있는 답을 하겠다는 취지다.

 

 

△ 매일 1000건이 훌쩍 넘는데 다 검토하나?

 

일단 올라오는 것들은 다 체크한다. 특별한 내용이 없는 것들도 많아, 요즘엔 추천인 수가 크게 늘어나는 것들 위주로 관심을 갖고 들여다본다.

 

 

△ 비방·욕설이 섞인 것들도 있던데?

 

일부 사적인 일에 대한 청원이나 일방적 비방이 섞인 내용도 있다. 그런 것들도 웬만하면 그대로 둔다는 게 원칙이다. 그런 글에는 추천이 달리지 않는다.

 

 

△ 운영 방식 개편 계획은?

 

이제 6개월도 안 됐다. 고칠 점이 드러나면 고쳐나간다. 수십, 수백건씩 올라오는 비슷한 내용의 청원을 한데 묶어 보여주면 좋겠다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특정 청원을 따로 묶어 돋보이게 하는 것도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해 그대로 두고 있다.

 

 

■국민청원

 

청원(請願)이란, 국민이 법에 따라 손해의 구제, 법률·명령·규칙의 개정 및 개폐, 공무원 파면 따위를 청구하는 일을 말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26조에 국민의 청원권이 명시돼 있다. 서양에서는 전제군주 시대에 국민 구제 방법으로 청원제도가 처음 등장했다. 억울한 일을 당한 백성이 나라에 직접 호소하는 방법으로, 우리나라엔 조선 태종 때부터 실시한 신문고(申聞鼓) 제도가 있었다.

 

 

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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