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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나이는 크리스마스 케이크?"… 한국 사회가 보는 여성의 나이듦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입력 : 2019.02.05 06:00:02 수정 : 2019.02.05 11:18:55

 

경향신문 자료사진

경향신문 자료사진

 

직장인 성유진씨(가명)는 친척 모임 때마다 ‘나이’ 얘기가 빠지지 않는다고 했다. 10년 만에 만난 친척오빠는 “올해로 29살이 됐다”는 성씨의 말에 놀라며 “이제 정말 결혼해야 할 나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20대 초반인 친척 동생들로부터는 “언니 이제 늙었다”는 놀림을 듣곤 한다. 성씨는 “동생들에게 ‘너희도 늙을 텐데 뭐’라고 말했더니 ‘그래도 난 평생 언니보다 어려’라고 답했다”며 “별거 아닌 말들이지만 사회가 여성의 나이로 위계를 나누고 나이가 어린 여성을 우위에 두고 있음이 느껴졌다”고 했다. 
 

 

한국에서 여성의 나이듦은 하나의 ‘결함’으로 받아들여진다. 이제 20대 중반에 접어든 아이돌 멤버가 “할머니”라는 놀림을 듣고, 자신의 분야에서 굵직한 성취를 거둔 30대 모델이 “어린 모델들이 치고 올라오니 다른 일자리를 찾아봐야 하지 않냐”는 우스갯소리를 듣는다. 40대 여자 배우에게는 “40대 같지 않은 외모” “20대 뺨치는 몸매”라는 수식어가 칭찬처럼 따라붙는다.

사회가 여성에게 “나이가 들었다”는 선고를 내리기 시작하는 시점은, 이른바 ‘결혼 적령기’를 전후해서다. 여성들의 가치는 결혼과 출산을 통해서만 ‘완성’된다는 인식, 나이가 들수록 결혼 시장에서의 가치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기저에 깔려있다. 2016년 한 결혼정보업체 대표가 “결혼시장에서 여성의 손익분기점은 33세 정도”라는 발언을 한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직장인 한수지씨(27)는 여자 나이에 유독 엄격한 사회의 시선을 피부로 느낀다고 했다. “직장 동료들끼리 여전히 ‘여자 나이는 크리스마스 케이크(25세가 넘어서부터는 가치가 떨어진다는 뜻)’라는 농담을 대수롭지 않게 해요. 남자 직원에게는 ‘30대면 한창이다’고 말하면서, 여자 직원에겐 ‘어서 좋은 사람 만나라’ ‘늦어지면 뺏긴다’는 말을 하죠.” 한씨는 이런 분위기가 “불공평하게 느껴진다”면서 “30대 여성도 직장에서 한창 왕성하게 활동할 나이인 것은 마찬가지 아니냐”고 반문했다.

직장인 이한솔씨(31·가명)도 24살때부터 ‘나이가 더 들기 전에 결혼을 해야 한다’는 주위 압박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부모님으로부터 ‘결혼정보회사도 나이가 어리면 가입비가 싸다’ ‘여자가 서른이 넘어가면 아무리 잘나도 남자들이 선을 안본다’는 말을 너무 많이 들었다”며 “그때 주변에 떠밀리듯 결혼을 했으면 어땠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고 했다.

남성인 손인호(27)씨는 “20대 후반이 되면서 결혼하는 친구들이 늘었고, 결혼이 대화 주제로 자주 오르내리기는 한다”면서도 “기본적으로 나이 드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없는 편”이라고 했다. 그는 “주위에서는 연상인 여자친구가 결혼에 대한 압박감을 느껴 예정보다 일찍 결혼하는 친구들은 종종 본다”고 덧붙였다. 
 

웹툰 <복학왕>에서 20대와 30대 여성을 묘사하는 부분.

웹툰 <복학왕>에서 20대와 30대 여성을 묘사하는 부분. 

여성의 나이에 대한 편견은 여성들의 사고와 행동을 제한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2017년 화장품 브랜드 SKII가 실시한 자체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 여성의 절반(51%)은 나이 드는 것에 대해 불행함을 느끼고 있었다. 남성(42%)보다 높은 수치였다.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오는 압박감, 더 나이가 들기 전에 결혼해야 한다는 불안감 등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취업준비생 변지영씨(29)는 “친구들이 있는 단톡방에서도 ‘이제 곧 서른’ ‘예쁜 나이가 지났다’ 같은 자조 섞인 농담이 오가곤 한다”며 “나이를 먹는 것에 큰 거부감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말들을 반복해서 듣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이 ‘나이가 들었다’고 인식하게 된다”고 말했다. 서윤주씨(27)도 “여성의 가치가 특정 나이대가 지난다고 사라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구시대적”이라면서도 “외국에서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도 나이를 아예 물어보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나이 때문에 새로운 도전을 막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여성의 나이를 보는 시각이 실제 차별로까지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2017년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여성 593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나이’를 이유로 채용 불이익을 겪었다는 구직자는 전체 318건 중 41건(약 13%)을 차지했다. “28살이었는데 지속적으로 ‘나이가 많다’ ‘나이에 비해 무경력이다’라며 후려치기를 당했다” “나는 결혼이나 출산 계획이 없다. 하지만 출산 문제에 따른 문제로 채용이 배제되었다”는 답변이 나왔다. 

 

 

▶관련기사 : [커버스토리]나이듦에 대하여···세 여성의 ‘한 살 더’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2050600021&code=940100#csidx09718ba11c2167ca9c3e7c89380a6d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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