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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어새 집단이주 미스터리, 부엉이 피해 도시로 이사왔나

저어새 집단이주 미스터리, 부엉이 피해 도시로 이사왔나

 
남종영 2013. 04. 28
조회수 85추천수 0
 

지구상 1848마리 희귀새…4년 전 남동유수지에 둥지, 120마리 탄생
유도 수리부엉이, 각시섬 곰쥐 피해…새 둥지선 재갈매기와 갯벌 매립 위협

 

강재훈-인천 남동유수지 저어새12.jpg » 2009년 봄 이후 인천 남동유수지는 저어새의 안정적인 번식지로 발전했지만, 먹이터가 되는 주변 갯벌의 매립 계획으로 번식지가 유지될지는 미지수다. 올해에는 3월12일 저어새 두 마리가 발견된 이후 4월26일에는 저어새 123마리와 둥지 58개, 알을 품은 둥지 42개가 발견됐다. 사진=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저어새가 인천의 도심 한가운데 찾아온 것은 2009년 봄의 어느 날이었다. 부리(bill)가 스푼처럼 생겨서 영어 이름은 스푼빌(Black-faced Spoonbill)인데, 어떻게 보면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도도하게 생겼다. 지구에 1848마리밖에 남지 않은(2011년 국제동시조사) 희귀새다.
 

그날도 ‘환경과 생명을 지키는 교사모임’ 등 시민단체와 시민들은 인천 주변의 갯벌과 호수 등을 모니터링하고 있었다. 19일 저어새 보전·조사 모임인 ‘인천저어새네트워크’의 김보경씨가 그날을 떠올렸다.
 

“남동유수지 인공섬에 망원경을 대고 저어새를 관찰하는데, 누가 ‘어, 쟤가 지푸라기를 물고 가네’라고 중얼거리더군요. ‘저거 수상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설마 여기서 번식할까 했죠. 며칠 뒤 강화갯벌 탐조를 마치고 들렀는데, 이런! 새가 둥지를 만들고 앉아 있는 거예요. 사람들에게 전화를 돌려 벌벌 떨면서 외쳤죠. 저어새가 알을 품었다고!”
 

03415308_P_0.jpg » 인천 남동유수지의 인공섬에 둥지를 튼 저어새. 이곳을 찾은 첫 해인 2009년 8월의 모습이다. 사진=이종찬 기자

 

저어새가 번식한 남동유수지는 송도새도시와 인천 도심 사이에 있는 인공호수다. 원래 갯벌이던 땅을 공단으로 만들었는데, 바닷물이 찼을 때 침수를 막기 위해 물을 모았다가 바다로 나가게끔 유수지를 만든 것이다.
 

2009년 저어새가 번식을 시작한 이래 남동유수지의 지름 28미터의 볼품없는 인공섬은 ‘저어새의 산부인과’가 되었다. 큰 나무 한 그루도 없이 땅을 돋운 하나의 포인트에 지나지 않지만, 2009년 6마리, 2010년 53마리, 2011년 80마리, 2012년 120마리의 저어새가 이곳에서 출생신고를 했다.

 

이종찬_03415543_P_0.jpg » 갯벌 매립공사가 한창인 중장비 사이로 날아가는 저어새. 사진=이종찬 기자

 

이종찬_03415544_P_0.jpg » 인천 남동유수지에 저어새가 둥지를 틀 수 있었던 것은 부근에 좋은 먹이터가 있기 때문이었다. 사진=이종찬 기자

 

세계적인 희귀새인 저어새가 왜 시끄러운 대도시로 찾아와 알을 낳았을까? 미스터리다. 다만 이와 연관된 사건이 있다. 같은 해 한강 하구의 무인도인 유도에서 번식하던 저어새가 갑자기 사라진 ‘실종 사건’이 벌어졌다. 한국물새네트워크의 이기섭 박사가 말했다.

 

원래 한강 유도에 저어새 100쌍 정도가 내려와 번식했어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겁니다. 어디까지나 추정입니다만, 수리부엉이 짓인 것 같아요. 수리부엉이가 새끼를 잡아먹는 걸 알고서, 저어새들이 일제히 집단이주를 해 버린 거죠.”


경기도 김포 땅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유도에는 남동유수지와 달리 숲이 있다. 숲이 있다는 건 육식성 조류인 수리부엉이가 살 수 있다는 뜻이고, 나무 위에 앉은 수리부엉이가 땅으로 돌진해 저어새의 새끼를 낚아챌 가능성도 있다는 뜻이다. 저어새는 둥지 안에서 새끼를 보호하려 하지만, 거침없는 수리부엉이의 공격에는 속수무책이다. 이 박사가 말을 이었다.

 

가마우지도 유도에서 번식하지만 나무 위에 살기 때문에 수리부엉이가 낚아채기 쉽지 않아요. 저어새처럼 땅에서 둥지를 품고 번식하는 새들이 위험합니다.”
 

석도_김진수.jpg » 번식기를 맞은 저어새들이 서해 무인도 석도에 자리를 잡았다. 사진=김진수 기자

 

서해의 저어새 번식지는 유도, 요도, 석도, 비도, 남동유수지 등 10여곳이다. 매년 무리별로 일정한 장소에서 머물면서 알을 낳지만 항상 그런 건 아니다. 저어새는 ‘집단 이사’를 다닌다.

 

안전하게 번식할 수 없다고 판단했을 때 이런 행동을 한다고 전문가들은 추정한다. 유도의 저어새는 2006년 104마리까지 번식했지만, 2009년에는 번식 장면이 포착되지 않았다. 유도의 저어새들이 남동유수지로 집단 이사를 간 것은 아닐까?
 

최근 강화도 남쪽의 각시섬에서 흥미로운 사례가 관찰됐다. 이곳 또한 저어새가 번식하는 바위섬이다. 3월 말 둥지 재료를 넣어주기 위해 모니터링 요원들이 각시섬에 들어갔을 때 곰쥐를 발견했다. 곰쥐는 헤엄쳐서 각시섬에 들어간 것처럼 보였다.

 

이 때문이었을까? 저어새는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4월14일에는 갑자기 뭔가에 놀라 섬을 뜨는 저어새 4마리의 모습이 관찰됐다. 이기섭 박사는 “4월 중순부터 쥐가 없어졌는데, 그때야 저어새가 다시 들어오기 시작했다”며 “혹시 몰라 쥐덫을 설치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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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남동유수지 인공섬에서 저어새의 천적은 재갈매기다. 김보경씨가 말했다.

 

가끔 새끼가 둥지에서 미끄러져요. 몇 미터 떨어지는 건데, 인공섬 경사가 가파르니까 못 올라가요. 어미는 절대 올려주지 않아요. 그때 재갈매기가 새끼를 공격하죠. 새끼를 잡아먹는 건 아니고, 자기 둥지 주변에서 얼쩡거리니까 부리로 물어서 던져버리는 거예요.”


2010년에는 저어새 새끼 한 마리가 여러 차례 재갈매기의 공격을 받고서도 5시간 만에 둥지로 엉금엉금 기어올라갔다. 시민들은 이 새끼의 이름을 ‘구사일생’으로 붙였다.

 

남동유수지의 저어새는 도시 속에서 인간과 야생동물의 관계 맺기를 보여준다. ‘야생에 개입해선 안 된다’는 전통적 지침에도 어긋나 있다. 인천저어새네트워크와 일반 시민들로 구성된 50명 안팎의 모니터링 요원들은 △둥지 재료 모아주기 △다친 저어새 구조하기 등 저어새를 살리기 위해 야생에 개입한다.
 

남동유수지 저어새의 최대 위협요인은 인천 앞바다의 갯벌 매립이다. 갯벌이 줄어든다는 것은 저어새의 먹이터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저어새가 먹이활동을 하는 고잔갯벌은 2015년까지 매립될 예정이다. 일부를 습지보호지역으로 남겨두었지만 매립지에 둘러싸여 갯벌 기능을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럼 남동유수지의 저어새는 도시를 떠나는 건 아닐까?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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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종영 한겨레신문 기자
2001년부터 한겨레신문사에서 일하고 있다. 《한겨레》와 《한겨레21》에서 환경 기사를 주로 썼고, 북극과 적도, 남극을 오가며 기후변화 문제를 취재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지구 종단 환경 에세이인 『북극곰은 걷고 싶다』를 지었고 『탄소다이어트-30일 만에 탄소를 2톤 줄이는 24가지 방법』을 번역했다. 북극곰과 고래 등 동물에 관심이 많고 여행도 좋아한다. 여행책 『어디에도 없는 그곳 노웨어』와 『Esc 일상 탈출을 위한 이색 제안』을 함께 냈다.
이메일 : fandg@hani.co.kr
블로그 : http://plug.hani.co.kr/isoundmys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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