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종북주의자 머리 해부하고 싶다는 앵커, 무섭다

게릴라칼럼] 일본 우경화만 위험한 게 아니다

13.05.04 18:19l최종 업데이트 13.05.04 18:19l

 

 

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종북 활동하시는 분들 머리속엔 뭐가 있는지 머리를 쪼개 가지고 해부해 보았으면 좋겠어요. 국정원은 뭐하나요. 이런 분들 안 잡고.." TV조선 4.23. 뉴스12 김진희의 댓글열전 중

듣기에도 섬뜩한 이 말, 종편 TV조선 엄성섭 앵커가 뉴스12 진행 중 '페이스북에도 북 찬양 계정…SNS 이적 행위 늘어'라는 뉴스꼭지를 다루면서 마지막에 한 발언이다. 출연자의 돌출 발언이라 하더라도 제지하거나 편집되었어야 말들이 앵커의 입에서 아무 거리낌 없이 내 뱉어지고 시청자에게 전달되는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엄성섭 앵커가 해 보고 싶다는 그 행위로 통해서 대체 무엇을 확인하고 싶은 것일까? 사람의 머릿속을 해부해서 사상을 검증해 보고픈 욕구. 그것이 바로 파시즘의 광기 아닐까?

표현이 지나치다는 점잖은 비판조차도 '너도 똑같은 종북주의자' 라며 파상 공세로 퍼붓는 보수 인사들, '종북 세력에게 그 정도 말도 못하냐'며 두둔하는 보수 언론들. 이런 현상을 하루에도 몇 번이나 마주하다 보면 우리 사회에서 극단으로 치닫는 우경화를 과연 치유할 수 있을까라는 우려마저 생긴다. 일본의 우경화에 대해서는 '침략 행위', '반성할 줄 모르는 후안무치한 행동'. '국제 공조를 통한 응징' 등 날선 반응을 보인 보수 언론과 종편 방송들. 그러나 정작 우리 사회의 우경화에는 어떤 비판도 없다. 아니 오히려 '종북 세력 척결'이라는 보검을 휘두르며, 정치와 경제, 사회 전반의 우경화를 부채질 하고 있다.

일본 우경화는 국제범죄...우리사회 우경화는?
 

▲ 주한일본 대사관 앞 반일 시위 지난 4월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에서 대한어버이연합과 보수국민연합 회원들이 일본 역사왜곡과 신사참배 규탄 기자회견을 가진 뒤 아베 총리를 규탄하고 있다.
ⓒ EPA/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혼란스럽다. 일본의 우경화는 국제적 범죄 행위이라는데, 우리 사회의 우경화는 애국적 흐름이며 칭송의 대상일 수 있을까?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비판하는 일본 내 소수의 양심 세력들은 존경의 대상이고 우리나라 우경화를 비판하는 세력들은 머리를 해부해 보아야 할 종북 세력이란 말인가? 한일 두 나라에서 유행처럼 번지는 극단적 우경화의 해악과 위험성은 별반 다르지 않다. 편협한 국수주의가 언론의 생명과도 같은 냉철한 비판의식마저 마비시켜 버렸다는 생각이 든다.

한일 보수 세력의 뿌리는 다르지 않다. 일제 패망과 함께 찾아온 해방. 그러나 청산되지 못한 친일의 잔재는 반공의 파수꾼을 자처하며 또다시 권력의 핵심으로 등장했다. 일제의 앞잡이로 살았던 고등계 형사들은 해방 이후 경찰 수뇌부로 자리를 옮겼고, 독립군에게 총부리를 겨누며 황국신민을 자처했던 군인은 해방 후 미군정에서 장군이 되었다. 정치, 경제, 문화 분야에서 일제에 충성했던 세력들도 해방 정국에서 고스란히 지배 세력으로 다시 군림했다. 일제 때는 하나 같이 일왕(천황)을 칭송하며 대동아공영을 외치고 비행기를 헌납하던 세력들, 해방 후 반공의 궐기는 친일 내력을 숨길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던 셈이다.

패망에도 반성 없는 행보를 이어왔던 것이 일본의 보수 세력이었다. 전범들의 위폐를 신사에 봉안하고 영웅 대접을 하며 지난 역사를 정당화하고자 했던 그들. 군인들에게 성노예가 되기를 강요했던 일본군 위안부 문제마저도 여성들의 자발적 참여라는 억지를 앞세웠다. 일제의 침략이 대한민국의 근대화를 앞당겼다는 주장 또한 수시로 반복돼 왔다. 침략 역사의 정당화. 그것은 일본의 보수 세력이 존재 이유를 확인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했다.

이에 맞장구쳐온 대한민국의 보수 세력. 일본의 교과서 왜곡을 비난하면서 그들의 입장을 대변해온 것이 우리나라 보수 세력의 역사 인식이었다. 2008년, 뉴라이트로 대변되는 보수 세력들은 근현대사의 좌편향을 바로 잡는다는 미명하에 새로운 대안 교과서를 집필했다. 식민사관의 무비판적 수용이라는 역사학계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권은 이 책을 기반으로 교과서 수정시도를 수차례 감행했다. 또 침략을 정당화하는 일본 보수 세력 거들기에 나선 이들도 바로 그들이었다. '일제시대 우리 조상은 일본제국을 자신의 조국이라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았다고 생각한다' 라고 했던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 많은 뉴라이트 인사들의 역사 인식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작년 12월 16일 일본 총선에서 아베 신조가 이끄는 자민당의 압승은 우경화의 단초를 제공했다. 경제 침체와 대지진에 지친 일본 국민들에게 희망을 약속했던 아베 정권. 그는 집권 시작과 더불어 침략 역사를 부정하고 돈 풀기(양적 완화)정책을 통해 국민들에 경제 회생의 환상을 제공했다. 그러나 돈 풀기로 되살아 난 경기가 이후 더 큰 경기 침제로 이어지고 양극화를 심화시킬 수 있다는 진실은 이명박 정권이 처절하게 보여준 교훈이다. 또 과거 침략의 부정은 당장 지지율은 끌어 올릴 수 있을지 모르지만, 국수주의를 심화시켜 국제 사회로부터 고립을 자초할 수밖에 없다. 이는 수차례 반복된 역사의 교훈이기도 하다.

과거의 부정을 통해 도를 더해가는 일본의 우경화. 그러나 미래를 부정하면서 점점 수위를 높여가는 우리 사회의 우경화도 그 위험성은 일본에 뒤지지 않는다. 도를 넘는 종북주의자 낙인찍기가 정치와 사회, 경제 가릴 것 없이 나타나고 있다. 야당 대통령 후보까지 종북주의자로 몰아 댓글을 만들고 퍼 날랐던 국정원 직원과 보수 세력들. 그들에게 이념의 소통이나 남북통일은 부정하고픈 미래일 뿐이다.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은 집권을 위해서 어떤 행위도 용납될 수 있다는 극단적 우경화의 산물이며 민주주의 근간을 부정하는 폭거다.

복지와 분배 정의 부정하는 세력들

그 뿐 아니다. 경제 민주화 요구조차도 경제 회생의 발목을 잡는 종북 세력의 농간으로 치부하는 1% 경제 권력들과 대자본들. 그에 편승해 수많은 논리를 개발하며 각종 경제 민주화의 개혁 입법을 막아서는 보수 언론과 종편들. 그들에게 박근혜 대통령이 내걸었던 숱한 경제민주화 공약들은 이루어지지 말았으면 하는 미래일 뿐이다. 복지와 분배를 부정하는 극단적 우경화. 이것은 현재의 부정에 그칠 뿐 아니라 우리 사회가 꿈꾸어야 할 미래까지 부정하는 것이다. 복지와 분배의 정의가 없다면 1% 경제 권력을 제외한 99%의 아들딸들은 우리보다 더 혹독한 미래를 살아갈 수밖에 없다.

침략의 과거를 부정하면서 극단으로 달려가는 일본의 우경화와 통일과 복지, 분배의 정의가 구현되는 미래를 부정하며 험악한 논리를 강요하는 대한민국의 우경화. 이 둘의 모습은 제국주의와 냉전적 사고로 생겨난 기형적 보수의 준동이라는 점에서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험한류를 넘어 떠나지 않는 한국인은 테러하겠다고 공공연하게 협박을 일삼는 일본의 보수우익. 머리를 해부해서라도 사상을 검증해 보겠다는 대한민국의 앵커. 한일의 우경화는 서로 닮은 얼굴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우리 사회의 우경화, 일본의 되살아나는 침략 야욕 만큼이나 위험하다. 일본 우경화에 대한 우려와 반감. 우리 스스로에게도 같은 잣대를 가지고 되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