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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드드득~’ “쉿! 큰귀박쥐가 나타났어”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8/05/28 11:59
  • 수정일
    2018/05/28 11:59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조홍섭 2018. 05. 28
조회수 260 추천수 0
 
‘바이오블리츠 2018’ 르포
 
24시간 생물종 탐사·기록 위해
대전 만인산에 470명 모였다
대도시 근처인데도 1368종 확인 성과
 
올해 처음 포함된 박쥐 조사에서
큰귀박쥐, 물윗수염박쥐 등 6종 발견
‘미기록종’ 거미 2종 확인하고
교란종 ‘단풍잎돼지풀’엔 한숨도

 

메인.jpg» 대전 만인산에서 26~27일 생물다양성 탐사 대작전(바이오블리츠)이 열린 가운데 26일 참가자들이 이승규 국립수목원 곤충분류연구실 박사로부터 알코올이 든 곤충 채집병에 관한 설명을 듣고 있다.  대전/조홍섭 기자
 
“있다 있어!” “뭐 잡혔어?” “20㎑?”
 
26일 밤 대전 만인산 정상(해발 537m) 부근에서 태블릿피시와 휴대폰 모양의 초음파 감지기를 들여다보면서 박쥐 조사원 두 명이 알 수 없는 대화를 나누었다. 지직거리는 전파 소음 사이에 두드드득~ 하는 특이한 소리가 들렸다. “사람 귀에 안 들리는 박쥐의 초음파 신호를 가청범위 소리로 변환하는 장치로 유럽 등에선 박쥐 동호인 사이에 널리 쓰인다”고 김선숙 국립생태원 박사가 설명했다. “박쥐 종마다 초음파의 주파수와 파형이 달라, 감지한 음파를 녹음하면 50m 거리 안에 어떤 종의 박쥐가 사는지 알 수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m2_Gilles San Martin-Myotis_daubentoni01.jpg» 큰 귀와 긴 꼬리를 지닌 큰귀박쥐.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박쥐 조사는 국립수목원 등의 주관으로 26~27일 만인산에서 열린 ‘바이오블리츠 코리아 2018’에 처음 포함됐다. 이날 확인한 큰귀박쥐는 큰 귀와 긴 꼬리를 지닌 특이한 모습에 몸무게가 20g이 넘는 대형 종으로 좀처럼 관찰되지 않는 희귀종이다. 김 박사는 “이 지역 조사가 처음이어서 한 종이라도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처음부터 큰귀박쥐가 나왔다”며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이날 조사에서는 이 밖에 연못 위를 날며 물벌레를 사냥하던 물윗수염박쥐, 집박쥐, 관박쥐 등이 확인됐다.
 
생물다양성 위기 느끼는 행사
 
m2-1.jpg» 전문가들이 사용하는 장비를 가지고 전문가와 함께 채집에 나서는 일반인 곤충 탐사대의 발길이 가볍다.
 
바이오블리츠(생물다양성 탐사 대작전)는 모든 생물 분류군 전문가와 일반인이 함께 특정 지역의 생물종을 24시간 동안 찾아 목록을 만드는 과학참여 활동이다. 생물다양성 보전의 시급성을 일반인과 미래 세대가 느끼고 배우며, 전문가들은 분야를 건너뛰어 정보를 공유하는 기회이다.
 
지렁이 조사도 이번에 처음 이뤄졌다. 만인산에서는 적어도 18종이 확인됐다. 조사에 나선 홍용 전북대 교수는 “이동능력이 떨어지는 지렁이는 고유종 비율이 높아 생물다양성의 중요한 척도”라며 “미기록종으로 추정되는 한 종을 채집했지만, 해부 등 정밀 검토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사팀은 보통 지렁이와 달리 몸 빛깔이 푸르스름하고 땅 위로 나오면 용수철처럼 몸을 꼬는 특이한 행동을 하는 똥지렁이를 채집하기도 했다.
 
거미 조사에서도 국내에서 보고되지 않은 미기록종이 2종 나왔다. 최용근 한국동굴생물연구소 박사는 “주차장 근처에서 잠깐 조사를 해 접시거미 종류의 미기록종을 찾았다”며 “워낙 거미에 관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m3.jpg» 대전의 깃대종인 이끼도롱뇽. 이상철 박사 제공
 
양서파충류 조사단은 하늘다람쥐, 감돌고기와 함께 대전의 깃대종인 이끼도롱뇽을 확인했다. 이상철 인천대 자연환경연구소 박사는 “아가미가 없어 육상생활을 하는 이끼도롱뇽은 거의 대부분은 아메리카대륙에 분포하고 한국에는 예외적으로 분포해 생물 지리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종”이라고 말했다. 조사팀은 등딱지 길이가 40㎝인, 방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대형 자라를 확인하기도 했다.
 
곤충 조사는 일반인 참가자에게도 가장 인기 있는 분야다. 등불로 유인하는 야간 조사도 한다. 이번 조사에서는 날씨도 화창했지만 찾은 곤충 종 수는 기대에 못 미쳤다. 이승규 국립수목원 박사는 “갑자기 더워진 날씨에 곤충이 활동을 꺼렸고, 봄에서 여름으로 바뀌는 철이어서 출현한 종이 많지 않았다”며 “보름달도 야간 조사에 방해요인이었다”고 말했다.
 
m4.jpg» 등불을 밝혀 곤충을 유인하는 야간채집 행사에서 참가자들이 채집한 곤충을 살펴보고 있다. 이날 자나방류가 많이 날아들었다.
 
반면 식물종은 산이 높지 않고 도시 인근이었는데도 예상 밖으로 다양해 600여종이 확인됐다. 김윤영 국립수목원 박사는 “기존에 연구가 부족했던 사초과 식물과 양치류를 집중 조사한 결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먹티재 부근에서는 비무장지대 인근에 많은 생태계 교란종인 단풍잎돼지풀이 숲 안쪽으로 번지고 있어 관리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행사에는 일반인 250여명, 전문가 144명 등 470여명이 참가했다. 특히, 전문가와 함께 조사를 진행할 정도의 능력을 지닌 아마추어 ‘고수’ 19명이 준전문가로 처음 참가했다. 양서파충류 준전문가로 참가한 김진규(14·인천 검암중 2)군은 “이끼도롱뇽과 자라를 찾아 보람이 있었다. 사진으로 보던 생물을 직접 관찰하고 전문가와 함께 조사해 뿌듯했다”고 말했다.
 
m5.jpg» 곤충 부스에서 준전문가들이 변봉규 한남대 교수와 함께 채집한 곤충을 분류하고 있다.
 
우리 옆에 많은 생물이 산다
 
학생과 일반인은 전문가와 함께 걸으며 조사를 한 뒤 저녁에는 전문가로부터 흥미로운 생물다양성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노승진 국립수목원 박사후연구원은 암컷만 날개가 없는 나방인 도롱이벌레 이야기로 과학에 관한 흥미를 북돋웠고, 김윤영 국립수목원 박사는 만인산에서 직접 채취한 먹을 수 있는 식물인 뱀딸기 잎, 참취, 더덕, 개갓냉이, 산차, 음나무 순 등을 아이들에게 시식하도록 하기도 했다.
 
m7.jpg» 만인산에서 채취한 산나물을 직접 먹어보는 참가자들. 생물다양성에 대한 다양한 체험과 소통을 나누는 자리였다.
 
초등학교 1학년과 4학년 자녀와 함께 일가족이 참가한 정상엽(서울·47)씨는 “전문가와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듣는 귀한 기회였다”고 말했다. 가족과 함께 참가한 윤선웅(12·경기 고양 저동초 6)군은 “평소 살아 있는 생물은 다 좋아했는데 생물학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굳혔다”고 말했다.
 
m6.jpg» 참가자들로부터 인기를 모은 페트병으로 어항 만들기 행사를 벌인 한국민물고기보존협회 회원들.
 
이번 만인산 바이오블리츠에서 24시간 동안 확인한 생물종은 모두 1368종으로 예상을 뛰어넘었다. 관속식물이 607종으로 가장 많았고, 곤충 514종, 거미 47종 등이 뒤를 이었다. 처음 조사한 지렁이는 19종이 나왔고 박쥐 6종이 추가되면서 포유류는 15종이 됐다. 지의류도 18종이 기록됐고 버섯도 33종이 나왔다. 
 
이유미 국립수목원장은 “대도시 근처 녹지에서 대관령이나 경기도 가평 수준의 생물다양성이 확인된 것은 사초과와 양치류 식물과 박쥐, 지렁이 등 이제까지 부족했던 분야의 조사가 새롭게 추가된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대전/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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