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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길재 통일부장관님, 장관 할 만합니까?

류길재 통일부장관님, 장관 할 만합니까?

 

<서신> 김광수 인제대 통일학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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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5.20 02:15:18

 

김광수 / 정치학(북한정치)박사, 인제대 통일학부 겸임교수, (사)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사무처장, 6․15부산본부 정책위원장

1. 들어가며

교수님,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제가 교수님과 인연을 맺은 것은 2005년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북한사 연구’라는 과목을 통해서였지요. 당시에도 흰머리가 많았는데, 장관이 된 지금은 더 많은 흰머리를 가지셨더군요. 그때 교수님은 항상 저에게 ‘김 선생’이라 불렀지요. 아마도 갓 40대에 진입하여 새롭게 공부를 시작한 만학도에 대한 나름의 예의셨다고 저는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또한 항상 교수님은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김 선생은 총론에는 매우 강한데, 팩트(fact)에 약해. 학술연구는 구체적 사실에 근거해야지, 운동권적 논리로 접근하면 안 돼.”

세월은 흘러 장관으로 옷을 갈아입은 교수님의 모습을 TV를 통해 보았습니다. 한편으로는 기뻤고, 한편으로는 불안했습니다. 이 마음의 연장선상에서 저는 지금 교수님께 이렇게 질문합니다. “교수님, 통일부 장관직 할 만합니까?” 이 질문에는 교수님마저도 여타의 교수들이 그러하였듯이 그렇고 그런 ‘폴리페서(polifessor)’로 전락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기 때문이고, 이 우려는 실제 교수님께서 박 대통령의 치마폭에 쌓여 남북관계의 상호주의가 탄력적으로 기능할 때만 작동될 수 있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광폭적인’ 상상력으로 돌파하지 못하는 한 지금 현 단계에서는 그렇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인식 때문에 더더욱 그렇게 느껴집니다. 역사의 기록에 ‘또 다른 한명으로 기록될 폴리페서로 말입니다.’

저의 이런 과문한 걱정이 교수님께서 듣지 않아도 되는 쓴 소리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게 간단치가 않은 듯합니다. 교수님을 둘러싼 환경이 그리 녹록치 않다는 뜻이자 대타로 투입된 교수님의 정치력이 발휘될 수 없다는 우려가 있는데다 벌써부터 왕따보다 더 자존심 상하는 ‘은따’(무리에 섞여 있고 대화도 되는 듯하지만 알고 보니 따돌림을 받는 현상, 속칭 '은근히 따돌린다'해서 나온 은어)되고 있는 교수님을 보고 있으면 그럴 바에야 왜 통일부장관이 되었냐 싶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폴리페서들이 걸었던 “학자적 양심보다 입신양명이 더 좋아서?” 이 물음이 저를 떠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를 더 가슴 아프게 하였던 것은 교수님께서 벌써부터 꼼수정치를 시작하였다는 것입니다. 꼼수가 정치가 아니라 하면, 그 예는 지난해 12월 12일 북한의 제3차 핵실험으로부터 조성된 한반도의 전쟁국면이 현재까지 타개되지 않은 상황 하에서 개성공단 정상화와 관련하여 통일부장관 자격으로 북한은 ‘정부의 대화제의에 응답을 해야 한다(5.15)’고 밝혔지요. 과연 북한이 답변이 올 것을 알면서 그렇게 말했던 것입니까? 정말 그런 기대를 갖고 했다면 교수님 야말로 왜 강단에서 그렇게 ‘새빠지게’ 연구를 했는지 매우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그 이유는 ‘2. 본질과 현상, 철학으로 정세를 읽다’에서 밝혀질 것입니다). 또한 팩트에 강한 연구자의 한계를 보고 있는듯하여 저는 매우 씁쓸합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장관님보다 팩트에 약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북한 문제를 어떻게 접근하면 풀 수 있다는 것 정도는 교수님보다 한 수 위입니다. 왜냐고요? 북한문제는 팩트나 정치공학적으로 풀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총론과 팩트의 통합, 더 나아가 철학(사상)과 역사의 결합으로 인식될 때만이 북한 문제가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야만 북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해법을 찾아 낼 수 있습니다. 즉 주체사상․선군사상 ⇒ 당․군 유일체제 ⇒ 선군사회주의국가 ⇒ 수령제사회주의 ⇔ 강성국가 건설이라는 프레임으로 보아야만 북한문제의 해법이 보인다는 것이지요.

구체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그 예에서 증명되지요. 개성공단 (잠정)폐쇄의 근본요인이 ‘최고 국가존엄에 대한 훼손’, ‘정전체제의 첨병지대로의 전락’이라는 구도 하에 개성공단 문제를 바라보고 있는 북한에게 그러한 조건과 요인들에 대한 성의 있는 제거방안 없이 그냥 대화하자고 한다면 북한이 과연 대화에 나올까요? 그래서 다시 묻습니다. 북한문제는 총론과 팩트의 통합인식으로 가능한 것이지, 팩트에 근거한 정치적 해법만으로는 절대 불가능하지요. 그래서 제가 뜬금없는 개성공단 정상화 대화제의는 꼼수라는 것이며 이것은 학문을 연구한 ‘교수’ 장관으로서는 하지 말아야 선택 중의 하나였던 것이지요. ‘진정성’ 없는 정치, 벌서부터 교수님은 그 더러운 구정물에 발을 담그셨습니다.

교수님, 그래서 제가 감히 충고 하나 하겠습니다. 옛날에는 ‘파당’을 통해 네편 내편을 갈랐지만 그래도 출사의 도라는 것이 있었지요. 새 임금이 들어서면(자기와 정치적 색깔이 맞지 않다든지, 임금으로 섬기고 싶지 않던 등등) 임금의 부름에도 온갖 핑계를 대어 근정전으로 들어가지 않았지요. 그리고 이유야 어떻던 출사하였으면 직언(直言)하는 도리가 있었지요. “‘교수’ 장관님은, 지금 박 대통령에게 그렇게 하고 계십니까?”

2. 본질과 현상, 철학으로 정세를 읽다

지금 조성된 정세는 장관님에게 다음과 질문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물이 고정 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 발전하는 것이라면, 그 과정-변화 발전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그 변화 발전을 추동하는 핵이 있기 마련이고, 이 추동 핵에 의해 모든 사물의 성격이 규정된다 했을 때 지금 정세를 추동하는 핵심 추동력이 무엇인지를 찾아내는 데서부터 장관님의 첫 업무가 시작되어 져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래 놓고 본다면 이 문제는 바로 본질과 현상의 문제이며, 철학의 눈으로 정세를 읽을 때만이 현재 조성된 정세의 본질이 드러난다는 의미가 될 것입니다.

장관님, 사전적 의미에 있어 본질(本質)은 ‘그것이 그것으로서 있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면, 현상(現象, Phenomenon)은 ‘실제로 드러나 있는 것, 볼 수도 있고 느낄 수도 있는 것’을 말할 텐데, 이를 철학적 의미로 해석할 때 저는 <본질>이 사물의 존재와 발전의 기초로 되는 상대적으로 공고화한 내적 측면, 요소 과정의 총체를 말하며 <현상>이란 본질의 발현으로서 상대적으로 가변적인 외적측면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 연장선상에서 ‘관계의 규정적인 것은 본질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현상이 본질을 드러낼 때 왜곡하게 드러내는 가상(假相)이라는 성질이 있어 본질을 읽어냄에 있어 매우 신중해야한다’는 인식을 동시에 갖고 있습니다.

이를 현재 조성된(혹은, 당분간 전개될) 한반도 정세에 적용하여 보면 저는 현 정세의 기본 축이 북-미관계이며 이 북-미관계가 풀어져야 종국적으로 남-북관계도 풀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현재 조성된 한반도 전쟁국면의 본질이 북-미간의 마지막 남은 최후결전(‘판가리’) 대결국면에서 형성된 유탄으로 인식하는 것이 보다 현재 조성된 한반도 정세를 정확히 읽어 내는 것이라는 사실과 함께, 이 인과관계를 간과하는 순간, 한반도 전쟁국면의 본질이 남-북 전쟁대결로 인식되는 이론학적 오류를 범하게 되는, 즉 ‘드러나는’ 현상이 ‘숨어있는’ 본질을 왜곡시키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는 감히 장관님께 다음과 같이 정세를 인식해주길 간청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북한이 그 어떤 정치․군사적 의도를 갖고 미국을 상대하고 있는가가 현재 조성된 한반도 전쟁국면의 정세 본질이라 했을 때, 그 ‘어떤’의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잘 읽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 결론은 북한이 지난 60년간 지속되어온 북-미간의 판가리(‘최후결전’) 싸움을 끝내고자 하는 것이고, 그 중심 고리를 정전체제로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북한은 한반도에서 정전체제를 대신하여 평화체제가 수립되지 않는다면 ‘전쟁을 머금고’ 있는 정전체제로 인해 한반도위기가 구조화․일상화․상시화될 수밖에 없다는 결정적 메시지를 미국에게 보내고, 또 다른 한편으로 미국에게 종속되어 있다고 보는 박근혜 정권에게는 미국에게 그러한 길-평화제제에 나서게 하는 중재자의 역할을 해 달라는 강한 주문을 하고 있는 것으로 말입니다.

이를 아래와 같은 <도표>로서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를 개념화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바마 정부) 이전

(오바마 정부) 이후

세계체제

미 유일강국체제

G2체제 성립

동북아체제

(미국의 관점)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 이전(견제와 균형)

아시아로의 중심축((Pivot to Asia)이동

(견제로 무게중심 이동)

북-미체제

(북한의 주장)

비핵화, 북-미수교,

경제정상화(개혁․개방)

비확산, 한반도통일,

동북아의 전략국가(북한)

남-미체제

가치동맹

(지정학적)중국 포위 전략의 하위토대로서의 한-미동맹

 

또한 위 도표에서 확인받는 정세는 현재 조성된 남북관계의 위기의 본질이 미국의 대중국 포위 전략의 결과물로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달리 말하자면 현재 조성된 한반도의 전쟁국면이 남-북간에 조성된 위기국면이라기보다는 북한이 미국에 보내는 메시가 더 크다고 볼 수 있으며, 이는 다시 북한이 왜 그토록 집착해서 정전협정 무력화를 시도하고 있는지가 잘 읽혀져야 하는데, 다름 아닌 (남·북간의 전쟁고조는 역설적으로) 미국에게 빨리 우리(북)와 하루 빨리 평화협정을 체결하여 평화체제로 전환하자는 북한의 대미압박 전략의 연장선상이라는 점입니다.

다음으로는 미국의 대북정책이 ‘전략적 인내’정책에서 → ‘북핵 활용론’으로 대변되어지는 ‘한반도 관여’전략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 한반도 관여를 통한 대중국 포위전략과 MD체제 구축의 명분으로 최대한 활용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얻어지는 전리품, 우리 대한민국으로부터 수억 달러에 달하는 군수품 판매(안보 상업주의)의 이득도 얻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국면이 장기화 된다면 미국도 잃을 수 있는 상품이 있기 때문에 미국에게도 마냥 좋은 정세국면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것은 바로 미국의 딜레마(dilemma)로서 존재하는 NPT체제 상품이 그것이고, 마냥 좋은 정세 국면이 아니라 함은 장기화 되면 그 상품체제가 흔들린다는 것이지요. 즉 ‘비핵화’와 ‘비확산’의 선택 기로에 서게 되고, 이후 이 현실은 북한과의 관계설정에 있어 <인도·파키스탄 모델 →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 → 비핵화·주한미군철수>라는 로드맵을 북한에게 제시해야 한다는 불안감이 미국에게는 있는 것이지요.

장관님, 제가 너무 과도한 분석을 했을까요. 제가 보기에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이유는 다음과 같기 때문입니다. 장관님도 아시다시피 북한이 최후결전이라는 용어를 등장시키기 이전까지는 자신들이 보유하고자 했던 핵이 ‘협상용’이었지요. 그러나 (최후결전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이후에는 핵이 전쟁 억제력으로서의 ‘보유’의 성격을 명확히 갖게 되었지요. 다시 말해 현 정전체제가 지속되는 한 북한은 자신들이 정전체제의 가장 큰 피해자일 수밖에 없고, 그 피해 양태가 한국과는 달리 교차수교를 이루지 못했고, 미국으로부터 적대국가의 지위를 벗어나지 못하며 이로 인해 파생되는 경제적 고난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최종 진단에 이르게 된 것이지요. 따라서 이러한 상황이 지속된다면 북한으로 하여금 체제가 붕괴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현실로 나타나게 하고, 그 결과 하루빨리 고착되어진 정전체제를 허물어야 할 절박한 이유가 발생하게 되지요. 그래서 이번 북한의 도발, ‘최후결전’은 빈말일 수 없으며 미국의 ‘전략적 인내’정책을 파탄내기 위해 작심하고 덤벼드는 고난도 전략이 되는 것으로 말입니다.

부연하자면 정전체제가 끝장나지 않는 한 북한은 한국과 미국으로 하여금 북한붕괴론과 정권교체(regime change), 자유민주주의체제로의 흡수통일 시도 등이 끝나지 않는다고 보고,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력으로 핵을 보유하여 ‘비대칭적’ 전쟁 억제력을 구축, 이 바탕 위에서 ‘핵보유․경제건설 병진노선’을 통해 경제 정상화를 이룩하는, 그리하여 자신들의 최종목적지인 사회주의강성국가를 건설하겠다는 속내를 매우 분명하게 드러내었다는 사실입니다. 하여 앞으로 전개될 북-미, 남-북관계의 전망은 기본적으로 대화와 협상, 즉 평화적인 방식으로 평화체제 구축 노력이 가시화되지 않는다면 정전상태의 불안정성은 더더욱 가중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는데, 그 이유 두 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는 항시적인 한반도 전쟁 발발 가능성이고, 다른 하나는 2013년 3월 31일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개최하고 여기서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을 병진시켜나가는 노선을 채택하고, 곧바로 4월 1일 헌법에다 ‘핵보유 법령’을 법제화함으로서 핵무기 폐기를 굉장히 까다롭게 하면서 만들어진 핵 능력 증가인 것입니다.

3. 장관님의 선택; ‘잘한 선택’과 ‘잘못한 선택’ 사이

1) 한-미동맹

장관님, 이번 한미정상회담 의제와 관련하여 크게 보면 다음과 같은 카테고리가 가능해진다고 봅니다. ⧍한미동맹의 중요성 ⧍미국의 확고한 방위공약 재확인 ⧍한반도 평화와 안정 ⧍북핵 문제 공동대처 방안 ⧍동북아를 넘어서는 글로벌협력과 양국 국민 간 실질적인 교류 협력 확대 방안 ⧍한미FTA 이행 경과와 양국 경제, 통상 협력 방안 ⧍작전지휘권 반환 문제 ⧍한미원자력 협정 개정 등으로 말입니다. 여기서 저는 모든 의제에 대한 입장보다는, (제 나름대로) 장관님의 업무분장 범위 안에 있다고 판단되는 몇 가지 의제에 대해서만 간략하게 언급하는 것으로 제 입장을 대신하지요.

장관님, 이번 정상회담에서 양국은 “자유 시장경제 원칙에 입각한 평화 통일”을 공동선언에 명시했습니다. ‘자유 시장경제 원칙’은 무얼 말하는 것입니까? 제가 아무리 선의적으로 해석하고 싶더라도 ‘자본주의 체제에 입각한 흡수통일’을 뜻한다고 봅니다. 이렇게 해석하면서도 제가 문외한이라서 맥락을 잘 못 이해하여 잘못된 해석이길 간절히 바랍니다. 이유는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이 해석에 대해 제가 틀리면 그냥 7천만 겨레중 제 혼자 슬퍼하면 되지만, 만약 제 해석이 맞다면 7천만 겨레의 운명이 정말 불행하고 위태롭기 때문에 그 민족의 눈물을 다 어찌 감당하겠습니까?

‘흡수통일 합의’는 7.4남북공동성명의 민족대단결 원칙, 모든 남북 합의서의 교과서라 할 수 있는 6.15남북공동선언 2항이 갖는 정신, ‘차이의 인정’ 위에서 합의되어졌던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가 부정되어 져야하고, 10.4선언의 내정불간섭 등 기왕의 남북 합의에 대한 파기, 장관님이 반복적으로 언급하였던 “기존 남북합의를 이행한다”는 공언의 파기이기 때문입니다. 어디 이뿐입니까? 출범한 지 2개월 밖에 지나지 않은 박근혜 정권이 그토록 중시하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제대로 한번 꽃 피워보기도 전에 사문화될 운명이라면, 이를 어떻게 설명하여야 합니까?

다음으로 한-미동맹 60주년 맞이하여 나온 공동선언 그 자체에 대한 평가도 실사구시는 온데간데없고, 오직 ‘핵심축(린치핀·linchpin)’이라는 용어에 함몰되어 마치 한-미동맹이 미-일동맹보다 격상되어진 최상의 결과를 낳았다는 평가만 난무할 뿐인데, 이 또한 과연 그렇습니까? 장관님. 저나 4천만 국민 누구나 다 기간 60년 동안 지속되어 온 한-미동맹이 한국에 기여한 공헌이나 필요성을 폄훼해서도 폄훼할 생각을 가져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제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이 시점에서 한미동맹이 추구했던 목표가 무엇인지를 상기한다면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나타난 공동선언은 매우 우려스럽다는 사실이 간과되어져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한-미동맹은 정전체제라는 독버섯 위에서 피어난 쌍생아인데, 이는 빨리 해체되면 될수록 좋다는 의미도 동시에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동전의 양면이 있는 한-미동맹에 대해 무조건 한-미동맹 그 자체가 더욱더 공고화 되면 될수록 좋다는 식의 인식은 통합․통일을 이룩해야 하는 우리 민족에게는 매우 불행한 역사를 지속시켜야 한다는 의미와 동의어가 될 수도 있는데, 이를 무조건 환영할 일만은 아니지요.

따라서 정전체제는 그 운명 상 언젠가는 반드시 평화체제로 전환해야 될 숙명을 맞이하고 있지요. 그래서 한-미동맹의 최종 목표는 한반도에서 정전체제를 허물고 평화체제를 수립하는데 기여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한-미동맹 그 자체를 강화하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데 기여하기 위한 '수단’으로 존재할 때 가장 빛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런 한-미동맹이 우리 남-북 사이에 오랫동안 아무렇지 않게(사실은 ‘불편한’ 정전체제였지만) 지속되다 보니 주객이 전도되어 목표가 수단으로 전락된 기형적인 상황이 도래했음에도 우리 모두가 불감증에 걸린 환자와 같이 되어 버렸지요.

하여 장관님께 묻습니다. 통일부 장관은 한미동맹 강화 그 자체에 기여하는 자리이기보다는 ‘뼈 속까지’ 친미사대주의에 물들어 있는 외교부, 국방부 등 다른 부처와 싸워야 하는 부처인가요, 아닌가요? 그래서 저는 적어도 장관님의 머릿속에는 한-미동맹 60주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60주년을 맞이한 한-미동맹이 최대한 빨리 원래의 목표, 한반도 평화체제에 기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재개정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며 그 첫출발은 한-미동맹이 정전체제에 의존하면 할수록 그 정전체제는 더욱더 불안해질 수밖에 없고, 이에 따라 한반도는 남북기본합의서, 6.15와 10.4선언, 개성공단 등 교류협력의 상징과 통합․통일로 존재했던 그 모든 것을 무효화시키는 어리석은 민족으로 전락하게 되는 우를 범하게 된다는 사실을 각인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 연장선상에서 역대 정권들 중에서도 ‘깨어있는’ 정권은 왜 한미정상회담에서 항상 한반도의 평화, 평화체제 등을 언급(2006년 11월 하노이 한미정상회담, 2007년 9월 시드니 한미정상회담 등)했는지가 읽혀진다면, 박근혜 정권도 하루 빨리 정전체제에 기생된 한미동맹의 시각에서 헤어나는 혜안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 반대는 한반도가 항시적인 위기의 구조화, 일상화, 상시화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2)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장관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언급하기 이전에 먼저 ‘신뢰’란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적어도 신뢰란 상호적인 것일 겁니다. 즉 대상이 있다는 말이겠지요. 남-북 관계에 있어 그 대상은 다름 아닌 북한이겠지요. 따라서 제 아무리 혼자서(대한민국) 신뢰를 하자고 소리치고 신뢰를 쌓았다고 자평해도 상대방(북한)이 호응해 오지 않는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무용지물일 것입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그 신호가 북한으로서는 도저히 받을 수 없는, 아니 경악하는 ‘흡수통합’을 전제로 신뢰를 쌓자고 박근혜 정권이 외치고 있으니 이것은 북한으로서는 도저히 받을 수 없는 패일 수밖에 없고, 더 나아간다면 북한에게 ‘한판 붙자’라는 선전포고와 다름없는 것일 겁니다.

그래서 저는 믿었습니다. 아니 믿고 싶었습니다. ‘신뢰’가 갖는 의미와, 특히 흡수통합이라는 ‘잘못된’ 신호는 일시적일 것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 결과 이러한 전제를 정확히 읽은 위에 수립된 것이 대북정책과 관련한 박근혜 정권의 대표 브랜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라고 말입니다. 따라서 이런 신뢰 프로세스라면 이 신뢰 프로세스가 추구하는 최종 목표는 다름 아닌, 박근혜식 한반도 평화 해법일 것이라고 말입니다. 동시에 보수정권이면서도 대북정책의 최종 종착지가 한반도 평화라는 종자를 잡은데 대해서도 매우 고무적으로 해석하였습니다. 이 실현을 위해 전쟁방지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정․경 분리 원칙에 입각해 인도적 지원을 강화하고, 그 과정을 통해 신뢰를 쌓아 남-북의 교류 협력을 확대해 나가면 그것이 곧 한반도 평화라는 설정 또한 반(反)MB정책으로 환영받을 만하였습니다. 특히 남과 북이 기존 합의한 모든 합의서들을 존중하겠다는 입장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진정성을 한껏 높이는 화룡점정이었습니다.

이런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불과 취임 두 달 만에 용도폐기에 직면해 있다면, 특히 지난 5월 6일 한-미 정상회담 이후로는 더더욱 그렇다면 이를 어떻게 해석하여야 합니까?

장관님은 이를 인정할 수 없다고요. 그럼 사실 확인에 한번 들어가 보겠습니다. 먼저 박근혜 정권 하의 각료들의 발언일지를 통해 확인해 보겠습니다. 2월 13일 인수위 외교국방통일분과 국정과제 토론회에서는 다음과 같은 입장이 나왔습니다. “(북한의 핵실험에도 불구하고) 큰 틀에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변화는 없다.” 장관님이 후보자 시절이었던 3월 4일 인사청문회 사전답변서에서는 “(남북)대화를 재개하는 데 전제조건은 없다”로 발언한 반면, 3월 27일 윤병세 외교부장관이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밝힌 발언은 “북한의 태도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대북 압박 정책을 펼치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한 정권(박근혜 정권)아래 두 개의 대북정책이 존재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후 장관님은 장관님이 평소에 가졌던 소신, 대화하는데 전제조건이 정말로 없는 것이었다면 지난 4월 25일 개성실무회담을 제안하면서 북한으로 하여금 답변 시간을 하루밖에 주지 않은 것은 대화를 하자는 것인지, 아닌지가 매우 불투명한 제스처였습니다.

다음으로는 박 대통령께서 과연 진정으로 북한과 대화할 의지가 있느냐 없느냐를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이는 국정운영의 최고 책임자이기 때문에 각료들의 발언과는 무게가 다를 수밖에 없고, 근본적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전제하에서 볼 때 다음의 대통령 발언, “신뢰를 바탕으로 남북관계를 차근차근 발전시켜야 한다”(3월 27일 외교부, 통일부 업무부고)고만 언급한 것은 그 신뢰를 ‘어떻게’ 쌓아야 할 것인지가 빠진 최고 행위자의 직무유기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박 대통령은 그냥 앵무새처럼 정세평론가나 관찰자와 같은 평론을 하고 있을 처지가 아니지 않습니까? 꼬일 대로 꼬이고 꼬인 전쟁국면까지 치닫고 있는 한반도 문제를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을 바탕으로 이 문제에 대해 그 어느 누구보다도 큰 책임의식을 갖고 풀어야 할 가장 핵심적인 당사자인데, 그런 핵심 주체가 관찰자 노릇을 하고 있다니...

장관님은 이런 박 대통령의 인식이 정상적으로 보입니까? 이 물음에 대한 답변청취를 뒤로하고 다음의 상황, 지난 5월 6일 한-미 정상회담 때 박 대통령은 공동기자회견에서 “북한이 국제사회에 책임 있는 일원으로 변화한다면 우리는 국제사회와 함께 지원할 용의가 있다”고 언급함으로써 ‘전제조건’ 없던 남-북간의 대화(‘전제조건’ 없다는 장관님은 완전히 똥 되셨죠?)가 확실하게 ‘전제조건’을 붙이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음을 알 수 있었는데, 이것도 모자라 여기에다 확인사살을 해 준 인물이 바로 오바마 대통령이었습니다. 박 대통령의 위와 같은 언급에 다음과 같이 화답했기 때문입니다. “평양이 약속과 의무를 지키고 특히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조치를 취한다면 대화를 할 것”이라고 밝혀, 미국도 ‘전제조건’ 있는 대화방침을 재확인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두 정상의 발언에서 확실히 확인받고, 보다 명확한 명징으로서의 표상은 북한이 ‘전제조건’의 변화 없이는 미국의 입장에서는 오바마 정권 1기에서 계속 유지시켜 왔던 ‘전략적 인내’를 오바마 정권 2기에서도 계속 유지하겠다는 것이며(그러나 이를 매우 좁게 해석하여 오바마 정권 2기의 대북정책이 1기와 비교하여 완전히 ‘일치’한다는 의미로 이해하여서는 안 된다. 즉 오바마 정권 2기는 대북정책에 있어 1기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은 맞지만, 그 전제는 매우 다르다. 다름 아닌 동북아 전략의 변화 속에서 미국은 ‘한반도 관여전략’으로 전환하였는데, 이 측면에서 대북정책도 한반도 관여전략을 상수로 하고, 대북정책은 미국이 제시하고 있는 ‘전제조건’의 변화에 따라 ‘전략적 관여’전략으로 언제든지 전환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라는 측면에서 오바마 정권 1기와 2기의 ‘전략적 인내’정책이 서 있는 토대가 매우 다름을 직시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한국의 박근혜 정권도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미국의 ‘전략적 인내’정책처럼 북한의 변화 없이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겠다는, 작동하지 않겠다는 정책을 확인하였다는 사실일 것입니다. 이를 좀 더 확대해서 접근해 보면 우려는 더 큽니다. 이유는 그 변화의 주체가 북한 스스로가 아닌, 즉 변화의 그 권한을 북한에게 맡겨주는 것이 아니라 그 변화를 강제하겠다는 매우 위험스러운 발상으로까지 사고가 확장되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음의 박 대통령의 발언 속에서도 이는 명확합니다. “북한이 변하기보다 국제사회가 일관된 노력을, 한 목소리로 함으로써 북한이 변할 수밖에 없도록 전략적 선택을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고 중요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장관님, 그래서 묻습니다. 장관님께서는 진정으로 미국이 ‘전략적 인내’정책이라는 미명하에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 미국이 이제까지 행한 그 수많은 압력이 부족해서 아직까지 북한이 변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결과적으로 미국도 중국도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 내지 못했는데, 그것을 박 대통령이 이렇게 압박을 하면 북한이 변화할 것이라고 진짜로 생각하시는지요? 정말로 이것을 믿는다면 장관님이 다음과 같은 질문에는 어떻게 답변할까 정말 궁금하네요. “오바마의 대통령의 ‘전략적 인내’가 결과적으로 한반도를 몇 년 가열시켜 결국 2013년 3, 4월의 핵전쟁 전야로 이어진 것 아닌가? 그런데도, 박 대통령이 오바마 대통령 흉내를 내면서 오히려 북한에 대해 압박을 강화하겠다니, 박 대통령 당신이야 말로 정말로 전쟁위기를 확대 재생산해내는 주범이고 싶단 말인가?”

위와 같은 각료들의 발언과 대통령 자신의 발언 속에서 이제 그 어떤 변명도 필요 없어졌습니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백번 양보하여 제 아무리 북한이 잘못된 행동을 한다 하더라도 우선 만나서 대화하고 협상하면서 그렇게 진도가 나가야 한다고. 만나지 않고 대화하지 않고 어떻게 북한의 잘못된 행동을 교정할 수 있단 말인가?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제대로 작동시키기 위해서는 결국 선(先)대화냐, 혹은 선(先)압박이냐를 선택하는 문제인데, 정답은 선(先)대화 밖에 없다고 말입니다.

3) 개성공단

장관님, 개성공단 문제를 직시하기에 앞서 알아야 할 대전제는 현재 조성된 한반도 전쟁국면의 본질이 위 ‘2. 본질과 현상, 철학으로 정세를 읽다’에서 확인받듯이 북-미간의 마지막 남은 최후결전(‘판가리’) 대결국면에서 형성된 유탄이라는 점일 것입니다. 이 전제를 간과하는 순간, 한반도 전쟁국면의 본질이 남-북 전쟁대결로 인식되는 이론학적 오류를 범하게 되는, 즉 ‘드러나는’ 현상이 ‘숨어있는’ 본질을 왜곡시키게 됩니다.

따라서 현재 조성된(혹은, 당분간 전개될) 한반도 정세의 기본 축은 북-미이고, 여기서 북한이 어떤 정치․군사적 의도를 갖고 미국을 상대하고 있는가가 현재 정세를 타개할 수 있는 유일한 출구가 될 것입니다. 바로 그 ‘어떤’의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잘 읽어 내는 것이 매우 중요해졌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박근혜 정권에게서 꼬여져 버렸다는 사실입니다. 다름 아닌 박근혜 정권이 북한의 이러한 메시지를 잘못 읽어냄으로써(남-북간의 전쟁국면으로 이해하고, 개성공단도 북한의 달러박스로, ‘잘못된 행동’에 따른 보상은 없다는 등으로 오역) 오히려 한반도 전쟁국면의 당사자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렇게 자처한 결과는 매우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하는데, 다름 아닌 김정은 정권은 ‘불량정권’이자 한반도 위기의 주범으로 전락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되어 미국에게는 대(對)중국 포위 전략의 명분으로 작용하면서 MD체제, 신(新)미-일군사동맹의 정당화에 이용되는 이득을, 중국에게는 ‘불편한’ 북한을, 대한민국 국민들한테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하 ‘북한’으로 표기)은 대한민국의 헌법상 ‘적대국’으로서의 지위를 가짐과 동시에, 1991년 체결된 ‘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약칭:남북기본합의서)에서는 남북한의 관계를 “쌍방 사이의 관계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는 것을 인정”하는, 즉 ‘통일과정에서 형성된 잠정적인 특수관계’로 규정되는 이중적인 대상국가이고, 이는 하루빨리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지향해야 함을 일컫는데, 박근혜 정권이 최근 십여 년간 이룩해 온 동반자로서의 북한을 적대국으로 원위치시켜 버렸다는 사실입니다.

장관님, 당신이 몸담고 있는 박근혜 정권의 (역사적) 과오는 출범한지 이제 겨우 두 달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렇게 크고 무겁습니다. 달리 말해 출범 2개월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정세를 읽을 줄도 자신의 대표 브랜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어떻게 작동되어야 되는지도 제대로 모르는 미숙아정권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 조롱에서 박근혜 정권은 헤어나야 합니다. 이 과정에 장관님은 큰 역할을 하셔야 합니다. 박 대통령으로 하여금 현재 조선된 전쟁국면이 북한으로 하여금 핵보유국 지위 획득을 통해 이후 6자회담이든, 북-미 양자회담이던 의제의 전환과 이니셔티브를 쥐겠다는 전략적 의도가 있고, 나아가 정전협정 무력화를 통해 한반도에서 평화체제가 수립되지 않는다면 항시적인 긴장고조의 열도라는 각인과 함께, 이 해결을 위해 미국으로 하여금 대화냐 전쟁이냐를 선택하게 하는 명분 획득용으로 지금의 정세를 활용하고 있다는 분석을 대통령께 진언하고 그래서 현재 전쟁국면이 미국으로 하여금 ‘비확산’정책으로 전환할 것인가의 여부를 묻는 북-미해결의 출구전략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으며, 이 과정에서 북한은 박근혜 정권에게 개성공단 문제를 지렛대로 하여 남-북관계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지를 묻고 있는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드려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개성공단. 비록 불완전하게 형성되었으나, 분명한 것은 6.15남북공동선언의 옥동자로 탄생했다는 사실일 것입니다. 특히 제4조, “남과 북은 경제협력을 통하여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고”에서 보여 지듯이 이후 한반도경제의 기본전략을 ‘균형적 민족경제론’에서 찾고 있습니다. 북한으로서도 개성공단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이 연장선상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생전에 ‘남북관계의 어려운 시기에 북에 투자한 남측 기업인들은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지켜줘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어 북한으로 하여금 더더욱 쉽게 포기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즉 김정일 위원장의 ‘유훈’으로 남아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북한의 입장으로 볼 때 개성공단은 오히려 남측 기업들이 자기들보다 몇 십 배 더 많은 이득을 가져가는 곳(사실은, 남과 북이 모두 윈-윈 하는 곳)으로 인식되어질 수 있는 것인데, 실제 개성공단은 남측 기업들이 북측에 주는 임금 액수보다 수십 배는 더 많이 순익을 창출하고 있는 곳이고, 반면 북측은 공단부지 100만 평을 남측에 무상으로 제공했는데, 그런 곳을 두고 남측의 언론과 전문가들이 ‘퍼주기’, ‘돈 줄’, ‘달러박스’라고 호도하고 심지어 자기 지도자의 존엄을 치명적으로 건드리고 안보적 위협까지 가하게 되니 북한으로서는 적반하장의 배신감을 느끼게 된 것이겠지요.

그 결과로 한때 전쟁방지의 안전핀, 남-북 교류협력의 허브지대로 불리던 개성공단이 이제는 그 생사를 고민해야 하는 운명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아니 ‘현재적’ 시점만으로 분석할 때는 적어도 사망선고입니다. 근거는 5월 4일 북측의 웹사이트 <우리 민족끼리>가 밝힌 “개성공단이 완전 폐쇄되느냐 마느냐는 전적으로 남한 측에 달렸다”는 언급과, 또 박근혜 정권이 아직까지는 개성공단 잠정폐쇄 이후에도 단전단수를 하지 않고 있다는 점 등으로 인해 정상화 될 수 있다는 기대가 컸으나, 5월 6일(2013년) 한-미 정상회담이 끝난 이후로는 그 기대마저도 없어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장기화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는 의미입니다. 다음과 같은 사실 이를 너무나 분명히 각인시켜 주고 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북한이 위기를 만들어내고 양보를 얻는 때는 이제 끝났다”고 말하고, 박근혜 대통령이 그 ‘양보를 얻어내려는 북한의 잘못된 행동’에 ‘북한의 3차 핵실험’과 ‘미사일 도발’에 이어, 콕 집어 ‘개성공단’을 지목하였기 때문입니다.

장관님. 그렇다 하여 해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던 북한이 이처럼 전략적 요충지였던 개성을 양보한 것이라면 개성공단 사태 해결의 출구는 역설적이게도 박근혜 정권이 쥐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유는 남-북관계가 일방적 관계가 아닌 상호작용의 관계일 수밖에 없다면 남-북관계 해법 역시 일방적일 수만은 없습니다(늘 상대방에 있다). 그렇게 해서 볼 때 북한이 개성공단을 잠정폐쇄한 근본이유가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에서의 긴장국면을 최고조로 끌어올린 이유가 자신들이 60년 간 주장해 왔던 그 이유, 즉 정전협정을 폐기하고 평화협정 체결을 통한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근본문제를 풀고자 한 것인데, 미국은 이를 의도적로 무시하였고, 이 와중에 박근혜 정권이 부화뇌동하여 터져 나온 것이 개성공단 문제인 것이라면 박근혜 정권이 부화뇌동하지 않으면 되는 것입니다.

즉 개성공단 문제에 대한 박근혜 정권의 대응방식이 안보위기를 점증시키는 태도가 아닌, 개성공단을 정상화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반드시 그 출구가 열리게 된다는 등식이 작동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박근혜 정권이 개성공단을 북측의 안보위해 요인으로 보고 있지 않음을 보여주면 되는 것입니다(=이는 다른 말로, 개성공단 정상화에 대한 확고한 의지표명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북측의 선(先)변화 없이는 대화 없다”가 아니라 ‘북측의 변화를 위해서라도 대화해야 한다’여야 하며 “섣부른 대화는 하지 않겠다”가 아니라 ‘섣부르지 않게 차분하고 진지하게 대화’하면 되는 것입니다.

4. 나오며

장관님, 복습하는 의미에서 위 도표에서 읽을 수 있는 정세 함의는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정세의 핵심 그 첫째가 현재 조성된(그리고 앞으로 전개될) 정세는 한일합방의 이전의 정세와의 유사하고, 따라서 대응력을 높이지 않으면 한반도는 미-중의 먹잇감으로 전락되는 ‘제2의 을사늑약’의 정세이며, 둘째는 미국의 남한에 대한 전략적 가치가 대(對)중국포위 전략의 지정학적 의미로 환원되고 있다는 입장변화가 읽혀지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은 ‘낡은’ 정전체제의 희생물이 될 것이라는 사실일 것입니다.

이 전제하에서 위 세 가지 현안 문제에 대해 장관님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물음과 동시에 저의 생각을 밝히는 것으로 장관님께 띄우는 이 서신을 끝맺을까 합니다. 제 생각은 다름 아니라 지금 당장 풀 수 없다 하더라도 ‘원인’ 진단을 정확히 해 놓아야 나중에 풀 수 있는 길이 열린다고 말입니다.

해서 박근혜 정권의 대북정책은 비핵화와 북한 문제(5.24조치, 천안함 사건, 연평도 포격, 개성공단, 인도적 지원, 인권문제, 납북자 문제, 교류·협력문제, 이산가족 상봉문제 ...)를 분리하여 접근하여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작동할 수 있는 여지를 확보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 G2체제가 형성되기 전에 수립된 기간 남북관계 합의서들(7.4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6.15와 10.4공동선언)을 하루 빨리 존중하고 계승하되, ‘담대한 대북전략’을 수립하여 G2체제가 출범하더라도 흔들리지 않을 만큼의 내공을 가져내어야 합니다. 그 첫 출발은 ‘햇볕정책’과 ‘퍼주기론’의 대립과 갈등에서 교훈을 찾아 새로운 동북아환경과 북-미, 남-북관계의 변화 속에서도 소모적인 국론분열이 발생하지 않게끔 남북관계 합의서의 제도화(법제화)장치 마련, 전쟁국면에서도 전면적 인도적 지원이 가능한 정책으로 전환(투 트랙), 특사 및 각급 고위급 회담의 복원과 제3차 정상회담을 통한 제2의 6.15와 10.4공동선언을 하루 빨리 내 오는 정책도 드라이브가 가능한 정권 초기에 작동시켜 내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한 (이 서신에서의) 저의 마지막 충고는 이렇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누가 뭐라 해도 박근혜 정권은 역대 그 어떤 정권보다도 위와 같은 드라이브를 걸 수 있는 충분한 힘이 있습니다. 이유는 역대 그 어떤 보수정권보다 보수층의 강력한 지지기반 위에 놓여 있고, 그러하기 때문에 이 기반을 바탕으로 북한과의 ‘신화해정책’, 혹은 ‘신교류·협력정책’을 펼치더라도 딴지를 걸 집단이 없습니다. 즉 보수층과 진보층(좌와 우) 모두로부터 환영받을 수 있으며, 남북관계에 있어서 새로운 역사의 장을 개척한 대통령으로 기록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영광의 자리에 장관님도 기록될 수 있도록 혼신의 힘을 다해주시길 정말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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