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 직원이 대선을 앞둔 당시 박근혜 후보에 대한 비방글을 인터넷에 올렸다며 한 시민의 가족을 찾아와 주의할 것을 요구한 것으로 확인돼 국정원의 선거개입 의혹이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 측은 자제를 요청하기 위한 것이었다면서 방문 사실을 인정했다. 당사자는 민간인 사찰에 해당된다며 사실관계를 요청하는 공개질의서를 제출하고 민형사 소송을 하겠다고 나서 논란이 예상된다.

황모(29)씨는 지난 3월 중순 경 아버지로부터 국정원 직원이 찾아왔다는 얘기를 들었다. 황씨에 따르면 신분을 밝히지 않고 '국정원 직원'이라는 사람이라는 부친이 대표로 있는 사무실을 찾아와 황씨의 생활상을 물었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을 비방한 내용의 글을 번역해 외국 사이트에 올렸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황씨가 외국 사이트에 올렸다는 글은 조웅 목사가 인터넷 방송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을 비방한 내용이다.

황씨는 지난 9일 공개질의서를 통해 "국정원에서 제기한 내용 중 외국 사이트 부분은 저와 관련도 없으려니와 또한 만약에 국정원이 정당했다면 저에게 통보 및 사전에 연락을 취했으리라 생각되지만 이는 명백한 불법 민간인 사찰로 규정된다"고 주장했다.

조웅 목사가 박근혜 대통령을 비방하는 내용을 영어로 번역하고 외국 사이트에 올린 곳은 황씨가 속했었던 카페가 아니라 '박근혜 탄핵 위한 안티카페'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 카페는 "미국 10위안에 드는 인터넷 신문 opendnews가 조웅 목사님의 폭로와 불법체포를 보도했다"며 영문 기사와 한국어로 해석된 글을 공지사항에 올려놨다.

황씨는 "시간도 없고, 영어 번역도 하지 못하는데 무슨 박근혜 대통령 비방 내용을 외국사이트에 올릴 수 있겠느냐"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황씨는 지난해까지 '유신망령잔재청산을 위한 국민투쟁본부'라는 카폐의 운영자로 있었지만 현재 관련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

황씨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도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니까 호통을 치면서 요즘 뭐하고 다니냐면서 국정원 직원이 주의를 줬다고 말해 가정불화까지 생겼다"고 말했다.

황씨는 "정당한 사유라면 방문자 당사자 본인이 명함이나 신분을 밝혔으리라 생각되지만 이를 밝히지도 않았다"며 "방문 자체가 국정원법 위반에 속한다"고 강조했다.

미디어오늘 취재 결과 실제 국정원 측이 황씨의 아버지를 찾아간 것이 확인됐다.

국정원 관계자는 14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트위터상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비방이 지나친 부분이 많아서 강압적으로 압력을 행사하는 차원이 아니라 경찰 입회하에 정중하게 부친을 통해서 이런 사정을 설명하고 자제해달라고 협조요청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국정원은 황씨가 지난 총선과 대선 당시부터 900번에 걸쳐 상습적으로 당시 박근혜 후보를 비방한 것으로 파악했다고 전했다.


   
▲ 미디어오늘 자료사진
 

 

국정원 관계자는 황씨가 올린 트위터 내용에 대해 당시 박근혜 후보 암살을 암시하거나 박근혜 후보에 대해 비방하는 내용을 소개하면서 "당장 누가 보더라도 상당히 지나치다 싶은 감이 있었고, 저희로서는 전혀 인권을 다치지 않는 선에서 아버지를 통해 말씀을 드린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다른 국정원 관계자는 "황씨가 '누군가가 박근혜만 암살시켜준다면 좋겠다. 내가 암살해버리고 싶다'해서 경호문제 때문에 관심을 갖게 됐고 오원춘은 왜 엉뚱한 사람만 죽이냐는 등 박근혜 후보에 대해 입에 담기 힘들 정도의 비방이 많았다"고 전했다.

국정원 관계자가 밝힌 황씨의 트위터 내용은 비방의 정도가 심한 면이 있지만 공식 경찰 수사가 아니라 국정원이 나서야 하는지 의문이 남는다. 또한 황씨가 올린 트위터 내용은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시절 있었던 일이라는 점에서 국정원이 왜 박근혜 후보를 비방하는 내용의 트위터를 수사했는지 등 선거 개입 의혹이 일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은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박근혜 후보를 비방하는 트윗 중 2012년 5월과 2012년 9월에 올린 내용을 소개했다.

황씨는 "국정원이 간첩수사를 할 수 있지만 수사 범위를 법적으로 넘어선 것"이라면서 "암살 선동이라던지 하는 내용도 실현가능성이 없고 박근혜 후보를 싫어하는 저의 심정을 쓴 것인데 경찰이 공식 수사한 것도 아니고 왜 국정원이 나서느냐"라고 비판했다.

황씨는 "정보기관이 할 짓이 그렇게 없나. 내 개인적인 신상정보까지 알아봤다고 하더라"면서 “형사적으로 국정원법에 어긋난다는 부분에 대해 유죄를 입증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황씨는 이번 행위는 국정원법 제3조와 제9조, 제19조 위반이라면서 "제가 언급한 내용이 사실일 경우 국정원은 명백한 실정법 위반이자 국민에 대한 기본권 침해를 저지름으로써 저는 국정원에 대해 형사적 책임과 민사적 책임 모두를 묻고자 한다"며 민형사상 소송 계획을 밝혔다.

이재화 변호사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황씨의 혐의가 대공수사와 관련한 것도 아니고 국정원 조직 차원에서 총선, 대선 당시 글을 문제 삼아 자제를 요청한 것은 박근혜 후보에 대한 글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사람들을 겁주게 하려는 공작적인 냄새가 난다"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총선과 대선 때부터 인터넷과 SNS상 조직적으로 개입해 비판 내용을 못쓰게 하거나 여론을 조작하는 연장선상으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면서 정치개입을 금지하는 국정원법 위반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한편, 황씨의 아버지는 국정원 직원 방문 사실 여부에 대해 계속 말을 바꿨지만 국정원 측이 관련 사실을 시인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압박을 받은 게 아니냐는 의혹도 나올 것으로 보인다.

황씨의 아버지는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세번에 걸쳐 말을 바꾸면서 국정원 직원의 민간인 사찰 의혹을 부인해왔다. 그는 '국정원 직원의 방문이 사찰이라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국정원 직원이 찾아온 사실에 대해서는 부인하지 않았지만 질문이 계속되자 국정원 아닌 "국가기관에 있는 지인"이 찾아왔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아는 분이 아드님이 이런 활동을 하고 있는데 아느냐고 해서 설명을 해줬다"면서 "고향 선후배로 있는 국가기관에 있는 분이다. 아들의 생활하는 모습을 설명해줬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찰을 한다더니 압박을 가했다더니 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소리다. 사찰이라고 하면 당사자가 느껴야 한다. 그런 말을 함부로 쓰면 되느냐. 무책임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결국 그는 재차 '국정원 직원이라는 사람이 방문했느냐'고 확인하는 질문에 "민간인 사찰 부분은 아들이 지어낸 것이고 제가 모두 꾸며낸 이야기"라고 주장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