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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당당하게 물리친 독도의용수비대

 

독도의용수비대가 새긴 ‘한국령’…그들 숭고한 조국애를 잊지 말아야
 
耽讀 | 등록:2013-04-29 09:18:00 | 최종:2013-04-29 09:34:15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인쇄하기메일보내기
 
 


 

 

일본 극우총리 아베 신조가 침략을 부정하고, 전범들이 묻혀 있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정당하다고 강변하는 것에 우리 모두가 분노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 한 독도의용수비대원과 경찰 독도경비대원으로 활약하며 일본으로부터 독도를 지키려 평생 애써온 김영복씨가 25일 저녁 8시 지병으로 별세에 안타까움을 주고 있습니다. 향년 84입니다. 김영복 영면으로 훈장을 받았던 독도 의용수비대원 33명 가운데 생존자는 9명으로 줄었습니다.


독도, 이승만 정권이 아니라 시민이 지켰다…

경북 울릉군청에 따르면, 독도의용수비대는 한국전쟁으로 대한민국 정부 행정력이 미치지 못할 때 일본은 다시 독도에 불법 상륙하기 시작했습니다. 1953년에서 56년에 걸쳐 독도에서 일본의 불법 점령을 막아낸 것은 대한민국 국군과 경찰이 아니라 울릉도 출신 민간인들로 구성된 독도의용수비대원들이었습니다. 의용수비대원들은 1953년 4월 독도에 입도한 후, 1956년 12월 25일 경북경찰청 울릉경찰서에 독도수비 임무와 장비 일체를 인계하고 각자 생업으로 돌아갈 때까지, 자금과 무기를 자체적으로 조달하면서, 약 3년 8개월간 수차에 걸쳐 계속된 일본의 영토침범을 격퇴하였다. 1956년 12월 해산당시 독도의용수비대의 조직과 명단 33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독도의용수비대

수비대장 홍순칠, 부대장 황영문, 제1전대장 서기종, 대원 김재두 · 최부업 · 조상달 · 김용근 · 하자진 · 김현수 · 이형우 · 김장호 · 양봉준, 제2전대장 정원도, 대원 김영복 · 김수봉 · 이상국 · 이규현 · 김경호 · 허신도 · 김영호, 후방지원대장 김병렬, 대원 정재덕 · 한상룡 · 박영희, 교육대장 유원식, 대원 오일환·고성달, 보급주임 김인갑, 보좌 구용복, 보급선장 정이권, 기관장 안학율, 갑판장 이필영·정현권.-경북 울릉군청 독도의용수비대 명단

▲1954년 독도의용수비대가 동도 선착장부근에 세운 독도지명 표석이 전시되 있다.<뉴시스>


▲독도의용수비대는 지난 1953년 4월부터 1956년 12월까지 3년 8개월간 일본의 독도 침입을 막아냈다. 사진은 독도의용수비대원들이 독도 표식 제막후 기념촬영하는 모습<연합뉴스>

이번에 숨진 김영복씨는 울릉도에서 태어난나 1954년 3월 27일 전역한 뒤 1954년 5~12월 독도의용수비대원으로 활동하며 독도를 지켰다. 특히 김씨가 독도의용수비대에서 활동하던 1954년 11월21일 오전 7시쯤 독도로 향해오던 일본 해상보안청 소속 순시선 헤쿠라호와 오키호에 박격포 9발과 중기관총 500여발, 경기관총 500여발을 발사해 물리쳤습니다. 일본 순시선에서는 16명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불과 10년 전 일본 식민지였던 대한민국이 당당하게 일본 경찰을 물리는 친 사건으로 기록된 것입니다. 또 독도의용수비대는 1956년 12월30일 경찰에 독도수비 업무를 넘길 때까지 모두 다섯 차례나 독도를 침범한 일본 순시선 따위를 물리치는 혁혁한 공을 세웠습니다.


조국 해방 10년만에 일본을 당당하게 물리친… 독도의용수비대

▲독도의용수비대원 고 김영복씨

물론 독도의용수비대원의 정확한 수를 두고는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정부는 1996년 독도의용수비대원 33명에게 훈장을 줬는데, 감사원은 2007년 4월 훈장을 받은 독도의용수비대원들의 공적이 불분명하다며 국가보훈처에 공적을 재심사하라고 요구했지만 국가보훈처는 진상규명위원회를 만들어 1년 동안 조사를 한 뒤 큰 문제가 없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독도의용수비대 활약상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미군은 독도를 폭격 훈련지로 삼았다가 1952년 2월 27일 제외했습니다. 그러자 일본은 1950년 8월 일본인들이 불법으로 독도에 상륙해, 시마네현 오키군 다케시마[島根縣隱岐郡竹島]라고 쓴 표목을 세웠습니다. 불법 점거를 시작한 것입니다. 일본 불법 점거가 시도되지 독도를 지키기 위해 특무상사로 전역한 울릉도 출신 홍순칠(洪淳七)씨는 1952년 가을부터 독도의용수비대를 결성하기로 하고 각종 무기를 구입합니다. 대장은 홍순칠이 맡았고, 편제는 각각 15명으로 이루어진 전투대 2조, 울릉도 보급 연락요원 3명, 예비대 5명, 보급선 선원 5명 등으로 짰고, 장비는 경기관총 2정, M2 3정, M1소총 10정, 권총 2정, 수류탄 50발, 0.5t 보트 1척 따위이며 이후 박격포까지 구입했습니다.

 

 

독도의용수비대가 새긴 ‘한국령’… 우리는 그들 숭고한 조국애를 잊지 말아야

독도의용대는 1954년 8월 5일에는 동도(東島) 바위 벽에 ‘韓國領(한국령)’이라는 석 자를 새겨 독도가 한국영토임을 천명했습니다. 또 옛 삭도 주변 바위와 동도 정상의 3인치 대포 주변 바위에도 ‘韓國(한국)’이란 글자와 동도 옆면 바위에는 ‘獨島 鬱陵郡 南面(독도 울릉군 남면)’이란 한자 암각이 있습니다. 이들 글자는 표지석과 위령비가 아니라 독도 바위 표면에 직접 새겨져 있어 상징이 큽니다.

 

1954년 독도의용수비대가 활동할 당시 새긴 한국령은 독도의 대표적인 상징물의 하나이다.

 

독도의용수비대는 말이 아니라 기끼어 자신을 드림으로써 독도를 지켜냈습니다. 말로만 애국을 말하는 이들과 달랐습니다. 우리가 김영복씨 죽음 앞에 고개를 숙여야 하는 이유입니다. 남은 9분들도 건강하게 오래 사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독도는 우리 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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