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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 후 첫 위기 맞은 문재인 정권

중단 없는 개혁 위해 명분 잃지 말아야


김민하 / 저술가 | 승인 2018.04.18 08:08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이후 최대 위기(물론 이는 상대적인 것이다)를 맞은 것 같다. 김기식 금융감독원장 낙마에 이은 ‘드루킹’ 사태 때문이다. 보수야당과 보수언론이 거의 사활을 걸고 나서면서 여당의 지방선거 전략도 흔들리고 있다. 당장 지지율 붕괴 등이 확인되는 상황은 아니지만 앞으로 무슨 얘기가 어떻게 더 나올지 모른다는 점에서 불안감은 더해가고 있는 것 같다.

임기 내내 단 한 번의 위기도 겪지 않는 정권은 없다. 특히 정권 초반의 위기는 사건 그 자체보다도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이후 상황을 좌우한다. 그런데 지금 문재인 정권의 대응은 명분에서 밀리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기가 어렵다.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은 17일 사퇴하면서 남긴 글에서 다소 억울한 마음을 내비쳤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의원 모임인 더좋은미래에 기금을 출연한 것에 대해 선거법 위반이라는 판단을 내린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거다. 김기식 전 금감원장이 선거 출마를 사실상 포기한 비례대표 국회의원의 신분이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국회 내의 눈으로 보면 그런 마음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전문가들의 견해도 갈린다. 중앙선거관리위의 결론도 격론 끝에 나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정치는 결국 명분의 싸움이라는 점에서 굳이 이런 항변을 할 필요가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어쨌든 중앙선거관리위의 판단은 보수야당이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의 요구에 따른 것이다. 자신이 기대한 결론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런 태도를 보이는 것은 정치적으로 좋지 않은 메시지가 될 수 있다. 현재 중앙선거관리위의 구성을 문제 삼는 더불어민주당 지도부 일부의 발언에도 명분이 실리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가장 곤란해진 사람 중 하나는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다. 중앙선거관리위가 김기식 전 금감원장의 과거 행위에 위법 소지가 있다는 판단을 분명히 내렸기 때문에 인사검증의 책임자 중 한명인 민정수석 책임론이 제기되는 것은 정해진 수순이다. 그런데 청와대는 중앙선거관리위가 판단한 대목이 애초 민정수석실의 검증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설명을 내놓으며 조국 민정수석을 방어하고 있다. 정해진 대목에 대해서만 절차를 거치는 것으로 책임을 다할 수 있다면 굳이 민정수석실이 인사검증 업무를 담당할 필요가 있겠는가.

문재인 대통령이 16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ㆍ보좌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비슷한 문제가 ‘드루킹 사건’에서도 드러난다.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로 판단해볼 때 이 사건의 본질은 상식과 동떨어진 행태를 보이는 한 선거 브로커와 그 추종자들이 일으킨 소동에 가까운 걸로 보인다. 청와대나 더불어민주당 관계자와 이들 사이에 ‘조직적 연결고리’가 존재하지 않는 한 보수언론이 어떤 주변적인 얘기를 갖다 붙여도 사건의 성격은 여기서 벗어나지 않는다.

문제는 김경수 의원이 드루킹 일파들의 인사 청탁 내용을 청와대에 전달한 사실을 인정하면서 보수세력이 ‘조직적 연결고리’의 존재 가능성을 제기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졌다는 거다. 대통령 선거라는, 온갖 기상천외한 일이 다 벌어지는 특수한 상황에서 드루킹들과 같은 사례에 적절히 대응하는 게 쉽지 않은 건 사실이다. 그러나 선거 이후 그들의 요구를 청와대에 전달한 것은 안이한 판단이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논공행상’과 관련한 모든 논란을 피해 국외로 가야 했던 양정철 전 비서관의 사례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김경수 의원과 청와대가 자신들도 피해자라는 논리로 일관하는 것 역시 지금 상황을 지나치게 가볍게 보는 것의 반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보수야당은 검찰과 경찰이 이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가능성이 없다는 점을 들어 특검을 요구하고 있다. 물론 어떤 브로커들이 일으킨 소동에 특검까지 거론하는 것은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쓰는 격이다. 문제는 수사기관이 지금 상황에서 김경수 의원 문제를 아무런 정치적 고려 없이 수사하는 건 쉽지 않은 게 사실이란 거다. 김경수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잘 알려져 있다. 거기에 문재인 정권은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도입이라는 수사기관의 이해관계와 직결되는 사안을 손 안에 쥐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야당이 특검을 주장하는 것에는 명분이 없지 않다.

보수세력은 이미 계산을 끝낸 것 같다. 색깔론과 ‘겉과 속이 다른 진보’라는 프레임에 정권의 정통성에 대한 문제제기를 더하기로 했다. 조선일보는 18일자 2면에 드루킹들의 댓글 조작이 대선 기간에도 이뤄졌을 가능성이 있으며 그 주요 목표물은 자신이었다는 안철수 전 의원의 주장을 반영한 기사를 실었다. 일부 보수세력은 지난 대선에서 안철수 전 의원을 지지해 문재인 대통령의 탄생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을 편 바 있다. 실제 당시 안철수 후보의 여론조사 지지율은 한때 문재인 대통령을 눌렀고 조선일보 등 보수언론은 이를 매우 비중있게 다룬 바 있다.

바른미래당 안철수 서울시장 예비후보가 15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문발동의 한 출판사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안철수 전 의원은 이번 사태에 매우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중이다. 의혹이 제기된 당일 드루킹들의 ‘아지트’로 지목된 느릅나무 출판사를 직접 찾아가는가 하면 17일에는 “드루킹은 이미 특정한 인물의 이름이 아니라 특정 세력에 의해 오랫동안 이어져 온 조직 선거범죄 그 자체”라며 “그런 면에서 진짜 드루킹은 아직 구속되지 않았다. 특검과 국정조사를 통해 진짜 드루킹을 단죄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드루킹들과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 캠프 사이에 직접적이고 조직적인 연관관계가 있다고 단정해서 주장한 것이다.

대선 당시 안철수 후보를 지지했던 이들은 안철수 후보가 TV토론에서 문재인 후보를 향해 “제가 MB아바타 입니까”라고 물은 일을 가장 문제적인 장면이었던 것으로 회고한다. 그런데 이제 안철수 전 의원이 드루킹들의 존재를 당시 상황과 연결하면서, 문제의 장면은 안철수 전 의원이 승리를 억울하게 빼앗긴 걸 상징하는 것으로 포장될 수 있게 됐다. 여기에 ‘박원순 양보론’까지 겹쳐 놓으면 선거 구도가 어떻게 변화할지 예측할 수 없다.

안철수 전 의원이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호각을 이루게 되면 보수언론은 일제히 나서서 자유한국당 후보인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의 사퇴를 요구할 것이다. “일단 박원순 또는 문재인(아직 경선 결과를 예측할 수 없으므로)은 막고 보자”는 것이다. 만에 하나 안철수 전 의원이 서울시장에 당선되면 언론은 그가 차기 대선후보로 화려하게 부활했다는 평가를 쏟아낼 것이다.

물론 아직 이런 얘기는 뜬구름 잡는 수준에서나 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어쨌든 상대가 이런 ‘꼼수’로 접근할 경우 가장 좋은 대응은 ‘정수’라는 거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 찬조연설에 나섰던 이세돌 9단도 그렇게 말했다. 개혁에 물러섬이 없어야 하지만 동시에 명분을 잃어서도 안 된다. 그런 상황을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열쇠는 문재인 대통령 본인만이 쥐고 있다.

김민하 / 저술가  webmaster@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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