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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보] 5년 광화문 천막, 잠시 걷어두던 날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9/03/20 10:41
  • 수정일
    2019/03/20 10:41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포토스토리] 2014년부터...우리가 광장을 지킨 이유
2019.03.20 08:57:54
 

 

 

 

수백의 이름이 호명됐다. 손바닥만 한 영정으로 가득 찬 천막은 한참만에야 빈 벽을 드러냈다. 먼지 쌓인 사진들이 하나씩 상자에 담겼다.

 

참사 3개월만인 2014년 7월, 희생자 가족들은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광장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단식과 삭발, 수많은 집회와 행진을 거듭하며 특별법을 이끌어 냈다. 촛불시위 때는 광장의 구심이 됐고, 교황 방문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숱한 오해와 루머를 견뎌야 했고, 일부 몰지각한 집단으로부터 참기 힘든 모욕을 받는 일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5년 가까이 천막이 유지된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아이들이 허망하게 떠났을 때 부모들은 이 사회가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아이들의 희생이 허탈한 것이 되도록 둘 수 없었다고 했다.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고 싶다고 했다. 광장의 천막은 그 의지의 상징이었다.    

 

세월호 천막이 철거됐다. 4년 8개월 동안 같은 자리를 지켜온 천막은 17일 이안식을 치르고 18일 완전히 해체됐다. 서울시의 광화문광장 정비계획에 맞춰 유가족이 결정했다. 이 자리에는 사회적 재난을 기억하는 '기억·안전 전시 공간'이 조성된다. 비록 천막은 철거됐지만 진상 규명을 위한 노력은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가족협의회는 전했다. 이안식과 철거하는 날, 빈 광장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 천막 철거를 하루 앞 둔 17일 이안식이 열렸다. 손에 영정을 꼭 쥔 유가족 ⓒ프레시안(최형락)

 

 

 

 

 

 

▲ 천막 분향소에 걸린 단원고 희생 학생들의 영정 ⓒ프레시안(최형락)

 

 

 

 

 

 

▲ 가족대책위는 아직 진실이 드러나지 않아 편안할 수 없다며 이안식 대신 그저 옮긴다는 뜻으로 '이운식'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다.ⓒ프레시안(최형락)

 

 

 

 

 

 

▲ 영정 사진들은 작은 상자에 담겨 광장을 떠났다. ⓒ프레시안(최형락)

 

 

 

 

 

 

▲ 영정을 떼어 낸 빈 벽.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최형락)

 

 

 

 

 

 

▲ 가족들은 5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진상 규명을 말하고 있다. 석연찮은 조사와 수많은 방해가 엄연한 현실에서 진실은 여전히 수면 아래에 있다. 정동수 학생의 아버지 정성욱 416 가족협의회 진상규명부서장 ⓒ프레시안(최형락)

 

 

 

 

 

 

 

▲ 철거 직전의 모습. 가족협의회는 천막이 철거되더라도 진실을 밝히기 위한 노력은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프레시안(최형락)

 

 

 

 

 

 

▲ 18일 오전 10시 40분 경 시작된 철거 작업은 오후 6시께 마무리됐다. ⓒ프레시안(최형락)

 

 

 

 

 

 

▲ 천막이 사라진 광화문광장. 그 자리에 공사용 가림막이 설치됐다. 이 곳에 마련될 기억·안전 전시 공간은 다음달 12일 공개될 예정이다. ⓒ프레시안(최형락)

 
최형락 기자 chr@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2009년 입사. 사진기자로 일한다. 취재 중 보고 겪는 많은 사건들에서 어떤 규칙성을 발견하며 놀라곤 한다. 전시 <두 마을 이야기>(2015), 책 <사진, 강을 기억하다>(2011, 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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